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자기 주도적 삶

아이루다 2018. 6. 9. 07:30

 

삶을 어느 정도 살다가 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보고 살까? 나는 왜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할까? 나는 왜 하고 싶을 일조차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왜 나만을 위해서 살지 못할까? 나는 왜 이렇게 남에게 종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가지 종류의 질문이지만이 질문들은 삶에 대한 주체성에 회의이며, 주도적이지 못한 삶에 대한 불만이며, 끝없이 타인에 의해서 흔들리게 될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들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현재 행복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자 답답함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 삶은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나의 것이며, 나는 내가 행복한 것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며내 삶의 주체성은 오직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런 생각으로 서점에라도 가면 그것에 관련된 책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주체적인 삶에 관한 책들, 자존감을 올려주는 훈련을 위한 책들, 남에게 미움을 받고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책들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존재들임을 알게 해주는 책들까지 아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거에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후회와 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 정형화된 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앞으로는 나를 위해서 옷을 입고, 나를 위해서 화장을 하고, 내가 행복한 소비를 하고나를 위해 내 시간을 온전히 쓰는 삶을 꿈꾼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기주는 사람은 바로 나니까 말이다.

 

그야말로 자기 주도적이며 능동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TV에 나온 누군가 그렇게 살고 있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무척 부럽기도 하고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부푼 희망을 갖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만 그렇게 살아보려고 해도 생각과 달리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혹은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럴까왜 소중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삶이 과거의 남을 더 신경 쓰면서 사는 삶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것을 많은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알고 나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자기 주도적인 삶이란 말에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분리라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렇다. 여러 명이 함께 할 때 내가 주도적 이려면 남은 당연히 종속적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결국 그들과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갈등으로 인해서 주도적 삶을 가로막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나의 삶이 휘둘렸으니, 당연히 그것을 극복하려면 가장 먼저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는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니 결국 혼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때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할 수 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혼자 살아가게 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겨난다.

 

그것은 바로 남과 함께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혼자서 하려면 결코 쉽지 않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 사람들은 혼자 하는 것보다 남들과 함께 할 때 무엇이든 더 열심히 그리고 더 꾸준히 할 수 있다.

 

왜 혼자서 하면 그리 어려운 일들이 남들과 함께 하면 상대적으로 쉬워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주로 이성을 통해 결정되지만홀로 뭔가를 할 때는 오직 감정으로만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같이 할 때는 신뢰, 책임감 등으로 인해서 대부분의 약속이 지켜지지만, 홀로 하는 경우엔 아주 쉽게 약속이 깨질 수 있다. 남과의 약속과 자신과의 약속은 처음부터 그 차이가 크다.

 

자신과의 약속이 깨지는 경우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시작된다. 공부를 해야 하지만, 오늘은 공부를 하기엔 너무 날씨가 좋아서 안 한다. 운동을 해야 하지만, 오늘은 비가 오니 운동하러 나가기가 귀찮아서 안 한다살을 빼기로 결심했지만오늘은 너무 기분이 우울해서 꼭 뭔가 맛난 것을 먹어야 한다.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이런 이유로 깼다가는 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남과의 약속은 내 감정이 변하더라도 억지로라도 지켜지게 되는데, 자신과의 약속은 감정 변화에 따라서 금세 깨질 수 있다. 그러니 남과 분리된 채 홀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려면 그 어떤 때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잘 제어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금세 주도권을 잃고 감정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

 

혼자 있는 사람들은 한끼를 챙겨 먹는 것조차 큰 일이다. 혼자서는 아무 것이나 먹어도 될 뿐만 아니라, 차리는 것도, 치우는 것도 모두 자신이 다 해야 하기 때문에 그 귀찮음이 무척 크게 느껴져서 그렇다. 그러니 조금만 의욕이 없어도 밥을 제대로 차려 먹기 보다는 아주 간단히 먹고 만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있어서 밥을 챙겨 먹는 것이 자신의 기분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아이들을 잘 먹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그렇다. , 아이들 역시 일종의 남이 된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서는 밥을 차리는 것은 너무도 귀찮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자신을 위해서 요리를 준비할 때는 오직 내 현재 감정 상태로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반면 - 딱히 몸을 생각해서 건강한 식사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 남을 위해서 요리를 할 때는 책임감이나 의무감과 같은 이성적 판단을 통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바로 자기 주도적 삶을 살기 가장 힘든 이유이다. 남하고 관련 없이 오직 나를 위해서만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매일 자신의 변덕스러운 감정과 싸워야 한다. 그러니 오늘 제대로 했다고 해서 내일도 그럴 가능성이 그리 높지는 않다. 내일 나의 감정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자신만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고 싶어한다. 사실 그것을 못해서 그렇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기 주도적인 삶을 원하게 되는 것일까?

