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인정받기를 위한 두 가지 통로

아이루다 2017. 11. 15. 08:45

 

사람의 욕망은 참 다양한 편이다. 이런 다양한 욕망들은 그것이 충족될 때마다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경험하는 행복도 다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정말로 중요한 조건이 바로 욕망이다. 일반적으로 욕망은 나쁜 것이란 인식이 많이 있지만, 사실 욕망은 그것이 과할 때만 문제일 뿐, 일반적인 수준이라면 있는 것이 없는 것에 비해서 훨씬 낫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진 욕망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망들이 있다그 후보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

 

인정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통해 이뤄지는 과정이다. 또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원한다남자이거나 여자나 상관없이, 돈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어린아이에서부터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까지, 모두 그렇다.

 

하지만 언뜻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직장 내에서의 인정 같은 경우는 필요하다. 그래야 진급도 하고 월급도 올라갈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학창시절을 떠올려보자. 그 당시 친구들로부터 받은 인정은 도대체 어떤 이득이 있을까? 또한 그것은 단지 교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각종 사교모임에서도 동일하다. 심한 경우에는 그저 수영을 배우러 갔을 때나, 기타와 같은 악기를 배우러 갔을 때도 인정에 대한 욕구는 여전하다.

 

거기에 같이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 그것이 그렇게 좋다. 사실 그때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전혀 과한 표현이 아닐 정도이다.

 

생계와 관련된, 직장 내에서의 인정이나 학계에서의 인정 등은 분명히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런데 그저 친목의 목적이나 혹은 운동을 하거나 뭔가를 배우러 간 장소에서조차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왜 발생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각종 친목 모임 내에서의 인정에 대해서 조금 깊게 살펴보면 전혀 이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모임이든지 인정을 받게 되면 영향력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영향력은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예로, 친목 모임의 장소를 정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회를 싫어한다면 횟집이 아닌 고깃집으로 장소를 정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이 정도의 영향력이라면 아주 큰 것이긴 하다. 보통은 모임의 대표나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 작은 이득들이 생기는 것은 맞으나, 사실 그것만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느끼는 커다란 행복에 대해서 설명하기는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오래 전 동굴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의 삶을 떠올려보면 이것에 대해서 이해가 간다. 지금은 문명이 발달해서 혼자서도 어느 정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혼자 사는 것은 죽음과 동일했던 시대였다.

 

, 혼자서는 약육강식의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은 곧 바로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주 오래된 일도 아니다. 조선시대만 해도 동네에서 쫓겨나게 되면 삶이 무척 고달파졌다. 지금이야 서울에서 제주도까지도 이사를 가고 오는 시대이지만, 당시엔 비록 옆 동네라도 가서 정 붙이고 살기가 쉽지 않았던 시대였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심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다른 이들로부터의 인정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는 바로 '생존' 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정을 받을 때마다 깊은 안도를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만큼이나 큰 행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인정에 관해서 한가지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동일하게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인정에 대한 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이 있고, 거의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정에 대한 욕구가 강한 편이다. 그나마 약해 보이는 이유는, 인정을 받을만한 기회가 없어서 스스로 포기한 상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젊은 때는 그렇게 살다가 나이를 먹고 새로운 기회가 오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사람이 변하는 경우도 꽤나 있다.

 

, 그런 사람들은 인정의 욕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기회가 없어서 욕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 뿐이다. 슬프지만,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소수이지만, 이런 사람들 말고도 진짜로 인정에 대한 욕구가 적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보면 자기 만족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인간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쫓겨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것일까? 요즘 시대엔 그런 과거의 감정은 불필요하니 없어져 버린 것일까?

 

그랬으면 좋겠지만그렇지 않다. 사실 자기 만족형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그들조차도 모르는 슬픈 과거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좌절이다.

