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성격 바꾸기

아이루다 2018. 9. 18. 07:38

 

사람은 누구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성격이란 말을 딱히 한마디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냥 어떤 사람의 정신적 특징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격은 일종의 일관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상대할 때는 성격을 이해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대략 감이 잡을 수 있다그렇지 못하다면 꽤나 자주 곤란한 상황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라면을 줬을 때 어떨 때는 화를 내고, 어떨 때는 고마워하고, 어떨 때는 무관심하다면 그 사람에게 라면을 줘야 할 때마다 그것이 고민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만약 어떤 사람이 늘 그렇게 변덕스럽다면, 그것도 일종의 일관성이 된다. , 일관된 변덕쟁이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에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설령 배가 부르더라도 좋아는 하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은 배가 고파도 싫어한다.

 

이런 어떤 상황이나 대상 그리고 조건들에 대한 일관성이 모이고 또 모이면 한 사람의 성격이 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선호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과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 어제와 오늘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과연 사람들은 정말로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라면을 좋아해도 방금 라면 두 개를 먹은 후엔 그리 좋아할 수 없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상태가 되면 끓인 라면을 뒤집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세상을 사는 그 누구도 항상 어떤 일관된 반응을 보일 수는 없다.

 

서로 좋아서 죽는 연인도 40도가 넘는 더위가 닥치면 서로 손도 잡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커피 가게에 들어가서야 다시 손을 잡고 뽀뽀를 하려고 할 것이다.

 

,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관성이 있을 수 없으며, 사실상 있어서도 안 된다. 옷을 최대한 덜 입고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겨울에도 그랬다가는 얼어 죽으니까 말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에 적절하게 적응하는 것, 이것은 생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열쇠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관성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을 자신을 정의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을 여긴다. , 성격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 살아간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종의 착각이다. 사람은 그 누구나 변덕스러우니까 말이다. 만약 변덕스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감각적으로 아주 둔한 사람이거나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세상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어떤 일관성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서 성격이란 특징을 보이는 이유는 바로 자신이 속한 어떤 단체나 장소 혹은 환경 등에 적응한 결과이다.

 

, 특정한 환경과 조건이 동일하게 유지된다면 어떤 사람이 동일한 자극에 의해서 나타나는 반응이 매일 거의 비슷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매일 같은 온도가 유지되고, 매일 같은 사람들이 모이며, 매일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는 곳이라면 당연히 일정한 반응이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성격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생겨난다.

 

그래서 어떤 한 사람이 집에서는 손가락 까딱 하지 않는 게으름쟁이이며, 직장에서는 아부쟁이이며, 취미모임에서는 솔선수범하는 리더이며, 술자리에서는 술을 잘 먹지 못해서 소심쟁이일 수 있다는 뜻이다. 놀랍게도 한 사람에게서 여러 가지 성격이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장소에, 어떤 모임에, 어떻게 적응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이 다양하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모임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자상하던 남자가 밖에서 동창회 모임에서 동창 여자들에게 자상했다가는 그날 부부싸움이 날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손가락 까딱하지 않던 게으른 남자가 회사에서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할 수도 있다. 집에서는 온갖 신경질만 부리던 여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에서는 항상 웃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것들을 근거로 자신이 속한 환경에 적응해서 특정한 성격이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요구하는 가장 가치 있는 능력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 여기에서 '가치' 라는 말이 정말로 중요하다. 그것은 속한 자리에 따라서 가치있는 것의 대상이 천차만별로 다르기에 그렇다.

 

, 회사에서는 일, 노래방에서는 노래, 술자리에서는 술과 분위기 잡는 것, 당구장에서는 당구, 독서모임에서는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는 능력이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성격은 좀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술자리에서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거나, 회사에서 노래를 잘하거나, 술자리에서 일을 잘하는 것은 별다른 소용이 없다. 그 장소에서는 그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것들을 잘해도 성격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대신 회사에서 일을 못하거나 노래방에서 노래를 못하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현실 세계에서는 외롭고 소심하고 찌질한 성격인데, 온라인 게임 상에서는 사교적이고 과감하고 공격적인 성격을 보이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온라인 세계에서는 나고난 외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에 그렇다. 게임만 잘하면 된다. 그리고 오래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아이템을 가질 수 있기에 그렇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자신의 능력치가 어느 수준인지를 기준으로 해서 영향력이라는 것이 생겨나고 그것을 통해 존재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영향력과 존재감이 높을수록 주도적인 성격이 나타나게 되고 낮으면 낮을수록 수동적인 성격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주도적인 성격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 뭐든 그리 다 잘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 장소에서 존재감도 있고, 주도적이어서 자기 만족이 크기에 행복할 수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정말로 커다란 의문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성격이란 정말로 실체가 있는 것일까?

