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착함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아이루다 2019. 4. 4. 09:07

 

꽤 오래 동안 인간에게 있어서 선한 면과 악한 면은 흥미로운 주제가 되어왔다. 그리고 그것에 관련해서 많은 이론적 주장들이 있었고 갈등들도 존재했었다. 물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것들에 관련된 내용은 그다지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

 

하지만 아주 단순화 시켜서 생각해볼 수는 있다. 그것은 바로 만족의 관점에서 착함을 보는 것이다.

 

아무리 사나운 맹수도 배가 충분히 부르면 순해진다. 다른 말로 착해지는 것이며 선해지는 것이다. 반대로 배가 고플수록 사나워진다. 다른 말로 악해지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단지 먹을 것 하나로 그것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인간은 그런 만족을 행복이라고 통칭한다. 그래서 행복할수록 착해지고 불행할수록 못돼진다. 동물에게 있어서 먹을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는 행복인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화 시켜놓고 봐도 이해가 잘 안 갈 때가 있다. 분명히 돈도 많고 환경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보이는데 그다지 선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나 있다. 그 반대로 분명히 착하게 살기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여전히 착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선함과 악함에 대한 혼란스러움은 여전하다.

 

그런데 거기엔 이유가 있다. 그것도 꽤나 명시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 선함과 악함을 결정하는 요소가 최소한으로 잡아도 4개지나 되기에 그렇다. , 4가지 이상의 요소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작용하기 때문에 선과 악에 관련된 최종 결론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지금부터 일단 그 네 가지에 대해서 차례로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는 타고난 기질이다그런데 단순히 기질이라고 하면 너무 폭이 넓으니 그 범위를 좁혀서 타고난 욕심의 크기라고 보면 될 것이다. , 사람마다 만족을 위한 조건이 태생적으로 다르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간난아이 시절이라고 해도 배가 터질 만큼 먹어도 계속 먹으려는 아이가 있고 어느 정도 적당히 먹고 나면 더 이상 먹지 않는 아이가 존재한다. 이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DNA와 엄마 배속에서 어떤 태아 시절을 겪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두 번째는 타고난 능력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우대를 받는 능력을 잘 타고나는 것이 중요하다외모, 지능, 운동 등이 그것의 대표적인 능력에 속한다. 그리고 이런 능력들을 잘 타고날수록 상대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쉽게 해낼 수 있다. , 욕망을 쉽게 실현되기에 배부른 상태가 잘 유지가 된다.

 

이 두 번째 요소는 첫 번째와 궁합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좋은 궁합은 욕심의 크기가 작으면서 타고난 능력이 좋은 사람이다. 이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도대체 착하지 않게 살기도 힘들 지경이다.

 

세 번째 요소는 둔하거나 단순한 성격이다. 그리고 보통 이런 성격을 타고난 사람들은 이득과 손해를 계산하는 능력이 남들과 좀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에 비해서 잘 못한다. 그래서 손해를 보고도 모르고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뻔한 이기적인 행동들도 별다른 감정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요소들과 조합이 잘못될 경우 아주 이상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특히 타고난 욕심이 많고 능력이 부족한데 둔한 성격을 가질 경우 피해망상증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손해 보는지 조차 모르지만늘 주변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른이 된 후에 강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욕심이 적고 능력이 충분한데 단순한 성격을 소유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그야말로 긍정적이고 행복을 쉽게 느끼는 성격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어린 시절부터 자라 온 환경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부족하고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 놓여 있을수록 착하게 살아가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에서는 착하게 굴다가는 다 뺏기고 마니까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뻔히 악해 보이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서는 선할 수도 있다. 그저 어려서부터 무의식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에서 이기려고만 하다가 보니 그렇게 변한 것이지, 그 사람 기질이 자체가 타고난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닐 경우도 있기에 그렇다.

 

이 네 개의 요소는 서로에게 큰 영향을 끼치면서 최종적으로 사람의 선함 정도를 결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욕심이 적을수록, 타고난 능력이 많을수록, 단순한 성격일수록, 풍족하며 덜 경쟁적인 환경에서 자랐을 수록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된다.





 

여기까지를 이해하면 어떤 사람이 착하게 살아가게 되느냐를 판단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단지 이 네 가지 조건들은 사실상 타고나는 것이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점만 문제가 될 뿐이다. 타고난 기질도, 능력도, 성격도, 환경도, 태어나는 순간 이미 결정되어 있기에 그렇다.

 

이렇게 거의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누군가의 선함과 악함을 결정짓게 만든다. 그리고 세상은 착한 사람과 착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그런데 이 단순한 구조에서 한 가지 문제가 더해진다그것은 또 다른 이유로 착하다고 평가 받는 사람들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이유로 인해서 착한 사람들은 자신의 착함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여기에 속한 사람들이 오늘 글의 대상이 된다.

 

이들은 거절해야 할 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고도 따지지 못한다. 분명히 상대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을 하지 못하고, 관계가 틀어질까 싶어서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렇게 착함으로 인해서 삶이 시들어간다.

