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40대라는 나이

아이루다 2018. 12. 26. 09:02

 

나는 70년 생 개띠, 한국 나이로 따지면 올 해가 40대의 마지막이 된다. 10대에서 20대로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그 후로 30대로, 40대로 그리고 이제는 50대를 코 앞에 두고 있다 보니 앞의 숫자가 바뀌는 것이 꽤나 크게 느껴진다. 그래도 여전히 김광석님의 '서른즈음에' 라는 노래를 좋아하긴 하지만 말이다.

 

예전에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말이 있다. 40대부터는 자신의 얼굴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이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렴풋이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0대부터는 살아온 삶이 외모에 본격적으로 외모에 영향을 끼치는 시기인 듯싶으니 말이다. 물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연예인들의 얼굴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듯싶기도 하다.

 

아무튼 40대를 거의 온전히 다 통과하고 나니 그 말이 비슷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요즘 그 말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막 40대에 들어서는 분들을 위해서 몇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다.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 멋모르고 통과한 40대를 정리함으로써 그분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

 

지금의 나이에 서서 보니 인생은 40대에서 정확히 양분이 된다. , 40대 이전의 나와 그리고 40대 이후의 나로 나뉘는 것이다. 그리고 40대를 기준으로 그렇게 나뉘는 가장 큰 이유는, 40대가 두 번째 사춘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40대의 사춘기는 10대의 사춘기에 비해서 거의 느껴짐이 없다. 주변에서도 잘 모르고 그 자신도 스스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 모른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럼에도 분명히 두 번째 사춘기를 겪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40대에 생의 두 번째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0대를 대표하는 단어는 바로 '좌절'이다. 물론 40대에도 좌절을 겪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타고난 능력이 탁월해서 삶의 전 과정에서 좌절을 겪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또 문제가 있다. 사람은 좌절을 통해서 삶의 깊이 숨겨진 진실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기본적으로 40대에 좌절을 경험하는 이유는, 삶이 거의 고정되어 버리는 시기이기에 그렇다. , 40대가 되면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매우 제한적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돈을 벌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력은 쌓였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는 거의 힘든 상황에 놓인다. 인간관계 역시도 새로운 관계를 맺기 보다는 거의 기존의 관계가 유지되거나 끊겨 버리는 형태로 바뀐다. 할 줄 아는 다양한 능력들도 새롭게 개발하기 보다는 이미 할 줄 아는 것을 재활용하는 수준이다.

 

, 좌절이란 의미엔 고정되어 버린 삶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도 노화가 시작된다. 40대를 거치면서 노안, 주름, 흰머리, 탈모, 폐경, 오십견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것들은 분명히 노화의 증상이다.

 

30대는 꾸미고 노력하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지만 40대에는 그랬다가는 망하게 된다. 오히려 40대는 40대가 가진 멋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두뇌 능력도 떨어진다. 일단 기억력 감퇴가 가장 크고 더해서 익숙한 단어들이 혀끝에서 맴도는 현상도 생겨난다. , 충분히 알고 있는 단어임에도 말을 하다가 보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꽤나 답답하다. 나 같은 경우엔 글을 쓰다가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뭔가를 새롭게 배우는 것이 몹시 부담스럽다. 그래서 40대에 시험 공부를 하는 분들은 정말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이나 절박하다는 뜻도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고정되어 버린 삶, 노화가 시작되는 나이, 두뇌 능력 감퇴, 이 세 가지 원인이 좌절을 겪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10대의 사춘기는 다른 아이들과의 비교로 인한 상처가 좌절의 원인이라면, 40대는 남하고는 별로 관련이 없이 스스로 침몰하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그리 격렬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존재이고 더해서 그 증상이 본인에게만 나타나지는 않기에 오히려 주변에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너도 노안이고 나도 노안이고, 너도 흰머리가 나고 나도 흰머리가 나고, 너도 말하다가 단어를 잊고 나도 말하다가 단어를 잊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잘리는 날이면 어디 새롭게 직장을 구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다. 이력서를 낼만한 곳도 별로 없고, 내봐야 면접을 불러주는 회사도 거의 없다. 그러니 죽기 살기로 현재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

 

집에서 살림을 하던 분들도 상황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손이 많이 가는 나이가 지나서 부모로부터 일부 독립을 하기 시작한다. 사실 돈 빼고는 다 독립하려고 한다. 부모와 같이 있는 것보다 친구들과 같이 있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아이들로 인해서 점점 소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갑자기 내 삶이 궁금해진다. 나는 밥이나 하고 빨래나 해주는 존재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서글퍼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40대에 정의하는 두 번째 단어는 바로 '소외감'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좌절과 소외감, 이 두 단어가 40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된다.

