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다

아이루다 2018. 4. 24. 07:23

 

누군가 자신에게 10만원을 하얀 종이 봉투에 넣어서 조심스럽게 건넸다고 가정해보자. 그 돈을 왜 건넸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받아도 될 돈이라면 어떻게 반응을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받을 것이다. 그것도 기분 좋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안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안받는 사람은 아주 특이한 사고방식의 사람이거나 혹은 특별한 상황에 놓인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상황을 조금 바꿔서 봉투 없이 그냥 돈으로만 건넸다고 해보자. 이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하게 돈은 받을 것이다아마도 기분 좋게 받는 사람은 조금 줄지도 모르겠다.

 

좀 더 상황을 바꿔서 이제는 눈 앞에서 지갑을 꺼내어 한 손으로 돈을 집어서 건넸다고 해보자마치 아이들 용동 주듯이 말이다. , 이쯤 되면 상황이 조금 미묘하게 변한다.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돈이기에 받긴 하겠지만 기분이 약간 애매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돈을 받을 것이다. 대 놓고 무시한 것도 아닌데 10만원을 포기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웃는 사람은 좀 줄어들 것이고, 억지 웃음으로 짓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번엔 상황을 악화시켜 보자. 돈을 바닥에 뿌렸다고 해보자. 여기에서부터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화를 내는 사람들도 꽤나 많을 것이 분명하다.

 

기왕 간 김에 좀 더 막장으로 나가보자. 돈을 얼굴로 집어 던졌다고 해보자. 이렇게 되면 싸우면 싸웠지 그깟 돈 10만원 받으려고 얼굴을 맞고 사방으로 흩어진 돈을 주섬주섬 주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정말로 돈이 아쉬운 사람이거나 완벽히 이성적인 사람은 그 돈을 주워서 가질 테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돈의 액수를 늘려보자. 백만 원이라면 어떨까? 천만 원이라면 어떨까? 1억이라면 어떨까?

 

사실 1억 정도면 얼굴에 뿌렸더라도 그냥 줍는 사람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1억을 벌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갈 수 있다는 사람들이 꽤나 있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지금까지 크게 보면 돈을 주는 태도와 그 안에 담긴 돈 액수의 변화, 이 두 가지를 바꿨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다른 말로 하면 형식과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 태도는 형식이며 돈은 내용이 된다.

 

이렇게 구분을 해서 바라보면 앞에서 예를 들었던 상황들은 이렇게 설명이 된다.

 

내용()이 동일한 경우엔 그 형식(태도)에 따라서 사람들이 그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가 변하게 되면 형식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간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는 내용이 의미 있는 수준의 변화를 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긴 하다.

 

얼굴에 돈을 던지는 식으로 했을 때, 화를 내던 사람이 화를 내지 않게 만들려면 두 배나 세 배의 돈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얼굴에 돈을 맞고도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돈을 줘야 할 것이다.

 

, 그러면 뻔한 질문이 하나 나온다. 과연 형식이 중요할까 아니면 내용이 더 중요할 것일까?

 

사람들은 대부분 내용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형식이 내용보다 더 중요할 수 있겠는가? 설령 실제로 그렇더라도 진짜로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정말로 내용이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생각보다 이 질문에 대한 제대로 된 답을 내는 것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상황에 따라서 계속 다르게 판단되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일에는 형식보다 내용이 훨씬 더 중요하다. 손님이 돈을 던져도 주인은 그냥 받아야 한다. 물론 같이 욕하고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러면 주인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더 심한 경우는 영업사원들이다. 그들은 계약을 따기 위해서 정말로 온갖 굴욕을 다 참아내야 한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맺어진 관계에서는 오히려 훨씬 더 형식이 중요해진다.

 

누가 결혼식에 와서 돈을 집어 던지고 간 사람과 관계를 계속 맺고 싶어하겠는가? 이것은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설령 그 사람이 많은 돈을 던졌더라도 별로 바뀌는 것이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관계를 잘 맺고 싶어한다. 그것이 영업적 관계이든 친목적 관계이든 상관없이 관계는 최대한 잘 맺는 것이 좋다. 하지만 관계를 맺을 때는 정말로 조심해야 하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상처이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상처는 마치 모닥불에게 입는 화상과 같다. 가까이 가면 따뜻하기에 너무 가까이 갔다가 데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관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거리유지이다.

 

하지만 관계에서 거리유지를 제대로 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끝없이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다.

 

, 그러면 지금부터 형식과 내용을 상처라는 관점에서 한번 보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내용이 상처를 입힐까 아니면 형식이 상처를 입힐까?

 

"너는 노래는 별로 소질이 없는 것 같아." 이렇게 말을 하는 것과 "너 정말로 제대로 음치구나" 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둘 모두 노래를 잘 못한다는 내용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담은 형식이 다르다. , 문장이 다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겠지만, 전자의 경우엔 그냥 노래를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서 약간의 실망감이 들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엔 어느 정도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받는 상처의 대부분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내용 자체는 별로 문제가 없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싸가지 없는 말투, 무성의한 태도,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 등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돈을 줄 때 집어 던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들은 모두 형식에 해당된다. 내용은 동일하지만 말투, 태도, 행동이라는 표현을 하는 형식으로 인해서 결국 상처를 받는 것이다.

