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서

2. 외면받은 두려움

아이루다 2018. 2. 13. 08:22

 

::두려움에 대한 적응::

 

일반적으로 어떤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더 큰 두려움이에요. 하지만 그 더 큰 두려움이 언제나 해결책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죠. 왜냐하면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거든요.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적응' 이에요.

 

사람들이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사는 이유는, 몸이 아픈 것이 두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쉬지 않고 운동을 하려고 해요.

 

하지만 어떤 어떤 이유로 인해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여기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뉘어요.

 

하나는 어떻게든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노력하는 경우에요. 기존에 운동을 했던 이유가 바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으니, 조금이라도 여건이 된다면 언제라도 다시 운동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서서히 포기해 가는 것이에요. 처음엔 운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인해 걱정이 되긴 하겠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크게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다시 하려니 귀찮기도 하고, 딱히 재미가 있지도 않으니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적응의 과정이죠.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이미 적응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많아요. 그래서 매일 TV나 신문이나 기타 여러 매체에서 운동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떠드는데도 불구하고 운동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이에요. 심지어 담배를 피우면 폐가 어떻게 된다는 사진을 보면서도 그것에 적응을 해요.

 

사실 사람에게 있어서 건강을 잃는 것은 매우 직접적인 두려움이에요. 그럼에도 이미 자신의 몸에 적응된 사람들은 오히려 힘들게 무엇인가를 하고 사느니, 그냥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겠다는 식으로 반응하기도 해요. 완벽히 적응된 상태이죠.

 

살이 찐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살이 쪘을 때 본인이 받게 될 차별과 실제적인 건강 문제가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살이 찐 몸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딱히 살을 빼려고 하지 않아요. 아니, 그럴 마음은 있지만 그것이 살을 뺄 때 감당해야 할 고통스러움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 넘지 못하죠.

 

이때는 살이 찐 상태에 대한 두려움은 적응을 했고, 살을 뺄 때 감당해야 할 두려움이 더 큰 두려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나는 것이에요. 하지만 마른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안되기도 하죠.

 

사람들이 경험하는 두려움의 종류는 엄청나게 많죠. 그런데 이 수 많은 두려움에 대해서 사람마다 각자 적응할 수 있는 두려움의 대상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요. 그래서 누군가는 자신의 집을 매일 청소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한 달 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달 동안 청소를 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사람도, 냉장고에 음식이 떨어지면 두려움을 느껴져서 춥고 어두운 밤이라도 밖에 나가서 먹을 것을 사올 수는 있어요. 반대로 매일 청소를 하는 사람은 냉장고에 음식이 떨어져도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있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적응한 두려움에 대해서 스스로 인식하지는 못해요. , 자신이 어떤 두려움에 적응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신은 그런 것들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이죠.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운동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살이 찐 사람은 살을 빼는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죠. 청소를 하지 않는 사람은 청소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고, 먹을 것을 사오지 않는 사람은 먹을 것보다 다른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어떤 식으로든 적응이 될 수 있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그것이 적응이 되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점을 모르고 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적응'은 그 존재감이 아주 희미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만약 인간에게 이런 두려움에 적응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멸종했을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적응되지 못한 두려움은 반드시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하게 되거든요.

 

예를 들어서 자신이 현재 운동을 안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서 끝없이 두려움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람은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죽을 수 밖에 없어요. 매일 도로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계속해서 느끼게 되면 스트레스로 인해 아예 운전을 할 수 없게 돼요.

 

이렇듯 적응은 인간이 두려움에 맞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필요한 능력이에요.

 

::두려움의 망각::

 

두 번째로 두려움을 처리 방법은 바로 '무시'에요. 그래서 마치 두려움 자체가 없는 듯 굴죠.

 

이것은 일반적으로 다른 곳에 집중해서자신이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 방법이에요. 앞에서 설명한 적응은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반면, 이 과정은 어느 정도 의도적이 면이 있어요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의 당사자의 생각일 뿐이고, 결국 이 역시도 무의식적으로 이뤄져요.

 

이것은 마치 징그러운 것을 보면,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리는 것과 같거든요.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종류의 두려움을 느껴지면 가장 먼저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잊는 것이에요, 그것에 대해서 가능하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술을 마시는 일이죠. 머리가 멍해지면서 사고 능력을 잃거든요. 이것보다 더 강력한 방법이 바로 마약이에요. 마약은 아예 머리를 환상 속에 빠뜨리게 때문에, 두려움 자체를 완전히 잊을 수 있어요. 하지만 깨어날 때 감당해야 할 두려움은 결국 그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고 말죠.

 

이와 비슷한 효과를 갖는 방법이 바로 집중과 몰입이에요. 게임, 영화, 친구와의 만남, TV, 독서, 취미생활 등등 뭔가에 집중하거나 몰입할 수 있다면 두려움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더군다나 이 방법은 술이나 마약과 같은 것들을 통해 강제적으로 사고력을 떨어뜨리는 방법에 비해 훨씬 더 나아요. 후유증도 거의 없고, 오히려 삶의 활력이 생기거든요.

