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노동의 경로

아이루다 2018. 3. 12. 05:31

 

몇 해 전인가, 아내와 등산을 간 적이 있다. , 처음 간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등산은 일년에 한번이나 할까말까한 행사이기도 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흔하지 않으니 우리 둘에게 등산은 남들처럼 주말에 휙 하고 다녀오는 흔한 일로 취급되지 않는다그래서 등산을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고, 그래서 휴가까지 내서 다녀온다.

 

그때 갔던 산 이름이 보련산이었는데, 충주 근처에 있는 산이었다. 그리고 사실 처음부터 등산이 목적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가벼운 산행을 하고 근처에 있는 앙성온천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길 바랬던 것이다.

 

보련산이란 산은 그저 앙성온천 근처에 있기에 간 산이다. 힘든 것을 별로 안 좋아하는 우리 두 사람에게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이 딱 적당한 거리와 높이였다. 그래서 그 산에 오르기로 했다.

 

유명한 산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탓에 등산로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따.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등산로를 향해 가는 것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냥 갔다.

 

따로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마을 회관이라고 적혀 있는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집은 여러 채 보였지만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사람 하나 볼 수도 없을 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산을 오르는 길은 예상처럼 험하지 않았다. 단지 그 당시가 겨울이었던 탓에 춥고 미끄럽긴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천히 산을 올랐다.

 

우리 기준으로는 한참을 올라간 후 싸온 점심을 먹으려고 앉을만한 장소를 찾았다. 그런데 그 외진 장소에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진입로부터 단 한 명의 다른 사람들을 보지 못한 우리들로써는 참으로 의외의 벤치였다.

 

벤치에 편하게 앉아서 싸온 김밥과 물을 마시면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 밥을 먹고 나서 보온 병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먹었다. 그리고 나는 한참 산 속의 고요함 속에 잠겨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편하게 앉아 있는 이런 벤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찻길도 없는 이 등산로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왔을 것이란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벤치들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분명히 돈을 받고 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의 고생으로 인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쉬면서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돈을 줬다고 해서 그 수고스러움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오른 숲의 감성에 푹 잠겨 있던 아내는 내 말에 기분이 다운되긴 했지만왜 그런 얘기를 하느냐고 타박하지 않고 자신이 그것을 생각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다.

 

중요한 말은 아니었다. 또한 계속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그것을 꼭 생각하지 않아도, 또한 그것을 생각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긴 하다. 그저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다.

 


지난 독서 모임에서 '저녁의 구애' 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편혜영이란 여자분이 쓴 책인데, 읽는 동안 까뮈의 이방인 느낌이 났다. 이방인이 소외를 다뤘다면 저녁의 구애는 지루함을 다루고 있는 점만 달랐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글쓴이의 말에 이런 문구가 보였다.

 

'물건을 보면서 노동의 경로를 생각하는 버릇은 오래되었다'

 

이 문구를 읽으면서 문득 몇 해전 보련산에서 아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자신이 쓰는 대부분의 물건을 돈을 주고 산다. , 돈이란 가치와 그 물건을 만든 노동력의 가치를 맞바꿈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돈을 주고 산 물건은 언제나 당연히 자신의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물건이 만들어진 노동력의 가치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쓰고 있는 물건들에 대해서 감사하는 법을 잊었다.

 

요맘때가 되면 달래, 냉이, 씀바귀, 쑥과 같은 수 많은 종류의 산나물들이 온 산야에 새롭게 돋아난다. 그리고 사람들은 틈이 나는 대로 그들을 캐다가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나물을 캐는 수고스러움이 들어가는 순간 자연의 감사함을 잊게 된다. 가을이 오면 도토리나 밤과 같은 것들을 주울 때도 그렇다.

 

물론 벤치를 설치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도 누군가를 위해서 그것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래도 감사하는 법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꼭 어떤 것이 행복하다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공짜로 얻는 행복이 하나가 있다. 그것이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이든, 내가 힘들게 구한 것이든 상관없이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깃들여져 있는 수고로움을 감사할 수 있다면 행복은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원래부터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은 다른 존재들의 도움을 통해서 얻는다. 땅에서 자라는 수 많은 식물들과 키워지는 가축들 그리고 또한 그것들을 재배하고 가공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다.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태양에서 사람의 몸 속에서 소화를 돕는 미생물까지도 모두 연결되어 있다.

 

반대로 어떤 것이 당연한 것이 될수록 행복하기 힘들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 된 순간 누리지 못하면 화가 나게 된다. 그저 무엇이든 당연히 여기지만 않고 그것에 대해서 감사만 할 수 있다면 그리 얻기 힘든 행복을 얻을 수 있는데도 그것이 그리 힘들다.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아서 그렇고, 당연한 것을 왜 감사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행복한 삶에 있어서 오늘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결코 나 혼자만의 힘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그것은 중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그곳에 도착하려면 아직 많이 멀었지만 말이다.

 

 

 



'소소한 이야기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족 여행  (0) 2018.05.08
시간을 때우는 삶  (0) 2018.04.22
흰눈썹뜸부기  (0) 2018.02.05
목숨의 빚  (0) 2018.01.06
12월, 연말  (0) 2017.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