소소한 이야기들

많이 덥다

아이루다 2018. 8. 2. 07:26

 

요즘 뉴스에 부쩍 날씨 관련한 내용이 많이 올라온다. 그도 그럴 만 하다. 백 년만의 더위라고 하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정말로 덥긴 하다. 하루가 더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벌써 이주 이상이 연속으로 덥다. 이것이 진짜로 문제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최소 열흘 이상은 더 더울 듯 하다.

 

정말로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가을과 눈이 오는 겨울이 그리워지는 시기이다.

 

오늘 아침도 아직 7시도 되기 전인데 집안 온도가 32도이다. 어제 40도에 육박한 날씨가 제대로 식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일어나자 마자 샤워를 해야 했다.

 

그래도 그나마 오전 시간은 집에 있을 만 하다. 하지만 12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도저히 집에서 있을 수가 없다. 더워도 너무 더워서 숨이 막힌다.

 

, 밖에서 힘들게 땀 흘리며 일하는 분들의 수고스러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다른 사람들의 힘듦을 안다고 해서 내가 덜 힘든 것은 아니다. 사실 그래서도 안되기도 한다. 남의 행복을 통해 내가 불행해질 필요가 없듯이 남의 불행을 통해 내가 행복해질 필요도 없다.

 

그런 것은 그냥 각자가 감당할 몫이어야 한다.

 

그나마 요즘은 회사 일이 많지 않아서 집에 있어도 되고 나가도 되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번 주는 나와 계약이 되어 있는 회사가 공식적으로 휴가이다. 그래서 가끔 들어오는 수정 요청을 아침 나절에 빠르게 처리하고 나면 거의 하루 종일 자유롭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유이다. 더우니 집에서 뭔가 하고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간다고 해서 딱히 묘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내 나름대로 노하우는 있다. 도서관, 커피가게, 게임방을 가는 것이다.

 

요즘은 더우니 근처 도서관에 자주 간다. 거기는 시원하고 조용하며 글을 읽거나 쓰기에 좋다. 문제는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방학기간이라서 사람이 유난히 많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맡는 것이 일이다. 어떨 때는 빈 자리가 없어서 그냥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커피 가게를 간다. 시원하긴 한데, 이상하게 나는 카피 가게에 오래 있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기껏해야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나온다.

 

오후에 수영을 하는 날은 괜찮은 편이지만, 수영이 없는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오전엔 그나마 버티던 체력이 오후 네 시쯤이 넘어가면 급격히 떨어진다. 나이 탓인지 더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몸이 지치면 머리가 돌지 않는다. 책을 읽기도 힘들고 글을 쓰기는 더욱 더 힘들다.

 

그래서 그때는 게임방에 간다. 아무 생각 없이 뭔가를 하기에 좋고, 당연히 시원하기도 하다.

 

요즘은 한참 예전에 했던 와우라는 게임을 다시 하고 있다. 사실 게임을 한다기 보다는 그냥 시간을 보낸다. 재미있어서 하기 보다는 게임방에서 할 만한 게임이 그것밖에 없어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이라도 덥지 말자~!!


아무튼 이렇게 심하게 더우니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목표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오직 덥지 않게 보내는 일이다.

 

하루 종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이 들으면 웃기는 소리라고 할 것이다. 그들은 더위와 상관없이 매일 해야 할 일이 있고, 스트레스도 받고, 출퇴근의 수고스러움을 견뎌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하루 동안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이 그저 덥지만 않으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삶의 진짜 비밀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인간이 이리 복잡해진 이유는 심하게 덥지 않아서, 심하게 춥지 않아서, 심하게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아서, 심하게 안전에 위협을 받지 않아서, 심하게 아프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어떤 고통이나 두려움이 터무니 없이 강해지면 삶은 금세 너무도 단순해진다. 더위를 피하고, 추위를 줄이며, 먹을 것을 구하고, 안전한 장소를 만들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투자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진짜로 그런 순간이 오면 삶에 대한 고민, 정체성 고민,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 행복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은 머리 속에서 그냥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철학과 같은 학문이 왜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먹고 살만하니 발달한 것이다.

 

, 누군가는 삶을 그렇게 산다면 동물과 뭐가 다른가, 라고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되묻고 싶다. 인간은 왜 동물과 달라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이 과연 그 이유가 될까? 그것은 그저 조건이 좋아서 그럴 수 있을 뿐인데 말이다.

 

2018, 이 숨막히는 여름은 나에게 단순하고 명백한 가르침을 준다. 삶은 그냥 사는 것이란 평범한 진실을 깨우쳐주고 지나가고 있다. 그 가르침은 무척 고맙지만 마음 속에서는 빨리 가을이 왔으면 한다.

 

그렇지만 정작 가을이 오고 날씨가 시원해지면 나는 여름이 가르쳐준 진실을 잊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저 덥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을 다음 여름이 올 때까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나의 해결 불가능한 어리석음이니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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