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선택할 수 있다고 믿기에 상처를 입는다.

아이루다 2018. 11. 30. 08:05

 

상처, 그것은 먹고 사는 것에 큰 문제가 없어진 요즘 시대에 사람들이 불행을 경험하는 거의 대부분 원인이 되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고, 그렇게 어울리다가 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상처를 받을 때마다 분노, 짜증, 억울함, 질투, 열등감, 자괴감, 서운함 등등의 나쁜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그리고 이런 감정들의 집합을 바로 불행이라고 한다.

 

그러니 불행하게 살고 싶지 않다면 무엇보다도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가능하다면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늘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처는 처음부터 받기 싫다고 해서 받지 않을 수는 없기에 그렇다.

 

태어나길 못생기게 태어나면 평생 동안 외모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젊었을 때일수록 더 자주 받고, 나이를 먹으면 그나마 좀 나아지긴 하지만 젊은 시절에 받은 상처들로 인해서 성격이 왜곡되어서 그것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타고난 것으로 인해서 받는 상처는 정말로 많다.

 

작은 키도 그렇고, 이상한 몸매도 그렇다. 머리가 나빠도, 운동을 못해도, 부모가 가난해도, 유머감각이 떨어져도, 노래를 못해도, 그림을 잘 못 그려도, 말을 어눌하게 해도, 혀가 짧아도, 몸에 커다란 화상 흉터가 있었도, 성격이 소심해도, 공부를 못해도, 싸움을 못해도, 친구가 별로 없어도, 남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상처를 받는다.

 

이런 타고난 특징은 다이어트를 하거나 성형 수술을 하는 것 등과 같이 특별한 노력을 통해서 어느 정도 극복이 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니 상처로부터 어느 정도라도 자유로워지려면 처음부터 아주 잘나게 태어나든가 아니면 관계 자체를 맺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태어나느냐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니까 그렇다고 치고 그나마 혼자 사는 것은 선택 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관계를 끊게 되면 행복하게 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경우는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행하지 않으려면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평범하게 관계를 맺으면서도 상처를 받지 않는 방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상처가 관계라는 앞면에 붙은 뒷면과 같은 것이란 점을 인정한다손 쳐도, 어떻게든 그것에 대응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아니 좀 더 희망적으로 말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으로부터 어느 정도까지는 영구히 자유로워질 방법은 없을까?

 

슬프지만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상처가 생기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었다고 느끼지만, 실상은 모든 상처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한 것이다. , 누가 상처를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상처를 만들고 있다.

 

날카로운 칼은 종이를 자를 수 있다. 그래서 칼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다 보니 종이는 칼로 인해서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는 다르다왜냐하면 그 칼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상대가 다이아몬드라면 어떤 흠집도 내질 못하니까 말이다결국 자기 자신이 처음부터 종이가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면 상처를 입을 일이 없다.

 

일반적으로 잘난 사람으로 태어날수록 다이아몬드에 가깝다. 또한 커다란 권력을 얻거나 많은 돈을 벌어서 사회적으로 강자가 되어도 다이아몬드에 가까워진다. 어리석게 권력자나 재력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이아몬드가 아닌 종이에 가깝다. 아주 잘나게 태어나기도 힘들고, 큰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는 것은 원래부터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행운이기에 그렇다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말이 칼이 되어서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찢어지고 만다.

 

그렇다면 종이인 자신이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이 상처를 받지 않는 해결책일까믿기 힘들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다이아몬드도 결국 어떤 더 강한 재질의 칼에 의해서는 가공이 되기 때문이다. , 다이아몬드가 가장 강한 것은 아니다. 단지 대부분의 경우에 강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강한 존재가 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완벽한 존재, 바로 신이 되는 것이다하지만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신보다 더 강한 신이 존재할 수 있기에 결국 마찬가지다그것은 마치 가장 큰 숫자를 말하는 대회에 참석한 것과 같다아무리 큰 숫자를 말해도 거기에 더하기 1을 하면 그보다 더 큰 숫자는 영원히 존재하기에 승부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입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종이이거나 다이아몬드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종이이든 다이아몬드이든 동일하게 상처를 입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언제든 파괴될 수 있음을 알기에 그렇다.