 

어린 시절의 좌절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만들어 진다남들보다 약한 몸, 작은 키,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 발달 장애 등등, 대충 어떤 식으로든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뒤쳐진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 중에서 커가면서 자신이 타고난 능력이 뒤늦게 발휘되는 경우가 있다. , 자신이 어린 시절에 가진 단점이 어른이 되면서 다른 능력으로 상쇄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 중에서 특히 두뇌능력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서 키가 작았으나 공부를 잘한다든지, 말을 늦게 배웠지만 남다른 창의력을 가졌다든지 하는 등이 바로 그런 것들 중에 하나이다.

 

어린 시절엔 신체능력 발달이나 인지능력 발달 상태가 남들만큼도 못했기에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두뇌능력이 중요해지면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극복하게 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니 어린 시절에 가졌던 두려움이 해소되면서 여분으로 행복해지는 것이다.


0에서 1이 된 사람은 1만큼 행복하지만 -10에서 0이 된 사람은 비록 최종값이 0이라도 10만큼 행복하다.

 

또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자신이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느끼게 된다. , 다른 사람들의 인정보다 스스로의 인정만으로 많은 행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들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요로 하긴 한다. 그 욕구가 이미 스스로의 인정에 의해서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라서 상대적으로 훨씬 작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도 아니고, 사실 다른 사람들과 많이 엮이면 삶이 좀 고달파지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스스로 인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삶이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나아 보인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종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에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는지 상관없이, 그저 자신에 대한 만족감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홀로 살아갈 수 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장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그 필요성 때문에 비록 힘들지만 꾸준히 서로를 만나려고 하게 된다. 그러니 상처를 받으면서도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결국 이런 식으로 반 강제적이긴 하지만, 꾸준한 교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능력인 공감능력이 발달한다.

 

원래 공감은 말없는 대화이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낼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이심전심이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발달하지 못하면 자꾸 실수를 하게 된다. 비록 의도는 진심이더라도 상대가 듣기엔 기분 나쁜 말을 할 수도 있다. , 무슨 말을 해야 하고 ,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부터가 무척 힘들다. 그러니 대화 자체가 힘들다.

 

그리고 이런 특징은 인간관계를 맺는데 있어서 아주 큰 난관이 되고 만다.

 

아무리 자기 인정을 통해 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는 필요하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사람들과 기본적인 관계를 맺을 수는 있지만, 결코 깊은 관계까지로는 이어지지 못한다. , 모든 관계가 그저 겉으로 어울리는 관계에 머무른다. 심지어 부부나 자식 사이에서도 그럴 수 있다.

 

원래 누군가와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공감능력이 필요하다깊은 관계라는 말 자체가 말이 없이도 서로 통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감능력이 부족하면, 상대가 구체적으로 말을 해주지 않으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엉뚱한 것을 한다. 그러니 상대는 무척 답답해 한다.

 

하지만 공감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상대가 왜 답답해 하는지조차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서 진심으로 대했는데도 상대가 답답해 하니, 그 자신도 답답하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이런 상황이니 결국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려고 한다. 물론 아주 좋은 의도이다. 하지만 상대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대는 그 노력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부담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이것은 자꾸 어긋난 두 손과 같다. 서로 부딪혀야 소리가 나는데, 서로 허공을 가르고 만다. 깊은 관계가 되려먼 충만함을 경험해야 하는데, 자꾸 허무함이 느껴진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듯 하고, 상대가 자신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그러니 따로 일이 없으면 만날 필요를 못 느끼는 관계가 되고 만다.

 

물론 이것을 안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얽매여서 삶을 망치는 경우도 많으니 오히려 이런 자기 인정으로 충분히 만족한 사람들이 더 나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이 가진 특징의 장점과 단점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는 있다. 이것이 잘못될 경우 장점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다가 결국 큰 낭패를 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겨우 홀로 설 수 있다. 그래야 삶이 다른 사람들로 인해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 인정으로부터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부족한 공감능력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결국 평생 다른 사람과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나마 친구들은 그렇다고 해도 가족간에도 그렇게 지내고 말게 된다. 이것은 꽤나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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