 

누군가를 외향적, 내성적, 주도적, 수동적, 소심한, 대범한, 무기력한, 부지런한, 게으른, 신경질적, 온화한, 친절한, 사나운, 우울한, 긍정적인, 부정적인 성격이라고 말을 할 때 과연 그것이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아니,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성격을 바꾸는 일이 머가 그리 어려운 일일까, 하는 의문도 생겨난다. 그저 자신이 속한 환경만 바꾸면 되는데 말이다.

 

노래를 못하는 사람이 그 안에서 소심하게 살다가 자신이 잘하는 당구를 치는 모임으로 옮겨가면 금세 활기차고 긍정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속한 환경만 바꿔주면 나타나는 현상이다.

 

가정 주부로써 요리도 못하고, 아이들도 잘 못 다뤄서 우울증에 걸린 주부가 우연히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서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일하다가 결국 큰 회사의 사장이 되는 일도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돈을 계산하는 재무 팀에서 일을 못해서 끝없이 압박을 받고 부정적으로 일을 하던 사람이 사실은 자신이 잘하는 기획이나 영업 쪽으로 가면 금세 인정받고 긍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성격을 그렇게 만든 환경은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자신의 성격을 고치려고, 적응해보려고 노력한다.

 

못하는 것을 더 열심히 노력해서 잘하려고 한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더군다나 노력해도 안되면 자괴감으로 인해서 삶은 더 피폐하게 변한다. 성격은 더욱 더 악화된다.

 

이미 충분히 설명했듯이 성격은 고정된 것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특정 조건 하에서 맺어진 인간관계에 대해 적응 결과이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격이라고 칭하기 보다는 '기질' 이나 '성향'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성향조차도 시간에 따라서 변하는 경향이 있으니 아마도 기질이 가장 적합한 단어일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기질은 타고난다. 아예 DNA에 새겨진 신체적, 정신적 특징인 것이다. 그래서 결코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성향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것은 타고난 환경에 의해서 좌우되기에 그렇다. 하지만 성격과는 달리 그 환경이 무척 범위가 넓다. 최소한 문화적 범위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사람의 성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김치를 좋아한다든지, 친구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든지, 성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성향이 된다. 그래서 잘 바뀌지는 않지만, 외국에 나가서 오래 살게 되면 그것도 바뀐다.

 

보통은 성향이 다르면 서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서로 어울리기가 힘들다. 정치적 성향, 종교적 성향, 음식에 대한 성향 등등이 다 그것의 예가 된다.

 

이와는 달리 성격은 그저 자신이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 맞춰져서 형성된다. 군대 있을 때 상하관계였던 사람들이 사회로 나오게 되면 서로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상황이 바뀌었기에 그렇다. 그리고 회사 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결국 성격은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여기는 영역도 기질이나 성향이 아닌 성격이다.

 

누가 자신의 지능을 바꾸고 싶어하며 - 하고 싶어하긴 하지만 안 된다 - 누가 정치적 성향을 바꾸려고 노력하겠는가? 그런 것들은 그냥 고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바꿀 필요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적극적 성격, 대범한 성격, 상처받지 않는 성격,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성격,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성격, 맺고 끊음이 확실한 성격, 할 말은 하고 사는 성격 등은 다들 가지고 싶어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가질 수 있다. 이미 설명했듯이 자신이 잘하는 곳에 소속되면 되니까 말이다. 또한 반대로 자신이 그런 조건에 속해 있기에 지금의 성격이 나온다는 것을 착각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정말로 그렇다고 믿는 경우도 허다하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신의 모습을 진짜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돈이 많기에 뭔가 살 때 거침이 없는 것을 자신을 과감하고 결정을 잘하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밑의 사람이 알아서 다 챙겨주기에 따로 뭔가 요구할 일이 없어서 자신을 욕심이 없고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남들에 비해서 좀 더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뿐이다.

