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목표와 목적

아이루다 2018. 5. 18. 12:04

 

누군가로부터 갑자기 목표와 목적의 차이를 설명해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으면 잠시 머리 속이 혼란스러울 것 같다. 언뜻 생각하기에 그 둘은 거의 같은 의미 같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서로 다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두 단어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딱히 명확히 설명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으니 비슷한 다른 경우를 찾아서 참고해보자. 그것은 바로 전투와 전쟁라는 단어의 차이를 알아 보는 방법이다.

 

예전 고대 중국에 초나라와 한나라가 있었다. 이 두 나라는 초한지로도 잘 알려져 있고, 장기 게임의 밑바탕이 되는 나라이기도 한데, 항우와 유방이란 두 영웅이 천하의 패권을 두고 싸우는 이야기로 아주 유명하다.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시황제에 의해서 최초의 천하통일을 이뤘지만, 그 기간은 겨우 30년 남짓했고시황제 사후에 진나라는 곧 초나라와 한나라로 양분이 되고 만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두 번째 천하통일이라는 목표를 두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서로 싸운다.

 

하지만 실상 언제나 승자는 초나라의 항우였다. 항우는 70여차례에 이뤄진 전투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최종적으로 전쟁의 승자는 한나라의 유방으로 결정된다. 그리고 한나라는 중국의 실제적인 통일국가로써 중국 문명의 뿌리가 된다. 그래서 지금도 중국 사람들이 스스로를 한족이라고 칭한다표현 그대로 한나라 사람인 것이다.

 

이 짧은 역사 속 이야기에서 전투와 전쟁이란 단어의 차이점이 보인다. 항우는 많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반대로 유방은 대부분의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한다.

 

이것을 통해 전투와 전쟁의 차이가 확실히 이해가 된다.

 

전쟁의 승리는 분쟁의 최종 목적이 된다. 그리고 전투는 전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반복되는 목표들이다. 그리고 목표는 달성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이렇듯 목표라는 말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정의가 가능하다. , 목표는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시도되는 수 많은 방법론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목표에는 딱히 어떤 명백한 의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니 의미가 있어봐야 목적을 달성하는 의미만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은 다르다. 목적은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지점이며 그래서 그 목적에 도달하는 어떤 식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어떤 것이 목적이 되었다면 그럴만한 의미가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목표는 명확하며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은 대부분의 경우 단 하나의 의미만을 가진다. 물론 복수적으로나 혹은 다중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지만, 흔치 않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매일 뭔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행위들, 즉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 결혼을 하고 애를 낳는 것, 직장에서 성공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큰 식당을 운영하는 것, 세계일주여행을 떠나는 것, 멋진 작품을 남기는 것, 불우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 해외 선교활동을 가는 것, 영어를 자유롭게 쓰는 것, 불꽃같은 사랑을 해보는 것,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누리는 것 등등은 과연 목적과 목표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당연히 목표이다. 목적이 이렇게 다양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런 목표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이 매일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좀 더 명시적으로 말해서 삶의 목적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 답이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다들 목표는 쉽게 말을 하지만 목적을 제대로 답하기는 어렵다. 설령 인생의 목적을 쉽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이 정말로 그것이 인생의 목적인지 여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목적으로 착각하는 것뿐이다.

 

아이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과연 과학자는 왜 되려고 하는가? 이렇게 물으면 아이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제대로 답을 내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이는 그저 그러면 막연히 좋으니까 혹은 과학자가 되면 사람들을 위해서 멋진 발명품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라는 식의 답을 할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실 아주 쉬운 질문이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니까 말이다. ,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며, 사람들이 목표로 삼아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목표를 목적으로 삼아서 살아가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삶을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얻기 위한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돈, 여행, 음식, 독서, 게임, 취미생활, 쇼핑, 좋은 집, 좋은 차, 결혼, 아이 등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간다. 물론 그것을 통해 행복한 것은 맞다. 하지만 결국 목표는 목표일뿐이다.

