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흰눈썹뜸부기

아이루다 2018. 2. 5. 09:38

 

한 이주 전부터일까? 성내천을 다니다 보니아주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를 든 분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카메라가 향한 방향은 모두 성내천에 흐르는 물 주변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뭔가 쉽게 볼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서 그런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좀 그래 보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어떤 분들은 자신의 카메라를 설치하느라 아예 길을 반쯤 막기도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분들의 행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안에 어떤 것이 담겨 있는지 너무도 뻔히 보여서 그렇다. , 그래도 통행에 아주 큰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수영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잠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둘기만한 크기 같은데, 몸은 훨씬 얇았다. 성큼 성큼 걷는 폼이 꼭 작은 닭 같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볼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 새가 나타남과 동시에 수 많은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들 연사로 놓고 찍는 모양이었다. 내 카메라에도 있는 기능이긴 한데, 화질이 떨어져서 나는 별로 쓰지는 않는 기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마도 그분들이 쓰는 카메라는 충분히 잘 나올 것 같았다.

 

날씨가 몹시 추워진 지난 토요일에 점심을 먹기 위해서 자주 찾는 샤브샤브 집을 찾았다. 아내가 샤브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매번 가는 것을 말려야 하는 집이기도 했다.

 

출발 하기 전부터 카메라를 챙겼다. 예전에 봤던 그 새를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비록 많이 추운 날이었지만, 든든히 밥을 먹어서 한참은 견딜만했다. 그래서 걸어서 목적지까지 향했다. 그리고 도착해보니, 여전히 사진 찍는 분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최소한 10명 이상은 되어 보였고, 설치된 카메라만 20대는 되어 보였다.

 

그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찍는 분들도 있었고, 한 아이는 작은 망원경을 들고 새를 관찰하려고 하고 있었다.

 

아내가 아이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새냐고.

 

아이는 버튼이 눌린 기계처럼 대답했다. 뜸부기라고, 천연기념물이라고, 몇 호라고, 몇 등급이라고 했다. 그리고 얽힌 사연도 얘기해줬다. 원래 두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는 고양이가 잡아 먹었다고 했다.

 

주변 어른들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는 고양이가 대단하다고 해줬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좀 안타깝긴 했다. 천연기념물을 잡아 먹은 고양이 처지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흔하지 않다는 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삶이 곧 정당한 것이 진리인 세상인 것을.

 

잠시 기다리다 보니 새가 나타났다. 역시나 작았다. 그리고 무수히 울려 퍼지는 셔터소리. 한편으로 새가 불쌍했다. 텃새도 아니고, 철새로 잠시 머무르는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서 자신을 향해 셔터를 눌러대고 있으니 말이다.

 

<뜸부기 정면>

<뜸부기 측면>

물론 사람이 아니라서 사람들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모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뜸부기에 대한 감정이입이 되었다. 특히 꼬마의 말대로 함께 지내던 짝이 고양이에게 잡혀먹었다면, 그 새가 느낄 두려움과 당황스러움을 짐작하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나 역시도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사진을 찍는 그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것과 똑같은 녀석이 나를 내부에서 충동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을 찍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이런 글도 쓰고 있다.

 

가끔 내 안에 있는 그 녀석의 존재가 너무도 또렷하게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한 없이 귀여운 아이가 활짝 웃은 얼굴로 부탁을 하는 것처럼 거절하는 것이 불가능 할 때가 있다. 물론 당연히 그렇게 귀엽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런 욕구를 왜 가지고 있는지 알기에 이해해 줄만은 하다.

 

어릴 때 들었던, 뜸북뜸북 뜸북새~ 했던 노래의 가사와 음이 떠오른다. 노래 속에 나올 정도로 흔한 새가 이제는 천연기념물이 되어서 그 추운 날 수 많은 사람들의 모델이 되어 있다.

 

멸종이란 결론이 어떤 종도 피해갈 수 없는 결말이라고 해도, 그것이 인간으로부터 야기되는 것은 마음이 안타깝다. 그 어떤 생명체라도 각자 정당성이 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맹독을 지닌 독사나 징그러운 바퀴벌레조차 말이다. 물론 보면 바로 도망치거나 죽이겠지만 말이다.

 

잠시 그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그냥 돌아왔다. 춥기도 했고, 새에게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 같지는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분들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들도 역시나 그 새와 같기 때문이다.

 

두려움, 바로 그것이 그들을 그렇게 추운 날 그곳에 서 있게 하고 있다.

 

집에 오는 길에 우연히 나무 위를 봤는데, 처음 보는 새가 여러 머리가 앉아 있었다. 뜸부기처럼 천연기념물은 아닌데, 예쁘기는 훨씬 예뻤다. 참새보다는 크고 직박구리보다는 약간 작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 새 이름이 밀화부리였다. 참 특이한 이름이었다.

 

<밀화부리 배, 회색에 은은한 갈색 빛이 감돈다>

<검은 머리, 노란색 부리, 등에는 여러가지 색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예뻤다.>

 

그 후로 직박구리가 물 먹는 모습도 담았다.


 

아마도 개인적으로 천연기념물인 새를 찍은 것은 처음 인 듯 하다. 흰눈썹뜸부기, 뜸부기 중에서도 흰눈썹을 가진 녀석인데, 그리 흰눈썹이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추운 겨울 잘 보내고, 훨씬 더 안전한 곳에서 가서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 성내천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엔 고양이가 너무 많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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