 

, 파괴 그 자체가 아니라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상처를 만드는 가장 근본적 원인이다. 자신이 못났다는 말을 들을 때, 자신이 일을 잘 못한다는 평가를 받을 때,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별 인기가 없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삶이 걱정된다왜 나한테 그런 뻔한 얘기를 하는지 그저 기분만 나쁘고 잊혀질 것들이 잠들기 직전 떠오르는 상처가 되고 만다.

 

이것을 좀 더 정리해서 말하면, 상처라는 것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내면의 두려움이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해서 좀 더 명확히 드러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극될 두려움이 없었던 사람은 그것에 자극될 이유가 없기에 상처를 받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받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이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하면 상처를 받고, 그렇지 못하면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의 종류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그러니 결국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결코 상처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좌절감이 밀려온다하지만 다행스럽게 상처가 두려움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새로운 길이 생각난다. 어느 정도 시도해볼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처음부터 두려움의 본질은 매우 관념적이며 비현실적이기에 그렇다.

 

두려움은 대부분 비현실적이다. 아주 높은 장소에서 바닥이 투명한 다리를 건너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아무리 그 바닥이 튼튼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단순히 시각으로부터 오는 정보로 인해서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단 한발자국도 딛지 못할 수도 있다.

 

사람은 90%의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을 하고 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맞냐 틀리냐를 따질 필요가 없이, 실제로 그런 경향은 확실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서 걱정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두려움이 얼마나 실체적 인지만 자각할 수 있어도 자신의 삶에서 많은 두려움들이 사라진다.

 

물론 진짜 현실적인 두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느 날 갑자기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서 다치거나, 사기를 당해서 거지가 되거나소중한 존재를 잃거나,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하거나, 잘나가던 사업이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분명히 일어날 수 있기에 실제적인 두려움이 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진짜로 알아야 할 진실은 따로 있다. 사람들이 그런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불운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두려움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자신이 그것을 노력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믿기기에 생겨나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실체적인 불운들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선택 가능하다고 믿고 있기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의지적으로 노력하면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의지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현실로 인해서 두려움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운 나쁘게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나버리고 나면 그토록 후회스럽게 느낀다. 미리 대비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다.

 

그래서 삶의 많은 시간이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서 소비된다. 운동을 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해도 암에 걸리고, 아무리 돈이 많이 있어도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 아무리 조심을 해도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아주 열심히 노력하면 정말로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노력한다. 권리도 느낀다. 운동했으니까 병에 걸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냥 찾아온다. 도대체 왜 찾아오는지도 모르지만 찾아온다.

 

그리고 조그만 느슨해지면 바로 두려움이 엄습한다. 자신이 노력하지 않은 만큼 불운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그렇다.

 

그러니 그때마다 두렵다. 두렵지 않으려면 남들이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삶이 너무 힘들다. 더군다나 그 기준점은 자신이 아닌 남이기에 불안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매일 한 시간 운동하다가 매일 두 시간 운동하는 사람을 보면 갑자기 불안해진다. 덜 노력한 것 같으니까 그렇다. 충분히 돈을 벌고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느 날 자신보다 열배 이상 돈을 버는 사람을 보면 질투심이 밀려든다. 더 벌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다. 상대보다 자신이 더 둘 사이의 관계를 아쉬워하고 있음을 아는 순간 배신감이 밀려든다. 자존심이 상해서 그렇다. 그것들을 바로 상처가 된다.

 

운동을 두 시간 이상 해야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하고상대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덜 좋아하고 싶어한다. 그나마 운동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추가적으로 한 시간 더 운동을 하는 것으로 인해서 너무 힘들어서 운동 그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돈은 벌고 싶어도 못 번다. 누군가에 대한 감정은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보지 않아야 해결이 된다. , 관계를 끊고 만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자신이 불행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이 상처의 본질이다. 처음부터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쩔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에 상처가 생겨나는 것이다.