 

사람들이 집중과 몰입을 경험할 때 스트레스가 풀려요.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잠시나마 완전히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더해서 그런 경험을 할 때 뭔가 하나씩 이뤄내거든요. 그리고 뭔가를 이뤄낸다는 것은 자신이 가진 두려움의 총량을 줄여주는데 있어서 아주 큰 역할을 해요.

 

그래서 선택할 수는 없지만, 적응보다는 망각이 나아요. 적응은 그야말로 서서히 두려움에 젖어가는 것을 의미하거든요그것은 마치 천천히 끓는 물에 들어간 개구리의 운명처럼 될 가능성이 높아요.

 

어떤 두려움이든 일단 한번 적응이 되면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기가 아주 어려워요. 하지만 망각은 망각의 상태에서 빠져 나옴과 동시에 두려움이 생생하게 살아나요. 그러니 탈출할 의지력을 가질 수 있죠.

 

하지만 모든 적응이 바로 망각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그 어떤 두려움도 오랫동안 망각되면 결국 적응될 수 밖에 없는 것이에요.

 

 

::두려움에 대한 비난::

 

두려움을 해결하는 흔한 방법으로 적응이나 망각은 그나마 좋은 수단이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누구나 그럴 수는 없다는 점이에요.

 

특히나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더 그래요.

 

눈 앞에 이빨을 드러낸 늑대무리가 있을 때, 거기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모른 척 한다고 해서 그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거든요. 적응이나 망각은 당장의 해결책이 아닌, 일종의 차선의 회피책이라고 봐야죠.

 

그래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객관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아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을 자신이 느낀 두려움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이때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 바로 '비난' 혹은 '비판' 이에요.

 

, 두려움의 대상을 자신이 가진 능력,  이성적, 논리적, 객관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죠. , 사실 늑대의 이빨을 비판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두려움이 늑대의 이빨처럼 구체적이지는 않죠. 사실 대부분은 그저 가능성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 많은 두려움이 상황에 따라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문제인 셈이죠.

 

차를 타서 운전을 할 때, 차선을 잘 지키지 않고 난폭하게 모는 차를 만나게 되면 일단은 두려움이 생겨요. 그 차가 자신의 차선으로 갑자기 들어오게 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요.

 

이때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방어운전이겠죠. , 해당 차량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든가, 그것이 힘들면 그 차량의 움직임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운전을 해야 해요.

 

이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단 비난과 욕을 해요. 왜 저따위로 운전을 하냐고 하면서 화를 내죠. , 그럴 수 있어요. 욕을 하면서도 방어운전만 할 수 있다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지금 똑바로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사고가 나면 무조건 상대 차량의 잘못이다, 라고 하면서 전혀 방어운전을 하려 하지 않아요. 자신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으니까요.

 

일단 그 말은 맞아요. 잘못한 것은 없어요. 차선 잘 지키고, 신호도 잘 지키니까요. 아주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죠. 그런데 하나를 잊었어요. 왜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이에요.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래야 사고가 안 나기 때문이죠. , 질서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의 싸움이 아니에요. 생과 사에 관련된 것이죠.

 

그럼에도 나는 떳떳하니까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요. 왜 그러냐고요?

 

상대 차의 그런 난폭한 운전에 두려움을 느껴서 신경 쓰면서 조심하면, 마치 그것을 자신이 패배한 듯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 그것을 일종의 승부로 보고 결국 자존심으로 버티는 것이죠누군가 자신에게 주먹을 치켜들었는데, 절대로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는 듯 느끼는 것과 비슷해요.

 

그것은 또 하나의 두려움이에요. 한번 지면, 계속 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죠그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상대 차량의 난폭운전을 피하고 경계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상대를 욕하면서 버티는 것이죠.

 

그리고는 운 좋게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나가게 되면 자신은 상대 차량의 난폭운전으로부터 발생하는 두려움을 이겨냈다고 믿게 돼요.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아니에요. 모든 의지는 두려움에서 나온다고 했던 말, 기억하시죠? 이 경우도 그래요. 상대의 난폭운전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피하지 않는 힘은 또 다른 더 큰 두려움이 의지력으로 변한 것이에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의지로 변해서 그 자리에 버티게 한 것이죠.

 

잘 생각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런 경우는 참으로 많아요.

 

사람들 모임에서 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에 대한 두려움이 자극되면 돈을 비판해요. 논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말할 능력이 되니,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죠. 자신이 아는 모든 사례를 다 끄집어 내어서 돈이 끼치는 악영향을 설명해요. 유산 분쟁, 살인, 탐욕, 이기주의 등등 넘쳐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의 가치가 사라질까요? 돈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까요? 절대로 아니죠.

