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두려움과 지루함 - 2

아이루다 2017. 7. 12. 10:55


[1부에서 계속]


두려움은 두려움의 대상을 처리할 때만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지루함은 조금 다르다. 이것은 지루함이 가진 고유한 특징,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도 미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재의 어떤 행동이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즉, 지루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처럼 확실한 정답이 없다.

 

그래서 지루함을 떨치는 방법으로는 사람마다 아주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가장 확실한 것은 바로 정말로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돈을 열심히 벌거나, 공부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 된다. 이런 행동들은 대부분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실천하기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대안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하게 되면 현재보다 미래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것 같은 것들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나아지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가능성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취미 생활을 한다. 취미 생활은 성취감을 얻게 만드는 좋은 수단이다. 또한 많은 스포츠를 즐기면서 승부를 즐긴다. 직접 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스포츠 팀을 정해 놓고 응원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다른 사람들과 만난다. 이런 행동들은 명시적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미래가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이 역시도 문제가 있다. 잘하는 것이 있어야 취미도 즐기고, 승부도 즐긴다. 사람을 만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어야 한다이것은 돈을 버는 것이나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쉽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가장 쉬운 방법이 하나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지루함을 없애는 방법으로 이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바로 시간을 때워버리는 것이다. ,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몰입을 하여서 지루함을 느끼는 시간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원래 본질적으로 지루함은 현재의 두려움이 다 사라진 시간, 즉 더 이상 자신의 시간을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쓸 필요가 없을 때 느껴진다. , 지겨움은 시간이 남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 그냥 남는 시간만 없애면 된다.

 

그래서 TV 만 봐도 해결이 되고, 친구들과 채팅을 하거나 자신의 SNS를 관리하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간만 보낼 수 있다면 하면 된다. 그 시간이 의미있을 필요가 전혀 없다. 단지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루하지 않으면 된다. 만약 TV를 보는데 지루하다면 실패한 것이다. 지인의 페북을 보는데 지루함을 느꼈다면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쉬운 방법은 치명적인 문제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원인은 해결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루함 자체를 잊은 것이기에 결국 지루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방법 중에서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까?

 

사실 답은 없다. 미래는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늘의 노력이 내일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어쩌면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지루함을 잊기만 했을 뿐, 전혀 해결하지 않았기에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의욕감소로 인해 결국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고 TV 중독이나 스마트 폰 중독자가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면 첫 번째 방법이 가장 좋을까?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오늘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어도 내일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아무리 열심히 노력한 일이라고 해도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지금은 정말로 옳다고 생각한 일이 미래에도 여전히 옳을지 알 수 없고, 지금은 큰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들이 미래에도 계속 이득일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두 번째 방법이 가장 좋을까? 사실 그렇기도 하다. 그래서 삶을 행복하게 살려면 취미 생활 하나쯤은 꼭 가지고 사는 것이 좋다. 이것은 그다지 어렵지도 않고, 지루함을 그저 외면하는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자전거를 잘 탄다고, 탁구를 잘 친다고 해서 미래의 잠재적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무의식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무엇인가를 좀 더 잘하게 되거나, 승부에서 이기면 그것이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무의식의 착각을 잘 이용해야 한다.

 

가끔은 세 번째 방법처럼 그냥 지루함을 잊어먹는 것도 좋다. 그래서 놀이 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거나, 시간 보내기 용 영화를 보는 것도 좋다. 단지 어느 정도 선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게 되면, 지루함을 잊는 것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게 된다. 이 방법은 가장 쉽기 때문에 매우 유혹이 크다.

 

무엇을 해야 지루함을 없앨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 성격 등에 의해서 천차만별로 나뉜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지루함 자체를 완전히 다 없애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미래는 늘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매일 새로운 미래가 생기고 있다. , 매일 새로운 지루함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원래 잘 먹고, 잘 자고 쉬고 있으면 그것을 끝나야 맞다. 사실 그것 말고 무엇이 더 있어야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고 만족하기에 인간의 머리는 너무 좋다. 사람들은 내일뿐만이 아니라, 10년 후, 죽을 때까지에 대해서 모두 생각하고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언제나 지루함의 먹이가 되고 만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 괜찮은 일을 했다고 판단하면 우리의 무의식은 큰 보상을 준다. 그 보상의 감정이 바로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감정들이다. 즐거움, 재미, 흥분감, 만족감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상으로 받은 감정으로 인해서 우리의 모든 행동의 원인이 지루함으로 인해 시작되고 있음을 까맣게 잊고 만다. 그리고는 자신은 즐거움을 위해서 했다고 믿게 된다. 그리고 이 착각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만다.

