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논리적인 생각 - 1

아이루다 2018. 7. 14. 07:33

 

예전에 어떤 사람이 동물의 가죽을 벗겨서 만드는 제품들에 대한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일종의 동물 학대 방지에 관련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트윗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나중에 또 다른 트윗을 올렸는데, 소고기를 먹고는 너무 맛있었다는 내용이었다.

 

한편으로는 동물 보호를 말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맛난 소고기를 언급한 이 사람은 결국 수 많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조작 사건이 하도 많은 인터넷 세상이라서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누군가 나쁜 의도로 만들어 낸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아주 희귀한 사례는 아닌 듯 하다.

 

아무튼 조롱의 대상이 된 그 사람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논리적 충돌이었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맛난 것을 먹고는 맛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전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둘이 합쳐지게 되면 서로 상충되는 논리가 되어 버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논리적 표현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말을 하는 사람이 자꾸 앞뒤가 잘 안 맞는 말을 하거나, 자신의 입장에 따라서 유리한 쪽으로만 말을 하게 되면 듣는 사람들이 혼란스럽다말을 이해하기도 쉽지가 않고 설령 억지로 이해를 하더라도 그것을 신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사회복지 시스템이 너무 과도하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고는 정작 본인은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든가, 수시로 일본을 욕하면서도 일본 제품을 선호하는 태도 등을 듣거나 보게 되면 뭔가 모를 위화감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그리고 심한 경우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하는 사람의 머리 속이 궁금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비논리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어떤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본능적으로 멀리하려고 하게 된다. , 논리적인 생각과 행동이 잘 안 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서까지도 어려움을 경험할 수 밖에 없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뭔가를 배우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할 때는 더욱 논리적 태도가 중요해진다.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학문들은 논리 그 자체이며, 회사에서 여러 명이 협력을 해서 일을 할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얼마나 서로의 생각을 일치시킬 수 있는지 여부인데, 이때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의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최대한 논리적 이길 바라고 더해서 눈에 띄게 비논리적인 사람을 보면 답답해 하고 거리를 두려고 하게 된다그런 사람과 같이 있으면 의도치 않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스스로 그렇게 믿는 것처럼 정말로 다들 논리적인 것일까?

 

일단은 그렇다.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끝없이 배우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이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하지만 사람이 가진 논리적 표현들은 결국 그 한계가 명확히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들여다 보면 거기엔 논리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사실상 비논리적인 것들로 가득 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논리적이라고 믿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어느 정도 논리적인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사람의 말이 논리적이냐 여부에 대한 판단이 대부분 특정한 조건에 특정한 시간 안에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앞의 예에서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와 소고기가 맛있다는 논리가 글이 아닌 말로, 또한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인터넷이라는 과거에 쓴 글과 지금 쓴 글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그 글들을 본 사람들 역시도 동일인이었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도 이런 문제들을 가진 것은 결국 비슷하다. 단지 저 정도로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논리의 충돌이 없을 뿐많은 사람들이 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발언은 자주한다. 그럼에도 자신의 논리적 태도를 믿는 이유는, 자신이 현재 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이 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비난의 댓글을 달았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각자마다 자신이 생각을 밝힐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왜 그것을 비난하냐는 댓글에 대한 댓글을 달았다. 비난 자체는 좀 그래도 전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두 번째 댓글을 단 사람은 명확히 문제를 가지고 있다.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한 사람이 쓴 글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다른 사람들에 대한 뒷담화를 너무 많이 한다는 말을 하고 있을 때, 그 자신도 그 순간 역시나 누군가의 뒷담화를 하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뒷담화를 많이 한다는 뒷담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논리적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왜 논리적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논리라는 것 자체가 가진 문제일까?

 

사실 논리 그 자체도 문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더욱 더 큰 본질적 문제는 바로 논리적이라는 표현 방식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거기엔 특별한 두 가지 커다란 문제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바로 사람들이 펼치는 논리의 근원에는 바로 감정의 정당성에 대한 존재가 숨겨져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어떤 논리이든 그 논리엔 반드시 논리를 펼치는 주체자의 이득에 대한 욕구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 감정의 정당성과 자신의 이득이 기반이 되어 펼쳐지는 논리는 아무리 그럴 듯 해도 결국엔 상황논리이거나 혹은 아예 비논리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 먼저 첫 번째 문제인 감정 정당성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수시로 감정을 느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느 한 순간도 빠짐없이 감정 속에 있다. 그것이 약하거나 강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떤 감정도 없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수 많은 감정 중에서 주로 나쁜 감정들, 질투, 분노, 짜증, 실망과 같은 감정이 들면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원망스럽거나 억울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그 감정들이 최초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촉발된 것일 수도 있지만대부분 그런 감정을 야기시킨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도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을 때도 많다. 길을 걷다가 어딘가 걸려서 넘어지면 걸린 장소가갑자기 비가 내려서 쫄딱 젖게 되면 하늘이 원망스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일단 나쁜 감정이 들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풀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당연하다. 나쁜 감정이란 말 자체가 바로 불행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능하면 최대한 빠르게 그 불행함에서 빠져 나오고 싶어하게 된다.

 

이때 사람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 바로 자신의 감정을 나쁘게 만든 대상에 대한 비난이다. , 자신의 느낀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은 옳고 대상은 틀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다그래서 논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만약 어떤 식당에서 종업원의 불친절한 태도로 인해서 크게 화가 났다면 자신이 화를 낼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스스로가 진상 손님이거나 아니면 화를 잘 참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으로 평가를 받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래서 결국 화를 내서 기분이 상한 것은 둘째치고 그 화를 낸 과정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물론 화를 낸 순간에는 그것까지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화가 조금 가라앉고 나면 바로 이내 그것이 떠오른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표현한 감정이 결코 무리한 것이 아니었음을, 정당한 것이었음을 증명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를 내고 나면 한참 동안을 자신이 화를 낸 이유에 대해서 주변에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누구나 그렇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 역시도 밑도 끝도 없이 터져 나오는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다.