 

얼굴이 예쁘거나 잘 생겨서 유머 있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남들 앞에서 대충 말해도 다들 잘 웃기에 그렇다. 원래 잘 생기거나 예쁜 여자들이 말을 할 때는 처음부터 다들 웃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 중에서 불의의 사고로 얼굴을 크게 다치게 되면 그때부터는 대인 기피증에 사회 불만이 가득 찬 심술궂은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성격을 바꾸고 싶은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남들 말에 상처를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러면 하나만 하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잘하는 것이 가치로써 인정받은 곳에 가서 지내면 된다.

 

그러면 하기 싫어도 주도적이 되고, 하기 싫어도 적극적이 된다. 또한 상처를 받는 말을 들을 일도 없다. 설령 들어도 무시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그 말은 대부분 상대방의 질투심이나 열등감에서 나왔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예전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가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힘들다. 학교는 가야 하고, 직장도 다녀야 한다.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살 수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자신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방법은 유효하긴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의 전환이다. , 자신이 가치있어 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단체에 속해있든 상관없이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절대로 바꾸지 않는 방법이다.

 

언제나 외모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외모가 별로 일 때 어디에서 있든 간에 자신감이 있고, 밝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엔 외모가 아닌 다른 가치를 더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그것이 그냥 피하는 것도 아닐 수 있다.

 

선한 사람의 가치, 봉사하는 삶의 가치, 꿈을 쫓는 사람의 가치, 자연의 가치, 환경 보호의 가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생명의 가치 등등 사회가 가치 있다고 보증해 주는 가치들은 꽤나 많다. 그러니 그런 것들로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남들이 가치 있다고 하고, 이미 우월한 지위에 있는 돈, 지위, 권력 등을 따라가다가서는 늘 패자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하지 않는 분야에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야는 오히려 사람이 없기에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경쟁자로 느껴지기 보다는 동행자로 느껴진다. 그래서 반갑다.

  

물론 이것은 매우 힘들다. 쉽지도 않을뿐더러 처음엔 별로 하고 싶지도 않다. 억지로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성격을 고치고 싶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 방법도 결국엔 문제가 있다. 가치를 바꾼다고 해서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났을 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이런 식으로 갖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가질 수 없었기에 포기한 가치는 평생 마음 속에 남아 있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까지는 해결이 되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뭔가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다. 다행이 하나가 있다.

 

이것은 삶을 전혀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법이다. 이미 알고 있는 성격, 가치 등과 같은 개념들을 아예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다.

 

성격은 이미 말한 대로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중요시 되는 가치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생겨나는 생겨나는 일관성이다. 그러니 모든 성격은 그저 조건부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가치 역시도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 뒤바뀔 수 있으며, 그래서 가치는 어떤 무리에 속해 있는지에 따라서 조건부로만 유효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성격도 가치도 모두 사실상 허상이며 결국엔 무의미한 것이란 결론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격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고는 놓지 않으려고 하고, 가치를 자신의 삶의 의미로 삼아서 절대로 놓지 않으려고 한다. , 자신의 변화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바꾸고 싶지만 성격의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기에 결국 원하는 성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진정한 변화의 시작은 바로 자신이 두 손으로 꼭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 즉 성격과 가치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음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깊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해지면 처음부터 적극성, 긍정성, 과감함 등과 같은 성격적 특징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그 자체부터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도대체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소극적이고 부정적이며 늘 망설이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 반대로 그래야 할까?

 

차를 운전할 때는 과감하고 적극적이기보다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일 때 오히려 더 안전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성격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론은 그것을 바꿀 필요가 전혀 없음을 깨달을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존감의 단계  (0) 2019.08.01
착함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0) 2019.04.04
감정의 책임 - 2  (0) 2018.09.09
감정의 책임 - 1  (0) 2018.09.09
혐오감의 정체  (2) 2018.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