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지적 능력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

아이루다 2018. 9. 12. 08:13

 

일반적으로 성격은 크게 두 가지로 된다. 하나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흔히 기질이라고 한다. 이것은 자신의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것으로 DNA 자체에 새겨져 있기에 평생 바뀌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비록 후천적이긴 하지만 개인별 성격에는 오히려 훨씬 더 강한 영향을 끼치는 영역이다. 또한 후천적이라고 하면 마치 뭔가 그것이 형성되는 것에 의지적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듯 느껴지지만,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10세 이전에 형성되기에 스스로 관여할 여지는 거의 없다. 단지 나중에라도 바꿀 수 있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성격에는 어떤 것들이 영향을 줄까?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특별히 중요한 것은 몇 가지로 압축이 된다.

 

일단 외모적 특징이다. 그리고 신체적 능력이다. 더해서 지적 능력도 있지만, 이 시기엔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부모의 능력과 성격이다.

 

, 어떤 사람의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로 부모이다. 그러니까 결국 부모는 DNA에 새겨진 선천적 성격도 물려주고, 아이를 키우면서 후천적 성격 형성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그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에, 성격 그 자체는 거의 타고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롭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부모로부터 물려 받은 기질과 거의 기억도 남지 않는 유아기를 통과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유한 성격이 형성 된다.

 

그것을 한 사람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왜냐하면 유아기를 통과한 후 성인이 되는 시기에 타고난 성격은 아주 큰 시험대 위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사춘기이다. 사춘기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정의가 가능하지만, 사춘기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경쟁 사회에 진입을 했다는 것이다. , 나만 보던 세상이 남과 비교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자아, 즉 에고가 발달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이때 각자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성격은 여러 가지 타고난 요소에 의해서 다양한 형태로 변화되어 간다.

 

그런데 이것은 성격 형성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성격의 변형이나 혹은 변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다. , 뭔가가 결정되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들이 남들과의 경쟁을 통해서 상처 받고 뒤틀리거나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것이다.

 

나무를 잘라 종이를 만드는 것이 선천적 성격이라면, 그 종이를 묶어서 공책을 만들지, A4 용지를 만들지, 화장지를 만들지를 결정하는 것은 후천적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책이든, A4이든, 화장지든 사서 쓰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 세 번째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그 제품을 정의하는 것은 나무라는 재질도, 공책이나 화장지와 같은 상품도 아닌, 그것을 사서 쓰는 사람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연구 결과가 적힌 공책은 한 없이 자신감이 넘칠 것이며, 화장실에서 쓰인 휴지는 덧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누군가는 공책에 낙서만 할 것이지만, 누군가는 화장지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화장지를 이용해 예술 작품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의 성격은 개인의 의지가 그리 관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종이와는 차이가 있다. 사춘기 이후에 변화되는 성격은 개인의 의지가 거의 관여될 수 없다물론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결국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게 된다. 그리고 어떤 의지가 통하려면 그 후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중년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야 가능하다.

 

이때 역시도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에 대한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이때는 부모의 역할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어느 정도는 중요하지만, 부모를 잘 만났다고 해서 학교에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도움은 된다.

 

사춘기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무엇보다도 외모이다. 얼굴, 몸매, 키 등과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남자의 경우엔 운동 능력도 중요하다. 여자는 외모가 다른 모든 요소들 중에서 월등하게 중요한 반면 남자의 경우는 외모만큼이나 운동 능력이 중요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 상대편 이성이 거기에 끌리기 때문에 그렇다. 남자는 여자에게 예쁜 외모를, 여자는 남자에게 자신을 지켜 줄 수 있는 힘을 원한다. 물론 남자가 여자의 운동 능력에, 여자가 남자의 외모에 끌리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외모는 공통적으로 중요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외모와 운동 능력을 우선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특이하게 지적 능력이나 혹은 개인의 사상, 종교 등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그런데 외모의 중요도는 변한다. 특히 여자의 경우엔 결혼을 할 때는 남자의 지적 능력이 매우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다다른 말로 하면 경제력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는 역할을 맡아야 할 여자로써는 당연한 요구 사항이다. 육체적 힘이 아닌 경제력을 가정을 지키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바뀐 것이다.

 

아무튼 남자나 여자나 상대편 이성에게 매력적이면 매력적일수록 자신감이 있는 성격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특징은 남들 앞에서 섰을 때 여유를 갖게 해주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덜하게 되며, 어디에서나 존재감이 충분히 발휘되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자주 나타나게 된다.

 

쉽게 말해서 매력적이고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단지 외모나 운동 능력 그리고 지능이 뛰어날 뿐인데 성격이 그렇게 변형되는 것이다.