 

왜 착해서 그런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착한 것은 결국 저주란 말인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상한 면이 있다. 모든 착한 사람들이 같은 고통을 경험하지는 않기에 그렇다. 사실 많은 착한 사람들은 그 착하게 타고난 장점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 꽤나 행복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방금 전 언급했던 고통들을 경험한다. 그리고 더 이상 착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착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 살 수 있을까그것은 이미 타고난 것을 바꾸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치 A형 혈액형을 타고난 사람이 O형이 되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착함 증후군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책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사서 본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런 책들을 통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착함에 대한 수준을 어느 정도까지는 조절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 선천적으로 타고난 착함의 정도를 스스로 노력해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가능한 일이다. 그 착함의 기원이 바로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요소의 조합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서 그렇다. 또 다른 요소로 인해 착해졌기에 그것을 바꾸는 것도 또한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남들에게 잘해주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했기에 생겨난 착함이다. , 앞의 것들과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후천적으로 행해지는 착함이란 점이다.


물론 여기에 속한 사람들 역시도 나름대로 선천적으로 착할 수 있는 요소를 가진 경우가 많다. 실제로 그런 요소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착하게 구는 것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아예 착함에 대한 재능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못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는 반드시 적절하게 조합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이 될 수가 없다.


능력이 뛰어나고 단순하며 풍족한 환경에 자랐더라도 타고난 욕심이 크면 착하게 살 수 없다. 오히려 남들보다 더 가질 수 있기에 악당이 될 수도 있다. 욕심이 적고 단순하며 풍족한 환경에 자랐더라도 능력이 떨어지면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서 평생 남들에게 질투심만 느끼다가 삶이 망가질 수도 있다. 재벌 2세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이다.


욕심이 적고 능력이 뛰어나며 풍족한 환경에 자랐더라도 단순한 성격이 아니면 끝없이 이득과 손해에 대해서 계산을 하는 사람이 되기에 기본적으로는 착한 사람처럼 보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끝없이 그 착함의 정도가 변화하게 되는 사람이 된다. 즉, 조건부 착함인 것이다.


욕심이 적고 능력이 뛰어나며 단순한 성격인데 경쟁이 치열하거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면 착하기 보다는 외골수의 성격이 되기 쉽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 여유가 없기에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기본적으로는 착하지만 그리 착해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네 가지 요소의 적절한 조합은 무척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후천적으로 착한 사람들은 보통 이 중 두세 가지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착한 것을 통해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만 것이다.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한다. 친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좀 더 나가면 우정이나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간에 서로 익명의 존재가 아니어야 하기에 이름을 익히고 얼굴을 서로 알아보며 만나면 인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때 상대가 친절하고 착하고 덜 이기적이라고 느낄수록 그 사람에게 호감을 품게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착한 사람의 곁에 있으면 손해보다는 이득을 더 얻을 수 있기에 그렇다. 사람들이 모두 착한 사람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가 착할수록 나에게는 이득이 된다.

 

같은 이유로 어떤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을 싫어한다. 자꾸 눈에 보이게 손해만 입고 다니니까 그렇다. 그 자신은 착한 사람을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정작 그 사람은 어딘가만 가면 손해를 보고 다니거나 함께 있을 때 괜히 덩달아서 같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같이 있기도 싫고 나중엔 보기도 싫어하게 된다.

 

더해서 많이 착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둔하거나 단순한 성격을 가졌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센스가 많이 부족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처음엔 좋은데 오랜 시간 같이 지내게 되면 그 단순함에 지겨움을 느낄 수도 있다. 원래 사람은 은근히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으니까 지겨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못되더라도 적극적으로 이득을 챙기고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사람에게 끌리게 된다. , 나쁜 남자 증후군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쁜 남자에게 있어서는 여자는 그저 이득을 챙기는 대상이 될 뿐이다. 그래서 결국 나쁜 남자에게 끌리게 되면 많은 것을 뺏기다가 더 이상 뺏길 것이 없으면 버림을 받게 된다.

 

아무튼 어떤 사람이 착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호감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호감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하며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두려움을 줄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은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관계는 매우 중요한 방법론 중 하나이지만 대안으로 돈도 있으며 권력도 있다. 그러니 누구나 다 착하게 사는 것을 통해서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구나 다 착하게 사는 것을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했다면 착하게 사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여러 가지 나쁜 문제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 해결책이 다르기에 착한 사람들은 결국 이용의 대상이 되고 만다. , 누군가의 착하게 살려는 욕구를 이용해서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착한 사람들은 그런 기울어진 관계 조차도 끊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게 된다.

 

네 가지 선천적인 요소로 인해서 착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는 하지만 만약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면 그 관계를 망설임 없이 끊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관계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데 스스로 불행하다면 왜 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겠는가?

 

더군다나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들은 원래 인기가 많다. 이미 설명했듯이 착한 사람과 있어야 이득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착한 사람들과 있을 때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 이득과 손해에 관심이 별로 없더라도 그것들에 대해서 민감하게 계산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것이 좋아서 착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관계를 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이기에 그렇다. , 관계가 끊기게 되면 그 만큼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결국 마음 속에서 관계가 끊어지는 두려움과 그 관계를 유지할 때 생겨나는 불행이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보통은 전자가 이긴다. 그래서 고통스럽게도 그런 기울어진 관계를 유지한다.

