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넘어서

1. 두려움의 힘

아이루다 2018. 2. 10. 07:58

 

::의지력은 어떻게 생겨날까::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하는 분들이 꽤나 많죠. 특히 금연은 단골소재 중 하나에요비슷하게 운동 시작하기, 자격증 따기, 가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는 것 등등, 예전부터 하고 싶었거나 혹은 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을 올해만큼은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새해가 되면 품곤 하죠.

 

그런데 슬프게도 작심삼일이란 말도 있어요. 분명히 마음을 먹었는데, 삼일 만에 포기한다는 뜻이죠그리고 이런 경우 또한 꽤나 많아요.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이나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죠.

 

물론 꼭 삼 일만은 아닐 지도 몰라요. 한 달까지는 견디는 사람도 있고, 그 이상을 버티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연말이 되면 결국 똑같죠. 삼 일이든, 한 달이든 중간에 그만뒀다는 사실은 동일하니까요.

 

그래서 연말이 되면 자신의 박약한 의지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까지 해요. 하지만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기에 멀리 동해안까지 차로 달려서, 붉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본 후 새로운 결심을 굳게 마음 먹기도 하죠.

 

비록 많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 먹은 것들을 제대로 해내기도 해요. 분명히 그 비율은 적지만, 확실한 사실이죠. 그래서 실제로 금연을 하기도 하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기도 해요. 꼭 따고 싶었던 자격증을 따기도 하고,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를 다녀오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포기한 분들은 더욱 더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갖게 될 수 밖에 없죠

 

, 그 자체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에요.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들어요. 왜 누군가는 성공하고, 왜 누군가는 실패하게 될까요? 도대체 이런 차이는 왜 생겨나게 될까요?

 

그것을 성격의 문제라고 혹은 의지의 문제라고 대답하면 매우 단순하지만, 사실 여기엔 사람들이 평소엔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한가지 아주 중요한 원인이 존재해요. 그리고 그것의 영향이 거의 절대적이죠.

 

 

::모든 의지력은 바로 두려움에서 나온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이에요. 왜 갑자기 두려움이란 단어가 나오는지 궁금하기도 할 것이에요.

 

생각을 좀 해보죠사람에게 있어서 의지라는 것이 어떻게 해야 생겨날까요? , 무엇인가를 정말로 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떻게 해서 생겨날까요?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반드시 그것을 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져요. 그리고 이것은 절실함으로 이어져서 결국 의지력으로 발휘가 되죠. 이것이 바로 의지력의 진정한 정체에요.

 

예를 들어서 금연이나 운동을 하는 것 등은 나중엔 당연히 좋지만일단 시작하는 것은 무척 힘들어요. 하지만 하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무척 두렵죠. 특히 평소엔 잊고 지내다가 폐암이 걸린 사람의 폐 사진을 보거나, 주변에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군가 갑자기 운동을 시작하면 괜히 더 불안해지게 돼요. 이 불안함이 바로 두려움이죠.

  

이렇게 해야 할 일뿐만 아니라 하고 싶어하는 것들도 비슷해요.

 

처음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도, 가려고 마음 먹는 것 자체는 꽤나 힘든 결정이이죠. 돈도 준비해야 하고, 시간도 비워둬야 하니까요. 더군다나 여권 준비, 여행 상품 계약 등등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여러 가지 해야 하니 어떤 식으로든 용기을 내야 해요.

 

그럼에도 그것을 하지 못했을 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들을 훨씬 더 두렵기 때문에 결국엔 할 수 밖에 없죠. 평생 해외여행 한번도 가보지 못하고 죽도록 일만 하다가 죽어야 하는 자신의 비참한 삶에 대한 두려움이요.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의 의지력으로 뭔가를 할 때나 혹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것이 좀처럼 두려움과 잘 연관이 되질 않아요. 

 

그 이유는 바로, 일단 시작을 해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두려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서 하니까 그래요. 금연을 했을 때 행복, 운동을 할 때 행복, 여행을 다니는 순간의 행복 등이 바로 그것이에요. 최초의 의지력을 갖게 했던 두려움이 희미해지고 본격적으로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두려움을 느꼈다는 생각 자체를 잊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머리 속에서 자신이 그것을 한 이유가 행복해서 한 것이라고 믿게 돼요. 당연해요. 그 순간에 생각하면 그것이 진실이니까요. 하지만 결국엔 착각이에요. 