 

이미 언급했듯이, 최초에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동경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와 내 삶이 남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을 막고 싶다는 열망으로부터 생겨난다.

 

내가 행복하고 싶으니까 그렇다지금까지와는 달리 남이 아닌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서 그렇다.

 

원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남이 행복한 일을 해야 할 때이다. 물론 그것이 운 좋게도 나 역시 행복하거나 그냥 할만한 정도라면 좋겠지만, 만약 싫다면 큰 문제가 된다하지만 인간관계는 균형이 맞아야 한다.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상대가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할 때 참아줘야 한다.

 

누군가와 같이 술을 마시고 싶다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등산을 함께 가줘야 한다. 내가 등산을 싫어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그 사람이 나중에 같이 술을 마셔 줄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최대한 행복하고 싶어한다그러니 기회만 되면 최대한 자기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 서로가 모두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늘 그것들로 인해서 끝없이 갈등이 생겨난다. , 각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더 자주 하게 됨으로써 상처를 받게 된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그때 주도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된다면 남과 어울리는 삶이 아닌 홀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려고 한다.

 

하지만 혼자 뭔가를 하려면 많은 문제가 생겨난다. 앞에서 말한 의지력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실제로 같은 일을 할 때도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행복감 자체도 많이 떨어진다.

 

등산이나 영화를 보는 것은 혼자도 할 수 있지만, 둘이 이상 같이 하는 것이 더 즐거울 때가 많다. 탁구를 치거나 차 한잔 하면서 대화를 하는 것은 아예 혼자서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혼자서 하는 것은 남들과 함께 어울려서 사는 것보다 의지력도 더 많이 필요하고 더군다나 같은 행동을 해도 더 큰 행복을 얻기가 힘들다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주도적 삶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사람들은 기회만 되면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그것을 원해서 한 선택이 아니다. 결국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피난처인 것이다. , 그것을 자기 주도적 삶이라고 좋게 포장할 수 있지만, 사실상 관계 맺기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몫으로 할당될 수 있는 주도권조차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서 그런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진짜로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성향을 타고난 것이다. , 원래 혼자 행복한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관계 맺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거부감도 없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엮여서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행복하기에 그렇게 사는 것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하는 말들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 즉 하기 싫은 것이 그리 많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별다른 동경을 갖지 않는다. 그저 남들과 적당히 어울리면서 사는 것이 훨씬 편하고 행복하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상처도 받고 그리 행복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다.

 

더군다나 어떤 식으로라도 자기 주도적 삶을 조금이라도 살게 되면 최초의 생각 자체가 바뀐다. , 자신이 관계를 잘 맺지 못해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왕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왕따 시킨다고 생각한다.

 

자기 주도적 삶을 사는 사람들은 나를 위해 옷을 사고, 나를 위해서 화장을 한다. 내 행복과 별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왜 신경 써서 그들의 시선에 맞춰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조금 특별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의 그런 삶이 일종의 타인에 대한 차별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 자신은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 말을 주고 받을 사람만 있다면 금세 입 밖으로 꺼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사람들을 멀리하면서도 사람들을 그리워한다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공감을 경험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런 삶이 그리 쉽지가 않기에 그 길을 제대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다.

 

자신의 변덕스러운 감정과 매일 싸워야 하는데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남의 시선을 생각하면 매일 머리를 감고, 매일 머리를 만지고, 매일 화장을 하고, 매일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삶은 정말로 꼭 자기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왜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에게 맞춰 사는 것이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사실 남에게 맞추는 삶을 살 때 요리 하기도 쉽고, 외모를 꾸미기도 쉬우며, 뭔가 할 때 혼자 안 해서 좋고, 혼자서는 못하는 많을 것들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을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훨씬 더 큰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왜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힘들게 자신이 감정들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행복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것도 행복일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주도적 삶만이 뭔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인 냥 판단되는 것일까? 왜 많은 책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다인간관계를 싫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일단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정말로 마음이 편해진다. , 안전하다고 느껴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질 수 있다. 또한 혼자서는 못할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더 많아 진다.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해주고, 자신이 못하는 일을 부탁할 수 있다. , 역할 분담을 통해서 생산성이 좋아진다. 사실 부부라는 관계가 가장 그것을 잘 해낸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살림을 하고 육아를 책임진다. 매우 좋은 협업이다. 물론 반대로 해도 된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지 간에 서로 전문화된 영역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다.