 

만약 그것을 제대로 못하면 인간 사회에서 정상적인 대화에 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식으로든 상대가 한 말에 동의를 해줘야 한다. 물론 상대 역시도 동의를 할만한 수준으로 말한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괜히 반대편의 입장에 동조했다가는 바로 그쪽과 한패인 사람 취급을 받고 관계가 끊겨버리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불만에 담긴 비논리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또한 말하는 당사자도 자신이 그저 정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하고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가 깊게 숨겨진 채 오고 가는 대화에서 논리가 제대로 들어 설 자리는 없다. 처음부터 그저 감정을 풀어내는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종업원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아서 결국 그 종업원에게 화를 냈다거나, 감기에 걸려서 몸이 아파서 별 것 아닌 일로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종업원이 자신에게 불친절했다는 점만 강조한다. 그리고 나중엔 그 종업원의 얼굴이 이상하게 생겼다든가 아니면 목소리가 좋지 않다든가 하는 등의 인신 공격까지도 하게 되지만, 그런 것들은 사실 자신이 화를 낸 것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더군다나 정말로 그런 이유로 인해서 화를 냈다면 스스로를 매우 비인격적인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을 스스로 깨닳을 방법도 없다.

 

처음부터 그저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원망이나 억울함을 풀어야 하는 목적이었으며, 그 목적에는 뒤에는 자신이 화를 낸 이유를 인정받아서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두려움이 숨겨져 있기에 그렇다.

 

원래 처음부터 감정은 논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존재이다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득한다고 해도 무서운 것은 계속 무섭다.

 

논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감정을 논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니 얼마나 이상하겠는가?

 


술을 먹기 싫어서 먹지 않는데, 왜 먹지 않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술로 인한 건강을 해치는 문제에 대해서, 술이 사회적으로 끼치는 나쁜 영향을 설명하려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서 먹고 있겠는가? 그냥 먹으면 기분이 좋으니 먹는 것이다.

 

심지어 식당에 가서 확실히 기분이 나쁠 만한 논리적 이유가 있었다고 치자그래서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하루 기분이 잡쳤다면 정말로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서 불친절한 종업원의 태도를 그냥 보고 있어야 하냐고 되물을 것이다. 매우 논리적인 질문이다. 그래서 화를 내고 싸워야 한다는 것도 논리적인 대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그림에서 보았을 때 그런 화를 내고 싸우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은 것일까?

 

삶은 논리적으로 사는 것이 목적일까? 아니다 삶은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은 감정이고, 감정은 논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다른 사람의 똥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사실 아주 정상적인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두 번째 문제를 살펴보자. 누구나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논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문제 말이다.

 

사람들은 끝없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동의를 얻어낼 말들을 자주 한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유를 말한다. 목적은 단순하다. 상대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같이 싫어해주길 바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해주기 바래서 그렀다. 그래야 자신에게 좀 더 이득이 되니까 그런 것이다.

 

어떤 모임에서 여름에 함께 계곡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면, 가고 싶은 사람들은 같이 가면 얼마나 즐거운지, 어디 계곡의 물에 들어가면 얼마나 시원한지, 함께 맛난 것을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를 주구장창 말한다.

 

하지만 반대로 가기 싫은 사람들은, 여름 계곡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지, 뜨거운 햇살 아래서 피부에 얼마나 손상을 입을지, 가서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번잡스러운지를 틈만 나면 말한다.

 

사실 이 둘 입자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여름에 계곡에 갔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이다. , 충분히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전체적인 내용 중에서 가고 싶은 사람들을 좋은 면만, 가기 싫은 사람은 나쁜 면만 골라서 언급한다. 자신의 이득 방향과 일치하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각자가 서로의 논리가 더 맞는다고 싸운다. 이것은 서로 상반된 입장이라서 싸우는 것이 맞긴 하지만, 이 싸움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되는 것일까?

 

둘 모두 분명히 존재하는 사실을 기반으로 해서 싸우는데 충돌 그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 것, 자신이 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의 충돌일 뿐이다.

 

사람들이 주장엔 어떤 식으로든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욕구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하고 싶으면 거기에서 장점만을 이야기 하고, 하기 싫으면 그 중에서 단점만을 부각시키려고 애쓴다.

 

그래서 이것은 논리의 충돌이 아니라 사실들의 충돌이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것이 될 리가 없다. 사실과 사실이 충돌하는데 어떻게 어느 한 편이 설득이 되겠는가? 그럼에도 효과는 있다. 그것은 바로 어느 한편에도 서지 않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설득이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때 중간에 있던 사람들은 논리에 의해서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이 마음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누가 그런 주장을 하느냐에 관련되어 있다. 주장하고 있는 사람의 매력이나 인지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이런 이유로 인해서 많은 모임의 의사결정은 대부분 논리적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영향력이 큰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이란 뭔가 함께 할 때 최대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회사의 일이 결정되는 과정도 똑같다. 아무리 논리적인 설명이 있어도 회사의 사장이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끝이다. 그래서 회사 내의 대부분의 회의는 어떻게 사장의 속마음을 제대로 긁어 줄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잘할수록 승진이 빠르다. 이것은 완벽히 비논리적인 상황이지만 논리적으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논리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알아봤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논리 그 자체가 가진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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