 

물론 어떤 것들은 처음부터 행복을 기대하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우리는 보통 그것을 의지라고 표현하지는 않죠. 욕망이라고 해요. 하지만 욕망도 역시 두려움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욕망 자체가 바로 두려움에서 나오게 되니까요

 

이 연결고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두려움과 욕망 혹은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믿는 것들과의 관계는 나중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게요.

 

모든 의지는 일단 두려움에서 나와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요.

 

그러니까 강한 의지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남다른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에요.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의지력이 발휘되는 순간::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목을 칼로 찌르는 강도의 손을 잡고 버티고 있는 사람의 의지력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요그 누가 이 사람이 가진, 반드시 칼을 막겠다는 의지를 뛰어 넘을 수 있을까요? 사실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식의 목숨을 지켜야 하는 부모의 의지력이죠.

 

그래서 자식이 무거운 수레에 깔려서 죽게 생겼을 때, 엄마가 평소엔 결코 들을 수 없었던 힘을 발휘해서 자식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

 

이 이야기가 비록 지어낸 것이라고 해도, 실제로 과학적으로는 가능해요.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근력은 평소엔 자신이 낼 수 있는 힘의 50%정도 밖에 쓰질 않거든요. 그 이상 쓰면 뼈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한계를 정한 것이죠.


실제로 커다란 바위에 다리가 깔린 사람이 스스로 그 바위를 들고 빠져 나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로 인해서 그 사람은 두 손의 뼈가 모두 부러지고 말았죠. 이런 식으로 커다란 위기에 닥치면 인간의 몸은 그 한계점을 풀어 버릴 수 있어요.

 

담배를 끊지 못하면 죽을 것 같다든가, 운동을 하지 못하면 몸이 많이 안 좋아 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느껴지기에 금연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죠 어떤 자격증을 따놓지 못하면 앞으로 삶이 위험해질 것 같다든지,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한번도 못 가면 삶이 정말로 비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의지력이 아주 바닥으로 보이는 분들 조차도 정작 실제적인 두려움이 닥치면 생각보다 커다란 의지력을 발휘하기도 해요.

 

 

::화가 베이먼의 의지력::

 

『매일 술만 마시면서 입으로만 명작을 남기겠다고 한 화가 베이먼, 그는 자신의 윗 층에 사는 또 다른 화가 존시가 죽음을 앞에 두고 창밖에 있는 담쟁이의 잎이 다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날 밤에 그는 존시의 창문 밖에 있는 담에 실물과 똑같은 담쟁이 잎을 하나 그리고는 자신은 결국 폐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하지만 존시는 결코 떨어지지 않는 담쟁이 잎을 통해 삶의 희망을 얻어서 살아나게 된다. 그러자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동료인 슈는 그 담쟁이 잎을 베이먼이 그린 최고의 명작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유명한 단편소설 작가 오 헨리가 지은 '마지막 잎새'의 내용이에요. 평소엔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만 마시던, 그래서 아무런 의지도 없어 보이던 늙은 화가 베이먼이 있었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무런 작품도 남기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그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발현하죠.

 

매년 담배를 끊고자 했지만 결국 끊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폐렴이 걸린 것을 아는 순간 거짓말처럼 담배를 끊을 수 있어요.

 

죽을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한 엄마는, 좋은 말로 엄마의 무한대의 사랑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지만, 이 힘의 진정한 정체는 바로 아이를 잃었을 때 엄마가 경험해야 할 고통에 대한 설명 불가능한 두려움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든,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감당해야 할 고통을 넘어서는 두려움을 갖게 되면 반드시 의지라는 것이 생겨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결국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의지력이 강해 보이는 사람들::

 

보통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의지력이 강한 편으로 보여요. 왜냐하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알기 때문에 그래요. 원래 지식 자체가 그런 역할을 해요, 어떤 대상에 대해서 좀 더 제대로 파악하게 해주고, 그것과 연관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될 수 있게 해주죠. 그런데 그것들은 대부분 걱정의 대상이죠.

 

예를 들어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해 해야 나중에 먹고 살기가 편하다는 것을 아는 것도 일종의 지식이에요. 도심의 아이들은 그 지식을 자주 접하지만, 시골의 아이들은 덜 접하기 때문에 공부도 덜하고 경쟁도 훨씬 약한 편이죠.

