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인간의 효율성

아이루다 2018. 1. 18. 08:15

 

두 남녀가 만난다. 그리고 서로 약간의 호감을 갖는다. 그 후 두 남녀는 각자 자신들의 정보를 가상 세계에 입력한 후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시뮬레이션을 한다.

 

시뮬레이션도 한번 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다. 최소 100번 이상을 한다. 그리고 기대한 수준의 성공율이 나오게 되면 둘이 사귈 것을 결정한다.

 

약간은 이상한 이 이야기는미래에 적용될만한 기술을 상상해서 제작된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에서 나온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실제로 관계를 맺기 전에 이미 시뮬레이션을 해본다는 가정은 현재의 정서로만 보면 약간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연애를 할 때 겪는 수 많은 문제점들로 인해 결국엔 헤어지게 될 때를 가정해보면그만한 낭비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에 오히려 필요해 보이기도 한다심지어 그런 불필요한 낭비를 획기적으로 줄여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실제로 아직 자신의 짝을 찾지 못해 가끔 소개팅을 하지만, 결국 반복적으로 실패해서 시간과 돈만 날린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자신도 짝을 찾을 것인데, 그 사람이 빨리 좀 나타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어차피 만날 것이라면 빨리 만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사실 사람이 경험하는 많은 것들 중에서 연애만큼 낭비가 심한 것도 없다. 더해서 결혼은 더하다. 잘되면 좋지만, 헤어지거나 이혼을 할 때 서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단지 들어간 시간이나 돈뿐만이 아니다. 특히 지나간 특정한 시기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한 남자나 한 여자와 만나서 불타는 20대를 보낸 후, 30대가 되어 헤어지게 되면, 물론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 끝이 좋게 끝났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서로 오해하고, 싸우고, 질려서 헤어지게 되면 그야말로 젊음까지 완전히 날려 먹은 것이 될 뿐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과 만났을 때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지 여부를 이미 예측할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과 더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이 문명을 이룩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원천적인 능력은 무엇일까? 물론 기본적으로 뛰어난 두뇌일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답은 바로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이다그렇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실패할 확률을 줄여주는 것이다. , 어떤 목표를 정했을 때, 그것을 달성할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정말로 많이 중요하다.

 

인류 문명의 발전 역시도 이것이 원동력이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대비를 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기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인류 문명이 이렇게 발전해 올 수도 없었다.

 

또한 미래의 인류 문명 발달도 역시 얼마나 미래를 제대로 예측 할 수 있는지를 목표로 삼고 있다. 흔히 말하는 빅데이터가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 일어난 수 많은 일들을 기준으로 미래를 예측해보는 것, 그것이 바로 미래 예측 기술인 셈이다.

 

사실 미래에 대한 예측 기술이 발전한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효율성을 최대한 끌어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면 할수록 어떤 목표를 향해 갈 때 불필요한 실패를 경험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목표에 도달하는 속도도 빠르고, 쓸데없는 낭비도 없앨 수 있다. 마치 미리 연애 시뮬레이션을 돌려 본 후 만나는 남녀처럼 말이다.

 

인류 문명은 어떤 목표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느냐를 두고 벌인 경쟁의 결과이다. 총은 칼에 비해서 훨씬 살상의 효율성이 좋다. 차는 말에 비해서 효율성이 좋다. 사람의 힘보다는 중장비가 훨씬 효율성이 좋다. 사실 이런 비교는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서 아예 어떤 것이 가진 한계점의 차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말은 아무리 빨리 뛰어도 차를 넘어설 수 없으며, 결국엔 지친다. 총은 칼로는 절대 못할 원거리 저격과 같은 일을 해낸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못할 일을 중장비가 해낸다.

