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두려움과 지루함 - 1

아이루다 2017. 7. 12. 10:54

 

사람이 오래 살면 100년 정도를 산다. , 더 오래 사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요즘 시대라도 100년이면 오래 산 편에 속한다.

 

아무튼 사람은 그 시간 동안 '' 을 산다삶은 단순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다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수 많은 생각을 하고, 수 많은 판단을 하고, 수 많은 선택을 하고, 수 많은 행동을 하고, 수 많은 경험을 하고, 수 많은 기억을 한다.

 

거기엔 만족, 후회, 미련, 자랑, 추억이 있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우리가 그렇게 삶을 사는 것에는 도대체 무슨 원리가 있을까? 왜 모든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다 그런 형태의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것이 궁금하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왜 그렇게 판단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왜 그런 행동을 할까? 그래서 결국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며 또한 왜 그런 기억을 남기게 되는 것일까?

 

서로 그 내용만 다를 뿐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똑같은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면, 거기엔 뭔가 근원적인 원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지구 상에 존재하는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하나같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중력의 원리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리는 있다. 아니 원리라고 하기는 그렇고, 그 원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과 지루함이다. 이 두 가지 감정이 사람이 삶을 살게 만드는 가장 근원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 많은 다른 감정들이 생겨난다.

 

물론 사람들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그리고 지루함을 느낄 때마다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판단, 선택경험, 기억은 두려움을 없애고 지겨움을 느끼지 않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 그런 방향성을 가진다.

 

그래서 만약 현재가 두렵지도, 지루하지도 않다면 별 다른 생각도, 행동도, 판단도, 선택도, 경험도, 기억도 남질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 상태를 행복하다고 표현한다. 우리는 행복하다면 그냥 거기에 머무를 뿐, 더 이상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 우리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느낀다는 말은, 지금이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다.

 


쌀쌀한 날 아침에 이불 속에서 뭉그적거릴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하지만 회사에 지각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떠오르면 일어난다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있을 때하고 싶은 다른 어떤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데이트가 지겨우면 집에 가서 친구나 만나서 영화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신 만약 두려움과 지겨움만 없다면, 얼마든지 가만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상태가 지속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나마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는 어느 정도 유지가 가능한데,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상태는 반나절도 이어지지 않는다어떤 사람들은 단 10분만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지루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렇듯 두려움과 지겨움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을 사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몹시 힘들다. 왜냐하면 비록 그 시작이 두려움과 지루함일지라도 그것은 곧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서 두려움과 지겨움은 금세 숨겨져 버리기 때문이다.

 

, 두려워서 시작한 일을 제대로 해내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우리는 처음부터 편안함을 얻기 위해서 그것을 했다고 믿는다지루해서 시작한 일 역시도 지루함이 사라지고 나면 재미있거나 흥분된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그러면 우리는 지겨움을 떨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기 위해서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면 편안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겹지 않았다면 재미를 추구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뭔가를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반드시 두렵거나 지겨움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다.

 

두려움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불이 난 집에서 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면 불을 모두 꺼야만 한다. 다 껐다고 안심을 하다가도 어딘가 또 다시 불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면 두려움은 금세 다시 몰려온다.

 

지겨움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지겨움은 여전하다.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그 영화가 생각보다 재미가 없으면, 숨겨져 있던 지루함이 금세 비집고 나온다. 이때 사람들은 자신이 지루함을 새롭게 느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가지고 있던 감정이 되살아 나는 것 뿐이다. 즉, 느끼지 못했더라도 지루함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두려움과 지루함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산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 둘 중에서 두려움에 비해서 지겨움을 인식하기가 훨씬 힘든데, 두려움을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 '해야 할 일' 임에 비해서, 지겨움을 해결하는 것은 대부분 '하고 싶은 일' 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즉, 하고 싶은 일은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에, 그것이 지겨움으로 인해 등이 떠밀려져서 결정된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반면에 두려움은 등을 떠미는 것이 명확하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된다.


또한 사람들은 지루함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한다. 친구를 만나다가 지겨워지기 전에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스마트 폰을 보고, 가끔 여행도 가고, 새로운 볼거리를 찾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잔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기에 지루함을 느낄 틈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신이 지루함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잊는다.


하지만 인간이 지루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루함은 여유 시간이 생기면 반드시 생겨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즉, 지루함을 안 느끼는 사람은 오직 여유 시간이 없는 사람만 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평생 동안 두려움과 지겨움을 없애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감정을 없애는 것에 성공하면 보상으로써 받는 편안함, 재미, 즐거움과 같은 감정들이 워낙 강렬하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그 감정을 목적으로 해서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는다. 즉, 하고 싶어서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그런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자신은 두려움이나 지루함 같은 것들은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처음부터 평온함이나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두려움이나 지겨움으로부터 등이 떠밀려져서 하고 있다고는 상상도 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것이 착각임은 부정할 수가 없다.

 

두려움이 없다면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기에 평온함은 추구될 수 없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결혼을 할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프지 않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생각이 나질 않는다배고프지 않다면 먹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런 식으로 두려움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된다.

