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방구의 딜레마

아이루다 2018. 6. 17. 10:43

 

많은 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에 빠지고운이 좋다면 결혼까지 하고 같은 집에 함께 사는 과정을 밟는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다. 단지 만나는 기간이 남달리 유난히 좀 긴 편이었다.

 

그런데 연애기간을 끝내고 부부로써 같은 집에 살게 될 때, 생각지도 못한 참 애매한 문제가 하나가 생겨난다. 그것이 바로 방구이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방구를 끼지 않는다. 냄새도 나고 해서, 사실 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좀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집에서는 다르다.

 

집은 기본적으로 얼마든지 방구를 낄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집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직은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남아있는 신혼부부에게 방구 문제는 꽤나 복잡하다. 그냥 집으로 생각하고 뿡뿡 끼면서 살자니 상대가 자신에게 좀 실망할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남들 앞에서처럼 그냥 참자니 뭔가 좀 억울하다. 그야말로 집은 방구의 자유구역이니까 말이다.

 

그나마 남자는 원래 그런 것에 대한 환상을 품기엔 이미 더러운 경향이 있어서 쉽게 방구를 튼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엔 좀 오래 간다.

 

 아내도 현재 그렇다. 물론 화장실에서는 마음껏 자유롭게 내적 갈등을 외부로 내보낸다. 가끔은 그 방구 소리가 화장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증폭되어 외부로 크고 깊은 울림으로 전달될 때도 있지만, 나는 그때마다 박수를 쳐줌으로써 그녀의 방구 소리에 경의를 표하면서 내가 그 소리를 다 들었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물론 바로 아내에게 한 소리 듣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의 방구는, 나는 집안 전체, 아내는 화장실로 한정되어 있다. 물론 나 역시도 밖에서는 조심을 한다.

 

한때는 그것 것이 나의 일관성을 깨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집안에서 방구를 마음껏 배출했다면, 밖에서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실제로 그래서 그러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일관성은 그저 허울일 뿐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상황에 맞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고 남들에게 피해까지 주는 별로 안 좋은 모습이 될 뿐이다. 그리고 일관성의 본질이 바로 내면에 존재하는 두려움의 또 다른 표현임을 이해하고 난 후로부터 바뀐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집에서 가끔 방구를 낀다. 그런데 유난히 속이 좋지 않은 날은 자주 끼기도 하고 냄새도 좀 난다. 그러다 보니 옆에 있던 아내가 질겁을 한다. 그리고 나를 비난한다.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

 

아내는 방구를 끼고 싶을 때마다 베란다에 가서 끼고 오라고 하지만, 방구가 담배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때마다 나갔다 오겠는가? 그것도 한껏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보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의 요청을 가볍게 거절하고는 그냥 하고픈 대로 한다.

 

사실 아내의 코가 너무 민감한 탓도 있다. 그녀는 오감이 다 민감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내가 맡지 못하는 꽃 향기를 느낀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내가 느끼지 못한 촉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음식이 상하거나 식 재료에 문제가 있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러니 나도 좀 억울한 경향이 있다. 자신의 코가 민감해서 내 방구 냄새를 더 잘 맡는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며칠 전 잠자기 직전에 방구가 마려워서 살짝 끼었다. 일명 픽방구이다. 사실 방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녀석이긴 하다. 소리가 나질 않기에 상대는 방심하다가 당한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픽방구는 냄새가 더 많이 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날은 비록 픽방구를 끼었다고 해도 그다지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기준엔 말이다.

 

그렇지만 방구냄새의 원인이 되는 입자가 브라운 운동을 통해 공기 중으로 퍼진 오 초쯤 후에 아내가 갑자기 코를 틀어 막는다. 그리고는 나에게 뭔가 냄새가 나지 않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나질 않는다고 대답했다. 진짜로 나질 않아서 그랬다. 물론 속으로는 방구를 낀 사실이 있기에 약간 찔리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자 아내가 좀 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반드시 진실을 캐내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정을 지은 채, 내가 방구를 낀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그랬다고 말이다. 그러자 아내가 난리를 친다.

 

방구를 꼈으면 꼈다고 말을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한다. 왜 거짓말을 하냐고 따진다.

 

하지만 사실 나는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냄새가 나질 않아서 안 난다고 한 것이고, 방구를 낀 것이 맞냐고 물었을 때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내는 나에게 냄새가 나질 않냐고 물었을 때 왜 방구를 끼었다고 답하지 않았냐고 나를 추궁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은폐한 것이라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나를 코너로 몰고 갔다. 잠자기 전에 몰래 방구를 끼는 몰염치한 존재로 나를 정의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물었다. 내가 방구를 낀 것은 사실이나, 그 냄새가 거의 나질 않았지만 너의 코가 민감해서 그 냄새를 맡은 것이 오직 내 잘못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예를 들어서 누군가 너의 옆에 귀가 매우 민감한 사람이 너의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괴로우니 심장 소리를 멈춰달라고 하면 멈출 수 있냐고 되물었다.

 

나의 합리적이고 타당한 답변에 아내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 했다. 하지만 곧 방구 소리는 조절할 수 있지만, 심장 소리는 어찌할 수 없는데 그것을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냐고 따졌다.

 

사실 아내는 그리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어서 그렇게 일목요연하게 따진 것은 아니고, 뭔가 억울하다는 듯 표현했고 내가 그리 해석해서 들었다. 그러니 역시나 그 논리를 무시할 수 있는 것도 내 자신이었다.

 

나는 이미 승기를 잡았고, 그것을 놓칠 바보가 아니었다. 심장소리도 생리현상이고, 방구도 생리현상인데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그리고 계속 그렇게 방구를 참다가는 장에서 역류를 해서 입으로 방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 방구 냄새가 날 텐데 그것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삶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하는 와중에 입에서 방구 냄새가 계속 나면 그 말이 잘도 공감되겠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내는 내 억지스러움에 황당한 듯 결국 웃고 말았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원래 좀 억지로 뭔가 주장하는 것을 잘하는 편이긴 하다. 예전부터 그런 훈련을 열심히 해온 탓에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궤변을 잘 늘어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아내가 자주 당한다. 이 자리를 빌어서 아내에게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아무튼 그건 그것이고 방구의 자유는 방구의 자유이다.

 

아내는 웃고 나서도 계속 구시렁댔지만, 나는 너의 코가 민감해서 방구 냄새를 잘 맡는 것을 왜 나에게 책임지라고 하냐는 논리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더 계속 그러면 방구를 더 끼겠다는 협박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현명한 여자다. 사실 당시 나는 더 이상 방구를 낄 여력이 없었지만, 나의 마지막 한 수는 잘 먹혀 들어간 셈이다.

 

그리고 잠들기 전까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것은 상처를 입힌 사람의 책임일까 아니면 상처를 쉽게 입는 사람의 책임일까?

 

이것은 소위 방구의 딜레마이다. 도대체 답을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론은 존재한다. 상대가 계속 방구를 낀다면,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면 그냥 인정하거나 혹은 아예 분리를 해야 한다. 싸운다고 해서 상대의 뱃속에서 더 이상 가스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내도 방구를 트는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 날이 올 것을 알면서도 또한 방구를 참으려고 애쓰는 아내의 모습이 웃기면서도 사랑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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