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감정의 책임 - 1

아이루다 2018. 9. 9. 07:44

 

사람들의 하루는 감정으로 시작해서 감정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것이 모이고 모이면 삶이 된다. , 삶은 수 많은 감정 경험의 기록인 셈이다.

 

감정은 오감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생겨나기도 하고,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온전히 수동적으로 만들어진다.

 

맛난 것을 먹거나 예쁜 것을 볼  좋은 감정들이, 역겨운 것을 보거나 귀를 자극하는 소리를 들을 때 나쁜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성을 소개 받은 후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만난 사람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들이 만들어진다.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사라진다. 그리고는 언젠가는 완전히 잊혀져서는 어떤 감정을 생겨나게 한 사건 그 자체에 대한 기억도 잊고,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한 기억도 잊는다.

 

이런 식으로 감정에 대한 기억은 크게 두 가지 면으로 나뉜다첫 번째는 어떤 감정을 만들어 낸 사건 자체에 대한 기억이다그 사건은 크기가 크면 클수록, 이후 삶에 영향을 미친 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감정 그 자체에 대한 기억이다. 흘러간 노래를 듣거나 오래된 사진을 보았을 때 불현듯 수십 년을 되돌아 간 듯 한 느낌을 받게 하는 기억이다. 이것을 흔히 감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오감에 의해서 생겨난 감정과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감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둘 모두 다양한 감정을 발생시킨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이후 생겨난 감정이 사라지는 단계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특히 나쁜 감정일 경우에 그렇다.

 

오감으로 통해 생겨난 감정들은 좋든 나쁘든 비슷하게 사라진다. 좋은 냄새를 맡을 때 기분이 좋아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듯, 나쁜 냄새를 맡았을 때도 비슷하게 기분이 상했다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하지만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감정은 다르다.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진 좋은 감정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서서히 사라져가지만, 나쁜 감정들 일부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평생을 기억하게 되기도 한다.

 

10년 전 아주 중요했던 시험에 합격했던 순간에 대한 감정은 잊혀지기에 그 기억이 떠올라도 별 다른 감정이 들지 않는 반면그에 비해서 자신의 돈을 떼어 먹고 연락을 끊은 친구에 대한 기억은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분명히 어떤 일로 인해 생겨난 감정의 크기나 그 일이 삶에 미친 영향력은 중요한 시험에 합격한 일과 그때 느낀 감정이 훨씬 큰데 실제로 더 많이 남은 것은 오히려 돈을 떼어 먹고 사라진 친구에 대한 나쁜 감정이란 뜻이다. 어떤 경우엔 어린 시절에 엄마로부터 들었던 차별의 한 마디가 평생 잊혀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오감에 의해서든, 생각에 의해서든, 좋든, 나쁘든 결국 똑같은 감정인데 왜 이런 차이를 보이게 되는 것일까? 특히나 생각에 의해서 생겨난 나쁜 감정들은 그것을 기억하면 할수록 기분이 나쁘고 불행하기만 한데도 불구하고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다 보면 거기엔 감정에 관한 아주 중요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어떤 감정 기억에 잊혀지지 않고 있다는 말은, 그 감정을 일으킨 사건의 강력함, 중요성, 영향력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그저 당사자가 그 감정을 얼마나 쥐고서는 놓지 못하느냐에 여부에 달렸다는 점이다.

 

, 나쁜 감정 기억이 좋은 감정 기억에 비해서 잘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본인 스스로가 끝없이 상기하면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더군다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최초의 느꼈던 감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전혀 다른 형태로 변형되고 증폭되는 일도 흔하게 일어난다.

 

갑자기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었을 때 처음엔 화가 나고 황당한 기분만 느끼지만, 1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은 정리해고를 당할 수 밖에 없는 능력 없는 존재였다는 생각으로 인해 커다란 자괴감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을 수도 있다. 특히나 1년 후에도 재취업을 못하고 있는 상태라면 더욱 더 심각해져 있을 것이다.

 

운 좋게 빠르게 재취업에 성공했더라도 자신을 쫓아낸 사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감정 기억이 되고 만다. 그래서 그 회사에 대한 생각이 들 때마다 억울함이 들고 그 만큼의 분노가 솟구쳐 오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좋은 감정들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는 사건에 대한 기억만 남을 뿐 감정 그 자체는 사라지는 반면, 나쁜 감정들은 기억뿐만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남고 더군다나 오히려 증폭되기까지 해서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나쁜 감정이 만들어 낸 생채기를 바로 상처라는 말로 정의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정리해 보면 다소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최초의 상처의 원인은 분명히 외부에서 왔더라도그 상처의 감정을 붙잡고 왜곡시키고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본인이기에, 결국 지속적으로 상처를 내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란 결론이다, 사람들은 외적인 일로 상처를 받았다는 수동적인 표현을 쓰지만, 사실은 상처를 내고 있는 진짜 주체는 스스로 그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별 것도 아닌 일에 난 상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살짝 벤 상처가 났는데 본인이 그것을 계속 벌리고 있는데 어떻게 상처가 낫거나 사라지겠는가? 그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일까그런 행위가 분명히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인데도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는 것일까?