 

이것이 착함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의 진짜 정체이다. , 정말로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하게 굴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 무의식적인 계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자신은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자신을 마치 선천적으로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잘 구분이 안되긴 해서 그런 착각이 일어날 만 하다.

 

하지만 두 종류의 착한 사람은 매우 명백히 구분이 된다.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은 그 착함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어떤 관계가 행복을 방해한다면 언제든 그 관계를 끊을 수 있다.

 

반대로 후천적으로 착하게 살려고 한 사람은 그 착함으로 인해 반드시 고통 받게 된다.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착하게 살았기에 그렇다. 그리고 불행한 관계조차 잘 끊지 못한다. 그러니 착하게 살지 말자는 책을 읽을 때 그렇게 크게 공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행히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신은 언제나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에, 자신의 착하게 살려다가 경험하게 되는 고통만큼 자신의 선함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것도 아주 크게 갖는다. 그래서 아주 고집스럽고 피해의식이 가득 찬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착하게 살았는데 이 세상이 착한 나를 철저하게 이용했다, 라는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벽한 착각이다. 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한 것이다. 처음부터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선천적으로 착하게 태어난 사람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착하게 살아 가는 사람의 비율은 아무리 잘 쳐줘도 1:9가 되기가 쉽지 않다. , 보통 착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들 중에서 제대로 착한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하면 백 명 중 한 명도 되기 쉽지 않다.

 

그러니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착하게 구는 것뿐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 할 때 충분히 이길 수 있으면 화를 내고 달려들지만 압도적으로 힘이 부족할 경우엔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생겨나고 말을 조심스럽게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한 권력자들 앞에 서면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되는 것이다.

 

착함을 두려움과 싸우는 도구로 써왔기에 착하게 사는 사람은, 오직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다른 것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때 그 착함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통해 자신이 가진 두려움과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낯선 곳을 여행을 떠나는 것 많은 것을 아는 것,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등등, 스스로의 두려움과 마주하고 투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면 그 두려움이 줄어들고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만큼 덜 착하게 살아갈 수 있다. 부탁을 거절하고, 손해를 그냥 참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떨어져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착함에 기생하는 존재들이었을 뿐이다. 피를 빨아 먹다가 더 이상 피를 안줄 것처럼 구니까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그것이 더 좋은 현상이다.

 

자신이 착하다고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 착각이다. 그리고 실제로 선천적으로 착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이 착하다는 인식조차 잘 하지 못한다. 처음부터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이 드는 이유 그 자체가 바로 그 착함으로부터 고통을 받았기에 생겨난 것이다.

 

신발을 신고 있을 때 자신이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신발로 인해서 발이 몹시 아플 때이다. 멀쩡하면 자신이 신발을 신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러니 뭔가가 인식되었다는 말은 그것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다는 뜻이다.

 

같은 원리로 자신이 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저 그 착함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착하게 사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람들일 뿐이다.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실제로 착하지 않다. 그저 착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약자이다. 그러니 스스로 강해질 때 그 착함 증후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그리고 강해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그저 그 동안 고통스럽지만 자신을 안전하게 해준 그 관계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 정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존의 관계를 다 망치라는 뜻이 아니다. 관계는 일단 스스로 충분히 설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생각보다 관계는 새롭게 맺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니 스스로 변화하고 그런 변화된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된다. 적당히 이기적으로, 적당히 이타적으로 굴면서 말이다.

 

인간의 착함에 관한 남은 한 가지 요소가 더 있다. 그것은 무지의 선함이다. , 몰라서 착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기에 속한 사람들도 꽤나 많다그리고 이들은 그 무지에서 벗어나게 될 때 언제든 착하지 않게 된다.

 

착하고 인심이 후한 시골 마을이 개발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이것인데,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겪으면서 그 마을의 후한 인심은 완벽히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오히려 더 도시 사람들보다도 악해지기도 한다.

 

사람이 선천적으로 착하기는 참 어렵다. 일단 조건이 까다로우니까 그렇다. 욕심이 적게 태어나고, 능력이 좋으며, 성격이 단순하고, 경쟁적이지 않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든 조건인가?

 

그래서 선천적으로 착한 사람의 숫자는 정말로 적다.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착한 사람들은 착하게 사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사람들이나 그저 악해질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속할지는 뻔한 일이다.

 

이제 그 착함의 정체를 제대로 알았으니 그것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할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알았을 것이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할 수 있는 한 많은 경험을 하고 할 수 있는 한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운동을 하는 것도 좋고, 여행을 하는 것도 좋으며, 취미 생활을 하는 거도 좋고, 책을 읽는 것도 좋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하면 두려움이 줄어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려움이 줄어들고 나면 자신이 옛날에 왜 그런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를 쉽게 끊지 못했는지 의문이 들게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는지 스스로 궁금할 것이다.

 

대신 스스로 착하다는 자부심도 함께 내려놔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저 고통 때문에 생겨난 가치일 뿐이다당신은 결코 착하지 않다그 어떤 이유보다도 정말로 선천적으로 착하게 태어났다면 이런 글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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