 

목표가 목적이 되는 순간 그것을 붙잡고는 놓지를 못한다. 즉, 집착이 생겨난다. 좋은 말로 열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집착, 중독, 집중, 열정 다 같은 말이다. 그저 좋은 쪽으로 작용할 때 집중과 열정이라고 하고 나쁜 영향을 끼칠 때 집착이나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세상은 끝없이 변하고 그래서 목표 자체도 끝없이 변화해가는데 스스로 목표를 붙잡고 놓질 못한다. 아이에 집착하는 부모는 아이가 커서 독립할 시기가 와서 계속 집착한다. 돈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모으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이런 경우는 한 둘이 아니다. 취미생활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 독서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지식인들, 게임 중독, 여행 중독, 쇼핑 중독 등등 그런 예는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이다. 행복하려고 하는 것에 집착을 하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왜 행복이라는 목적을 잊고 중간 단계인 그런 목표들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전투에서 이기는 것은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직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하지 못했더라도 일단 전투에서 이기는 순간만큼은 매우 기분이 좋다. , 행복한 것이다. 그러니 최종적으로 전쟁에서 이겨야 하는 목적보다 당장 전투에서 승리해서 행복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 현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그랬다. 독일은 정말로 대단한 군사력을 가졌으며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적 능력을 가졌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소련과 전투를 벌이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춥고 척박한 소련 땅으로 들어가서는 대부분의 주요 병력을 잃고 결국엔 패전국이 된다. 물론 그런 판단 실수가 인류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만, 아무튼 전투에 집착하다가는 그런 운명을 맞게 된다는 뜻이다.

 

목표도 동일하다. 목표를 이룰 때마다 행복을 경험하다. 그러니 그 행복감으로 인해서 목적은 잊혀지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끝없이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간다. 그러다 결국 과도하게 거기에 빠지거나 집착이 생겨나 오히려 불행해지는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것의 아주 나쁜 예가 바로 도박이다. 원래 도박은 돈을 벌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도박에 빠지면 승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돈을 딸 때 느끼는 희열이 너무 커서 오히려 돈을 버는 것 자체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만약 돈을 벌었다고 해도 그 돈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최종 목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또 다시 도박을 해서 행복감을 얻는 목적으로 사용될 수 있기에 좋은 것이 되고 만다. 그러니 결국 다 털려야 만 도박장에서 나올 수 있다.

 


결국 도박꾼들은 돈을 벌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최종 목적을 절대로 달성할 수 없다. 돈을 버는 목표를 달성하는 행복감에 함몰되어서 목적 자체를 잊어 먹고 말았다.

 

물론 이런 중독이 좋은 예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가 남아 도는 사람일 경우 그것은 삶의 활력소가 되어서 오히려 좋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일명 덕질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덕질 자체가 행복을 위한 목표가 아닌 최종 목적이 되어 버리게 되면 결국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거기엔 반드시 의미나 가치가 생겨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은 목표와 달리 근본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었다. , 목적에는 무엇을 하는 진짜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표가 목적으로 변환되는 순간 목표는 난데없이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해외여행을 하는 의미가 생겨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의미가 생겨나고, 책을 읽는 의미가 생겨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의미가 생겨나고, 봉사활동을 하는 의미가 생겨나고, 각종 취미생활을 하는 의미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집이나 차의 의미가 생겨나고, 쇼핑의 의미도 생겨나며 심지어 맛난 음식을 먹는 것에도 의미가 부여된다.

 

당연하다. 소중한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을 퍼부었는데 거기에서 가치나 의미가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 목표가 목적으로 바뀌는 순간 오직 목적을 달성하는 의미가 있었던 목표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심지어 삶의 의미가 되는 경우도 많다.

 

원래 그저 행복하기 위해서 달성해야 했던 목표들이 목적으로 바뀐 후 각자마다의 가치나 의미가 된다. 문제는 모든 목표가 하나만의 목적, 즉 행복만을 목적으로 했을 때는 모두 같은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각자의 목표가 목적이 되어서 서로 다른 가치나 의미가 되게 되면 이젠 서로 누가 더 진정한 가치나 의미인가를 두고 갈등이 일어나게 된다. 


사실상 많은 사람들이 겪는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다. 누군가는 가정이 소중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자기계발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한 진실은 가정이나, 돈을 버는 것이나, 자기계발 모두 그저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최종적으로 행복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해서 행복해졌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까 말이다.

 

하지만 목표를 목적화 시킨 사람들은 목표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목표를 타인의 목표와 비교하고 순위를 정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목적은 하나라도 그 목적에 도달하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수단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도 자신이 선택한 수단이 가장 옳고, 가장 현명하고,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이라고 서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목표가 목적으로 바뀌는 순간 삶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치를 느끼거나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제품을 싸게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닌 목적이 된 사람은 그 제품을 싸게 파는 곳을 찾기 위해서 일주일 동안 관련된 정보를 얻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결국 시중가보다 20% 정도 싸게 구입을 하고는 그 순간 커다란 행복을 얻는다.

