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

아이루다 2018. 1. 31. 07:18

 

사람은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다 죽는다. 물론 이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인정하는 사람은 소수이다. 또한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인간이 죽음이라는 최종 결과를 맞이하는 이상, 태생적 한계이다.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며,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그저 단지 죽음 자체를 잠시 잊을 수 있을 뿐이다.

 

평소엔 그렇게 잊고 지내다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때 불현듯 두려움을 느낀다. 평소엔 자신이 숨을 쉬고 사는지 조차 모르고 살다가도 갑자기 어딘가에 갇혀서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부족할 때 극도의 두려움을 느낀다. 늘 풍족하게 먹을 때는 모르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서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심각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렇게 직접적인 것들 말고 간접적으로 생존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힘이나 지능이 부족할 때도 그렇다. 돈이 부족할 때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부족할 때도 그렇다.

 

사람들에게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의미는 죽음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공기나 음식 등은 단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가긴 한다. 하지만 힘이나 지능 그리고 돈, 관심 등은 아주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마치 죽음과 관련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들이 두려움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완전히 동일하다. 심지어 사람들은 생존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노래 실력이 부족해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숨을 쉬기 위해 필요한 공기와 노래방에서 뽐내기 위한 노래 실력의 부족함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하나는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고, 하나는 죽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노래 실력은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판단될 수 있다. , 가수에게는 공기와 같은 치명적 문제일 수 있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저 노래방에 갔을 때 곤란함 수준 정도가 될 수 있다. 혹은 노래방을 전혀 안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아닌 것이 된다. , 선택적이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경험하는 많은 두려움의 대상은 공기와 같은 필수적인 것들이 아니라, 노래 실력과 같은 선택적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 부족하다고 해서 반드시 채워야 할 것은 아니란 뜻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어떤 것들이 공기만큼이나 필수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신뢰있는 관계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운동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권력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평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뤄낸 성과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평생 동안 그것들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두려움을 잊을 수 있게 된다. ,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을 적극적으로 채우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당연한 흐름이다. 부족해서 두려움을 느꼈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부족하지 않게 만들면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부족함으로 인해 발생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함으로써 두려움과 싸우는 힘을 얻는 과정이다. , 부족하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만들어 내고, 이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어서 강한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두려움을 잊거나 극복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만은 없으며, 노력했다고 해서 언제나 합당한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란 점 때문에 그렇다. 더해서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행복하기 보다는 고통스러울 가능성도 높다.

 

좋은 대학교를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돈을 벌기 위해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사람, 건강해지기 위해서 힘들게 운동을 하는 사람 등등, 과정이 쉬운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결국 실패한다면, 그것을 참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자신이 가진 두려움과 싸우는 방법들 중에서는, 이런 욕망을 충족하는 과정을 통해 극복하는 것은 꽤나 효과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힘들고 실패할 확률이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할 필요는 있다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이런 욕망만은 아니다. 또 다른 방법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분노이다. 매우 가장 강력한 힘이지만, 그만큼 또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최초에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 화가 난다. 자신의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화가 나고, 깜짝 놀라도 화가 나고, 자기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누군가 가져가면 화가 난다. 이것들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본인이 어떤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이다.

 

못생김을 지적당하면 못생긴 것이 좀 더 확실해지고, 그것은 자신이 가진 매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후 삶에서 이득보다는 손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니 두렵다.

 

놀란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당한 일이거나 장난에 의한 것이라면 벌컥 화가 나게 된다. 두려움을 느낀 그 자체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자기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계속 뺏긴다는 것은 지속적인 손해를 의미한다. 한번 뺏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한번 뺏기기 시작하면 계속 뺏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난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이다.

 

부족함의 두려움이 욕망이라는,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냈듯이, 두려움을 통해서 발생된 화는 다시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다.

 

평소엔 겁이 많던 여자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누군가 자신의 아이에게 나쁜 짓을 하는 보면, 언제 두려워했냐는 듯 싸울 수 있게 된다. 강한 분노가 일어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화는 두려움을 시작으로 해서 일어나는 감정이지만, 오히려 화가 제대로 나게 되면 두려움을 잊는다.

