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두려움을 다루는 법

아이루다 2018. 5. 2. 07:50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살기 위해서는 돈 벌고, 요리하고, 먹고, 치우고, 청소하고, 사람 만나고 그러다가 혼자 있게 되면 심심하거나 지루해서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봐야 한다.

 

이것들 중에서는 해야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주로 관심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되기 때문에 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일 뿐이다.

 

그런데 누구나 한때는 사는 것이 쉬웠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다.

 

바로 어릴 때 그랬다. 그때는 엄마 아빠가 다 알아서 해줬다. 아프면 병원 데려가 주고, 때 되면 밥 먹여 줬다. 돈을 벌기 위해서 직장에 나갈 일도 없었고, 노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신나게 노는 것이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의 전부였다. 그러니 매일 무엇을 하고 놀아야 하나, 무엇을 먹고 싶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최고 난이도의 고민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결국 나이를 먹었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물론 이런 전체적인 변화 과정이 한번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살아오는 동안 수십 년에 걸쳐서 꾸준히 바뀌어 왔다. 그리고 지금 이순간엔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하며, 아프면 홀로 병원에 가야 한다.

 

만약 이런 행위들을 스스로 해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러니 다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고, 덕분에 지금은 그런 삶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이렇게 사는 것이 원래 힘든 일이라는 것도 잊어먹고 말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들도 다 하니까 더 이상 힘든 것이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산다고 해서 사는 것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모두들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는 것은 힘이 드는 것일까?

 

사실 이유는 단순하다. 뭔가 매일 노력하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못하거나, 건강을 챙기지 못하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지 못해도 죽을 수 있다.

 

삶은 언제나 죽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누구나 두려움을 싫어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두려움은 생각보다 나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살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만약 사람들에게 모두 강한 마약을 주사하여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환각 속에 빠지게 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인류는 그대로 멸망할 것이다.

 

두려움은 삶의 가장 중요한 활력소이다. 두려움이 있기에 다들 오늘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수 있다. 단지 두려움을 제대로 다루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문제만 남아 있다.

 

이렇듯 두려움은 삶에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환영 받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과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상황 중에서는 무조건 후자를 선택하려고 하게 된다. 사실 누가 능동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선택하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런 태도가 두려움에 대한 잘못된 응대를 만들어 내고 만다.

 

일반적으로 두려움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생겨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두려움이 반드시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상 많은 두려움이 그저 착각이나 혹은 너무 과도한 걱정으로 인해서 생겨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에게 생겨난 두려움이 실체적인지 아니면 착각이나 기우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그러니 당장 현실화 되지 않는 두려움이라면 그냥 머리 속에서 날려버리는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 머리 속에 생겨난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것들을 채워서 그것을 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때 주로 사용되는 방법이 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보고, 듣고, 먹고, 마시는 방법이 흔히 쓰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바로 내면에 생겨난 두려움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해서 하루 종일 두려움만 해결하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쓰는 경우이다. 그러니 눈만 뜨면 걱정이다. 집에 있어도 걱정, 나가도 걱정, 무엇인가를 하려는 순간부터 걱정만 가득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변한다. 가능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선택의 기준점이 바로 안전함이 된다그래서 남들이 이미 해서 안전하다고 알려진 것만 경험하려고 한다. 결국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삶이 펼쳐진다.

 

그리고 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태도회피나 과도한 몰입은 모두 삶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원래부터 두려움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두려움이 있기에 열심히 살 수 있으며, 가치가 만들어지며, 삶이 다채롭게 빛날 수 있었다.

 

아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누가 열심히 운동을 할 것이며, 운동을 하는 가치가 왜 생겨날 것이며, 건강한 몸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생겨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건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생겨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삶에 문제가 생긴다.

 

대책 없이 긍정적으로 변하거나매일 무엇인가에 쫓기거나매일 남의 행동만 따라 하거나, 끝없이 세상을 비판하거나, TV나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몰입이 되거나, 불륜과 같은 위험한 행위에 빠져들거나, 다른 사람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질투심이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틈만 나면 자기 자랑을 하려고 하거나, 끝없이 다른 사람의 뒷담화를 하거나,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

 

이것은 모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싫으니 두려움 자체를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너무 과도하게 응대하거나 혹은 부정함으로써 생겨나는 현상들이다.

 

자신이 두려움을 다루는 데 있어서 문제가 있는지 판단해보는 것은 단순하게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하냐 여부를 스스로에게 깊게 물어보면 된다.

 

이것이 단순히 그냥 행복해서는 안 된다. 마음 속에 아무런 불안함이 없이 평온하게 행복한가를 물어야 한다. 당장 뭔가 신나게 하고 있어서 행복한 것은 그저 임시적인 것이다. 그냥 깊은 밤 홀로 깨어 있을 때 마음 속에 두려움이나 걱정에 관한 아무런 소요가 일어나지 않는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그 순간까지도 별다른 마음의 요동이 없다면 그 사람은 두려움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명확히 알 수 없는 불안함이나 정체가 명확한 걱정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걱정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해결 가능한 걱정이고, 다른 하나는 해결이 불가능한 걱정이다.

 

내일 무엇을 먹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해결 가능한 걱정이다. 결정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싶은 것은 해결이 불가능한 걱정이다. 결국 죽기 때문이다.