 

이것을 좀 더 깊이 살펴보자.

 

여행을 가는 것은 매우 재미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즐긴다. 여행을 떠날 때는 많은 감정이 든다. 흥분감, 두려움, 기대감, 만족감 등등 수 많은 좋은 감정과 조금의 나쁜 감정들이 정신 없이 뒤섞인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면 그런 감정을 느낄까?

 

거기엔 낯선 장소를 갔다는 것, 새로운 것들을 본다는 것, 자신의 한계를 넓히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는 것,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다는 점, 남들에게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다는 것 등등 수 많은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

 

이것들은 모두 현재의 내 삶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된다. , 여행을 가기 전 자신과 여행을 갔다 온 후 자신을 비교하면, 여행을 갔다 온 후의 자신이 더 나아졌다고 느낀다. , 지루함의 원인인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진 상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다들 여행을 좋아하는 것이다하지만 한 번 다녀온 장소에 또 다시 여행을 가면 그 재미가 반도 못 미치게 된다. 세 번째 가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지겨움이 되돌아 온다.

 

그렇다면 게임을 하는 것은 어떨까? 게임은 누가 봐도 여행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을 하는 것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하고 있다.

 

경쟁을 하는 게임이라면 누군가를 이기는 재미가 있다. , 누군가를 이기면 이길수록 우리는 자신이 점점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있다고 믿게 된다누가 게임에서 이기는 것을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것이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가위바위보만 잘해도 자신이 우월해진다고 느끼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하지 않고 혼자 하는 게임이라면 다를까? 아니다. 그때도 결국 최고 점수를 깨는 것을 통해 동일한 감정을 느낀다. 특히나 최고 점수가 다른 사람과 공유된다면 더욱 더 그 게임에 빠지게 된다. 몇 년 전 카톡을 통해 열풍을 불었던 게임을 떠올리면 된다. 당시 다들 최고 점수를 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럼 언제 게임을 하지 않게 될까? 그것은 바로 자꾸 질 때나,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 점수를 깰 수 없을 때이다. 이때는 게임을 하는 것이 결코 즐겁지 않다. 그래서 원래 느꼈던 지겨움이 다시 돌아온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즐거움은 어떨까? 물론 우리는 이것을 상대적으로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믿긴 한다. 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은 정말로 큰 이득을 보장한다. 사실 여행보다도 훨씬 더 낫다. 사람과 잘 지내면 뭔가 좋은 것을 얻을 기회가 많다.

 

안 쓰는 물건을 얻거나, 맛난 것도 얻어 먹을 수 있다. 그리고 정보도 많이 얻는다. 운이 좋다면 직장을 소개 받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를 얻기도 한다물론 관계를 맺는 것이 귀찮거나 힘든 것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다 감안하더라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은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많이 된다. 그리고 많이 친해지면, 안정적인 삶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가족과 같은 존재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니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만큼 미래의 두려움을 잘 대비하는 것도 드물다. 그러니 사람들과의 관계를 많이 맺으면 맺을 수록 지루함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어떤 면에서 최고의 지루함 퇴치 기술이다. 문제는 사람도 오래 되면 지겨워진다는 점이다. , 그 사람에 대해 너무도 많이 알아서 이젠 별다른 기대가 느껴지지 않으면, 사람조차도 지겨워진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는 어떨까? 이것은 다를까? 그래서 더 지루해지는 것일까? 놀랍게도 우리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동작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힘, 즉 자신이 가진 어떤 영향력을 과시하는 행동이다. 그리고 이 영향력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도움이 된다. 상대가 자신이 부탁한 일을 쉽게 거절하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원하는 이유가 된다.

 

산에 오른 것은 어떨까? 에베레스트 산과 같이 높은 산에 오르는 것 말이다이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조금 재미난 특징이 있는데, 우리는 뭔가 힘든 일을 하고 나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는 점이다. 사실 정말로 그렇다.