 

그런데 정말로 돈을 아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일까? 아니다. 돈을 아낄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 인해서 행복해진 것이다. 목표가 목적이 되니 그러게 변한다.

 

원래 돈을 아끼려는 목적은 돈을 많이 모아 부자가 되는 목표를 달성한 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중간 단계인 돈을 아낄 때마다 느껴지는 행복감에 취해서 이제는 돈을 아끼는 것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돈을 많이 저축한다는 중간 목표조차도 생략되고 그저 어떤 제품을 싸게 사겠다는 목적만이 남게 된다.

 

돈은 아껴서 모을 수도 있지만 벌어서 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면 돈을 아껴서 살거나 혹은 돈을 벌려고 하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이 가능하다.

 

하지만 돈을 아낄 때마다 느끼는 행복감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돈을 버는 선택을 할 수 없다. 무조건 뭔가를 사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싸게 사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이유만 있어도 그것을 구매를 하려고 하게 된다. 단지 싸게만 사면 된다.

 

그래서 결국 돈을 모으지 못한다. 별로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잔뜩 샀으니 당연하다. 이것이 목표가 목적으로 변하게 될 때 일어나는 나쁜 현상 중 하나이다.

 

물론 이것이 늘 나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너무도 쓰고 싶으나 돈이 없어서 결국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원래 도박장에 가려는 도박꾼과 마약을 구하려는 중독자의 의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맛난 것을 먹기 위해서 힘든 직장 생활을 견뎌내는 것이나, 여행을 떠날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경우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런 예가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그것이 계속 유지되기도 힘들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가지 황당한 질문을 해보자.

 

인생의 최종 목적은 정말로 행복일까?

 

이상한 질문일수도 있지만, 쉽게 넘길 질문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설명했듯이 혹시라도 행복이 사실은 목표인데 그것이 목적이 되었다면 그야말로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목적이 아니라 목표일 가능성이 있을까? 일단 답을 먼저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며 사실상 그렇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목표는 목적으로 가는 방법론이다. 그래서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전쟁에서 전투는 이기면 좋지만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래 한번 졌다고 해서 전쟁에서 지는 것은 아니다.

 

행복이 목표가 되면 사람들은 행복할 수도 있고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매번 매일마다 교차된다. 그리고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은 그저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이 된다. 그럼 다음 날 또 다시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행복이 목적이 되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실패로 인식이 된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 있어야 하는 것이 불행한 것으로 판별되고 결국 삶 자체가 패배한 것으로 해석이 된다.

 

이것은 불운으로 불행해진 경우 그것을 딛고 일어날 수 있는 의지를 뺏는다. 전투는 지더라도 다시 노력해서 이길 수 있지만 전쟁에서 지는 것이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니까 말이다.

 

목적화된 행복은 결국 커다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원래는 목표였기에 최종 목적은 따로 있어서 그저 행복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목적이 되는 순간부터 서로의 행복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즉, 그저 자신이 행복하면 끝이 아니고 남들보다 더 많이 행복한가가 매우 중요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고 만다.

 

원래 행복은 목표였어야 했다. 그러니 의미나 가치가 없어야 옳았다. 그것은 마치 영어공부를 하는 것에 의미가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같다. 그것들은 그저 행복하려고 한 것이다. 또한 행복조차도 어떤 또 다른 목적에 도착하기 위한 목표였으니 그저 행복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이미 행복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은 행복에 자체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같은 행복이라도 고급 행복과 저급 행복을 나누고는 자신이 경험하는 행복만이 진실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한 사람은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을, 홀로 사는 사람은 여행을 하는 행복을, 손주를 본 사람들은 많은 손주를 보는 행복을,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쓰는 행복을,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행복을, 노래를 하는 사람은 노래를 하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저 행복이 목표인데 목적으로 착각되어서 나타난 결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인생의 목적은 과연 무엇이어야 할까? 행복이 목적의 자리에서 물러났다면 분명히 더 의미 있고 커다란 어떤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할 것이다.

 

황당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답은 바로 '생존' 이다, 행복은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목표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행복해야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사는 것' 그 자체가 된다.

 

사실 좀 웃기는 표현이다. 삶을 살기 위해서 산다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다들 살기 위해서 살기 때문이다.

