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지런함의 가치

아이루다 2018. 6. 27. 08:18

 

인간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도덕적 규칙을 지키면서 유지된다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가 도적적인 삶을 선호한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사회 그저 개인들이 최대한 도덕적이면서도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사회는 각 개인들이 도덕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다양한 가치들을 정해서 틈만 나면 권하게 된다그런 것들은 도덕적 가치, 인간적 가치, 보편적 가치 등이란 말로 표현이 가능한데사실 거의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나마 그것을 분류해 보면, 정직, 신뢰, 정의로움과 같은 가치는 도덕적 가치에 속하고, 용기, 배려, 관용 등과 같은 것들은 인간적 가치에 분류되는 편이다. 그리고 사랑, 가족, 우정 등은 보편적 가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이것이 맞는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데 이런 가치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뽑으라면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까? 좀 웃기는 질문 같지만, 그것에 대한 답을 찾아보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답을 찾기 위해서 일단 성경에 써 있는 참으로 유명한 경구 하나를 꺼내보자.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랑이 모든 것들 중에서 최고의 가치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인 불교는 어떨까? 불교는 흔히 자비의 종교로 알려져 있다. , 불교는 자비가 바로 최상위의 가치라고 볼 수 있다.

 

공자님도 유명하니 그 분의 사상도 한번 봐 보자. 공자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바로 인이다. 이 인이란 단어는 명확히 해석하기는 힘들지만, 인간애, 자애로움 등의 개념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사랑, 자비, 자애로움, 사실 이 셋은 단어만 달랐지 그 뜻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모두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이렇게 세계의 사대 성인 중에서 세 명이 거의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다. 문제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엔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기엔 너무 이기적인 문제가 있다그리고 거꾸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면 서로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세 분의 성인이 결국 비슷한 가치를 강조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래 사람들이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에 신경을 쓸 때는 오직 그 신발이 불편할 때이다. 이것은 노자님이 한 얘기인데세 분이 사랑에 대해서 그토록 강조했다면, 인간이 그만큼 사랑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란 것으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슬픈 일이지만사랑은 분명히 최고의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는 그다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간혹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온정과 희생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깊은 감동을 주지만 결국 그 한계는 명확하다얼마나 흔하지 않으면 그렇게 영화화까지 될 수 있느냐는 숨겨진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정의로움일까? 희생정신일까? 배려심 일까? 정직함일까? 신뢰일까?

 

이것의 답을 찾기 위해서 먼저 한 가지 사실을 집고 넘어가보자.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과연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답은 단순하다. 바로 행복이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찾기 위해서는 개인이 행복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될 것 같다.

 

혹시 정직함이 그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어떤 사람을 보고 속으로 '못 생겼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정직하게 말했다간 싸움만 날 뿐이다. 사실 인간 사회가 이만큼이나 원활하게 돌아가는 이유는 정직함이 아니라 수 많은 거짓말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의로움일까? 이 역시 애매하다. 사실상 정의로움이란 것이 명확하지도 않고 과거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정의라는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폭력이 행해졌는지 끔찍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가치가 그 자리에 뽑혀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최고의 가치는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부지런함'이 그 자리에 뽑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부지런함은 다른 가치들에 비해서 중요도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부지런함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데는 많은 분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지런함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지런함은 생각보다 아주 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갈등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일단 흔히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부지런함의 가치는 단순한 형태로 드러난다.

 

빨래나 청소를 하지 않아서 더러운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살이 많이 찐 사람들에 대한 비난, 씻지 않는 사람에 대한 짜증 등이 바로 부지런함의 가치를 증명한다.

 

그런데 부지런함의 숨겨진 가치는 따로 있다. 왜냐하면 부지런함의 반대인 게으름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갈등은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많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은 귀찮음, 게으름, 서로 미루기, 최대한 안 하려고 애쓰기 등의 문제로 인해서 정말로 자주 싸우게 된다.

 

게으름은 흔한 부부 싸움의 이유가 된다.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집안일을 누가 하는지를 두고 싸운다. 상대방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신만 일한다고 하면서 서운해 하고, 피해의식을 갖는다.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가 보면 결국 언젠가 폭발을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냥 개인적은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양말 거꾸로 벗어놓기, 뭔가 먹은 후 치우지 않기, 자꾸 사소한 심부름 시키기, 어디 좀 같이 가 달라고 하면 짜증내기, 집에 들어와서 씻지 않기, 이를 닦지 않아서 냄새 나는 입 등등, 거기엔 수 많은 종류의 것들이 있다.

 

이런 것들로 인해 쌓인 불만은 그 후 아주 작은 말 실수나, 잘못된 행동 하나로 인해서 폭탄처럼 터져버리고 만다. 정말로 별 것 아닌 일로도 아주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싸운 원인을 그 모든 것을 촉발시킨 것으로 인식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 동안 상대방의 게으름으로 인해서 쌓이고 또 쌓인 것이 폭발한 것뿐이다.

 

집안일만 그럴까? 아니다 회사 일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최대한 일을 적게 하려고 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딱히 할 일이 없음에도 일하기가 귀찮아서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그러니 새로운 일이 생길라치면 그렇게 난리를 친다.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따진다. 수 많은 논리와 비판이 이어지지만 그것을 주장하는 마음 속에는 그저 그 일을 하는 귀찮음이 전부일 뿐인 경우가 흔하다.

 

이런 식으로 그저 부지런하기만 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지나갈 일이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사이의 커다란 갈등으로 번지는 일은 정말로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그리고 모든 갈등이 그렇듯이 갈등 그 자체는 행복한 삶을 중요한 방해 요소 중 하나이다.

