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책을 읽는 이유

아이루다 2018. 7. 23. 07:49

 

요즘 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참으로 힘들다고 한다. 그냥 힘든 정도가 아니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실상 겨우 버티는 수준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들은 지도 한참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 판매 부수가 백만 단위를 넘어가는 베스트 셀러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책들은 대부분 특이하게도 소설과 같은 분야가 아니라 주로 인문학에 속하는 책들이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니 공감과 위로라는 코드가 사람들에게 점점 더 필요해지는 모양이다.

 

통계치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거꾸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이것은 아주 단순한 질문이지만, 생각보다 이 질문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이 숨겨진, 책에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목적을 크게 분류하자면, 다양한 정보의 습득, 재미와 감동을 얻기 위해, 공감과 위로를 받기 위해삶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론 습득, 나와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류 방식과는 별도로 최초에 '책을 왜 읽고 싶어했는가' 라는 관점에서만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재의 자신을 좀 더 행복한 존재로 만들고 싶다는 능동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키고 싶다는 수동적인 목적을 가진 경우이다.

 

, 각각은 더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경우와 불행을 견뎌내고자 책을 읽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주로 정보의 습득을 위해 책을 읽거나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간혹 자신이 가진 편견을 깨고자 나와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려고 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말이다.

 

반면에 불행에서 견디고자 하는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공감과 위로를 주는 책에 끌리게 된다. 물론 그 수준조차 안 되는 사람들은 아예 정해진 답을 찾기도 하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온 책이 바로 삶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써 놓은 자기계발서에 속하는 책들이다.

 

위로와 공감으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의 잠시 힘든 상황이 아니라 아예 앞날이 깜깜하니까 정답을 찾고 싶어서 그렇다. 그리고 여기에 속한 일부의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나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하기도 한다. , 철학이나 종교 쪽으로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히 책을 읽을 때 행복하다. 그리고 불행에서 견디고자 책을 읽는 사람들 역시도 책을 읽을 때 만큼은 행복하다. 사실상 비슷한 수준으로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러난다.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 행복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한다하지만 불행에서 견디기 위해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동안 일어난 일종의 마취효과가 끝날 쯤 되면 또 다시 힘들다그래서 이들은 또 다른 책을 찾아 헤매게 된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법한 책을 보면 반사적으로 그 책을 사려고 한다. 더해서 그 책이 아주 평가가 좋고 잘 팔리는 책이라면 당연히 읽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문학 분야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다.

 

, 인문학 관련 책이 잘 팔린다는 말은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불행을 견디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행복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면 주로 소설류에서 베스트셀러가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언제나 그런 상태만은 아니다책을 읽는 것 자체가 너무도 행복해서 책을 끝없이 읽는 사람들도 있고, 불행한 사람들 중에서도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행복하니까 끝없이 책을 읽어서 실제로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남들에 비해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 자신이 행복해서 책을 읽고 있는지, 아니면 불행에서 견뎌내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는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것을 구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것은 바로 과연 얼마나 다양한 형태의 책을 읽고 있느냐 만 따져보면 된다. 분야가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책을 읽는 그 자체를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설령 주구장창 소설만 읽더라도 그 소설 주제들의 다양성을 살펴보면 된다.

 

오래된 명작부터 누가 봐도 인기를 노린 대중적인 작품까지, 사회부조리를 고발하는 무거운 내용을 품은 작품부터 남녀의 연애사를 다룬 가벼운 작품까지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읽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행복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불행에서 버티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들은 끝없이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작품들만 선호하게 된다. 그렇게 공감과 위로로 무장된 작품들만을 선별하려고 한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고 써 있는 것들을 읽고 싶어한다.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는 것들을 읽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어두운 내용을 다룬 작품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어두운데 왜 또 어두움을 더하려고 하겠는가?

 

아니면 완전히 반대로 어두운 것만 찾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동질의 감성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을 온통 어두운 것만으로 가득 채운다.

 

이런 식으로 불행에서 견디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주제적 편식이 일어나게 된다. 아주 밝은 것이든, 아주 어두운 것이든 어느 한쪽을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음식을 가리는 사람이 처음부터 미식가가 될 수는 없다. 뭐든 다 먹을 수 있으면서 그 중에서 맛있는 것을 고를 줄 알아야 미식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의 주제를 가리는 사람은 책 자체로 행복하기가 힘들다. 만약 힘들다고 해도 그것은 일종의 착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아니, 그 순간은 분명히 행복할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이 끝나면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래도 불행한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잠시간 불행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숨통이 뜨일 때, 새로운 탈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는 행운이 다가올 수도 있다.

