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목숨의 빚

아이루다 2018. 1. 6. 08:36

 

어제 저녁에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봤다. 제목은 "1987".

 

고문을 당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박종철 열사와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호헌철폐를 외치다가 포물선 방향이 아닌, 직선 방향으로 발사된 최루탄에 맞아 또 다른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1987년은 1980년 광주 시민의 피를 재물로 해 정권을 잡았던 군부독재의 마지막 발악의 시대였기도 했다.

 

최근 내가 영화관에서 본 한국 영화들은 "부러진 화살", "귀향", "소수의견", "택시 운전사" 등등이다. 그리고 오늘 "1987"이 더해졌다.

 

사실 요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아서 1년에 영화관을 가는 횟수가 한두 번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 헐리우드의 영화가 거의 마블과 DC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 더욱 더 심해졌다.

 

그럼에도 어떤 영화들은 꼭 보게 된다. 아니, 봐야 한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 대부분은 즐겁기 보다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어제 본 영화도 그랬다. 그래도 초 중반까지만 해도 담담하게 봤다. 세세한 부분은 몰라도 전체적인 이야기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1987년도에 고등학생이었지만, 나 역시도 1987년도를 경험했었다.

 

아마도 본격적으로 눈물이 나기 시작한 부분은 배우 강동원씨가 연기한 이한열 열사의 죽음부터인 것 같다. 이때부터 감정이입이 제대로 된 듯 하다. 한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내 옆에는 나보다 최소 두 배는 더 울고 있는 아내가 있었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나왔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장면에서도 그냥 좀 멍하게 있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들 그랬다.

 

영화 속에는 박종철, 이한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도했던 안 했든지 최초에 시신의 화장을 막았던 검사, 진실을 끝까지 추적하는 기자, 보도지침은 모두 무시하라고 소리질렀던 편집국장, 데모하는 청년들을 숨겨준 아줌마, 진실을 위해 위험한 심부름을 했었던 교도관과 숨겨진 진실을 밖으로 넘긴 또 다른 교도관이 있었다.

 

또 그리고도 많았다. 곤봉과 최루탄 그리고 잡히면 고문을 당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래서 내면에서 올라오는 두려움을 순수한 분노의 힘으로 맞서 싸우면서 버텼던, 그 시대를 살았던 수 많은 양심들이 있었다.

 


사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나이도 제법 먹었기에, 이제는 조금 마음의 빚을 줄여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제 영화를 보고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것은 마음의 빚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누군가에 대한 목숨의 빚이었다.

 

물론 누구도 죽고 싶어서 죽은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 시대를 살았던, 그리고 두려움 앞에서 분노의 용기로써 대항했던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죽는 그 날까지 그 빚을 온전히 갚을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기분 나쁜 것도 아니며,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양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그 빚을 평생 동안 갚아야 하는 채무자의 의무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예전과 같이 그런 비겁한 분노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사람들에 대한 짜증이나 혐오와 같은 감정들은 거의 생겨나지 않았다.

 

그저 그 안에서 살아야 했던 시대의 아픔을 지는 분들에 대해서 죄송하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지 새내기 대학생으로 나온 여학생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난 후 오열을 할 때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맑은 얼굴이, 그냥 그렇게 맑게 살았으면 했다.

 

여학생은 물었다. 왜 나에게 그런 것을 보여주냐고, 그렇게 해서 세상이 바뀔 것 같냐고, 정말로 그날이 올 것 같냐고, 무섭지 않냐고, 왜 가족은 생각하지 않냐고.

 

그 누구도 이 질문들에 대해서 딱 부러지는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그래서 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결국 할 수 밖에 없다고 대답할 방법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리 속에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1987년도의 시민혁명은 지금 완성되었는가 이다. 아마도 1년 전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7년도에 일어난 또 다른 촛불혁명은 그것을 조금이라도 되돌려놓았다. 아마도 이제 겨우 시작일 것이다. 올해 혹은 내년 또 그리고 몇 년 후에 또다시 어떤 분열이 일어나고, 또다시 누군가의 죽음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시대엔 또 다른 양심들이 일어날 것이고, 또 다른 시민들의 응원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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