 

이웃 사람을 아주 고생하면서 도우면 그 사람에게 미래에 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다. 아주 힘들게 산에 오르면 그것만으로 자신이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했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 지겨움을 덜 느낀다

 

반면에 동네 뒷산에 오르는 것은 아주 작은 만족감 밖에 얻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힘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힘들어야 책을 써도 잘 팔린다. 아무나 쉽게 하는 것은 책을 써봐야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다.

 

아주 다양한 종류의 취미 생활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하면 미래에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그 진짜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미래에 더 나아질 것이란 판단은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다.

 

그래서 누군가는 고가의 오디오를 사고, 누군가는 그것을 천하에 쓸데없는 돈 낭비라고 여긴다. 누군가는 매달 해외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국내도 좋은 곳 많은데 뭐하러 해외에 가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각자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뿐,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 사람마다 고유한 자신만의 가치 기준점을 가지고 있기에 다양하게 나타날 뿐, 그 내부에 똑같은 원리, 즉 지루함을 없앤다는 목적만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는 운동, 누구는 독서, 누구는 친구들과의 만남, 누구는 술, 누구는 당구, 누구는, 카메라, 누구는 좋은 집, 누구는 비싼 가방, 누구는 좋은 차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통해서 미래에 대한 걱정인 지루함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게 되면, 그것을 통해 많은 좋은 감정들을 얻게 되고, 그 상태를 행복하다고 표현한다.

 

사실 두려움과 지루함의 원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해도 행복하게 사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꼭 한가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현재 어떤 것을 가치 있다고 믿고, 그것을 할 때 행복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그 자신의 두려움이나 지루함을 없애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 사람마다 모두 서로 다른 지루함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데, 자신의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란 뜻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지루함이 느껴지는 대상이 바로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기본적으로 불확실한 상태이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도 그것이 확실한 것은 없다. 이런 특징이 사람들의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어떤 사람이 10년 동안 매일 건강을 위해 걸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TV에 나온 박사가 걷는 것이 건강에 오히려 해롭다는 말을 듣게 되면, 10년간 걸어왔던 자신의 삶이 갑자기 모두 두려움으로 치환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걷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원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TV 속의 박사들의 한 마디도 중요하고 주변 사람들의 동의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끝없이 주변에 자신이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확실한지 그리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마음을 가진 다른 사람과 결국 한 명은 걷는 것이 최고라고, 다른 한 명은 수영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서로 우기다가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겨야 하니 관심도 없는 걷기의 단점과 수영의 단점을 끄집어 내어서 서로를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서로 불안함은 가중되어 있다. 서로에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단점을 들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동의에 목말라 한다.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그 산에 오를 것인가?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왜 갔냐고, 왜 돈 낭비를 하냐고 물으면 누가 해외여행을 갈 것인가?

 

물론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그래도 할 거야'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기존의 동의가 경험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뿐이다. 처음부터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한 가치들은 그저 쓸데없는 것들이 되어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이 된다.

 

설령 동의의 경험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사라지게 되면, 우리들 자신도 거기에 맞춰서 바뀌게 된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유행' 이라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가치는, 각자마다 고유한 계산 공식에 의해서 나온 미래에 대한 투자 대상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했을 때, 우리는 지루함을 떨치고 큰 행복감을 얻는다.

 

그렇기에 누군 가에게는 가치가 있는 일이 누군 가에겐 아주 쓸데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아서 다른 사람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자신의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서 타인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사실은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먹고는,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아주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추천한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데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마음이 가는 데로 사는 것은 그저 감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것은 감정대로 살았다가 운 좋게 성공한 사람들이나 하는 조언일 뿐이다.

 

이것은 삶의 태도로써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으로 착각임에는 분명하다.


사람은 두려움을 없애면서 사는 것보다는 지루함을 없애면서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두려움이 사라진 안전함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하지만 지루함을 없앴다는 말은 미래의 불안함을 해결했다는 뜻이니 훨씬 더 강렬하게 행복할 수 있다.


지금 밥 한끼를 구한 것보다 평생 식량을 구할 방법을 알아낸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두려움과 지루함의 존재이다. 이것은 죽음이 있는 한, 영원히 해결이 불가능하다. 또한 죽음이 있기에 두려움과 지루함이 느껴지며, 그것을 해결함으로써 큰 행복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죽음 그 자체가 행복의 가장 근원적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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