 

인간은 지금까지 무엇인가를 최대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들을 발명해왔다당장 주방만 봐도 그런 도구들이 넘쳐난다. 같은 접시들도 각각의 용도에 따라서 아주 다양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동에 효율적인 바퀴, 먼 것을 보기에 효율적인 망원경, 작은 것을 보는 것에 효율적인 현미경, 빠른 연산을 위해 효율적인 컴퓨터, 뭔가를 붙여서 고정시키는데 효율적인 테이프, 뭔가를 자를 때 효율적인 톱, 액체를 담기에 효율적인 , 사람이 앉아 있기에 효율적인 의자 등등사실상 모든 것들이 다 그렇다.

 


이런 식으로 같은 자원, 같은 조건으로 더 많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것들이 가지는 힘은 정말로 대단하다.

 

과거의 사람들에 비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풍족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에는 바로 이런 효율성을 극대화 시킨 문명의 발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도 역시 지금의 효율성을 더 극단적으로 끌어 올린 사회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달에 가는 것도 큰 비용이 들지 않고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이고, 사람들이 일주일에 10시간만 일해도 먹고 사는데 큰 문제가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든다. 그것은 바로 효율성에 따른 물질적 풍요로움과 개인이 경험하는 행복이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효율성은 매일마다 좋아지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만큼 행복해지지는 못하고 있을까?

 

직접 말하던 시대에서 편지를 보내던 시대로, 다시 전보를 치던 시대로 바뀌었다가 결국 유선 전화기를 이용했다. 그리고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서로 말과 영상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는데, 그래서 직접 만나서만 말할 수 있던 시대에 비해서 엄청난 수준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갖게 되었는데, 왜 그만큼은 행복해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생각보다 효율성이란 것은 행복과는 직접적으로 영향이 없는 것일까?

 

사실 좀 그런 면이 있다. 대장간에서 직접 호미나 괭이 혹은 칼을 만들던 기술자와 칼을 만드는 회사에 취직해서 영업을 담당하는 한 직원이, 각자의 노동을 통해서 얻는 만족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대장간과 칼을 만드는 회사의 효율성은 비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만, 행복 그 자체는 오히려 대장간에서 일을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생산, 판매, AS까지를 모든 것을 혼자 다 하는 대장간 기술자는 자신의 직업만으로도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를 꽉꽉 채울 수 있지만, 회사를 다니는 영업직 사원은 그저 돈벌이 수단만 되기 때문이다. 누가 그런 일을 하면서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칼을 팔러 다니는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 아주 특별히 영업을 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라기 보다는 그저 얼마나 잘난 사람인가에 대한 자부심일 뿐이다. 이 둘은 서로 많이 다르다.

 

직업적인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그것을 잘하느냐에 여부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직업 그 자체에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병을 고치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진 의사는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도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효율성은 분명히 좋은 면이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서 잃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반드시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어떤 것이 가진 가치이다. 혹은 의미이다.

 

효율적이란 것은 좀 더 편리해진 것을 의미하며, 편리해진 것은 바로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원래 얻기 쉬운 것이 가치를 가지기란 너무도 힘들다.

 

공기는 너무도 소중한 것이지만, 너무도 쉽게 얻기 때문에 가치가 있지는 못하다. 이미 풍족해진 시대에 쌀은 남아 돌아서 문제가 된다. 하루에서 수십 장을 찍는 디지탈 사진들은 편하긴 하지만, 이제는 한장 한장 가지는 가지는 고유한 가치는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사진 현상이라는 불필요한 과정 속에서 돈과 시간이 들었지만, 과거에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더욱 더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무한대로 복사가 가능한 디지털 사진에 비해서 단 한 장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그러면 이제 두 사람이 사귀기 전에 이미 모든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이런 미래는 더 행복할까? 또한 인간은 여기에서 무엇을 잃게 될까?

 

효율성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말이 가진 진정한 의미는 우연성의 제거라고 할 수 있다. , 효율적이란 말이 가진 의미가 바로 최대한 의도한 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하다. 화살을 쐈는데 아무데나 꽂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냉장고를 주문했는데 세탁기가 배달되어 와서는 안 된다.

