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이야기들

누군가의 죽음

아이루다 2018. 7. 25. 07:58

 

일주일 전 쯤 갑자기 대학교 친구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가끔 연락은 하지만, 그래 봐야 일년에 한두 번 정도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인데, 확인을 했더니 또 다른 친구 어머님의 부고 문자였다.

 

내가 카톡을 쓰지 않는 탓에 따로 연락을 준 것이다.

 

돌아가신 분은 대학교 시절 가끔 뵙던 분이다. 그 친구의 집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가끔 놀러 가고는 했었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이었고 자취생이었기에 놀러 가면 밥도 얻어먹고 오기도 했었다. 그 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의 얼굴과 표정이 어느 정도 기억이 난다.

 

요즘은 밤 시간보다 오히려 낮 시간이 자유로운 탓에 연락을 받은 다음 날 오후에 홀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원래 혼자서는 뻘쭘해서 장례식장도 잘 못 가던 성격이었는데, 요즘 뭐가 바뀐 건지 혼자 가기로 마음을 먹는데 별다른 저항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편함이 느껴졌다. 가끔 이럴 때 보면 내가 변하긴 한 듯 하다.

 

장례식장은 수원의 아주대 병원이었다. 늘 멀다고 느껴졌는데, 직접 운전을 해서 가보니 30Km가 조금 넘는 거리였다.

 

오후 시간이라서 그런지 장례식장은 한산했다. 도착해서는 친구와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친구는 어머니가 암 수술 후 결국 회복을 못하시고 돌아가셨다고 했다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3년 전 비슷한 과정으로 세상을 떠난 매형이 떠올랐다. 수술 후 회복이 안 되는 상태,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축구 선수를 목표로 한다는 친구의 아이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원래 조만간 명퇴를 당할 상황이었는데, 정부가 바뀌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친구의 말에, 그래도 넌 정권 바뀐 것에 대해서 이득을 보는구나 하고 축하해주었다. 그 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입관식이 진행된다고 해서 그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인맥도 거의 없는 내게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장례식이었다. 아마도 나이가 그럴만한 나이가 되어서 그런 듯 하다.

 

며칠 전 한 정치인의 죽음에 대한 부고가 전해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분이었는데, 정치자금 관련해서 수사를 받던 중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신 듯 하다.

 

그것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나는 그 분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이해하고, 그 말을 믿는다. 아주 작은 과실조차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 자신으로 인해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것을 조금도 참아내지 못하는 도덕적 결벽증, 아마도 그것이 모든 것의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슬프고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한 분을 보냈을 때와는 뭔가 좀 다른 느낌이 난다.

 

생각해보면 나와 관련이 없을 뿐, 어떤 사람들에 대한 죽음의 기사는 매일 쏟아진다. 너무 더워서 죽고, 비가 많이 와서 죽고, 며칠 전에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차량에 25톤 차량의 바퀴가 날라와서 차의 윗부분을 박살내는 바람에 함께 타고 가던 가족 중에서 한 분이 사망하고 세 분이 크게 다쳤다는 기사도 나왔었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매년 공사 현장에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200명을 훌쩍 넘는다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정말로 그분들에겐 일터가 삶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뿐만 아니다. 헬리콥터를 타다가 죽은 분들도 있고, 무사히 구출되긴 했지만 태국에서 동굴 탐험을 떠났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단편적으로 이어져서 그렇지 죽음은 매일 우리의 삶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죽음들이 그다지 실감나지 않는다.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내 죽음과 이어지게 된다면 나는 그 두려움에 눌려서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주변에 연결된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흔들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얽힌 수 많은 관계 속에서 어떤 이들은 커다란 흔들림을 만들어내지만어떤 이들은 거의 미동조차 만들어 내지 못한다. 그리고 진동의 발원지가 나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죽음은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고, 멀면 멀수록 그냥 죽음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만 다가온다.

 

어떤 진동이 전달되어 올 때마다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이성적 이해와 누군가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감정적 흔들림, 그리고 단지 나와의 거리가 가깝지 않다고 해서 그 흔들림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나의 무관심하고 이기적 성향이 대놓고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 날 올 것이다. 단지 그 죽음의 순간에 내가 맡은 책임만큼은 다 하고 떠나고 싶다. 그리고 내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아주 작은 흔들림 조차 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죽음으로 인해 누군가 슬퍼한다면 그것이 가장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떠난 후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 죽음, 그것이 아마도 내가 죽음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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