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11월의 찰밥 여행

아이루다 2017. 11. 6. 09:19

 

넷이 근교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당일치기라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그래서 그 중 한 명이 다녀왔던, 잣향기 푸른 숲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 중 시간이 남는 둘은 사람이 별로 없는 평일에 가고 싶었지만, 나머지 둘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결국 토요일 날로 정했다.

 

역시나 차가 막혔다. 가을 단풍이 절정인 요즘, 비록 가평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었다. 특히 춘천 방향을 향하는 차들이 가득했다.

 

덕분에 한 시간 가량 정도 걸릴 거리가 온전히 두 시간이 걸렸다. 9시에 서울에서 출발을 했는데, 11시에 도착을 했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주차장엔 이미 차들이 가득 이었다. 더해서 관광버스도 꽤나 보였다. 왠지 복잡하고 번거로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이미 예상하고 온 여정이다. 차에서 짐을 꺼낸 후다들 등에 지고는 출발을 했다. 근데 입구 화장실부터 사람들이 가득했다. 특히 어느 단체에서 온 듯한 중년의 여성분들이 남자 화장실까지 모두 점령한 상태였다. 그래도 일행 중 한 명이 이미 와본 적이 있었기에, 위로 올라가면 화장실도 또 있다는, 아주 귀중한 정보를 통해 과감히 포기를 하고 안쪽을 향해 걸을 수 있었다.

 

다행히 위쪽에 별로 사람이 없었다. 일행은 두 시간 남짓하게 참아 온 생리현상을 해결하고는 가뿐하게 출발을 했다. 그런데 다행히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미 일찍 도착했다가 되돌아 가는 중인 듯 했다.

 

아무래도 사시사철 푸른 잣나무이다 보니 가을 느낌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혹 보이는 빨갛게, 노랗게 물은 잎들과 코 끝으로 전해오는 찬 기운을 품은 맑은 공기가 너무도 상쾌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어떤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지만, 가끔 웃고, 가끔 생각하고, 가끔 딴청을 부리고, 가끔 멈추고, 가끔 낙엽을 발로 차면서 걸었다.

 

잣을 줍기도 했는데, 한 명이 까서 먹고는 고소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권했다. 하지만 잣을 그렇게 먹으면 다람쥐가 고소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른 한 명은 잣을 모으기 시작했다.

 

길은 원만했고 단조로웠다. 길 양편으로 길게 뻗은 잣나무들과 그 사이를 통과하며 먹이를 찾는 작은 새의 끝없는 움직임이 전부였다그리고 아주 가끔 다람쥐가 고소를 하려는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깨는 무거워지고 배는 고파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만한 장소가 저수지 근처이기에 그곳까지 이동하기로 했는데, 도착하니 이미 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배가 고플 만했다.

 

한 명은 김밥을 싸오고, 한 명은 찰밥과 멸치호두조림과 김을 구워왔다. 다른 한 명은 시래기무침과 시금치국 그리고 계란말이를 해왔다. 다른 한 명은 과일을 준비해왔는데 문제가 생겨서 제대로 먹질 못했다.

 

그 문제는 바로 추위였다. 11월의 잣향기숲은 밖에서 밥을 먹기엔 너무 추웠다.

 

그제서야 일행은 다른 사람들은 왜 밥을 먹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또한 한쪽 옆에서 사진을 찍는 아줌마들의 무리가 왜 그렇게 시끄러운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차가움 때문이었다.

 

그래도 김밥은 먹을만했다. 새벽에 싼 김밥이긴 하지만, 아직은 온기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맛나기까지 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말이다찰밥도 좋았다... 그래 좋기는 했다. 단지 원래 동지애가 강해서 서로 잘 떨어지지 않으려는 찰밥과 차가운 날씨가 만난, 그 혼돈이 문제였을 뿐이다.

 

바람이 차니, 손이 시리고, 손이 시리니 젓가락질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찰밥은 일반 밥보다 더욱 더 뭉치기를 잘한다. 그야말로 찰졌다. 이것이 서로 어우러지니, 밥 한 숟가락 뜨기가 쉽지 않았다.

 

손이 시렸던 한 명이 장갑을 꼈지만, 장갑을 끼니 손은 따뜻하지만, 젓가락은 본격적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밥은 먹어야 하는데, 찰밥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반찬 중에서 멸치볶음 역시 죽은 멸치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엉겨 붙어서 전우애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찰밥과 멸치볶음을 준비해 온 이는 동일인이었다.

 

처음에 가졌던 음식에 대한 감사함은 추위로 인해 점점 사그라지고, 그러자 그 중 김밥을 준비했던 한 명이 놀러 올 때는 김밥처럼 쉽게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정말로 부드럽게 조언을 했다.

 

하지만 찰밥과 멸치볶음을 준비한 이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나머지 두 사람은 맛있다고 위로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이미 차갑게 식은 찰밥이 되어 버렸다.

 

그런 와중에 김밥을 싸온 이가 이번 여행을 '11월의 찰밥 여행'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고 하자, 다들 웃음이 터졌다. 찰밥을 준비한 이는 웃으면서도 슬펐다.

 

나름대로 힘들게 밥을 먹고는 손이 시려서 힘들게 깎아온 단감을 먹을 엄두도 내질 못하고는 다들 가방을 주섬주섬 챙겼다. 찰밥을 준비해 온 이는 먹어서 가벼워진 가방이 좋다면서 자기 위로를 했다. 사실 그 말은 맞긴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장점이 있었다. 그것은 오는 내내 뱃속이 묵직했던 것이다. 뱃속에 들어간 찰밥들이 서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었다.

 

이해가 되었다. 입 안에 들어갈 때부터 그랬으니,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을 나와 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다가 잠시 찻집에 들러 차를 마셨다. 각자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삶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자꾸 후회를 했다. 오늘 밥을 늦게 먹어서 후회를 했고, 예전에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떡도 빵도 아닌, 옥수수를 먹었던 아쉬움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후회 때문에 많이 웃기도 했다. 마지막엔 오늘 후회를 많이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했다.

 

잘 먹고, 잘 놀고 그래서 조금 더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통해 네 사람의 관계는 조금 더 찰밥처럼 변했다서울에 도착하니 6시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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