 

이 현상은 자신만 겪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40대 분들이 겪는다. 그리고 겪어야 한다. 이때 겪지 못하면 이후 50대 이후의 삶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40대를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면 겪지 못하는 것보다도 더 문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40대는 삶은 정말로 신중히 지나가야 한다.

 

40대 이전만 해도 기회만 없었을 뿐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어려질수록 더욱 더 그렇다. 그러니 꿈이 대통령이 것이다. 그래서 40대 이전만 해도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은 못한 것들이 아니라 안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여긴다.

 

40대는 이 착각에서 벗어나는 시기이다. 삶은 운이다. 그러니 그야말로 될 놈은 되고 안될 놈은 안 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린 시절에 자신이 밑으로 봤던 동창들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성공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친구들은 말을 붙이기도 어려울 만큼 아주 크게 성공을 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얘들은 소수이다그래서 그들과의 비교로 인해서 10대에 겪게 되는 좌절까지 더해져서는 안 된다이제 더 이상 난 왜 저렇게 되지 못했을까를 자책하거나 후회를 할 필요가 없다. 고정되었다면, 받아드려야 한다. 40대가 그런 나이이다. 나는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아무리 과거로 돌아가도 달라질 것이 없다.


지금 이만큼이나 이룬 것도 얼마나 대견한 것인지 스스로 인정해줘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니고 나 자신이 말이다. 아무리 그 결과물이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 온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좀 덜 괴롭혀야 한다. 덜 꾸짖어야 한다. 용서하고 이해해 줘야 한다.

 

그리고 남들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 말은 단점 보다는 장점을 살리라는 그럴듯한 의미가 아니다. 쥐꼬리만큼이라도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죽어라 매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좌절로부터 조금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잘하는 것들은 자신이 잘난 것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버텨주는 힘이란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족, 성실, 정직, 의무, 책임 등과 같은 좋은 것들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버텨주는 유일한 힘이다. 그러니 그것마저 없으면 무너지고 말 것이다삶은 즉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렇지만 잘 버텨내게 되면 아주 소중한 가치를 얻게 된다. 바로 자신이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 좀 더 나가면 그것들이라도 가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다. 흰머리가 조금 적다든가, 탈모가 없다든가, 직장이 안정적이라든가, 아이들이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든가, 요리를 조금 잘한다든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꽤나 자신감이 붙었다든가 하는 등의 것들 말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이 가진 좋은 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말고 그것이라도 있으니 자신이 덜 좌절하고 살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나마 한두 명이라도 만날 사람이 있음을 고맙게 여겨야 할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좌절은 감사함으로 소외감은 고마움으로 바뀌어야 한다. 40대 이전엔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면 이후엔 가지 것이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라고 바뀌어야 한다. 만약 40대를 통과하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후 50대는 더욱 더 심각해질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더 늙게 되고 존재감 줄어들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마음만 고쳐 먹는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동작하지 못하니까 말이다그러니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뭔가 새로운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서 40대에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운동' 이다. 운동은 40대에 일어나는 많은 나쁜 변화에 대해서 대항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일단 다른 것은 몰라도 운동을 꾸준히 하면 노화가 늦춰진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덜 늙는다. 더해서 신체가 건강해지니까 활력이 생겨나고 그래서 뭔가 새로운 것들을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자신감도 붙고 병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40대에 운동을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가 40대를 얼마나 제대로 통과하느냐를 결정하는 거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더해서 이후 50대부터 죽을 때까지 체력은 바로 40대에 쌓은 노력으로 결정이 된다. 40대 이전엔 타고난 체력으로 살지만, 이후엔 운동의 효과로 사는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40대를 제대로 보내는 것에 실패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원인이 바로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직장이 바쁘고, 아이들 키우느라 바빠서 그렇다.

 

하지만 잘 생각해야 한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이다. 그것 말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이 세상은 내가 살아 있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죽는 순간 이 세상이 사라지게 됨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이다.

