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말 속에 숨겨진 것들

아이루다 2018. 8. 10. 08:42

 

한 여자가 친구들 모임에서 요즘 자신의 아이 성적이 시원치 않아서 많이 걱정이라는 얘기를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는 자기 아이도 그렇다면서 아무래도 아이들이 아빠 머리를 닮아서 그런 듯 하다고 말하자 다들 웃음이 터진다.

 

또 다른 여자는 그래도 키도 크고 몸도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으니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니냐고 위로를 해준다. 또 다른 여자는 자신이 잘 아는 학원이 있는데 비싸긴 하지만 성적만큼은 끝내주게 올려준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그리고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학원도 아닌데, 자신이 연줄이 있으니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구석에 있던 여자는 우리들도 그런 학원 보내고 싶지만도저히 여유가 나질 않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당연히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벌어 온 돈을 모두 아이 교육에만 쏟아 부을 수만은 없다고 푸념한다.

 

그런데 이때 처음 아이 성적 문제로 인해서 속상하다는 말을 한 여자는 이들 중에서 누구의 답변이 제일 마음에 들까?

 

정답은 없다. 그것은 오직 그 당사자만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당사자도 잘 모르고 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냥 어떤 이유로 인해서 마음 속에 걸려서 그것을 별 다른 생각없이 친구들 앞에서 꺼냈는데, 친구들의 각각 다른 반응을 보면서 그때야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친구들의 각각 다른 답변 중,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원했던 말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 속에 남편의 수입이 적어서 더 좋은 학원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 분노가 숨겨져 있었다면, 마지막 말을 한 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들은 돈만 잘 버는데 자신의 남편은 왜 그렇게 무능한지 모르겠다고 한탄을 할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학원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 얘기 꺼냈다면 그 학원과 연결을 시켜준다는 친구의 말에 바로 반응했을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그냥 신세 한탄이었다면,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 된다는 친구의 말에, 그래 그래도 애가 안 가리고 잘 먹어서 좋아, 라고 말하고 끝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아이의 아빠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비슷한 생각을 농담으로 해서 웃음을 준 친구의 말에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한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말을 통해서 많은 감정들을 표현한다. 그래서 말 속에는 기분 좋은, 속상함, 분노, 억울함, 두려움, 곤란함, 신남 등등 수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렇게 표현되는 매우 다양한 감정들은 비슷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미묘한 차이들은 말이 아닌 보조적으로 표현되는 것들로 인해서 생겨난다. 바로 표정, 말투, 행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말보다는 이런 보조적으로 표현되는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말은 생각을 통해 꾸며서 할 수 있기에 그렇다. 그와는 달리 표정이나 말투 그리고 행동들은 꾸미기가 쉽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말 이외의 감정 표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오기에 그렇다. 물론 가짜 웃음, 가짜 눈물을 연기할 수는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속을지 몰라도 모두를 속일 수는 없다.

 

그러니 '정말로 미안하다' 라는 말을 할 때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실제로 그런 말이 아닌 태도와 어투이다. 전혀 미안하지 않는 말투나 태도로 미안하다고 할 때 그것을 받아 줄 사람은 없다.

 

물론 그것은 명시적인 상황이지만, 반대로 애매한 태도로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 미안하다고 말은 하는데, 정말로 미안해 하는지 긴가 민가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그리고 이런 경우가 수 많은 오해와 갈등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한쪽은 가짜로 꾸몄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 표현 속에 숨겨진 보조적 표현들을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그것을 제대로 해야 오해를 안할 수 있고, 상대의 진심을 왜곡해서 판단하지 않을 수 있어서 관계를 유지하거나 끊어 내는 판단을 할 때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또한 상처도 훨씬 덜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살다가 보면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상대가 크게 상처를 받는 일도 생기고, 상대가 분명히 상처를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한 동안 미안해 했는데, 나중에 보니 상대는 그것을 기억조차 못하는 경우도 흔히 생겨난다.

 

이것들 역시도 모두 상대의 말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 된다.

 

사실 말 자체는 문자와 그리 다를 것이 없다. 단지 말을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목소리' 가 전달되기에 문자와 다른 것이다말 자체에는 그 어떤 추가 정보가 없지만,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 필요한 목소리에는 추가 정보들이 담겨 있기에 말과 문자가 서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문자로 'ㅋㅋ' 라고 적는 것이 결코 웃은 것이 아님을 알듯이, 말 역시도 그럴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말의 내용 그 자체는 그저 외부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감정에 불과할 경우도 꽤나 많을 테니까 말이다.

