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등명 법등명

아이루다 2018. 8. 12. 07:21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기를 의지하라. 진리를 등불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

 

자등명, 법등명이란 말을 해석하면 이렇게 된다고 한다. 부처님의 유훈이라고 하는데, 법등명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자등명은 처음 듣는 순간부터 머리 속에 쑥 들어왔다.

 

,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교를 믿는 것은 아니다. 단지 불교적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과 그 안에 담긴 진리에 대한 관점이 개인적으로 끌리는 정도이다. 나는 믿고 있는 종교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더욱 와 닫는다. 종교가 없다 보니, 누군가 어떤 존재를 믿고, 그 존재를 의지하고, 그 존재를 향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렇다

 

이 말씀이 부처님의 유훈이 아니더라도 어떤 믿고 있는 종교가 없는 상황에서 믿을 건 오직 나 밖에 없지 않은가?

 

문제는 ''라는 존재는 전혀 믿을만한 하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다.

 

내가 나를 지켜본 바에 의하면,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바뀌고, 어제와 오늘이 다르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끝없이 두려움을 느끼고뭔가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사실은 나약하기가 그지없고, 생각보다 많이 어리석으며, 딱히 일관성도 없고딱 먹고 살만큼만 의지와 끈기를 발휘하며틈만 나면 게으르기까지 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이렇게 나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나는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불쌍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날은 나를 동정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기분이 나쁜 날은 내가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그나마 이런 나를 지켜보면서도 별다른 문제가 없이 살아가는 이유는, 내가 이해심이 높아서가 아니라 나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원래 다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결국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나도 이 모양이지만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나와 별로 차이가 없으니 너무 내 자신에게 과도한 비난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렇다.

 

사실 예전에는 비난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책감, 자괴감, 열등감, 질투심 등등 수 많은 자기 파괴적인 감정들을 잔뜩 가지고 살아왔었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내 감정 반응은 쉼없이 널뛰기를 했었다.

 

좋은 날은 좋지만, 안 좋은 날은 폭풍 같은 분노가 치밀었고, 그리고 나중엔 후회하고, 그렇게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난하면서도 그렇게 화를 낼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는 했었다.

 

그것이 부질없는 짓이며 결국엔 자기 합리화라는 것을그리고 나 자신을 그렇게 비난할 필요가 없음을 안 것도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았다. 그것은 내 팔이 두 개라는 사실을 가지고 나 자신을 비난한 것이라는 것과 같다는 점을 불과 몇 년 전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화가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것이 꽤 되었다물론 중간에 소소한 화는 났었다. 상황에 따라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누군가 이해가 가질 않아서 기분이 나쁘기도 하는 경우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예전에 경험했던 자기 파괴적인 화는 이제 사라진 듯 하다. 그런 화를 내기엔 나이도 먹었고, 아는 것도 좀 생겼으니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블로그 글을 써 온 7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국 이 블로그에 적혀 있는 글들은 그 동안 일어난 나의 변화의 흔적들이 되고 있다블로그 초반에 적힌 글들은 공격적이고 분노가 섞여 있고, 중반쯤 적힌 글들은 의심이 가득한 분석적인 글들로 채어져 있다그리고 요즘 적히는 글들 대부분은 최종 정리의 의미를 가진다. 아마도 이 글도 그럴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각자만의 사실을 이야기 한다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진실을 말한다. 진실을 말하는 이들 중에서 아주 극소수가 진리를 말한다.

 

'사실' 은 관점에 따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진실' 은 관점에 따라서는 바뀌지 않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상대적인 개념이다. 반면에 '진리' 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으로 옳다.


태양이 동쪽에서 뜬다는 사실은 금성에 가면 거짓이 되고, 태양이 어느 방향이든 떠오른다는 진실은 50억년쯤 지나면 태양 자체가 사라지기에 거짓이 되고, 그러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결국은 사라진다는, 생자필멸 만이 최종적으로 진리가 된다.

 

그래서 두려움이 큰 사람일수록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사실보다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게 된다. 사실처럼 매번 상황에 따라서 변하고, 진실처럼 결국엔 상대적이라면, 그것을 잣대로 삼아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기에 그렇다.

 

그렇게 두려움이 너무 커서 도저히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모든 것을 버리고는 진리를 탐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기에 그렇다.

 

그러다 보니 어떤 존재들은 자신이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것을 기꺼이 설명해준다. 자신이 걸어 온 길과 자신의 진리에 대한 해석을 들어보라고 한다.

 

물론 그런 존재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는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이 나의 경험은 될 수 없다. 각자의 두려움의 크기가 다르고, 각자의 두려움의 대상이 다르기에 그렇다. 그 진리는 결국 말하는 자가 가진 두려움의 크기와 대상에 대한 결과물이다.

 


그런 면에서 자등명은 참으로 마음에 남는 말이다. 진리를 추구하고 얻은 분들 중에서 어떤 면에서는 가장 유명할 수 있고, 가장 그렇다고 인정받는 부처님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말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람은 잘 모르면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 스스로 알아내기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기에 어떨 수 없다. 그러다 보면 점점 누군가의 생각에 빠져들 수 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자신이 몰랐던 대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이해이며,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다. 분명히 그것들은 도움은 줄 수 있겠지만자신을 이끄는 등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등불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마도 온전한 존재가 되는 유일한 과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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