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살아보니..

아이루다 2018. 1. 28. 08:16

 

"살아보니, 외모나 돈보다 대화가 잘 통하고, 사람 됨됨이가 좋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결혼 15년 차의 한 여자가 이런 말을 한다. 남편이랑 결혼하고 살다 보니 결혼 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왜 젊은 시절에 외모나 경제력과 같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조건을 기준으로 남자를 골랐는지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

 

이 말은 결국 현재의 결혼 생활에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외모도 괜찮은 편이고 돈은 잘 벌지만 무뚝뚝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남편, 밖에서는 다들 결혼 잘했다고 하지만 정작 본인은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나마 자식들 키우는 행복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후회를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물론 이유는 다양하다.

 

살아보니,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렸어야 했어요.

살아보니학교 다닐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야 했어요.

살아보니, 젊었을 때 하나라도 더 경험했어야 했었어요.

살아보니, 좀 더 열심히 돈을 모았어야 했었어요.

살아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했어야 했었어요.

살아보니, 친구도 아무 쓸모 없더라고요. 가족이 최고에요.

살아보니, 예쁜 여자가 아니라 알뜰하고 부지런한 여자랑 결혼했어야 했어요.

 

, 이런 것들을 쓰다 보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을 갖는 것은 아마도 삶이란 과정이 대부분 그리 만족스럽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 현재의 불행함이 바로 이런 말이 나오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말들이 나름대로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것일까? 살아보니 뭔가 아쉬운 점들이 느껴져서 그것으로 인해 불행하기 때문에 이런 후회들이 생겨나는 것일까? 당연한 것이지만, 이것을 좀 더 깊게 바라보도록 하자.

 

지금 20대 젊은이들에게 결혼할 상대로써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외모, 경제력, 성격 등이 아마 가장 우선 순위로 꼽힐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결국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갖춘 사람이라면 나머지 조건들은 평균 수준만 되어도 받아들일 것이다.

 

, 남자의 경우엔 외모가 좋으면 경제력이나 성격은 조금 포기할 수 있고, 여자의 경우엔 경제력이 좋으면 외모나 성격을 조금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40대 혹은 50대가 된 분들도 젊은 시절엔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분들은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한다. 특히 외모에 대한 부분은 그렇다.

 

심지어 상대를 사랑하는지 확신이 없어서 결혼을 하기가 망설여진다는 젊은 여자의 고민에 대해서 사랑이 밥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고 조언을 한다. 남자는 돈 잘벌고 성실하면 끝이라고 한다. 살아보니 그렇다고 확신있게 조언을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로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한다.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자. 누군가와 불타는 사람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는 딱 젊은 시절 그때 뿐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중년의 로맨스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아주 특별한 경우이며 또한 대부분 그저 불륜일 가능성이 높다. , 불륜이기에 더욱 더 불타는 것뿐이란 뜻이다. 원래 금지된 장난이 훨씬 더 강렬한 감정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그렇다.

 

아무튼 그러니 누군가와 목숨을 걸 수 있는 정도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시기는 정해져 있는 편이다. 그리고 그 시절이 지나면, 그런 기회가 주어져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시기에 그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늙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 온 어떤 노인이, 살아보니 돈보다도 친구가 최고라고는 말을 했을 때, 이 말 역시도 귀담아 들을 만 하다. 하지만 40대에 자식을 키우면서 끝없이 돈이 부족함을 느끼는 부부가 이 말을 들어도 공감할 수 있을까?

 

당장 내일 애들 학원비가 걱정인 엄마가 친구가 최고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이 엄마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기를 보내고 나면 그 자신도 늙어서 같은 말을 할 수 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 하는 후회나 조언들은 바로 그 나이에만 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항창 젊은 나이엔 외모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경제력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가장 큰 욕망이고,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욕망과 두려움은 신체의 변화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변해간다. 몸이 늙어가면 외로워지고, 외로워지면 예쁘고 돈 많은 사람보다 자신의 옆에 있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훨씬 더 좋다고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돈보다, 외모보다, 성격이 최고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 현재 자신의 처지에 따라서 삶을 사는데 중요한 가치들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결국 한가지 숨길 수 없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워하는 이유가 아주 단순히 그저 나이를 한살이라도 더 먹었기 때문이라는 진실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연속성을 믿는다. 그것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사람이며, 내일의 나도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견고하고 중요한 믿음이다. 만약 이것이 깨지게 되면사람들은 '나의 삶' 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자기 정체성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과거의 자신이 중요하게 여겼던 것들을 지금의 나이에 다시 생각해보는 경우가 있다. 사랑, 외모, 경제력, 성격, 성공 등등 젊은 시절에 중요하게 여겼을 법한 것들을 다시 판단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과 같은 결과나 나올까? 아니다.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당연하다. 살아오는 동안 수 많은 추가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이때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 하나는, 바로 신체가 늙었다는 점이다. , 신체가 더 노화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변화된 것을 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착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원래 경험은 간접 경험이 가능하다. , 본인이 직접 겪지 못해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그것을 조금이라도 경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그렇게 끝없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체가 늙어가는 것을 간접경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젊은이가 어떻게 노인의 몸을 간접경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힘들겠다는 생각만 할 뿐, 그것을 실제로 어느 수준의 힘듦이라는 것을 상상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젊은이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서 끝없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결혼도 해야 하고, 임신도 해야 하는 시기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외모를 중요하게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호르몬이 거의 다 줄어든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은 그런 젊은이들을 어리석다고 한다.

