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 여행

남한산성 산행

아이루다 2018. 10. 5. 08:55

 

지금 사는 곳이 송파구의 남쪽 끝자락인 마천동인지라, 남한산성 입구까지를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그런데 이 동네로 이사온 지가 10년이 넘어가는데, 지금까지 딱 세 번 올라가 봤다.

 

한번은 아내와 올랐고, 두 번째는 작년에 트래킹 좀 해보겠다고 할 때 올랐고, 세 번째는 올 봄에 수영장 모임에서 산행이 있어서 올랐다.

 

그런데 마지막 산행을 다녀온 후 다리가 꽤나 뻐근해서 그 후로 스쿼드 운동을 좀 해왔다. 그리고 어제 홀로 다시 산행에 도전했다.

 

사실 도전이란 말이 부끄러운데, 어제 산을 오르다 보니 아주 평범한 아주머니들이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나처럼 숨이 거칠지도 않게 아주 수월하게 오르고 있었기에 그렇다. 그분들에겐 그냥 동네 앞 산을 가는 수준인 듯 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산행을 할 때마다 힘들었었다.

 

과거 기억을 돌이켜 보면, 나는 하체가 부실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 감기에 걸린 지가 몇 년 되었을 만큼 신체 자체는 꽤나 건강한 편인데, 특별히 두 가지가 약하다.

 

하나는 호흡 능력이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두 살 때 결핵을 앓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 후로 성인이 되어서 20대와 30대에 15년 정도 피운 담배 습관도 아주 나쁜 영향을 끼친 듯 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하체의 힘이다. 생각해보면 선천적으로 호흡 능력이 부족해서 뛰기가 힘드니, 하체가 잘 발달하지 못한 것도 같다는 생각을 어제 걸으면서 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뛰는 것을 참 싫어했다. 특히 축구를 몹시 싫어했고 지금도 싫어한다. 하는 것도 싫고 보는 것도 싫다. 또한 오래 달리기와 같이 장기적으로 뛰는 운동은 정말로 잘 못했다. 그나마 오래 달리기는 어느 정도 했는데, 아마도 자존심 때문이었던 같다.

 

2년 전부터 수영을 하다 보니 발차기가 너무 힘들어서 최근에 겸사 겸사 스쿼드 운동을 하고 있다. 간단히 하고 있는 것이긴 한데, 이번 산행을 해보니 일단 하루가 지나도 다리에 별 다른 무리가 없어서 좋다. 약간 뻐근할 뿐, 평소처럼 알이 박히거나 근육통이 심하게 느껴지는 수준은 아니다.

 

지난 여름 내내 해왔던 운동이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결국엔 호흡이 문제가 되었다. 끝없이 걸어 올라가면서 다리는 견뎠지만, 가슴이 아플 정도로 호흡이 가빴다. 수영을 하면 호흡 능력이 향상된다는데, 나는 열외인가 보다.

 

* * *

 

9시에 남한산성 만남의 장소에서 출발을 했다. 커피는 내려서 보온통에 담았지만, 물을 하나 더 샀다. 그리고 걸었다. 햇살은 따가웠지만, 공기가 서늘해서 피부 느낌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특히 아침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봤던 고구마로 인해서 절로 미소가 나오는 상태이기도 했다. 그 고구마는 지난 봄에 먹으려고 샀다가 싹이 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근처의 산에 대충 심었던 고구마의 후손이다.

 

지난 추석에 산책을 가서 잘 자랐나 보러 갔다가 밑을 파보니 하나가 튀어 나와서 집으로 들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또 다시 싹을 틔운 것이다.

 

싹이 난 고구마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쩌라고'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 나왔다. 이제 가을, 곧 겨울이 될 터인데, 심을 곳도 없는데 말이다. 회사에 간 아내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빵 터졌다고 문자가 왔다.

 

아무튼 싹이 난 고구마 덕분에 아침부터 아내와 함께 크게 웃고 출발을 해서 그런지, 산행 내내 힘들기만 할 뿐 기분은 좋았다. 날씨도 좋았고, 머리도 맑았고, 몸의 컨디션도 좋았으니 그럴 만 했다.

 

정상에 도착해서 커피를 마실 때도 좋았고, 한적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근처에 온 단체가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도 기분이 전혀 상하지 않았다. 내가 기분이 좋으니 마냥 관대해진 것이다.

 

한 시간을 오르고, 삼십 분을 쉬고, 다시 출발을 해서 내려오는데, 내려 오다가 길을 잘못 든 것인지, 엉뚱한 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더군다나 중간에 한번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톱이 시커멓게 멍이 들었다. 이게 빠질지 안 빠질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집에 다시 올 때쯤이 되자 총 세 시간이 소요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 만난 화분에 피어있던 꽃.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려고 했기에, 처음 만난 유혹의 쉼터. 바위는 내게 쉬어가라고 속삭였지만, 잠시 서서 사진만 찍었다.


두 번째 만난 유혹의 쉼터. 다른 이들이 쌓은 돌탑이었다.


올라가는 동안은 힘들기도 하고 해가 좀처럼 들지 않아서 거의 사진을 못 찍었는데, 잠시 햇살이 너무 좋아서 한장 담을 수 있었다.


드디어 정상.


입구에서 본 좌측 풍경.


내려가는 길에 잠시 길을 잘못 들어서 가게된 장소. 옹성이라고 했다.


옹성의 끝. 전망이 좋았다.


옹성의 끝에서 찍은 파노라마 사진. 잠실부터 하남까지 잘 보였다.


꽃의 무리.


홀로 피어 있던 해바라기.


이름 모를 야생화 #1.


이름 모를 야생화 #2.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르다.


이름 모를 야생화 #3. 이번엔 아직도 열심히 일하는 중인 꿀벌이 같이 찍혔다.


이름 모를 야생화 #4. 호랑나비와 함께.


이름 모를 야생화 #5. 네 형제.


이름 모를 야생화 #6. 뒷태.


이름 모를 야생화 #7. 아주 작은 꽃들.


내려오는 길에 길을 잘못 들었더니, 나무가 부러져서 길을 막고 있는 곳도 거쳐야 했다.


드디어 산이 끝나고 사람들이 사는 곳 쯤에 도착한 곳에서 만난 멍뭉이.


아침에 나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싹이 튼 고구마와 길을 잘못 들어서 줍게 된 밤.



'트레킹,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도 여행  (0) 2018.10.23
양평 용문사  (0) 2018.10.09
가평 현등사  (0) 2018.09.07
이상원 미술관  (0) 2018.06.24
포천 흥룡사  (0) 2018.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