 

물론 내용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결혼식에 다녀간 오래된 친구가 봉투에 오천 원짜리를 넣어 놓은 경우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형식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진심을 좋아한다. 누군가 진실로 대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도 역시 다른 사람을 진실로 대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진심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누군가의 진심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돈 10만원을 줄 때, 그것이 진심으로 주는지 여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것을 언뜻 생각하면 10만원이라는 돈 자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의 액수에 진심이 담겨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결혼식에 갈 때마다 얼마를 넣어야 할지 고민을 한다.

 

하지만 진심은 오히려 태도, 그러니까 형식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이 선물 포장을 예쁘게 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포장은 내용물을 보호하는 역할이지만, 어떤 경우엔 포장이 내용물보다 더 큰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간관계에서 형식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오히려 그 내용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형식만 제대로 갖춰도 서로 상처를 줄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한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한다. 진심을 몰라 준다고 서운해 한다.

 

이 말은 원론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틀리다. 형식이 갖춰지지 않으면 내용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줄 기회조차 없게 된다. 거지같은 옷을 입고 냄새를 풍기면서 남의 결혼식장에 축하를 하러 가는 것은 원래 목적으로 거꾸로 달성하게 만든다. , 축하가 아니라 방해를 하려고 온 사람이 되고 만다.

 

처음부터 옷을 잘 입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들은 내가 따뜻하고 편한 대로 입으면 그만이지 왜 내가 남의 시선까지 신경 써야 하냐고 되묻는다.

 

이 말을 언뜻 듣고 생각하면 맞다. 하지만 결국 틀리다. 왜냐하면 인간이 옷을 유용성의 측면에서 입는 시기는 이미 예전에 지났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의 옷은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이다.

 

옷은 잘 입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옷은 원래부터 남을 위해서 입는 것이었다. 옷은 몸을 가리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서 가려야 할까? 바로 남을 위해서이다. 혼자 집에 있을 때는 다 벗고 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들이 불편해 하니까 가려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옷을 잘 입는 것이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라면 모를까잘 입을 수 있다면 잘 입는 것이 좋다.

 

원래 예의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예의는 나를 위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남을 위해서 지키는 것이다. 예의 자체가 완벽한 형식인데, 결국 그 형식 속에서 진심이 드러난다. 또한 예의가 지켜질 때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입히지 않게 된다이점은 정말로 중요하다.

 

사람들이 예의를 지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의도와 상관이 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주는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 받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같은 행위도 사람에 따라서 상처를 받고 안받고가 결정된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빨란 머리라고 부른 것이 아무 일도 아니지만, 빨란 머리 앤에겐 엄청난 상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예의의 근본이다.

 

하지만 결국 예의는 나를 위한 것이다. 그것이 남을 위한 것이지만 최종적으로는 나를 위한 것으로 수렴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화가 난다. 그래서 싸움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관계가 틀어진다. 그러니 예의를 지킴으로써 관계를 지킬 수 있다. , 예의는 나의 손해를 막아준다.

 

오랫동안 사귀어서 상대가 어떤 경우에 상처를 받는지 어느 정도 파악된 사이라면 작은 예의 정도는 생략되어도 된다. 부부가 그렇고, 오래된 친구가 그렇다. 더해서 어떨 경우엔 너무 과한 예의가 친해지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친해지면 반말을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식이 바뀌면 내용도 같이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이 담긴 컵의 모양에 따라서 계속 변해가듯 형식을 바꾸면 내용도 변한다.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는 내용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편지 봉투에 넣어서 준 돈 10만원과 얼굴에 던진 10만원은 완전히 다른 돈이다. 형식에 따라서 내용이 변한 것이다. 봉투 속 돈은 돈이지만, 얼굴에 맞은 돈은 폭력 도구가 된다.

 

친한 사이일 경우 이것을 잊는 경우가 많다. 어느 선까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 한계는 정확히 지켜져야 한다. 그것을 넘어가게 되면 결국 상대는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그 관계는 단절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이다. 모닥불과의 거리인 셈이다.

 

세상엔 내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또한 그들의 말은 옳다절대로 내용보다 형식이 우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내용 조차도 형식을 통해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용이 내용 그 자체로만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신의 진짜 마음을 상대방들이 알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수십 년이 걸리는 일이다. 원래 사람이 다른 사람을 신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그 정도이다.

 

부부라고 해도 10년 이상은 같이 살아야 제대로 된 신뢰가 쌓인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형식은 희미해진다.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과연 누군가의 진심을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아무리 오래 만난 사람도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형식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형식이 지켜질 때 내용이 변화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호가 되어서 결국 그 모습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면 최대한 형식을 갖춰야 한다. 설령 그것이 가식적이라고 해도 그것을 통해서 진심이 전달되는 것이다.

 

왕이 왕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 사람의 얼굴과 몸이 아니라 겉에 입혀진 화려한 의복 때문이다.


그러니 형식에 집중하자. 특별한 일이 없는한 옷 예쁘게 잘 입고, 웃는 얼굴 하고,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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