 

예쁘지 않은 사람이 예뻐질 수 있다고 믿으면 예쁘지 않다는 말에 상처를 받는다.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 하지만 처음부터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면 상처받지 않는다. 원래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너무도 예쁜 영화배우를 만나는 자리에 가면 그녀의 외모와 비교가 되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아예 차원이 다른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오히려 그런 배우의 외모를 칭송하고 그녀를 만난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옆 자리 동료와 외모가 비교가 되면 상처를 받는다. 그 동료는 어쩔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돈도 그렇다. 세계적 갑부를 만나면 아무런 질투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대가 어쩔 수 없는 존재니까 그렇다. 오히려 그런 사람을 아는 것이 영광이고 자기 자신이 뭔가 된 듯이 느낀다. 하지만 친구가 최근 진급을 해서 연봉이 높아지면 그것이 그리 마음에 남는다. 자신도 진급을 하고 연봉이 높아질 수 있다고 믿으니까 그렇다.

 

그런데 정말로 이 세상일들이 단 하나라도 어쩔 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정말로 나쁜 일들은 노력을 통해 미리 대비를 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일까?

 




그냥 보면 그래 보이긴 하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다들 노력했으니까 그렇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도 다들 노력은 했다. 그렇다면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의 차이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다. 일단 타고난 자질이다. 외모나 지능이 크게 좌우한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때가 잘 맞아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하거나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가졌어도 시대나 나라를 잘못 타고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일년 내내 모의고사가 전국 1등이라고 해도 진짜 시험 당일 날 맹장이 터지면 시험 그 자체를 볼 수 없다.

 

그런데 이것들 중에서 과연 선택 가능한 것이 있을까? 미리 알고 있다면 대비할 수 있는 것일까? 없다. 그럼에도 결국 최종적으로 나쁜 결과가 나오면 마치 더 노력하면 할 수 있었던 듯이 후회와 자책을 한다.

 

그리고 그런 후회와 자책은 처음부터 자신은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자신은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시도했으니 당연하다. 누가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에 도전하겠는가? 적어도 절반 이상은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것들 조차도 그것이 이뤄지는 것은 결국 확률적이다. 그 확률이 지극히 낮냐 아니면 매우 높으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로에서는 교통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간다. 누군가는 살인을 당하고, 누군가는 수술 중에 죽는다. 누군가는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 피우는 것을 알게 되고, 누군가는 시험에 떨어지고 있다.

 

과연 그 일은 나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일까? ,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런 불운들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저 내가 조금 운이 좋은 것에 불과하다. 그러다가 언제 어느 순간 그런 일이 정작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면, 그런 일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지금 현재 실제로 그런 불운한 일들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냉정히 말하면 사람이 뭔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선택 그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 선택이 반드시 자신의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고, 선택의 결과 역시도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여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저 우연함과 운에 따른다.

 

아무리 운이 좋아서 삶이 잘 풀린 사람들도 반드시 실패의 기억은 있다늘 언제나 운이 따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저 그런 불운이 삶에 커다란 영향만 끼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 영향조차도 자신의 타고난 것에 따라 다르게 작용한다. 손가락이 잘린 불운을 겪은 사람의 경우, 보통 사람들은 불편함 정도로 끝나지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에게는 자살을 해야 할 정도로 힘든 불운이 된다.

 

보통 사람들에게 아주 치명적인, 근육 자체가 소실되는 루게릭 병조차도 머리를 주로 써서 활동을 하는 이론 물리학자에게는 불편함 수준에 머물렀다. 바로 스티브 호킹 박사의 예가 그렇다. 만약 그 분이 극단적으로 머리를 써서 일하는 분야가 아니었다면 그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자신의 미래가 결코 선택적이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다 잘 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최대한 완벽한 존재가 되어서 뭐든 선택 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가 된다. 종이가 아닌 다이아몬드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 자신이 모든 것을 잘하면 잘할수록 그런 불운에 대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래 보이는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존경하고 열광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고 해봐야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들이 많은 정도에 끝난다.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지만 언젠가는 더 단단한 재질의 칼에 잘리고 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완벽한 존재가 되어 다이아몬드처럼 되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할까?

