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시간을 때우는 삶

아이루다 2018. 4. 22. 06:12

 

과거에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또한 매우 지루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아니, 사실 그조차도 몰랐다. 그냥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만 느낄 뿐이었다. 그것이 외로움이며 또한 지루함이라는 것을 안 것이 최근 몇 년 전이다.

 

알고 나서 바뀐 것인지 아니면 바뀔 때가 되어서 바뀐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은 혼자 있다는 것은 홀로 있는 것이 되었고, 그로 인해서 외로움은 호젓함으로 지루함은 심심함으로 변화되었다.

 

이런 변화의 원인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그 중에서도 요즘은 과거와 달리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만나고 다녀서 그런 듯 하다.

 

그 덕분에 의도치 않게 내 생애 처음으로 지역 사회에 인맥망이 생겼다. 이것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이한 사건이다.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평소엔 할 일이 딱히 많지는 않다. 일주일에 한번 독서 모임에 참가하고, 세 번 수영장에 간다. 그리고 하루 회사에 다녀온다. 이것이 내가 하는 일주일 동안의 공식 행사의 전부이다.

 

물론 회사를 다녀오는 것 이외에도 집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매우 불규칙 하다. 그래서 하루 종일 바쁠 때도 있지만, 하루 종일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아내는 보통의 직장인이다. 아침에 7시쯤 출근을 시작해서 저녁엔 빠르면 7시쯤 집에 온다. 하지만 야근도 가끔 있고, 술자리도 꽤나 있는 편인 회사라서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은 늦는다. 어떨 때는 일이 많아서 더 일찍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홀로 있는 경우도 있다. 중간에 수영을 갔다 오는 등의 일을 빼면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그 시간들을 다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글을 쓰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뭔가를 보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 책을 읽기도 한다. 더해서 청소, 빨래, 요리 등의 살림도 한다. 하지만 둘이 사는 집이라서 그다지 많지는 않다.

 

수영이 있는 날이면 수영을 끝내고 바로 옆에 있는 송파도서관에 가서 노트북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니 나는 가끔 내가 대견하다. 하루 최소 12시간, 심할 때는 16시간 정도를 홀로 있는다. 중간에 독서모임과 수영장에 다녀오느라 사람들을 대하지만, 이동시간 포함해서 3시간을 넘지 못한다.

 

원래 외로움과 지루함은 우울함을 만들어 낸다. , 기분이 쳐지고 더욱 좋지 않는 점은 의욕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호젓함과 심심함은 어느 한 순간의 상태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당장 뭐라도 하게 되면 금세 사라지고 만다. , 의욕과는 관련이 없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면서 바쁘게 사는 삶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 않은 것도 같다.

 

나는 한때 내 시간이 정말로 소중하다고 느끼면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을 싫어했고, 내 생각에 별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방해 받는 것이 싫었고, 무엇을 하든 최대한 효율적이고 계획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좀 바뀌었다. 나는 내 시간이 그냥 별다른 의미 없이 보내는 것에 별로 상관이 없어졌다. 약속에 늦는 사람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 약속에 늦으면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꺼내서 글을 쓰곤 한다. 어떨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때도 있다.

 

내가 불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더라도 누군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냥 한다.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있더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다지 많은 거부감 없이 할 수 있다. 물론 여전히 효율성과 계획성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저 오래된 버릇과도 같다.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 도움도 된다.

 


결국 나는 요즘 시간을 때우고 산다.

 

이런 변화로 인해서 생겨난 좋은 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가진 능력을 주변에 베풀 기회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내가 딱히 무엇을 하든 상관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 나와 얽혀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기회가 제법 있다.

 

요즘은 일주일마다 어머니를 모시고 양주에 있는 병원에 다녀온다. 운전 시간만 네 시간 정도, 진찰을 하는 시간까지 해서 총 5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이번 주엔 수영장 모임에서 짧은 나들이를 다녀왔다. 대부도에 다녀왔다. 역시 운전을 했다. 가서 가볍게 산행도 하고 회도 먹고 왔다. 사실 올해 총무를 맡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도 자잘한 일들이 있다. 불규칙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많아서 그것을 하나하나 적을 수는 있지만, 아무튼 그것들도 조금씩 시간을 쓰는 일이다. 여기에선 네이버에 만들어 놓은 카페지기를 하고 있다.

 

시간을 때우고 살아가는 상황이니, 뭔가 시간을 때울만한 일이 생기는 것이 좋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삶을 여유롭다고 하면서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많은 것도 하고 싶은 일이 많아야 하고, 그것을 할 수 있는 돈이 충분할 때나 좋은 것이다.

 

하고 싶은 일도 별로 없고, 돈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시간이 많을수록 더욱 더 힘들다. 회사 생활을 하는 것도 비슷하다할 일이 별로 없는 회사를 다닐 때가 정말로 지루하다. 오히려 바쁘면 시간이 잘 가는데, 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로 하루가 지루하고 길다.

 

나는 아직은 노인은 아닌데 이미 노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삶이 앞으로 변화될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회사 일을 하고 있지만 이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모르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올해까지가 목표였다. 물론 더 일을 할 수 있다면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만해야 한다면 그다지 미련도 없다.

 

아무래도 시간이 남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드럼을 배워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림을 배워볼까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내 타고난 재주로는 영 힘들 듯 하다. 뭔가 색다른 것을 배워보고 싶은데, 찾아봐도 영 마땅한 것이 없다.

 

아마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더 심해질 듯 하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두 번째 시골집을 짓는 일이다. 요즘 다시 땅을 알아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운이 따른다면 내년쯤엔 또 다시 집을 한 채 지을 것이다.

 

도시의 삶은 이렇게 흘러가겠지만, 아내가 퇴직을 하고 함께 시골에 가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다른 삶이 벌어질 것이다. 나는 농사를 지을 것이고, 시골의 삶을 사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 것이다. 할 일은 매일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이니 시간을 어떻게 때울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때가 오려면 한참 멀었다앞으로 최소 10년 동안은 이런 삶을 버텨야 한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을 때우는 일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그다지 우울하지 않고, 그다지 불안감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괜찮을 것 같다. 그럼 됐다.

 

글을 쓰는 동안 아내의 알람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일요일인데도 일이 많아서 오전에 회사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다. 깨워서 커피를 내려서 보온병에 담아 준 후 회사에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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