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논리적인 생각 - 2

아이루다 2018. 7. 16. 08:23

 

지난 글에서 논리적인 생각이라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변형되거나 혹은 오용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략 알아봤다. 그 내용은 제법 길지만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다.

 

논리는 그 자체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지만 그 논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엉뚱하게 논리를 이용하고 있기에 문제가 생겨난다. 대표적인 오용 사례인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의 감정의 정당화 하기 위해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편한 대로 논리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름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제대로 들어보면 거의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설명을 통해 사람들이 논리적이라고 믿는 많은 잘못된 적용을 이해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조금만 신경을 써서 생각하고 말하면 이런 논리의 함정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함정을 벗어나더라도 더 큰 문제가 나타나고 만다. 그것은 바로 논리 그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인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사실상 그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이해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논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점 때문이다.

 

,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낸 의견이나 주장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확신 있어 보이는 것은, 냉정히 말하면 모두 자기 착각이다. 아무리 이치에 맞아 보이는 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논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도구이며,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것에 있어서 나름대로 근사치 정도는 가능 하지만 절대로 제대로는 해낼 수 없다. 이것을 알고 있어야 자기 착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가 똑같이 논리라는 도구를 써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나만 옳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비논리적이다. 만약 내가 옳다면 상대도 옳은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틀리기 때문에 상대도 틀린 것이다. 우리는 그저 다양한 의견들 중에서 최선을 선택할 뿐 절대적 기준에서 옳은 것을 선택할 수는 없다. 그 어떤 경우에도 말이다.

 

, 그럼 이제부터 논리 그 자체가 도대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 일단 먼저 정의를 통해서 시작해보도록 하자.

 

논리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하게 사물의 이치나 법칙성이란 사전적 설명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어떤 남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치자.

 

"여자 나이가 50이 넘으면 애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결혼 상대자로는 적절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그녀랑 결혼을 할 수가 없지."

 

이 말을 처음 들으면 50대 이상의 여자분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그래서 또 결혼의 목적이 오직 애를 낳는 것이냐며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은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할 것이다부정할 수 없는 생물학적 이치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70대 노인이 했다면 어떨까? 그때도 이 말이 여전히 논리적인 표현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그 말을 한 노인이 노망이 들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실제로 자신도 이미 아이를 가질 능력을 이미 잃었을 것이 분명한데, 상대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니 결혼을 할 수 없다고 하다니,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 노인이 한 말 중에서 뒷부분을 제거해보자. '그래서 나는 그녀랑 결혼을 할 수가 없지.’, 이 부분을 제거하면 이 말은 어떻게 변할까? 비록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말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노망이 들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게 바뀐다.

 

이 사례에 대해서 잘 생각해보면 논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어느 상황에는 잘 맞는 논리가 또 다른 상황으로 바뀌게 되면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 모든 논리는 그것이 통용되는 공간적 혹은 시간적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축구선수가 '한국을 위해 일본과 최선을 다해서 싸우겠다' 라는 말을 했을 때 그다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축구선수가 일본선수라면 아주 이상한 말이 되고 만다.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존재이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독립적 주체로써 인정받아야 한다는 말 역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하지만 유교가 지배하던 그리고 여자가 일종의 소유물로 인식되던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가 되고 만다.

 

이런 식으로 같은 시기라도 공간에 따라서 달라지고 같은 공간이라고 해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 논리 자체가 시공간적 한계를 가진 존재이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과 관련된 것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너무도 확실해서 법칙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과학적 이론들조차도 그럴 수 있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이후에 세상은 그가 발견한 운동 법칙을 우주의 진리처럼 여겼다. 하지만 이것에 의심을 품은 아인슈타인으로 인해서 뉴턴의 법칙은 근사치까지는 계산 가능한 수준의 법칙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을 품는 것도 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공식들은 영구히 옳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그것이 아닐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실제로 거시 세계를 벗어나 아주 작은 양자 단계로 내려가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전혀 적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논리는 이런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떤 논리가 개인의 입장에 가까울수록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틀어지기가 쉽고반대로 우주 그 자체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주 수준이 되면 이치나 법칙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논리의 한계는 늘 존재한다. 우주적인 법칙이라고 해도 만약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면 그 역시 우리 우주에서만 옳은 논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해가 밝기 때문에 낮엔 집안이 환하다라는 논리적 표현을 생각해보자? 사실 이것은 논리 말하기도 그럴 만큼 확실한 진실이다.

 

이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불투명한 유리로 천정을 만들어서 밖을 볼 수는 없지만 밖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인해서 실내가 환한 건물 안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실내가 밝다면 당연히 태양이 떴으니 이렇게 밝은 것이다 라고 생각 할 것이다. 이 표현은 논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그 밝음이 실제로는 밖에 켜진 아주 밝은 조명에 의한 것이라면 어떨까?

 

그것을 잘 모르는 실내에 있는 사람은 분명히 실내가 밝기 때문에 당연히 태양에 의해서 밝은 것이란 논리를 펼 것이다그 사람은 처음부터 밝은 것이 태양이 아닌 조명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런 착각이 일어난 것이다.

 

, 정보의 부족이 바로 논리적 오류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정보, 이것은 바로 논리의 핵심이다. 여자의 나이가 50대가 되면 임신이 힘들다는 정보, 그 말을 한 사람의 나이가 몇이며 성별이 뭐냐는 정보, 어떤 말을 한 사람의 국적, 시대 등등의 것들이 모두 정보이며, 이 정보에 세밀함이나 다양성에 따라서 논리는 전혀 다른 형태로 바뀌고 만다.

 

그래서 그럴 듯 하다가도 전혀 아닌 것이 된다. 꽤나 논리적이었다가 전혀 비논리적인 말이 되고 만다.

 

그런데 그 어느 누구도 아주 작고 당연한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 완벽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미 옳다고 알려진 정보들조차도 그것이 정말로 제대로 옳은 것인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박사들이 열심히 연구를 해서 증명을 해놨다고 해도 말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모든 정보를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논리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논리의 이런 특징은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논리로 서로 전혀 다른 주장을 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가 된다. , 감정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도, 자신의 이득과 관련된 문제도 아닌 그저 정말로 논리와 상식을 근거로 판단하는 문제조차도 결국 전혀 상반되는 두 가지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외적이 쳐들어왔을 때 맞서 싸워야 할지, 어느 정도 굴욕을 감수하고도 화친을 맺어야 할지 서로 의견이 분분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 남한산성 속 두 인물의 극한 대립이 그랬다. 청나라 왕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몰랐고, 상대편 국가의 전투력이 과연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도 몰랐고심지어 자국인 조선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래는 처음부터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정말로 전쟁을 해서 이길 수 있을지 여부는 그 누구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전쟁불사론을 주장하는 김상헌과 화친론을 주장하는 최명길 사이에서 명분을 가장한 강한 논리적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결국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최명길의 주장을 따르지 않는 결정을 했기에 이후 한 나라의 왕인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례를 올리는 치욕을 당하고 만다.

 

무엇보다도 먼저 어떤 명확한 논리라고 해도 그것이 언제나 절대적으로 옳을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자신과 다른 논리를 펴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

 

자신만 논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처음부터 비논리적이지만, 이 진실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여기까지 논리가 가진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자신이 가진 논리에 관한 잘못된 이해의 문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생각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현실 속에서는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세상은 이렇게나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그런 갈등 중에서 아주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바로 남녀간의 갈등이다.

 

다음 글에서는 왜 남녀간의 그렇게 서로 많은 갈등이 일어나는지, 왜 사람들은 수 많은 갈등 상황에서 자신들이 믿는 논리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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