 

답은 단순하다. 아무리 강한 재질로 만든 칼이라도 결코 자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기에 그렇다. 그것이 바로 물이다.

 

, 상처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단단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한 부드러워져야 한다. 그래서 가장 부드러운 상태, 즉 물이 되면 절대로 잘리지 않는다. 형체가 사라지니 잘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져서 그렇다.

 

그리고 그 어디에 담기든 바로 그 형체가 된다. 물론 불안정해 보이긴 한다. 일정한 형체가 없고 줏대도 없어 보인다. 신념이나 일관성도 없다. 하지만 결국 오직 물만이 칼에 잘리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물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바로 그 어떤 종류의 선입견, 지식, 신념, 믿음, 도덕, 상식 등에 제약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살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부드러워진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너무 큰 이득 앞에서 무너진다. 1억을 거절할 수 있었던 사람은 100억을 주면 넘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은 1조를 줘도 넘어가지 않는다. ,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될 때 진정한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남들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도, 남들에게 나쁘게 대할 이유도 없다. 처음부터 원하는 것이 없으니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저지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물은 그 자신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 의지가 없으니 당연히 노력도 하지 않으며 선택도 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흐를 뿐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거기에 그 어떤 자신만의 의지가 없다. 높은 곳에서 버티려고 하지도 않는다. 또한 흐르다가 뭔가 막히면 바로 돌아간다. 흔한 표현으로 순응을 한다. 순리를 따른다.

 

하지만 두려운 사람들은 버티는 쪽으로 향한다. 물은 경사가 급해지면 그저 더 빠르게 흐를 뿐이지만, 사람들은 경사가 심해지면 그 벽면에 손톱을 깊게 박아서 자신의 체중을 버티려고 한다. 그냥 밑으로 흘러내려가면 될 것을 그렇게 힘들게 버틴다. 휩쓸려 내려가는 것이 너무도 두려우니 그렇다.

 

그렇지만 이미 설명을 했듯 갑자기 경사도가 달라지는 것이나 그것을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이미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정해진다.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그것을 다르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다가 미끄러지는 날이 오기라도 하면 손톱이 다 부러지면서 무너져 버리고 만다. 그 순간 스스로 참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더 버티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흐르다 보면 어느 날 넓은 바다에 이르거나 혹은 따뜻한 햇살에 증발되어서 다시 하늘로 올랐다가 더 높은 곳에 비나 눈이 되어서 내릴지도 모르는데, 그리 버티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으면 스스로를 몹시 책망한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남에게도 화를 낸다. 왜 날 힘들게 하냐고 따진다처음부터 날 좀 더 튼튼한 존재로 만들어주지 못했냐고 원망한다. 그렇게 더 잘나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그렇게 두려움은 분노, 억울함, 자책, 실망으로 이어진다.

 

그냥 흐르면 된다. 버티지도 말고, 바꾸려고 하지도 말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냥 하고 사는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냐는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잘못되면 실망은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자책할 필요는 없다. 100M 세계 챔피언과 달리기 대결을 해서 졌다고 해서 나를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물은 처음부터 흐르기만 할 뿐, 그 목적지가 어딘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잘못된 곳에 고였다고 해서 자신을 자책하거나 주변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결국 물은 바다로 모인다. 중간에 어떤 일을 겪었든 간에 최종적으로는 바다로 모인다. 그 시간이 일년이 걸렸던 1억년이 걸렸든 간에 말이다.

 

삶은 그렇게 흘러가야 한다. 처음부터 자신이 뭔가를 선택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가 어느 날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서 지구 전체가 멸망하는 날이 오면 스스로에게 뭐라고 말을 할 것인가? 그때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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