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나의 과거를 보는 마음

아이루다 2017. 11. 14. 08:11

 

일상적으로, 나는 아침에 6시 전에 깬다. 실제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은 6시가 넘을 때도 있지만, 잠이 깨는 시간은 빠르면 4시 정도, 늦어야 5시 반 정도이다. 물론 그래서 일찍 자기도 한다. 저녁에 9시만 되면 졸리니 말이다. 그리고 평소엔 10시쯤 잠에 든다.

 

아내는 내가 늙어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도 나랑 비슷하게 잔다. 단지 더 오래 잘 뿐이다.

 

내가 늙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버릇이 되어 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아내가 출근을 한 7시 이후가 되면 내가 주로 쓰는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내 블로그를 본다.

 

처음 하는 일은 주로 관리자 쪽으로 가서 조회수나 어떤 글들이 주로 많이 읽혔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댓글에 답글을 달기도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꽤나 예전에 써 놓은 글 하나가 갑자기 많이 읽힌 날이 있다. 그러면 나 역시도 그 글에 호기심이 생겨서 읽게 된다.

 

이런 글들은 보통은 12년도나 13년도쯤 쓰여진 글들이 많다. 그러니까 5년전이나 4년전 글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일단 그 글을 내가 쓴 것은 확실하다. 내 블로그에 써져 있는 글이고, 그 글을 왜 썼는지, 뭘 말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나고 이해도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글을 쓸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 어떨 때는 낯설기까지 하다.

 

아마도 그 글이 내가 쓴 것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봤다면,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논지가 확실하고 무엇을 말하는지 명확하긴 하지만 뭔가 독선적이고, 강요하는 느낌이 든다.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느낌보다는 가르치는 느낌이다.

 

예전에 책을 낸 후, 누나가 써 준 서평에 나온 대로 '나를 따르라 하는 느낌', 아마도 그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왠지 뭔가 경계심이 생긴다. 내가 쓴 글이지만, 또한 읽어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 말을 따르고 싶지 않다.

 

내가 이런 이상한 감정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그 5년이란 사이에 나에게 일어난 변화 때문일 것이다그 변화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런 형식의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 쓰던, 바른 말이긴 하지만, 뭔가 좀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사감 선생님과 같은 느낌, 그런 말 말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는 행복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겨우 인정하게 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만한 일이지만, 나는 한 때 인간은 개인적 행복보다 좀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과거 일제시대라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나, 독재시대라면 학생운동을 하는 것이거나, 요즘으로 따지면 사회 약자를 돕거나 촛불시위에 열심히 참가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런 생각 자체에 대한 변화는 별로 없다. 단지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독립운동을 하든 학생운동을 하든, 남을 돕든, 촛불시위에 나가든, 그것은 모두 내가 행복하기에 선택했다는 것이다. , 그것은 행복보다 더 높은 차원의 뭔가가 아니라, 그저 행복의 또 다른 유형이었음을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서서히 이뤄지긴 했지만, 강력한 변화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옆에서 끝없이 행복하게 사는 아내의 모습 때문이었다.

 

나는 더 높은 이상을 추구했지만, 맛난 저녁을 먹고 행복해서 노래를 부르는, 그런 단순하게 사는 아내의 행복한 삶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그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리 쉽게 포기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행복 역시도 결국엔 생존을 위한 수단임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 결국 나는 행복은 결코 가치가 될 수 없음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사실 이것도 매우 큰 변화였다. 내가 추구하고 있던 모든 종류의 가치 있는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행복을 인정하면서 시작된 변화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살지만, 그 행복은 그 어떤 가치가 없다.

 

이 한 문장이 현재의 나의 모든 것을 표현해주고 있다. 그리고 이 문장은 비록 이해는 했지만, 완벽히 받아들여지지는 못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꾸준히 받아들이려고 노력은 하고 살아간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행복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나 어렵고 난감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이뤄지는 순간, 내 삶에서 소중하다는 것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꽤나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생각한 시간의 최종 결론이다. 그래서 부정할 수가 없다.

 

오늘 내가 읽었던 과거의 글은 '대리만족이라는 이름의 마약' 이었다. TV속 드라마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글이었다.

 

,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거부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글 내용 중에서 TV를 보는 것을 통해서 대리만족만 하지 말고 뭔가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놨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니까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나라면 그렇게 쓰지는 않을 것이다. 같은 표현을 한다고 해도, TV를 보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좋지만그렇게만 살다가 보면 우울해질 수 있으니, 힘이 있을 때 조금 더 노력해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썼을 것이다. 그것이 더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그래야 한다고 설명을 했을 것이다.

 

작은 입장의 차이지만, 생각보다 그것을 하기 위한 마음자세의 차이가 크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글을 뜯어 고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부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내가 걸어온 길이기에 그냥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귀찮아서 그렇다.

 

지난 5년간 변해왔듯이 아마도 나는 또 변할 것이다. 5년 후 나는 이 글을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보다 좀 더 나 자신을 받아들인 모습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지난 5년간의 변화는 나름 극적이었다. 그리고 이후 5년간의 변화도 나름 극적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변해갈지도 궁금하고 또한 기대도 된다. 아마도 과거로부터 변한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 인해서 이런 글은 있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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