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보람찬 하루

아이루다 2018. 9. 29. 07:50

 

일년 동안 하루는 365 반복된다. 4년마다 윤년이 들어서 가끔 366일이 되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리고 각각의 하루는 단 하루도 서로 같지 않고 다르게 진행된다.

 

그러다 보니 밤에 되어서 잠이 들 무렵이 되면 그날 하루에 대한 평가를 하기도 한다어떤 하루는 참 좋았고, 어떤 하루는 어느 정도 만족스럽고, 어떤 하루는 별로 기억 날 것도 없고, 어떤 하루는 피곤에 쩔어 있고, 어떤 하루는 낮에 있었던 일이 머리에 남아 잠이 잘 안 오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날들이 있기도 하다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무엇인가가 성취되어서 뿌듯하고, 크게 만족스럽고, 정말로 오늘 같은 날만 계속되면 자신의 삶이 장미 빛일 것 같은 날들 말이다. 그런 날이 오면 하루가 참 보람차다고 느낀다. 그래서 매우 행복해진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을 수 밖에 없다그러니 그렇게 큰 행복을 맛 본 날도 있는 반면 쓰디쓴 인생의 맛을 보는 날도 있다설령 그것이 크게 사고를 당하거나, 가진 재산을 다 날린 것과 같은 커다란 불행이 아니더라도 그냥 삶 자체가 무기력해지는 날들이 있다.

 

하루 종일 뭔가 하긴 했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이 오히려 더 나빠지기만 한, 그래서 불현듯 삶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오는 날들 말이다. 그런 날엔 밤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지곤 한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그런 날들이 늘어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기에 당연히 장미 빛 하루가 매일 반복되길 바란다. 그런 날들을 통해서 자신의 삶이 뿌듯하고, 채운 것 같고, 그래서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보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물거품이 되는 일도 많고, 딱히 계획을 세우지 않고 보내고 나니 하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이제 막 연휴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금세 끝나 있다. 각각 하루는 분명히 지나갔지만별로 남는 것이 없다.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가서 그 사이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말을 들어 보니 자신도 연휴 기간에 집에만 있지 말고 여행이라도 다녀올 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원래 쉰다는 것은 회복의 시간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엔 쉬고 나면 오히려 컨디션이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쉬는 시간 동안 어떤 충만감을 느낄 수 없었기에 그렇다. 한참 쉬었지만 마음 속에는 가득 찬 느낌쌓은 느낌새로워진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러니 쉬고 나서 기분이 더 다운된다. 심한 경우 우울해지기도 하고 울적해지기도 한다.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면 삶의 공허함까지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큰 문제가 된다. 그러니 일을 할 때보다 오히려 쉬는 동안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 할 듯한 압박감을 받는다. 그래서 어떻게 쉴 것인가가 힘든 숙제가 된다.

 

그나마 일을 하는 날엔 일을 하니 딱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그런데 남는 시간이 생기면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고, 뭔가 하나라도 더 알고, 뭔가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할 것 같다. 이것은 그리 절박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무시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이 든다.

 

딱히 별다른 성과 없이 그냥 하루를 보낸 날이면 그 증상은 평소보다 좀 더 심해진다. 이렇게 살면 안될 듯 하다. 하지만 딱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해결책은 없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요즘 야간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요즘 주말에 자격증 시험을 공부 중이라고 한다. 요즘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신도시 아파트 분양을 받으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만남이 있은 후에는 가끔 폭발하듯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자신만 정체된 느낌, 이 세상에서 나만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 든다그래서 마음이 한 없이 답답하다.

 

그나마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는 참을만하다비록 경영진에 들어가진 못하더라도 주기적으로 직급이 오르고, 월급이 오른다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비슷하다. 아이가 매년 자연스럽게 커가기에 그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은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하며, 아이는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찾아야 하기에 부모의 품을 떠난다. 그렇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도 생기겠지만은퇴해야 할 때 하지 못하는 것이나 아이가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불행의 원인이 된다.

 

그리고 직장이나 자녀는 본질적으로 일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기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특별히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다.

 

그러니 뭔가 일상화 되지 않은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찾는 것도 숙제고, 찾았다고 해도 그것을 하는 것도 숙제가 되고 만다.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보람찬 하루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하루 하루 자신이 행복한 것을 찾아 다닐 뿐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고 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잠시 부럽기도 하지만, 저렇게 사는 것이 과연 정말로 제대로 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마음은 끌리지만, 머리 속으로는 끌리지 않는다. 감정은 끌리지만 생각은 반대한다.

 

감정과 생각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은 갈등과 불안함 그리고 걱정을 불러 일으킨다. 사람은 원래 이 둘이 결이 맞을 때 편안해지는 존재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하루 종일 신나게 놀면 끝이었다. 보람찬 하루에 대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자신을 채우는 것을 위한 계획은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어른이 된 후에 생긴 것들이다.

 

미래가 걱정되니까 생긴 것이다. 자꾸 생각을 하기에 생긴 것이다. 그러니 그 동안 생각을 하면 할수록 걱정과 근심만 더 많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주변에 끝없이 불행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기에 그것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

 

누군가 암에 걸렸다고 하고, 누군가 망했다고 하고, 누군가 사기를 당했다고 하고, 누군가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고 하고, 누군가 투자를 해서 큰 돈을 벌었다고 하고, 누군가 진급을 했다고 하고, 누군가 장사를 해서 대박이 났다고 하니,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해진다.