 

이렇게 화는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너무 화가 나게 되면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화를 낼만한 상황이라면 화를 내더라도 부작용이 덜하다. 문제는 화를 낼만한 상황이 아님에도 화를 자주 내는 경우이다.

 

화는 기본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더 자주 경험한다. 불행하다는 말 자체가 가진 의미가 두려움이 훨씬 자주 느낀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렇다. , 이미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은 아주 작은 두려움만 더해져도 아주 쉽게 화를 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경우엔 화는 두려움과 싸우는 역할을 벗어나 자신을 스스로 망치는 결과까지도 초래하게 된다.

 

결국 화는 두려움과 싸우는 좋은 수단이지만, 자주 쓰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욕망과 화 이외에 사람들이 두려움과 상대하기 위해서 자주 쓰는 것이 바로 책임감이다. 물론 책임감은 욕망이나 화처럼 능동적인 힘은 아니다. 책임감 자체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책임감은 받아들이기만 하면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리고 셋 중에서 가장 이성적이고 일관성이 있다.

 

불이 나서 화염에 휩싸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소방수의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힘은 욕망도 아니고 화도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맡은 책임감 하나이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이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힘은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욕망이나 분노와는 달리 별다른 부작용이 없으며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의 경우라면 남에게 나쁜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욕망은 그것이 과하게 되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밖에 없다. 돈을 너무 좋아하면 주변 사람들이 몹시 힘들어진다. 화가 과하면 당연히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볼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책임감이 과하면 남이 피해를 입기 보다는 그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

 

욕망, 분노, 책임감 이 세 가지는 평생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나마 그 두려움과 싸울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하지만 셋 모두 그리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남이든 자신이든 결국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세 개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물론 그 범위는 무척 제한적이긴 하다. 그럼에도 이것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한 것 같은 착각의 경험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조그만 힘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재미이다.

 

사실 요즘 시대는 너무도 안전해졌기 때문에자신은 결국 두려움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힘들다. , 두려움은 너무 멀리 있어서 도대체 사람이 두려움의 존재라는 말을 들어도 잘 이해가 가질 않을 지경인 셈이다.

 

그 대신 지루함을 느낀다. 원래 지루함은 소극적인 두려움의 일종이다. 그러니 지루함을 극복하는 것도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지루함을 잊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흥분, 기대, 호기심즐거움, 짜릿함 등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것들을 포괄적으로 재미라고도 할 수 있다.

 

놀이공원에 가서 노는 일,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들은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 뭔가를 할 때 두려움과 싸우는 힘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한계는 명확하다. 어떤 두려움이 실체가 되지 않았을 때까지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놀이공원서 놀이기구를 타다가 고장이 나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면 엄청난 두려움 속에 노출된다. 낯선 곳에 여행을 떠났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위협을 받게 되면 트라우마가 생길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 재미는 두려움보다는 지루함과 싸우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루함은 두려움이 잠시 보이지 않을 때만 유효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지루함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짜 두려움을 상대하면서 그것을 통해서 자신이 진짜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는 착각은 할 수가 있다.

 

고장 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고장 나지 않는 놀이공원, 위험할 수도 있지만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해외여행,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 등이 바로 다 그것들이다. 요즘은 안전 장비도 없이 고층 빌딩 위를 걸어 다니기도 한다. 인정을 받을 수 있고 돈도 되니까 그렇다.

 

두려움은 인간의 본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두려움과 싸울 수 있는 아주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왔다. 욕망, 분노, 책임감, 재미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별도의 답이 있긴 하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도 두려운 일이다.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보다 두려움을 느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로 두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태도는 방향성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결코 싸울 대상이 아님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려움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조그마한 가능성이 생겨난다.

 

두려움은 원래부터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사람들은 욕망, 분노, 책임감, 재미 등을 통해서 평생 두려움과 싸울지 모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패배하고는 죽고 만다이런 뻔한 필패의 승부를 왜 해야 할까? 그저 자신이 졌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승부자체를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해칠 수 있는 분노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저 집착하지 않는 욕망과 소소한 재미를 통해 살아갈 수 있다.

 

어렵긴 하다. 정말로 어렵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것은 정말로 두려운 일이라서 그렇다. 그럼에도 해볼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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