 

경험을 해보니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바뀐 이유는, 경험이 아니라 신체의 변화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니 노년이라도 성적 호르몬이 왕성하게 되면 언제라도 외모를 따지게 될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 아이들을 보면서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고 생각한다. 왜 저렇게 말썽을 피우고, 뛰지 말라고 해도 뛰고,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신체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 또한 그렇게 해야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어떤 아이가 도를 닦는 스님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말썽도 안 피우고, 말도 하지 않으면, 이 아이는 나중에 언어적 문제, 관계적 문제, 신체적 문제를 모두 겪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신체는 각 나이에 맞게끔 적당하게 내부의 호르몬을 조절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신체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그저 경험만 바뀐 것이라고 믿는다.

 

, 몸이 늙음에 따라서 건강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변했는데, 마치 자신은 이제 갑자기 건강을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된 것처럼 말한다.

 

그리고는 아직 몸이 한참 젊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경험을 해보니 건강이 중요하다고 조언을 한다. 이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건강하기만 한 젊은이들에겐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가 되고 만다.

 

자신의 신체적 변화로 인해서 생겨난 생각의 변화를 자각하지 못하고는 마치 자신이 살아온 경험만으로 모든 것이 변했다고 믿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사람들은 그저 거의 육체적 변화만을 겪는다. 그리고 거기에 경험이 쌓이면서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이다.

 

, 삶은 각 시기에 가장 중요한 가치들이 정해져 있는 편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하고 살면 된다. 또한 나이를 먹은 후에도 과거 자신이 했던, 비록 매우 어리석은 생각과 행동으로 여겨지던 그것들도 모두 그 당시 자신에게는 중요했기 때문에 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진짜로 과거가 후회스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다. 바로 현실이 불행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금의 그 불행이 마치 과거에 자신이 했던 바보같은 판단들로 인해서 그렇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과거로 돌아가면서 마치 자신은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나이를 먹고 막노동을 뛰는 사람이 젊은 시절에 공부를 안 한 것을 후회를 한다. 하지만 정작 지금 다시 도서관에 가서 매일 10시간씩 공부를 하라고 하면, 금세 그냥 밖에서 일하는 것이 낫다고 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돈을 선택한 사람은 성격을, 외모를 선택한 사람은 돈을, 성격을 선택한 사람은 돈을 아쉬워한다. 그것이 부족함으로써 결국 불행하기 때문에 그렇다.

 

,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불행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더군다나 뭔가를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불행을 더욱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부족한 것도 힘든데, 과거의 선택으로 인해서 이런 부족함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은 지금의 자신이 과거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체의 변화는 극복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돈이 최고라고 믿고 싶지만, 당장 몸이 젊어지게 되면 외모를 더욱 더 중요하게 보게 될 것이다. 당장은 가족이 최고라고 믿지만,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함께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이 최고로 중요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 순간에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강렬한 유혹이다어떤 행복을 추구할 때 딱히 부작용이 없다면, 그 행복을 포기하기란 아주 어렵다. 그러니 공부를 안해서 후회한 어떤 사람이 과거 학창시절로 돌아가도 결국 또 다시 친구들과 놀다가 공부를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피눈물 나는 후회를 했다면 모를까, 대부분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피눈물 나는 후회를 하는 사람은, 당장 현실에서 그것을 고치려고 하게 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후회를 하는 이유는, 그저 그것을 후회만 하고 끝내고 싶어서 그렇다.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싶지 않으니 후회만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로 큰 실수를 한 사람의 경우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제대로 해 내려고 노력할 수 있다면 결국 후회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런 큰 실수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오히려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산다. 그리고 미래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 각자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은, 지금이 최선임을 잊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사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매일 항상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 단지 그 최선이 남들의 최선에 비해서 뭔가 좀 부족해 보이는 것뿐이다하지만 그것들은 그저 그들의 능력이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최대한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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