 


언젠가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고, 정말로 진지하게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시간이 지나봐야 그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지나가는 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젠가 자신이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같이 영화를 보겠냐고 지나가듯 물어본 남자가 있었는데, 몇 년이나 지난 후에 그때 그 남자는 영화를 보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음을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친구들이 알려줘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말에는 거의 대부분 별도의 감정이 숨겨져 있다그래서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사람들과 대하게 되면 오히려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매우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며칠 전 남편과 싸워서 그저 자신의 감정을 편하게 하려고 남편의 단점을 친구에게 얘기했는데, 친구가 듣고 나서는 왜 그렇게 멍청하게 그런 쓰레기 같은 남자와 사냐고 이혼하라고 말하는 친구를 누가 또 연락하려고 하겠는가

 

그러니 말에 숨겨진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는 능력, 그것만큼 관계를 잘 맺는데 필요한 능력도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그런 능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것이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정도이다.

 

예를 들어서 상대방이 뭔가가 싫다 라는 말을 할 때귀찮아서 싫은 것인지, 손해 볼까 봐 싫은 것인지, 일이 커질까 봐 싫은 것인지,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싫은 것인지, 그것은 싫지 않지만 같이 할 사람이 싫어서 싫은 것인지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일단 한번 튕겨보는 것인지를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는 본인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 예를 든 자식 성적 걱정을 하고 있는 엄마처럼 말이다. 혹은 진짜 싫은 이유는 따로 있는데 본인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결혼 그 자체를 하기 싫다고 생각하고 살았지만, 나중에 정말로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자, 자신이 결혼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을 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평생 동안 결혼을 하기 싫어한다고 굳게 믿고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이런 저런 이유로 다 쳐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그 사람의 말을 믿고는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줄 시도조차 안 하게 된다. 하지만 그저 인연을 못 만났을 뿐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본인도 자신의 진짜 감정을 잘 모르고 얘기하고, 듣는 사람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상 속에서 숱하게 일어나면서 삶을 크게 흔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것이 일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감정은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어떤 한 시기에 상대 감정을 잘못 이해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들었는지 특별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한 따져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운이 따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서 크게 감정이 상했을 때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폭탄처럼 터지고 만다. 그리고 심한 경우 그 관계는 완전히 파탄이 나기도 한다. 친구는 서로 연락처를 지우고, 부부는 이혼을 하고, 부모와 자식간은 서로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살아가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는 수준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것이 되고 만다. ,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공감해주지 못하면 그 사람과 있을 때 그 어떤 충만함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건조하고 의무적인 관계가 되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겉도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그나마 확실한 이득이 있거나 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계속 이어가겠지만, 그런 관계는 오히려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능력으로 상대의 말에 숨겨진 진짜 감정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말은 분명히 하기 싫다고 거절하고 있지만 내면에서는 그것을 하고 싶어하는 심리를 어떻게 파악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여기엔 크게 세 가지 능력이 작용한다.

 

하나는 보편적인 표정을 읽는 것이다. 사람의 표정은 인종이나 문화에 상관없이 일정하다. 그러니 이것을 읽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다. 이것은 가장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능력이다.

 

또 하나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이것은 상대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경험들을 함께 했을 수록 잘된다. 오래된 관계가 편하고 좋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잘 이해해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하나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근거로 상대방의 감정을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사람이나 혹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감정을 읽어 낼 때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이 보편적이면 보편적일수록 그 판단이 대략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능력이 발달한 사람일수록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나름대로 유리한 고지에 서기가 쉽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도 먼저 알 수 있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점은 명확하다. 바로 자신을 기반으로 해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었기 때문에, 상대방의 감정은 오직 자신이 가진 기존의 경험과 지식으로 한정된다. ,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상대가 가지고 있을 경우 반드시 오해가 일어날 수 밖에 없기에 그렇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말이 맞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오해가 결국 수 많은 갈등과 결국엔 단절의 원인이 되고 만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능력을 전혀 의심하려고 하지 않는다. , 상대에게 느끼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은 결국 자신의 기존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자각하기가 힘들다.

 

그리고는 자신이 판단한 감정에 대해서 나름대로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근거로 상대를 대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는 없다는 것을 믿고 상대가 정중히 거절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를 하는 경우가 있다. 등산을 하자는 상대에게 그저 맞춰주려고 같이 좋아해주는 척 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믿고 매일 등산을 하자고 조르게 되면 힘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상대는 결국 폭발하게 된다. 그만큼이나 싫다고 했으면 그만 해야 한다고 화를 내거나등산을 하지 않으려고 아예 상대방과의 어떤 약속을 잡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러니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자신도 자기 자신이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둘은 상대방이 가진 진짜 내면의 감정을 유추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경험 기억' 이라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서 확신을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할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쉽고 효과가 좋은 것은 바로 소설과 영화와 같은 창작물들을 많이 보는 것이다. 거기엔 수 많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꽤나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 되어서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너무 뻔한 것들을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결국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되고 편협적으로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문학작품이 필요하고 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들은 비록 흥미 위주의 작품들에 비해서 재미는 없을지 모르지만 뻔하지 않기에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그래서 충분히 그것들 접할 가치가 있다.

 

이런 과정은 결국 자신의 공감능력을 키우고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뜻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실수를 줄여 줄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을 좀 더 많은 관계들과 좀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행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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