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또 다시 비오는 월요일의 상념

아이루다 2017. 7. 31. 08:59

 

아침에 언제나처럼 커피를 내려서 아내의 보온병에 반을 담고, 내가 쓰는 커다란 머그컵에 나머지 반을 담았다. 그리고 거실에서 반쯤 걸터서 앉아 있는데밖에서 약간 싸늘한 느낌이 드는 바람이 슬 밀려 들어왔다.

 

아직도 장마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지, 월요일 아침부터 또 비가 왔다. 반가웠다.

 

지난 며칠 시원하더니 일요일인 어제는 자기 전까지 좀 더웠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내리는 비가 더 좋았다아마도 출근을 할 필요가 없기에 더욱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원래 여름 더위의 최고는 7월 말부터 8월 초인데, 오늘로써 7월 말은 끝난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여름의 힘든 구간이 반쯤 지나갔다는 사실도 좋다.

 

개인적으로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로 인해서, 일년 중 이 시기가 견디기 제일 힘들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시면서, 차가운 기운이 느끼지는 공기를 느끼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생각의 주제는 바로 지난 금요일 오랜만에 모인 독서 모임에서 나눴던 내용이었다.

 

특히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바로 참가했던 한 분이 나에게 던졌던 질문, '행복하세요?' 였다.

 

나는 당시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물론 또 다른 한 분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대신 반박을 해주긴 했다. 물론 내가 행복한 순간들은 있다. 특히나 사람들 하고 어울릴 때는 행복해 보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다.

 

나는 당시 내가 평온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나는 평온한 상태도 아니었다. 나는 사실 좀 심심한 상태이다. 매일 시간과 일종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을 평온하다거나, 평화롭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가끔 평온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 이것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한 끝에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상태였다. , 나는 아주 소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까 생각하기엔 행복하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적극적으로 행복을 추구하지 않을까? 할 수 없어서 그럴까? 아니면 부담스러워서 그럴까?

 

이것도 또 하나의 생각할 주제이다. 아마도 둘 다 있는 것 같다. 혹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만한 욕구가 생기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욕구가 부족해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원래 병이다. 그것을 우리는 통상 우울증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 것일까? 그것은 아니다나는 적어도 우울증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일까?

 

그래서 좀 더 생각을 했다그리고 결론이 났다나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었다. , 가치가 느껴지는 것이 거의 없으니 무엇인가를 의지적으로 추구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고, 욕구가 생기지 않으니 뭔가 이뤄지는 것도 없는 상태여서 결국 행복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생각에 다다르고 나니, 세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다.

 

가치성, 중요성, 필요성 이다. 도대체 이것들은 어떻게 결정이 될까?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내 삶을 위해서 아주 중요하다. 그렇다면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물론 돈의 가치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지금 돈의 가치는 그다지 중요하기 여겨지지 않기에, 돈을 빼고 나면 가치있다고 답을 하기가 애매하다. 사실 집의 중요성은 주로 내가 안전하게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중요하다.

 

그래서 집은 가치있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세탁기처럼 말이다. 세탁기나 냉장고 같은 것들은 필요하기에 중요하다.

 

반면에 어떤 것들은 가치가 있기에 중요하다. 사실 많다. 일반적으로 가족이 그렇고, 비싸거나 소중한 것들이 그렇다. 취미나 관계도 그렇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은 대부분 가치가 있다.

 

이 차이는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은 필요하고 어떤 것은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한번 빠져든 생각은 막을 수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된다. 아내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묻는다. 내 말을 듣고 있냐고 말이다. 듣고 이해하기도 했지만, 대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이미 생각에게 함락되었다. 결국 한소리를 들었다.


아무튼 생각을 해보니 여기엔 어떤 패턴이 있는 듯 하다

 

또 다시 결론이 난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들 중에서, 자신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은 필요성이 있다고 느끼고, 자신을 재미있고, 뿌듯하게 해주는 것들은 가치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이 패턴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마지막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가치는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일까? 혹시 가치 역시도 일종의 필요성이 아닐까?

 

애매하고 위험한 질문이다.

 

아침에 출근 준비 중인 아내에게 잠시 가치성와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아내가 '그럼 내가 세탁기야?' 라고 되물으면서 출근을 했다.

 


그렇다. 가치성과 필요성이 혼동되기 시작하면 소중한 사람과 세탁기가 뒤섞여버리고 만다.

 

안전하고 편안한 것, 이것은 행복의 필수 조건이다. 그리고 두려움에 관련된 것이다.

 

재미있고 뿌듯한 것, 이것은 행복의 선택 조건이다. 그리고 지루함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두려움에 관련된 것은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고, 지겨움에 관련된 것은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이것은 놀랍게도 지겨움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딱 삼 일만 굶으면 금세 답이 나오는 것이다.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이 여기까지 이어진다.

 

대충 결론은 났다. 나는 더 이상 가치를 추구할 수는 없다. 내 머리 속에는 더 이상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내린 최종 결론이 그렇다.

 

물론 중요한 것은 있다. 어떤 것들은 정말로 중요해서 내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 나의 아내가 그렇다. 그런데 그녀가 가치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아내의 질문처럼, 아내는 세탁기인가?

 

그것은 아니다세탁기는 고장 나면 바꾼다. 하지만 아내는 결코 그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아내와 세탁기 사이를 좁힐 수 없는 간극이다. 또한 필요성 중에서도 얼마나 절실한가에 따라서 나뉜다. 세탁기는 없으면 그저 불편하지만, 아내가 없으면 내가 계속 살기는 힘들 듯 하다. 이 대답이 아내에게 통하길 바랄 뿐이다.

 

최종적으로 내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원래 가치는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사람들은 대부분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어냄으로써 자기 성취를 하거나, 뭔가 다른 사림들에게 부러움이나 인정을 받는 행동이나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 행복을 얻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 하는 것이다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행복하긴 하지만,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고 해서 맛난 것을 먹고, 또 먹고, 또 먹는 것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짓이다. 원래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뤄지는 비의지적인 행복이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뭔가를 열정적으로 하거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끝없이 자기 증명을 하는 것 등이 바로 행복한 삶의 열쇠이다. 많이 만나고, 많이 경험하고, 열심히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행복의 비밀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막힌다. 그래서 나는 수동적으로 산다. 그래서 나는 필수적인 것들만 한다. 적게 만나고, 적게 경험하고, 대충 산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사는 나를 어떤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꾸고 싶지도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것이 문제인지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나는 여전히 심심함을 느끼기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문제인지는 한참을 더 살아봐야 할 듯 하다. 지금은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다.


비오는 오늘 내가 얻은 하나의 문장은, '가치는 아주 절실한 필요성의 다른 말일 뿐이다' 라는 것이다. 진하게 칠해야겠다.

 

비가 내리니 생각이 한 없이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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