 

원리상 해결 가능한 걱정은 해결하면 된다. 하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해결 가능한 걱정조차도 잘 해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힘들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며, 돈이 들거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차리리 그 시간에 그 돈, 그 노력, 그 시간을 즐겁게 노는 것으로 쓰고 싶어서 그렇다.

 

, 당장 행복하고 싶기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을 미룬다. 사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겪는 불안감의 원인이 된다. 해야 할 일들은 제때에 하고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산다.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뒤로 미뤄져서 결국 할 기회를 놓칠 때에는 본격적으로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미뤄 놓은 것이 너무도 많으면 처음부터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집이 너무 더러우면 처음부터 청소할 생각이 나질 않듯이 말이다.

 

또한 해야 할 일을 제때로 하더라도 그것이 불안감이나 조바심으로 인해 그러고 있다면 그 역시도 문제이다. 해야 할 일들은 해야 할 일들이기에 하는 것이다. 안 하면 죽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그렇다. 이 세상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먹고, 자고, 싸는 것이다. 이 세가지 이외에 꼭 해야 할 일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을 다 하면서도 끝없이 불안감을 느낀다면, 자신이 두려움을 너무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해결 불가능한 문제는 가능하면 머리 속에서 지우는 것이 좋긴 하다. 하지만 해결 불가능하다고 해도 완전히 손 놓고 있는 것은 문제가 된다.

 

죽음은 언제라도 찾아오지만 운동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그 시기를 미루거나 훨씬 덜 힘들게 죽을 수 있다. 차를 타고 나가면 사고가 날 위험성이 높지만, 보험을 들어 놓음으로써 대비를 할 수 있다. 물론 사고간 난 후 보험금을 받아도 사고 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보험마저 없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해결 불가능한 문제들은 그것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만 하고 머리 속에서 지우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살다간 두려워서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운이다. 그러니 각자의 살고자 하는 노력은 행운의 확률을 높여주는 효과만 가졌다. 매우 위험한 놀이를 즐기는 사람은 분명히 안전한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보다 더 빨리 죽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이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 두려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 시작점이 바로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서 깊게 바라보는 과정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사실 자신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소엔 영원히 살 것처럼 굴기도 한다.

 

자신의 두려움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 이것은 어렵고도 힘든 과정이 된다. 그 동안 두려움을 느끼기 싫어서, 그것이 느껴질 때 마다 모두 깊게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꺼내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 되겠는가?

 

아무리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넘친다. 잘나고 싶어하는 욕구,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욕구, 질투심, 열등감, 신경질, 짜증, 귀찮음, 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잘 맺으려고 하는 것도 모두 내면의 숨겨진 두려움으로 인해 일어나는 일이다.

 

사실 이런 증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라도 그것은 그저 운이 좋게 조건이 좋게 타고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타고나길 잘나게 타고나서 그런 것이지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운이 나빠 잘난 외모를 망치거나, 사업이 망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못 쓰는 순간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사실 인간 자체가 모두 두려움의 결과물이다.

 

그러니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모두 행위들이 모두 내면의 두려움으로 인해서 생겨나고 있음을 스스로 자각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하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면 그때 비로소 두려움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길이 생겨난다. 실체적인 두려움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해 나가고어쩔 수 없는 것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대처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래서 두려움을 제대로 다루면서 사는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것은 바로 꾸준한 운동을 하고, 열심히 돈을 벌면 된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과 가능하면 최대한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것이다.

 

이 단순한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또 다른 두려움 때문에 그렇다. 자신의 부족함,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그렇다. 운동을 조금 해보다가 기분에 나쁜 날 갑자기 포기하고, 버는 돈은 왜 이렇게 적은지 불만만 가득해진다.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존심을 세우기 시작한다. 자신은 그런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어한다. 뭔가 희망이 있고 남들과 다른 존재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신은 뻔하게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뭔가 다른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완벽한 착각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바로 불필요한 자존심도, 잘나고 싶은 욕구도, 인정받으려는 욕구도 모두 줄일 수 있다. 그 모두가 두려움이 두려워서 인해서 생겨나는 욕구들이다.

 

사실 두려움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면 해외여행을 갈 필요도, 맛난 것을 먹으로 돌아다닐 필요도, 영화나 책을 볼 필요도 별로 없다. 사실상 돈이 거의 필요가 없다.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싶은 일들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뭘 해도 된다. 그때 남는 시간으로 남을 위해서 뭔가 해주면 모두 저축이 된다. 그러니 결국 관계가 쌓인다. 할 일이 없어서 해준 일들이 평판을 높여준다. 그래서 언젠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되돌아 온다.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 남들이 별 생각 없이 한 말에 끝없이 상처를 받는 것, 끝없이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는 것, 쉽게 감정이 널뛰는 것, 경쟁만 하면 이기려고 하는 것,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 끝없이 타인을 의심하는 태도, 비난과 비판으로 가득 찬 삶, 신세 타령이나 뒷담화로 가득 찬 대화, 다른 사람의 행운을 질투하는 마음, 끝없이 생겨나는 열등감, 별 일도 아닌데 심하게 화를 내는 것 등등 이 모든 것이 두려움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쫓기고 있음에 대한 증거가 된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생명체로써 당연한 일이다.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은 반드시 경험해야 하기도 한다. 물론 두려움이 싫을 것이다. 생각도 하기 싫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쪽 구석에 처박아두다간 결국 언젠가는 그것에 눌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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