 

그러니 뭔가 해야 한다. 보람찬 하루를 보내야 한다. 자신을 삶을 좀 더 채워야 한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아져야 한다. 이것은 불안과 걱정의 크기만큼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답은 둘 중 하나이다. 적극적으로 그 불안과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뭔가 하는 것이다. 대학원에 다니든, 자격증을 따든,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아무튼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사는 방법이다. 물론 힘들다. 하지만 불안감과 걱정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효과가 좋다.

 

다른 하나는 깔끔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냥 무관심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냥 하루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다.

 

삶은 결국 운에 의해서 거의 모든 것이 좌우되니 술, 담배, 도박, 뭔가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같은 나쁜 습관만 최대한 없애고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하루를 어떻게 행복하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려놓고 그냥 행복한 삶을 살지도 못한다.

 

이들은 기업들의 좋은 먹이감이 된다. 기업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을 쓰면 삶이 뭔가 채워질 수 있다고 한다. 정서적이든 지식적이든 말이다. 중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기에 조금만 찔러줘도 쉽게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오락가락 일뿐, 결코 어떤 해결책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사이 점점 더 나이를 먹는다. 이것은 치명적이다. 늙는다는 것이니 말이다.

 

원래 뭔가를 하는 것에는 힘이 필요하다. 순수한 육체적 힘 말이다. 아무리 생각이 젊어도 나이 70 살을 먹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것에 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여행도 힘들고, 책을 읽는 것도 힘들어 지고 만다. 그러니 생각을 해도 실행하기가 쉽지 않아 진다.

 

그러니 결국 삶의 어느 시점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이후 삶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할 뿐이다.

 

나는 왜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싶어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왔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 때문에 그렇다. 좋은 것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에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걱정과 불안이 얼마나 실체적인가 여부를 따지는 것이다. 노후에 대한 불안감, 건강에 대한 걱정,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실체적일까?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이 불안과 걱정으로 바라봤던 그 존재이다. 그래서 얼마나 나빠진 것일까? 현재가 얼마나 불만스러운 것일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성찰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말이 가진 의미는, 오히려 그 근본적 원인이 다가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의 현재로 인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생각했던 자신의 모습이 현재에 이뤄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미래에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걱정과 불안함이 생기는 것이다. , 이미 지나간 시간을 통해서 미래의 두려움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말은 좀 복잡하지만, 사실 단순한 의미이다. 원래 미래에 어떤 모습이 되고 싶다는 말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현재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기에 그렇다.

 


그렇다면 현재의 나는 왜 불만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일까? 뭔가 더 잘난 존재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좀 더 많은 인정을 받는 존재가 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좀 더 많은 돈을 벌거나 높은 직급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면, 그것들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삶을 그만큼 살아봤다면 그 정도는 이해할 수준은 되었다.

 

원래 나는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태어난 내가 문제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내 잘못도 아니다. 나는 부모를 선택할 수도, 이런 삶을 살려고 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부정할 수 있겠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각자마다 모두 자신만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엄마의 젖을 빠는 갓난 아이부터 이제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는 노인까지도 모두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

 

그것이 더 노력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100Kg을 들 수 있지만 누군가는 1Kg도 들기 힘들다. 이것이 비교가 되기 시작하면 가장 무거운 것을 들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몇 십 년을 살아왔건 간에 우리는 누구나 매일 최선을 다해서 살아온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현재의 자신은 자신이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그런데 그 존재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산다는 것이 과연 어떤 도움이 될까?

 

아니, 불만은 있지만 그것을 바꿀 실행 의지가 부족하다면 과연 그것을 계속 쥐고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그러니 너무 그 존재에 대해서 불만을 갖지 말자. 그래 봐야 힘들기만 하고 불행하기만 하다.

 

인간은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지만,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제대로 알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매일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다 죽는다. 또한 어떤 일들이 이뤄졌다고 해도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는 오히려 다 운이다.

 

단지 뭔가 잘 이뤄지는 사람은 타고난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 부모 운이 좋아서 머리가 좋고, 외모가 좋고, 언변이 좋고, 성격이 좋아서 그런 것이다. 본인이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잘 타고나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것이니 반대로 뭔가 잘 안 된다면 그냥 타고난 운이 별로 안 좋은 것뿐이다. 그리고 행복의 본질은 생존이다. 살아만 있다면 마음 먹기에 따라서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바뀔 수 있다.

 

그러니 지금 세끼 밥 먹고, 잠 잘 장소가 있으며, 입고 나갈 옷만 있다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책임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다.

 

괜히 되지 않은 보람찬 하루 보내려고 그리 노력하다가 좌절하지 말고 하루 하루 그냥 평온하게 보내면 된다. 미래가 두려워서 그런 것인 줄을, 현재가 불만족스러워서 그런 것인지를 모르고 그렇게 산다.

 

하지만 산다는 것, 그거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사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그건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외로움이다. 진짜로 외로워서 힘들다. 외로워서 힘든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서 그것을 잊고 산다. 보람찬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다 보니 주변의 사람들을 외롭게 한다.

 

두려움이 거리를 만들고, 두려움이 단절을 만들고, 두려움이 당장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을 하려는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함께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데, 상처로 받을까 봐, 뒤통수 맞을까 봐, 이용당할까 봐 그리들 마음을 닫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려움을 무작정 홀로 맞서려고 한다. 그러니 그리 힘들다.

 

다들 그렇게 외롭게 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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