 

힘들면 쉬어야 하니 이 방식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의 한계는 명확하다. 어딘가를 가야 할 때 당연히 중간중간 쉬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 자체가 가는 것을 대신해주지는 못하니까 말이다.

 

감기에 걸렸을 때 약을 먹고 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훨씬 더 근원적인 해결책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해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책을 읽고나서 그것이 자신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에 도움을 주는 용도로 쓸지 아니면 단순히 그 순간만을 넘겨주는 감기약 용도로 쓸지는 각자의 의지에 달렸다그리고 책을 읽었을 때 그것이 면역력을 높이는 쪽으로 사용되려면 반드시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사고방식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어야 한다.

 

몸이 면역력이 높이려면 먹을 것을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 반드시 육체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 역시도 온전히 동일하다. 행복해지려면 기존의 생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 반드시 정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책은 기존에 자신이 하고 있었던 생각을 고정시켜주는 용도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위로와 공감을 품은 책들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책의 주제를 다양화 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존의 생각들이 깨질 때 비로소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근본적으로 불행 그 자체로부터 빠져 나오는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먼저 자신이 왜 책을 읽는지에 대해서 정말로 깊게 바라봐야 한다. 재미를 위해서 읽든 위로와 공감을 얻어서 읽든, 읽는 순간에 행복한 것은 같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바라봐서는 쉽게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러니 자신이 왜 책을 읽고 있는지 정말로 냉정히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종 결론이 행복하기에 책을 읽는다면 그냥 쭉 그대로 책을 읽으면 된다. 하지만 반대로 불행을 견디기 위해서 책을 읽고 있고 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면, 그때부터는 가장 먼저 읽는 책을 다양화 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견디기 힘들어서 책을 읽었지만, 나중엔 책을 읽는 것이 행복해서 읽고 있다고 믿게 된다. 책이 도피처가 되고 마는 것이다.

 

책은 삶의 아주 밝은 부분과 아주 어두운 부분까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같은 도서관에, 같은 서점에 있다고 해서, 책이라는 고유 명사로 통칭된다고 해서 그 모든 책이 같은 의미는 아니다.

 

그래서 최대한 그것들을 다양하게 접할 때 삶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해가 바로 각자의 삶을 좀 더 나은 것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을 읽는 것이 가진 진정한 힘이 된다.

 

누구나 힘든 삶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낫게 사는 방법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의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지 않으며 삶의 밝은 부분을 지향하는 것이다.

 

, 밝고 따뜻한 삶을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어두운 진실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침마다 향이 좋은 커피 한 잔을 즐기면서도, 그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수 많은 노동 착취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고, 싸고 품질 좋은 옷을 입으면서도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떤 이들의 힘든 노동시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좋아하는 책조차도 영세하게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수 많은 출판업자들의 피눈물이 담겨져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밝게 보면 한없이 밝고, 어둡게 보면 한없이 어둡다. 이 말은 관념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그래서 긍정적 생각, 부정적 생각 등에 대한 많은 조언들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한쪽 면만 보고 살아서는 결국 고장이 나고 만다. 좌우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어떻게 좌만, 우만 보고 살면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할 것인가?

 

책은 다행스럽게도 좌에서 우를 볼 수 있게 해주고, 우에서 좌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빛에서 어둠을 보여주고, 어둠 속에서 빛을 보여준다. 이것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대신 많은 창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상상도 하기 힘든 수 많은 종류의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창작품들 중에서 가장 오래 된 형태가 바로 책이다.

 

책은 지식을 쌓는 용도로, 재미가 있는 용도로, 공감과 위로를 받는 용도로 쓰일 수 있지만, 책의 가장 중요한 용도는 바로 경험의 확대이다. 사람은 경험이 다양할수록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억에 담긴 정보를 기반으로 해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겨우 30년 전의 어떤 사람이 현재에 왔다면 길거리에서 이어폰을 꽂고는 통화를 하는 사람을 보고는 혼잣말을 하는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선 통신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가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책은 그 두 가지를 채우는 용도로는 최고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것이 독서의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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