 

더해서 다른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가치들 역시도 부지런함에 의해서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만약 정의를 수호하는 슈퍼맨이 게을러서 악당이 나타나도 처리하지 않으면 과연 정의가 구현될 수 있을까? 전쟁터에서 아무리 용감해도 게을러서 앞에 나서지 않으면 그 용기는 존재하지 않은 것과 같다. 배려심 역시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하는 배려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움직일 때 모든 가치가 실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씩만 더 부지런해지면 다들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가정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모두가 행복하길 원하고, 부지런하면 분명히 더 행복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더 부지런하게 살지 못할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함의 두 가지 측면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하나는 과연 부지런함이란 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개념인지를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지런함이 가진 문제점이다.

 

우선 부지런함이 정말로 존재하는 개념인지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실 무슨 소리인가 싶겠다. 지금까지 실컷 부지런함의 가치에 대해서 말해놓고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보자고 하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알아봐야 한다. 왜냐하면 냉정히 말하면 부지런함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지런한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또한 게으른 사람도 존재하다. 그러니까 부지런함이 존재하는 것인 일단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게으른 사람의 삶을 좀 더 자세히 바라보면 그 역시도 나름대로 부지런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은 단지 그 부지런함의 대상이 아주 좁을 뿐이다.

 

마약을 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현실도피를 하는 사람은 게으름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최소한의 먹을 것만 먹으면서 나머지 모든 시간을 그저 마약을 하고는 환각 속에 빠져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마약쟁이가 부지런해지는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마약을 구할 때와 마약을 맞기 위해서 준비를 할 때이다 그리고 이때 그들의 부지런함과 집중력은 오히려 일반 사람들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는다. 그들은 마약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살인을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도박 중독자는 도박장 가는 길에서 가장 부지런해진다.

 

이것은 좀 극단적 예이기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일어나는 일이다, 집안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기만 한 사람도 게임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진다. 자기 방 청소를 전혀 하지 않는 젊은 아가씨는 화장을 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다. 집에 와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보기 위해서 TV를 켜고 채널을 돌릴 때는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하다.

 

그렇다면 과연 부지런함은 무엇일까그것은 바로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라는 뜻이다.

 

, 사람들은 뭔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때 부지런해진다. 단 한 명도 예외가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집안 일을 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면서도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열심히 부지런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부지런한 것일까?

 

거기엔 바로 두려움이 숨겨져 있다. ,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지런한 것이다. 집에 더러운 것이 두려운 주부가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부지런하게 일을 한다.

 

결국 부지런함은 크게 하고 싶은 일을 있거나 뭔가 두려워서 해야 할 일을 있을 때 생겨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제 두 번째 이해해야 할 점인 부지런함이 가진 문제점을 바라보자. 그리고 이 문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해서 생겨난 부지런함으로 인해서 발생한다.

 

청소를 하는 것이 좋아서 부지런한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이 청소를 하든 말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더러운 것이 두려워서 청소를 하는 사람은 같이 사는 사람이 청소를 하지 않으면 화가 난다. 두려움이 화로 전환되는 것이다.

 

두려우니 싫고, 싫으니 그 싫음의 원인에 대해서 짜증이 나고 화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부지런한 사람은 그 자신만 부지런하고 말지만두려움으로 인해서 부지런한 사람은 주변에 끝없이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 그리고 많은 피해의식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끝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을 하고 짜증을 부리기 때문에 오히려 게으른 것보다 더 많은 갈등을 불러오게 되고 결국 삶이 불행해지게 되고 만다.

 

원래 부지런하면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부지런해서 불행해지고 만 것이다. 그래서 만약 부지런함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오히려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면 오히려 그냥 포기하고 게으르게 사는 편이 낫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고 있는 끝없는 두려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부지런한 사람과 부지런한 사람이 같이 살면 싸울 일이 별로 없다. 서로 꿍짝이 잘 맞아서 그 어느 관계보다 좋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같이 살면 별 다른 문제가 없다. 반대로 두려움으로 인해서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함께 살면 매일 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부지런한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인한 것이기에 이 세상에 그토록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는 것이다.

 

게으른 사람과 게으른 사람이 같이 살면 역시나 싸울 일이 없다. 서로 게으르니 집안이 좀 더러울 뿐, 본인들이 사는 것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다.

 

이런 식으로 생각보다 부지런함이 게으름에 비해서 반드시 행복의 열쇠인 것은 아니다. 부지런하든 게으르든 그 본인이 행복하면 그것이 최고다. 하지만 만약 지금 현재가 행복하지 않거나 심한 경우 불행하다면 그때는 부지런함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불행은 바로 게으름에서 나오기 쉽기 때문이다게으르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렇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보통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인데, 흔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지루해지거나 우울해지기가 더 쉽다.

 

그래서 그런 삶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부지런해져야 한다. 원래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부지런해질 수 있지만, 이제는 먼저 부지런해져서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 내야 할 차례인 것이다.

 

이 세상에는 삶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과 조언들 그리고 관련된 수 많은 사상과 해석이 존재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삶은 매우 단순한 것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면 왜 사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무엇이 두려울 것도 별로 없으며,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힘들게 찾아 다닐 필요도 없다.

 

매일같이 바쁘고, 매일같이 움직이면서 살면 사실상 아무런 회의감 없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느끼는 삶에 대한 회의감이나 우울함 등은 그저 부지런하지 않아서 생겨난 것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일단 먼저 무엇보다도 부지런해져야 할 것이다. 그 부지런함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고, 그 행동들이 모여서 모든 것을 바꿔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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