 

이런 식으로 알면 알수록 점점 더 걱정이 늘어나요. 그래서 아는 것이 병이라고 하죠. 이런 식으로 지식은 두려움을 커지게 만들어요. 그러면 왜 지식을 쌓아야 할까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요. 하나는 닥쳐 올 문제들을 미리 예측해서 두려움을 가지는 목적이죠. 그래야 의지력이 생겨서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요. 둘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목적이죠. 보통 지식을 담은 책들은 바로 그 책을 쓴 사람이 겪은 경험이거든요. , 책을 잘 참고하면 괜히 헤맬 필요가 없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낼 수 있어요.

 

반대로 머리가 나쁜 사람들은 지식을 쌓는 일이 어렵기 때문에 미래에 닥칠 문제를 쉽게 예상하지 못해요. 그러니 당장 두려움이 생겨나질 않고, 문제가 생겨나도 해결할 지식이 없으니 헤매게 되죠

 

만약 사람들이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산다면 삶이 얼마나 활기차질까요? 얼마나 오늘을 행복하기 위해 살려고 노력할까요? 상상도 하기 힘들죠. 그래서 거의 죽음 가까이 가 본 경험을 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라' 에요.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왜 오늘이 내일을 위해 희생되어야 할까를 묻는 것이죠.


하지만 이 역시도 어리석은 소리에요. 언제라도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지 않는 한 말이에요. 즉, 오늘을 온전히 오늘을 위해 쓸 때는 앞으로 사는 날에 대한 기대가 없을 때 뿐이에요. 그런데 누가 그럴 수 있겠어요.

 

두려움이 가진 힘은 막강해요. 오늘 하루 따뜻한 잠자리에 나와 회사를 가도록 만들고, 들기 힘든 무게를 지닌 아령을 들게 만들어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게 만들고, 먹고 싶은 것을 참게 만들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지금이 아닌, 미래를 위해서 준비되는 과정이에요.

 

그러니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미래를 위해서 더 많은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죠.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결::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에요. 의지라는 것이 오직 단순히 이런 식으로만 결정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언제나 두려움이 그대로 의지력으로 변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의지력 자체도 두려움의 대상이라서 그래요. 공부하기 얼마나 힘들어요. 운동하기 얼마나 힘들어요. 이런 식으로 의지력 자체도 고통이에요. 그러니까 두려운 것이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죠.

 

,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히 건강할 때 일부로 운동을 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시험이 한참 멀었는데 누가 공부를 하려고 하겠어요당장 건강에 문제가 느껴지거나,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와야 그것이 의지로 변할 수 있죠.

 

물론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그것은 바로 눈 앞에 있는 두려움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서 두려움 자체를 줄이는 단계로 들어 섰을 때 그럴 수 있어요. , 어떤 것을 할 때 행복을 느끼게 되면 꼭 그렇게 코너에 몰리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몸을 멋지게 가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이 좋아서 공부를 하는 경우에요. 하지만 이 역시도 그 시작은 모두 두려움이었어요.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때 절실하게 돼요. 그리고 그 절실함이 바로 의지력이 되는 것이고요. 하지만 의지력를 가지고 뭔가를 하는 것 자체도 매우 힘들기 때문에 또 다른 두려움이 돼요. 그래서 사람들의 삶은 언제나 두려움과 두려움의 대결이 되죠.

 

담배를 피웠을 때 감당해야 할 두려움과 담배를 끊을 때 느껴야 할 고통의 두려움이 싸우죠. 이때 누가 더 절실하냐에 따라서 결론이 나요.

 

 

::두려움을 상대하는 또 다른 방법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이렇게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만약 그저 단순히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었다면 아마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불굴의 의지력을 가졌을 것이에요.

 

담배를 피울 때보다 담배를 끊었을 때가 훨씬 좋거든요. 운동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 할 때가 훨씬 더 좋거든요. 공부를 하고 있지 않을 때보다 열심히 한 것이 훨씬 더 좋거든요.

 

그것들을 해낸 사람들은 모두 다 동일하게 말을 해요. 이것은 마치 바로 눈 앞에 많은 돈이 있고, 손만 뻗으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손을 뻗지 않죠.

  

도대체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느낀 두려움을 절실함에 의한 의지력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두려움을 각각 적응, 망각, 무시, 비난, 회피, 위로의 과정으로 처리하는 것이에요. 다들 익숙하시죠? 그래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의지력이 아닌 방법으로 해결하는 나름대로의 비법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모두 다 가지고 있죠.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써요. 물론 선호하는 것은 따로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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