 

40대에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뭐든 취미를 계발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처럼 아무 것이나 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해서 조금이라도 재주가 있는 것을 택해야 한다. 운동 능력이 좋다면 취미와 운동을 섞으면 금상첨화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것들을 택해야 한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사진의 취미도 좋고, 남자의 경우 어린 시절에 장난감을 좋아했다면 어른 장난감인 RC, 드론 등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면 목공 같은 것들도 좋을 것이다. 여자 분들의 경우에도 뭔가를 만드는 것을 해보는 것도 좋은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저 운동만 열심히 해도 알아서 모든 것이 이뤄져 갈 테니까 말이다. 이것은 대화 능력이 상대적으로 탁월한 여자분들이 가진 아주 중요한 장점이다.

 

대신 하면 안 되는 취미들이 있다. 일단 술이 그렇다. 술은 줄여야 할 대상이지 늘려야 할 대상은 아니다. 맛집 탐방과 같은 것들도 그렇다. 행복하긴 하지만 몸에 해롭다. 그것이 무엇이든 건강을 헤치는 것을 하면 안 된다그나마 너무도 좋아서 포기를 하지 못하겠다면 그만큼 충분한 운동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취미를 가지는 것이 힘들다면 내면의 감성을 일깨워보는 것도 괜찮다. 삶을 자연 속에서 보내는 것이다. 주말이면 북적이던 도심을 떠나 조금 한적한 곳에서 산책을 하고, 그 산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손에서 스마트폰을 떼고, 같이 걷고 있는 사람과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있는 것, 정말로 중요한 능력 중 하나이다.

 

대화는 인간의 가진 것들 중에서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대화는 정말로 나이, 장소, , 시간에 상관없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

 

여기에 조금 색다른 선택을 한다면 책 읽는 것도 좋다. 더해서 문화 생활이나 여행도 좋은데, 이것은 돈이 많이 드니까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이다. 책은 도서관에 가면 공짜니까 상관이 없지만, 많은 문화 생활엔 돈이 든다. 여행은 더욱 더 그렇다.

 

행복은 좋은 것이지만, 행복하기 위해서 무리한 돈이 든다면 그 행복은 매우 위험하다. 더군다나 그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지금과 같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현실이 더해지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지고 만다.

 

그리고 이렇게 과도한 스트레스 환경 하에 놓이면 운동도, 취미도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매일 허덕이면서 버티려고만 하게 된다. 원래 사람이 그렇다. 여유가 있을 때 뭐든 새롭게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한 그 모든 노력은 최종적으로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이다.

 

40대 후반쯤 된 어느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봐야 한다. 대부분은 삶에 찌든 주름진 표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 표정에 온화한 미소가 있고, 다양한 표정이 있을 수 있다면 40대를 아주 잘 통과한 것이다.

 

40대는 좌절과 소외를 통해서 나의 본질을 이해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오히려 남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이다. 그렇게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할 수 있기에 결국 삶 자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되는 나이이다. 그러니 꼭 그렇게 경계하고, 주변에 알아달라고 하고, 나만 힘든 듯이 살 필요가 없다.

 

모두가 힘드니 가능하면 친절하게 대해야 할 것이다. 가능하면 웃어야 할 것이다. 가능하면 다른 이들의 힘듦을 이해해주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들 힘드니 그렇게 각박하고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 힘듦은 바로 나와 똑같이 좌절과 소외에서 나온다.

 

그것을 이해하고 감싸주고 싶을 때 얼굴 표정으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40대의 얼굴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표정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인 것이다.

 

40대는 타고난 얼굴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얼굴에 나타나는 나이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표정이다. 그러니 평소에 어떤 표정을 짓고 살고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누군가의 외모로부터 생겨나는 호감은 타고난 생김새보다 표정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생기고 예쁜 사람이 인상을 쓰고 있는 것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도 환하게 웃고 있다면 더욱 더 호감을 느낀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그렇다. 외모가 매력적이지만 까칠한 사람보다 그렇지 못해도 서글서글한 사람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육체적 능력이 떨어질수록, 머리가 굳을수록 행복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바로 관계이다. 그리고 관계는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더욱 더 편해진다. 더해서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는 바로 자신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론이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답은 이미 모두 앞에 적어 뒀다. 그것들 하나 하나가 명시적으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들은 아니지만, 결국 쌓이고 또 쌓이면 지금 내가 40대를 돌아보는 마음처럼 분리되어 있는 모든 것이 사실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신 없이 매일 하루하루가 흘러가겠지만, 자신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잊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 이제 그 앞에 섰다. 원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간 고생은 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삶의 시기보다 좋은 기회를 맞이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다. 나는 그것이 기회인 줄 몰라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이 글이 작은 등불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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