 

원칙적으로 사람이 터무니 없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원인은 하나뿐이다. 두려움 속에 있을 때 그렇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미치거나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기도 한다.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가장 좋은 도구,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마비시켜 버리고 말아서 그렇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나쁜 감정을 느낄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될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금 느낀 감정 자체가 나쁜데, 이후에도 이런 감정을 반복적으로 느끼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누군가에게 '너는 참 이기적이다' 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갑자기 과거부터 미래까지가 다 걱정이 된다. 자신이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앞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가기에 그런 평가를 받게 되는지 걱정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느낀 감정을 책임 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화가 나서 누군가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났을 때, 만약 그 화가 착각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라면 매우 곤란하게 된다. 그러니 자신이 어떤 나쁜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은 반드시 정당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게 된다. 이것은 생각하고 화를 낸 것이 아니라, 화를 내고 나서 생각하기에 생겨나는 두려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가장 중요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어떤 나쁜 감정을 느꼈다면 그 책임의 소재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일이다. 상대방의 평가보다 자신이 생각이 더 옳아야 한다. 자신이 화를 낸 이유엔 그럴만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다는 생각이 들수록 불안함이 줄어들면서 감정 자체도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그 원인이 외부에 있다는 판단이 들 수록 감정은 사라지고 말지만, 내부에 있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그 감정은 남아서 상처로 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문제로 인해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면 이후에도 또 다시 그런 감정을 경험할 가능성과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할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물론 모든 원인을 무조건 외부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 흔히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인데,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성격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설령 끝없이 자기 합리화를 한다고 해도 완벽히 되지는 않기 때문에 결국엔 피해의식이 생겨버리고 만다. , 모든 나쁜 감정들의 원인이 외부에서 온다고 믿으니 결국 자신은 늘 외부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모든 문제를 내부로 돌리는 사람들도 있다. 흔히 자책을 하는 것인데, 이 역시도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다르다. 그리고 너무 많이 자책을 하게 되면 삶이 우울해지고 결국 찌그러지고 만다.

 

자기 합리화를 하든, 자책을 하든 결국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상처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자신에게 생겨난 나쁜 감정을 쥐고는 놓지를 못하게 된다. 끝없이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믿거나 모든 문제가 자신으로 인해 생겨난다고 믿는데 어떻게 그 감정을 놓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쁜 감정들에게 상처를 입지 않을 묘안은 없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상처의 원인이 되는 최초의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는 방법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나쁜 감정이 생길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보지 않고, 듣지 않고 산다고 해서 다 해결될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결국 나쁜 감정이 들 때마다 불안해져서 그 감정의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지게 된다. 화가 났다면 화에 대해서, 질투가 났다면 질투에 대해서, 짜증이 났다면 짜증에 대해서, 혐오감이 생겼다는 혐오감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꼈다면 지루함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꼈다면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아니,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생각이 그냥 이뤄진다.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일단 나쁜 감정이 들어오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때까지는 계속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스스로 중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은 머리 속이 복잡하고 걱정스럽고 우울해진다.

 

그러니 일단 시작된 감정의 책임 소재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한다.

 

이것은 자신이 어떤 나쁜 감정을 느꼈다면 그 감정을 만들어 낸 책임이 내부와 외부 중에 누가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 제대로 여부를 따져 보는 일이다. 그래야 그 감정이 남지 않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엔 함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그 책임 소재가 결코 자신이 아니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다. , 사람들은 누구나 팔이 안으로 굽은 상태에서 책임 소재를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하게 되는 일이 바로 자신이 잘못한 부분은 축소하고 남이 잘못한 부분은 부풀리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상황이다. 사람들이 흔히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 할 때 쓰는 방법이다. 그래서 시비가 붙었을 때는 언제나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한쪽 말만 들어서는 절대로 객관적으로 어떤 사건을 제대로 바라 볼 수 없다다들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말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억지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제법 통한다. 보통 사람들은 한쪽 말만 듣게 되니까 그렇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게 억지로라도 해명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한 동의를 얻게 되면 그때 감정은 어느 정도 사라지는 듯 느낀다는 점이다. 다른 이들의 동의를 통해서 감정이 정당해진 것이다. 이것을 일명 공감능력이라고 한다.

 

자신이 느낀 감정의 정당성을 상대가 동의해주는 과정, 그것이 바로 공감의 진정한 정체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때 감정의 정당성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가 내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공감을 하려면 이성의 기능은 잠시 꺼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여자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약한 이유이다.

 

하지만 여기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설령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설명을 그대로 믿더라도 자기 자신은 자신이 한 말이 진실이 아님을 여전히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자신이 한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일 수 있지만, 결국 자신과 갈등을 일으킨 사람은 자신과는 전혀 반대 입장에서 말을 하고 있음을 뻔히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이 한 말은 스스로 믿고 있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이 진실이 아님을 알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당장 의식 속의 불안함은 사라진 듯 보이지만 무의식 속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남게 된다. ,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 불안함이 점점 쌓이는 것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합리화가 아닌 자책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자책을 하는 사람들은 남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고 자신이 한 잘못만을 가지고 나쁜 감정을 온전히 책임지려고 한다. 하지만 책임을 진다고 해서 나쁜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을 질수록 그 감정은 더욱 더 강해지고 진해진다.

 

이 두 방식은 같은 감정에 대한 반대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마찬가지 문제를 만들어 내고 만다. 바로 내면의 상처이다. 그리고 불안함이다.

 

남의 탓을 하고 살면 무의식적으로 불안해지고, 자신의 탓을 하고 살면 의식적으로 불안해진다. 물론 그 효과 자체는 기본적으로 자책이 훨씬 더 크지만, 그나마 자책을 하는 사람들은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어느 정도 희석이 된다는 이유로 인해서 비슷하게 유지가 된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하든 한번 생겨난 나쁜 감정들은 사라지지 않고 평생 동안 삶을 좀 먹어 가게 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나쁜 성향들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신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나쁜 감정들이 사라지지 않고 깊은 무의식 속에 남아서 끝없이 불안감을 증폭시키기에 경험과 지식이 쌓일수록 안정화 되고 너그러워져야 할 삶이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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