 

반대로 외모가 못나고 운동 능력이나 지능이 뒤떨어지는 사람일 경우는 반대의 길을 간다. 자신감이 줄어들고 주눅이 들며, 삶이 우울해지고 많은 피해의식을 가진 성격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린 시절엔 그리 밝고 명랑했던 아이가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삐뚤어지거나 소심한 아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외모, 신체 능력, 지적 능력은 이미 형성된 성격을 다양한 형태로 변형 시킨다. 그리고 이렇게 변형된 것이 최종적으로 개인의 성격으로 평가된다

 

거기엔 분명히 타고난 기질과 어린 시절에 형성된 기본적인 성격이 존재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때 주로 보게 되는 것은 오히려 이렇게 최종적으로 변형된 성격이다. , 자아가 자라나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변형된 최종 성격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국 그것들은 모두 겉으로만 드러나는 성격에 불과하다. ,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이라기 보다는 그저 살아오면서 터득하게 되는 일종의 처세술이다. 물론 제대로 된 처세술은 아니지만, 각자마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정한 일종의 상한선과 하한선에 관한 매뉴얼이다.

 

그리고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전혀 다른 영역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기존의 영향과는 달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격을 결정한다.

 

그것은 바로 개인이 가진 두려움이며, 어떤 것에얼마만큼 두려움을 갖게 되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지적 능력이다. , 어른이 될 수록 성격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외모도, 신체 능력도, 타고난 부모도 아닌 바로 지적 능력이란 뜻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지적 능력이 성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순히 자신감 정도로만 인식한다. , 뛰어난 두뇌 능력은 잘난 외모나 뛰어난 운동 능력과 같은 수준으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적 능력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그것은 바로 생각을 통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이다.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머리에 든 것이 많으면 생각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서 고려를 하게 되며, 그러다가 보면 최악의 사태를 미리 예측하거나 아니면 확률적으로 어떤 결론이 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지를 판단할 수 있기에 당연히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 우유부단한 것이다.

 

반대로 머리 속에 별로 든 것이 없어야 생각이 줄어들고, 그래야 나가야 할 때 과감하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특히나 결론이 운 좋게 성공을 했다면 말이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머리가 좋아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지만 오히려 머리에 든 것이 없어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 단지 성공한 후에는 머리가 나쁠 경우에 큰 곤란함을 겪을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사실 무식하면 두려움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물에 빠지면 숨이 막히고 결국 죽는다는 것을 몰라야 수영을 할 줄도 모르면서도 물에 뛰어들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에 비해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이 바로 지적 능력이다. 사실 외모는 뭐 비교할 수가 없고, 운동 능력은 오히려 떨어진다. 하지만 지적 능력만큼은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지적 능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이는 영역이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목표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목표가 얼마나 높고 또한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 얼마나 정교한지에 대한 부분이 바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런 식으로 어떤 일을 할 때,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떤 식으로 할지 방향을 잡을 때, 준비를 할 때, 선택을 할 때, 고민을 할 때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능력이 바로 지적 능력이다.

 

그리고 머리가 좋을수록 더 먼 미래를 고려하면서 방향을 정한다. 마치 바둑에서 더 많은 수를 예측하면서 바둑을 둬야 이기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단지 문제는 어떤 예측이 꼭 그렇게 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때 지적 능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누구나 미래 예측은 하지만, 누가 더 제대로 그것을 해내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래서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부동산을 하고, 어떤 사람은 주식을 하고, 어떤 사람은 예금을 든다. 어떤 사람은 관계를 충실히 하고, 어떤 사람은 주변에 베풀고 살고, 어떤 사람은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냥 산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로 평소의 생각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성격이라고 부른다.

 

과거에 자신이 내린 어떤 결정들이 자주 틀렸거나 의도치 않는 결과가 나온 경험이 많은 사람은 소심하고 결정장애를 가진 사람이 되고, 반대로 자주 맞고 원하던 결과를 얻은 사람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며 과감한 사람이 된다.

 

혹은 긍정적이거나 낙천적인 사람이 될 수도 있다지적 능력은 높은데 별다른 욕심이나 욕망이 적다면 말이다. 그러면 미래에 대해서 그리 많은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기에 조급해질 필요도, 안달복달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여유롭고 느긋한 성격이 된다.

 

반대로 지적 능력이 평균치보다 훨씬 떨어져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미래를 생각하거나 계산할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경우는 좀 차이가 난다.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사는 것과, 할 수 없기에 못하고 사는 것이 차이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같은 것으로 느낀다. 단순히 그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고 착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착해 보이는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금세 돌변한다. 그런 위기가 닥칠 줄 몰라서 그렇게 산 것이다. , 나빠질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낯선 사람들에게조차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타고난 성격이 선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그런 경우보다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할 수 있으며 더 나으니까 한다.