 

사람들 모임에서 해외여행을 간 이야기가 나와서 돈이 없어서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거나 혹은 용기가 없어서 해외여행을 한번도 가지 못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져요. 하지만 부정하죠. 그리고는 해외여행이 가진 문제점을 지적해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이 여행의 좋은 점을 말하면서 반박을 하면 그때는 한국의 여행수지 적자 문제를 꺼내 들어요.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많이 가서 얼마나 많은 외화가 낭비되고 있는지 또한 국내 여행지 사람들은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지 연설을 하죠.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로 외화낭비 문제나 혹은 국내 관광지 상인들의 경제적 어려움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에요. 그저 자신의 두려움의 대상을 비난하기 위해서 논리적인 근거로써 이용한 것뿐이죠.

 

무서움을 많이 느끼는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에요. 그러니 다른 사람을 자주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은 그만큼이나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되죠.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욕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이빨을 드러내고 입맛을 다시는 늑대 무리와 같은 눈 앞에 존재하는 두려움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가 없죠.

 

 

::두려움을 위로 받기::

 

적응을 했거나 망각을 하고 살았던 두려움이라고 해도, 어떨 때 그것이 아주 가끔 눈 앞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있어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우죠.

 

평소에 건강에 대해서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자신과 비슷하게 살던 친한 친구가 암에 걸려서 죽은 경험을 할 때 그래요. 그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죠. 물론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적응을 하거나 망각을 하겠지만요. , 이런 경우 조차도 비난으로 넘기려는 사람도 있어요. 인구도 많아 죽겠는데뭘 그리 오래 살려고 운동을 하려고 하냐고 하죠.

 

아무튼 삶을 살아가다 보면 도저히 적응도 안되고, 망각도 할 수 없으며, 도저히 비판도 안 되는 것들이 생겨나요.

 

자신의 실수로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든가, 차를 몰고 가다가 사람을 쳤다든가, 사기를 당해서 큰 돈을 잃었다든가, 부부갈등으로 인해 이혼을 하거나 혹은 아이의 정신적 문제가 심각해졌다든가 하는 문제들이죠.

 

이런 문제들은 적응도, 망각도, 비난도 통하지 않아요.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회피할 수 없죠. 그런 문제들은 반드시 해결을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힘들게 하긴 해요하지만 그 동안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 앞에서 제대로 서 본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무척 큰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위로'에요. 지금은 힘들어도 곧 괜찮아 질 것이란 말을 듣고 싶어하죠. 다른 더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죠.

 

물론 그것을 직접적으로 요청해서 듣는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가진 공감능력을 이용해서 상대가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죠.

 

이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두려움 앞에 섰을 때, 다른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런 위로를 통해서 두려움 앞에 버틸 수 있으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줘요. 그래서 결국 이겨낼 수 있죠.

 

그래서 위로는 회피나 비난과는 달라요. 어떤 식으로든 그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요. 왜냐하면 위로를 받는 순간에 두려움이 잠시 줄어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결에 힘을 쏟기 보다는 끝없는 위로를 찾아 다니게 돼요.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죠.

 

, 해결할 생각보다 그저 위로를 받는 것을 통해서 두려움 자체를 잊으려고 해요. 일종의 망각의 수단으로 위로를 이용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위로를 받을 때 최대한의 효과를 얻고자 해요.

 

자신의 잘못으로 야기된 두려움을 설명할 때, 자신의 잘못을 최소화 시키고 상대의 잘못은 최대한 부풀리죠.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어떤 식으로든 제 삼자의 위로를 얻어내죠. 그런데 그러고 나면 점점 떳떳해져요.

 

회사에 손해를 입힌 실수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회사 전체의 문제이고, 자신의 차로 사람을 친 것도 상대가 한눈을 팔아서 그런 것이라고 주장해요. 부부갈등으로 인해 이혼을 하거나 아이에게 정신적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무조건 상대 배우자의 책임이 되어 버리고 말죠.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통해 자신을 쉽게 용서하고는 두려움 자체를 없애려고 해요. 그 무엇보다도 너무도 두려우니까요. 일단 어떤 식으로든 넘기고 싶은 것이죠.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최대한 뻔뻔해지는 것이 과연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힘들겠죠. 위로는 두려움 앞에 서 있을 정도까지만 받아야 해요. 거기에서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위로를 받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당장 두려움을 덜 느끼고 싶은 사람들은 그 한계를 쉽게 벗어나요.

 

그래서 결국 수 많은 위로가 난무하게 되고, 거기엔 그 어떤 반성도 존재하지 않게 되죠.

 

 

 

 

 


'두려움을 넘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행복하게 사는 법  (0) 2018.02.26
5. 불행의 이유들  (0) 2018.02.23
4. 두려움과 행복  (0) 2018.02.20
3. 모든 것의 궁극적 목표, 행복  (0) 2018.02.18
1. 두려움의 힘  (0) 2018.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