 

어떤 미래가 의도한 대로 이뤄지는 것, 이것이 바로 효율성의 정체이며 사람들이 미래를 최대한 정확하게 예측하려고 하는 이유이다. 그래야 모든 원하는 것을 제때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우연성이 가진 힘을 그냥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 동안 진보를 이뤘던 아주 많은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알려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일어난 우연은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되었다가 발기부전 치료제로 대박이 난 비아그라가 있었다. 더 과거엔 페니실린이 있었고, 고무나 나일론 등도 아주 우연하게 현재의 성질일 발견된 경우가 된다.

 

그리고 이것보다도 중요한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오히려 비효율성이 가진 힘이다. 다른 말로 여유나 잉여로움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이다.

 

효율성은 오직 목표를 향해서만 달려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전혀 주변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로 인해서 결국 목표엔 빠르게 도착하지만, 과정 속에서 우연히 볼 수 있었던 수 많은 것들을 모두 다 놓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거기엔 어떤 면에서는 목표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놓쳤는지 알 수가 없다.

 

연인 매칭 시스템으로 자신에게 딱 맞는 사람을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좋긴 할 것이다. 말 그대로 돈 낭비, 시간 낭비, 감정 낭비 안 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딱 맞지 않지만, 어쩌면 더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사실 두 사람이 딱 맞는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부터 의문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만나서 서로에게 끝없이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오래 함께 지내게 되면 각자 서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변하기 때문이다. 단지 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럼에도 특정 시기에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그것이 평생 동안 자신과 잘 맞는다는 보장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까지 인간의 기술로는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미래엔 아예 미래 자체를 알아 낼 수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차원을 볼 수 있는 장치가 만들어져서 각자의 미래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뭔가를 할 때, 이미 그 결과를 모두 다 알게 되는 때가 온다면, 과연 그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결과를 다 알고 한다면 그것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뭔가 성취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여전히 느낄 수 있을까?

 

물론 효율성은 분명히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약속한다. 이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단지 풍요롭다는 것과 행복한 것은 어느 이상이 될 때는 서로 전혀 다른 개념이 되는 것이 문제이다. 오히려 풍요로움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도 많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비해서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더 많아진 여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데, 행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특히 돈으로 인해서 제한이 크게 된다. 그러니 더 일을 해야 한다. 돈을 벌어야 그 시간들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무엇보다도 돈이 많은 사람이 부럽게 된다. 그 돈만 있으면 자신의 여유 시간을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주변에서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 부동산으로 돈을 번 사람, 요즘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을 보면 그냥 불행해지고 만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표현하지만, 결국 그냥 질투이다.

 

혼자서 호미와 칼을 만들어 팔던 대장장이는 비록 가난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살 수 있었다. 설령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진 대장장이가 있었다고 해도 그 사람만 질투하고 살면 되었다. 하지만 칼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영업사원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질투 대상이 된다. 모두 똑같이 돈을 벌려고 회사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칼을 만드는 기술이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얼만큼 벌었느냐가 비교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미래로 갈 수록 얼마나 많은 문명의 이기들이 인간의 편의성을 높여지고 효율성을 극대화 시켜줄지 모르겠다.

 

때가 되면 마트에서 필요한 생필품들이 자동으로 배달되어 올지도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개인 스케쥴러 시스템이 모든 하루 계획이 정해주고 사람들은 그저 다 해내기만 하면 될지 모른다.

 

또한 우리는 언젠가는 직접 사람들을 만날 필요도 없는 시대에 살지도 모른다. 이동이란 과정의 비효율성을 없애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꿈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질까? 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량이 부족하고, 그러면 자동으로 몸을 운동시켜주는 기계를 만들어서 힘들지 않게 운동을 하는 방법을 찾기도 할 것이다. 땀 흘리고, 힘들게 운동하는 시대도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역사 속에서 배우면서,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고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마치 지금 사람들이 몇 백년 전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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