 

,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다. 그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덜 두렵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때 자신이 좀 더 안전해질 수 있으며, 자신이 곤란한 처지에 놓였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바로 두뇌 능력이다. 과거의 경험과 어디선가 얻은 지식 등을 활용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해보는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경험이 이상하거나 어디선가 잘못된 지식을 습득할 경우 아주 이상한 행동 패턴이 나타날 수도 있다.

 

낯선 사람과 반말을 해야 빨리 친해진다든가, 여자는 끝없이 대시를 하면 결국 넘어간다든가, 복권에 당첨되면 불행해질 것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믿는 것이다.

 

식당에서는 큰 소리를 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든가, 어디에서든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든가, 돈을 냈으니 뭐든 가능해야 한다고 믿는 것도 가능해진다. 일명 진상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 패턴을 나타낼 때 그것을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간혹 이해가 가질 않으면 도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이때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점이 바로 그 사람의 두뇌 능력의 한계로 인해서 그런 말과 행동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니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머리에서는 도대체 나올만한 행동 패턴이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니까 이상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누군가 쉼 없이 짜증을 내고 있다면, 그 사람이 결국엔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또한 남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도 결국 그 사람이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는 점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분명히 똑똑하면서도 짜증을 잘 내고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것은 사람의 두뇌 능력을 한 단면만 보고 평가해서 생겨난 문제이다. , 암기력이 좋거나, 이해력이 좋거나, 상황 판단력이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머리가 좋다고 평가한 결과이다.

 

사람의 진짜 머리는 바로 관계 맺기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에 의해서 결정이 되어야 한다. , 자신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처하는지가 인간의 지적 능력이 가장 본질적으로 발휘되는 영역이란 뜻이다.

 

사람들이 뭔가를 잘 알고, 뭔가를 잘 외는 것이 중요해진 지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100년 전만 해도 이 땅에 살아가던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수십 만년을 살아 온 존재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은 잘 외우고 잘 이해하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니까 두뇌 능력의 중요도가 바뀐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바뀌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은 많이 알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더 강한 권력을 갖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그리고 위에 나열한 것들은 행복한 삶을 좀 더 보장해주는 조건들일 뿐이다.

 

그리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무엇보다도 '관계'이다. 가끔은 돈이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 듯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혼자 살다가 쓰러졌을 때 119에 연락을 하고 병원에 데려가 주는 것은 돈이 아니다.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가족은 관계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된다.

 

아무리 부자라도,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졌더라도 혼자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그럴수록 가족이 더 필요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유산으로 물려줘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성공할수록, 나이를 먹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자식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머리가 나쁜 것이다. 그것도 몹시 나쁜 것이다스스로 불행한 삶을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머리가 좋아 보이는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그렇게 살다간 주변에 괜찮은 사람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이 가진 두려움이다. 인정받지 못하는 두려움, 쫓겨나는 두려움, 미움 받는 두려움, 존재감이 없는 두려움, 자신이 이용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당연한 권리를 뺏긴다는 두려움, 손해 볼 것 같은 두려움 등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자라난 자아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 지적 능력을 통해 정보를 얻고, 생각하고, 판단한 결과인 셈이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하고, 다른 사람들이 한 말을 곰 씹으며,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영향력, 존재감에 대해서 끝없이 판단한다. 그리고 최대한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일을 할 때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고, 자신이 구입한 물건을 얼마나 싸게 샀는지를 따져 본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 중에서 이득을 줄 만한 사람, 그러니까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려고 하고 반대로 손해를 줄 것 같은 사람, 즉 이기적인 사람을 멀리 하려고 한다.

 

이렇게 어떤 사람의 성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지적 능력의 결과로써 나오지만,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한 판단을 할 때는 지적 능력이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마치 예쁘기 때문에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그저 성격이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돈이 많고 가진 것이 많아서 남들과 어떤 식으로든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을 교양있고 점잖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운동 능력이 좋아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을 원래부터 당당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그렇고, 덩치가 크고 힘이 좋아서 겁이 없는 것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 생긴 사람을 보면 신뢰감이 있다고 느끼고, 좋은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보면 괜히 믿음직하다. 그래서 멀쩡한 얼굴과 좋은 목소리는 사기꾼이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불친절한 것, 사나운 것, 소심한 것, 겁이 많은 것이 그저 타고난 조건들로 그랬음을 고려해주지 않고, 어떤 사람의 다양한 감정적 반응들이 사실은 그저 그 사람의 두뇌 능력의 한계로 인해서 생겨나고 있음을 생각해 주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과 공감을 할 줄 모른다면 머리에 큰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관계 맺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사람이며, 감정을 느끼고 이해하는 능력이 퇴보된 사람이다.

 

그래서 결국엔 행복하기가 힘들다. 거기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 사람이 머리가 좋아야 하는 이유는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사실 사람이 행복하게 위해서 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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