 

그 무엇보다도 행복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돈이 없어도 살고, 혼자 살아도 살고, 몸이 아파도 살고, 전쟁이 나도 산다. 오히려 더 살고 싶어하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으면 죽고 싶다. 특히 행복해질 희망이 없다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자살도 많이 한다. 그러니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행복은 원래 좋은 감정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즐거움, 평온함, 안도감가슴 떨림, 기쁨, 상쾌함 등등의 좋은 감정들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 이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까?

 

바로 당장 내가 살 수 있고 또한 미래에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이다. 두려움이 사라지는 순간 마음에 평온함이나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미래에 닥칠 수 있는 문제점들이 해결될 가능성이 생기게 되면 기쁘고 즐겁게 된다.

 

2년간 준비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은 그 어떨 때보다도 기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미래 먹거리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할 때도 당연히 큰 도움이 되고, 친구나 가족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하지만 이것들은 그저 다 가능성에 불과하다시간이 지나면서 먹거리는 해결되었지만 일이 너무 고달파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고,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도 결국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고,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 가족이나 친구들 앞에서 여전히 주눅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시험에 합격한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듯한 행복감을 경험한다. 암에 걸렸다가 완치가 된 것과 같이 현재의 두려움을 해결한 것만은 못하더라도 미래의 두려움이 사라진 순간도 그 행복감은 어마어마 하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생존으로 바뀔 때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생존을 위해서 행복이 중요하긴 하지만 반드시 행복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목표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안전한 집을 만드는 것,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 신뢰할 수 있는 배우자와 결혼을 하는 것, 살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돈을 모으는 것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을 한다고 해서 꼭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삶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생존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렇게 살아서 혹시 행복하지 않다고 해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저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하나 생긴다. 그것은 바로 원래 목적에는 기본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존에 의미가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상대적 의미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그냥 행복할 때는 사는 거 자체가 목적이 되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행복하지 못하게 되면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꾸 의문이 생겨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별도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리고 이때 그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사상, 종교 등이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들이 특정 사상이나 종교에 빠지기가 쉽다.

 

젊은 사람들은 그저 행복하니까 살 수 있지만, 행복하기 힘든 늙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고자 많은 노력을 한다. 그래서 늙을수록 점점 잔소리가 많아진다. 삶의 의미를 정하면 거기에 가치가 생겨나고, 그럴수록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눈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를 정리 해보자.

 

생존이 삶의 최종 목적일 때, 그 목적을 달성하는 중요한 목표가 바로 행복이 된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는 목표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각자마다 고유한 가치관에 따른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

 

살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최대한 행복해야 한다. 행복해야만 더 살고 싶어지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다.

 

하지만 행복하지 못해서 불안해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하고 자신의 삶을 비관한다. 물론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행복하지 않고 끝나야 할 문제가 과도한 확대해석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불행을 불러온다.

 

이것이 더 큰 문제이다. 행복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비관으로 인해서 불행해진 것이 문제란 뜻이다. 행복은 목표이기에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새로운 행복을 시도하면 되는데, 당장 세상이 무너진 듯 주저앉아 버린다.

 

그러면 안 된다. 행복은 포기할 수 있어도 사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또 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다. 언제라도 전투에서 질 수 있듯이 언제라도 불행할 수 있다. 그런데 그때마다 전쟁에서 진 것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힘들더라도 버텨내야 한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처음부터 선택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이다. 그러니 한두 번 실패했다고 스스로를 자학하고 혹은 운명을 탓하면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필사적으로 행복해야 한다. 살려면 그래야 한다.

 

이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바로 생존력이다. 이것이 모든 에너지의 시작점이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 속에서 비관적인 생각만으로 모두 날려먹고 만다.

 

삶의 목적이 행복일 때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면, 삶의 목적이 생존이 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절대적으로 달성해야 할 목적이 된다. 달성하지 못하면 바로 죽어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해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거기엔 의미도 가치도 없다. 그저 하루를 더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행복해져야 한다.

 

이런 배수진을 칠 수 있는 사고방식이 결국 삶에 대한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한 삶을 향해 용기 있게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살아야 한다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가장 인간다운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륜 극복하기  (0) 2018.05.27
나와 너의 벽  (0) 2018.05.22
사랑의 정의  (0) 2018.05.11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0) 2018.04.24
어떻게 살아야 할까?  (0) 2018.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