 

새로운 것을 도전할 때도 함께 하면 훨씬 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다. 낯선 장소에 갔을 때도 덜 두렵다. 같이 재미있게 놀 수 있기도 하고각자가 느낀 감정을 공유할 수도 있다. 서로 공감을 해주고 위로를 주고 받을 수도 있으며,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아플 때 병간호를 받을 수도 있다. 경조사가 있을 때 서로를 위로해주거나 축하해 줄 수도 있다.

 

어떤 일을 성취 했을 때 함께 기뻐해줄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행복한 일이 된다.

 

혼자서는 아예 못할 일을 둘이서 하면 할만한 일이 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은 단순한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아예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이다.

 

도대체 사람들이 인간관계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관계는 삶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더해서 행복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인간관계가 처음 시작되는 학창시절에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 목을 맬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 시절엔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인 냥 군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바뀐다. 친구의 중요도를 줄이고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가 아이들이 철이 들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친구의 중요도를 줄이는 이유는 바로 관계로부터 끝없이 배신과 상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비단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미 어른인 사람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반대로 배신을 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평생 끝없이 관계를 추구한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상관없이 누군가 관계로부터 멀어지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관계 자체가 싫어져서가 아니라 관계를 통해 원하는 만큼 행복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동경은 일종의 도피처이다. 눈 앞에 있는 관계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를 피하고자 관계 자체를 거부하는 삶을 원하는 것이다.

 

사실 관계를 잘 맺으면서도 얼마든지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 남이 원하는 것들을 함께 해주며,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과 함께 하면 된다. 이때 남이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것은 결코 종속적인 것도 아니고, 남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필수 과정인 것이다. 줘야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남들을 만날 때 예쁘고 멋있게 차려 입어야 하는 이유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몸값을 높이는 과정으로, 그것이 잘 되었을 때 나중에 조금이라도 더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원래 매력이라는 것이 그런 의미이다. 서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더 매력적인 사람일수록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그렇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예쁜 것이나 멋진 것이 옳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주도권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각종 행사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행위들 역시 처음부터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예의를 잘 갖출수록 다른 사람들에 대한 나의 평가는 좋아지게 되고, 그것은 결국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니 남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전혀 외모를 꾸미지 않거나 옷을 아무렇게나 입는 것은 결국 처음부터 착각인 셈이다. 우리는 누구도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몸값을 올리는 것만 신경 썼을 뿐이다. 그러니 만약 그런 것들을 거부하고 싶다면, 그것은 그저 내 몸값이 낮아지더라도 내가 꾸미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이 나에게 이득이고 손해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그런 일들을 할 때마다 내가 왜 그렇게 남에게 종속적인지, 왜 남의 눈치를 보는지, 왜 내가 편한 대로 하지 못하는지에 대해서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런 불만에는 마치 자신의 행위가 남을 위한다는 착각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이외의 행복엔 관심이 없다. 이 세상에 단 하나의 진리이다. 설령 부모조차도 아이들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 그저 아이들이 행복할 때 그 자신도 행복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행복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는 삶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남과 잘 어울려 지내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행복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 오히려 남에게 최대한 잘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현명한 태도이다.

 

가수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만 부르면 본인은 행복하겠지만, 그 가수의 콘서트를 찾은 관객들에게는 그다지 좋지 못하다. 관객들은 그 가수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노래를 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가수는 적절하게 곡을 선곡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만 해서도 안되며, 관객들이 듣고 싶은 것만 해서도 안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중심에 그 답이 있으니까 말이다.

 

최초에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동경은 남과 어울리는 것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생겨난 감정이다. 그래서 두 가지 해결책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부족한 자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 하나라도 더 배우고, 하나라도 더 알려고 하고, 하나라도 더 남들에게 잘해주면 된다.

 

그런 노력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 속에서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난 사람에 대해서 매력을 느끼니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정말로 과감히 관계를 포기하고 주도적 삶을 사는 것이다. 대신 그럴 경우 혼자서도 모든 것을 의지적으로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럿이 할 때 생겨나는 행복 정도는 과감히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삶을 어느 정도 시간 보내고 나면 오히려 남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리고 그때 자기 주도적 삶을 살았던 경험은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사람들의 모든 행위의 최종 목적은 바로 관계를 잘 맺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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