 

지루함이 없다면 지루함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기에 즐거움이나 재미가 추구될 수 없다. 비록 집에서 뒹굴 거리고 있더라도 지금 상태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면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거나, 돈과 시간을 들여서 여행을 떠나거나, 영화를 보러 나갈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기에 결혼을 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건강 검진을 받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도 먹으며, 친구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믿거나, 여행을 즐긴다고 믿거나,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사실 요즘 시대에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외로움이나 안전함 그리고 건강이나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자신의 삶에 대한 권태나 지루함이 없다면 친구를 왜 만나고, 여행을 왜 가며, 영화를 왜 보려고 하겠는가?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돈을 써야 하는 것들인데 말이다.

 


사실 지루함 조차도 더 깊이 들어가면 두려움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정말로 원칙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의 시작은 두려움이다. 우리가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단 한 가지만 생각해보면 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서 많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있는 단 한가지 답이 있다.

 

그것이 바로 생존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수 많은 다른 가치들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존이 다른 가치들에 비해서 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상황에 따라서 생존이 뒤로 밀리기도 한다.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나 믿음 혹은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그렇게 한다.

 

그로 인해서 인간에게 있어서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는 진실을 왜곡하고 만다. 더해서 한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이 착각을 더욱 더 심화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참으로 안전한 사회 때문이다.

 

인간의 두려움에 대한 입장이 과거와는 달리 많이 달라졌다. 사실 요즘같이 시대에 두려움은 너무 멀어 보인다. 예전에는 흔했을 죽음이 지금은 희귀한 일이 되었다. 평균 수명이 올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소에는 죽음이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고 산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이라도 큰 병에 걸려서 시한부 삶을 살지도 모르고, 교통사고가 나서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 죽음의 확률은 많이 낮아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혹시나 시체나 피를 봐서 죽음이 연상되면, 그것으로 인해서 기분이 나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바로 죽음에 대한 인식 때문인 것을 스스로 자각하기도 힘들다. 그냥 원래 피나 시체는 기분이 나쁜 것이라고만 여긴다. 그래서 그것들이 잊고 지내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끄집어 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람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먹을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동물을 길들이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먹을 것이기도 하다. 먹을 것은 언제나 절실하기에 대부분의 동물들은 먹을 것만 주면 쉽게 복종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는 그 중요한 먹을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다들 얼마나 건강한 것을 먹느냐, 얼마나 맛난 것을 먹느냐가 중요하지,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 사람은 드물다. 설령 생존하기 위해서 먹는 사람일지라도 그 자신만의 또 다른 목표가 있어서 그럴 가능성이 크다. 뭔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돈을 모아야 한다면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배고픔을 두려움으로 경험할 경우가 많지 않다. 먹을 것만 그런 것도 아니다병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억울하게 죽을 일도 크게 줄었다. 사회의 안전망이 동작하고 있는 한, 적어도 가장 기본적인 두려움들은 거의 느끼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일까?

 

그것은 결코 아니다단지 두려움은 조금 멀어졌을 뿐, 여전히 우리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언제라도 전국적인 치명적 전염병이 돌거나, 산속에 조난이 되거나, 어두운 밤 길에 칼을 든 사람을 보게 되면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그다지 흔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엔 두려움을 거의 잊고 지낸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심하게 착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 눈 앞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쌀 수도 있다.

 

두려움은 결코 사라지지도 않고, 극복되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사는 것뿐이다.

 

그래도 운 좋다면 장시간 두려움을 잊고 사는 것도 가능하다경찰이 지켜주고, 이웃이 지켜주며, 평소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몸에 좋은 것을 먹고 살면 가능하다. 위험한 짓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다가 보면 두려움 자체를 거의 잊어 먹고 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두려움임을 잊어 먹고 만다.

 

그렇게 두려움을 잊고 살다가 보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시간이 오긴 한다. 하지만 이 시간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 이유도 역시도 결국 생존 때문이다. 현재의 두려움은 해결했지만, 미래의 두려움은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 미래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서 현재의 평화로운 시간은 곧 깨져 버리고 만다.

 


인간의 무의식은 여유 시간이 있으면, 그것을 모두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써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미래는 아무리 잘 준비해도 100%, 완벽한 준비를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결국 죽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향해 가기 때문에, 멈춰 선 상태는 자동으로 퇴보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무의식은 결코 어떤 경우에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이 남는다 싶으면 끝없이 지루함을 느끼게 해서 우리를 행동하게 만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지루함을 해결하는 방법이 선택적이라는 점이다. 즉,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루함의 원인이 미래에 있다는 점으로 인해서 생겨난다.

 

그래서 요즘 같은 시대에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들 대부분은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서 산다. 즉,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

 

물론 여전히 회사 일을 할 때 실수를 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낯섦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할 때마다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종류의 두려운 일들은 많지만, 냉정히 말해서 이런 두려움은 배고파 죽는 것과 달리 선택적이다. , 굶주림의 두려움은 많은 노력을 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런 종류의 두려움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해결할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회피하는 것이다.

 

회사 일이 힘들면 회사를 관두면 된다. 낯선 사람이 두려우면 안 만나면 된다. 아무 것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냉정히 말해서, 사람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먹는 것, 자는 것뿐이다. 그것만 잘해도 삶을 사는데 크게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선택이 가능하다. 단지 그런 삶을 살 때 행복하긴 힘들뿐이다.

 

그리고 자꾸 회피하는 선택을 하게 되면 마음 속에 경고 등이 켜진다. , 지루함이 밀려온다.

 

두려움 현재에 대한 공포심이며 지루함은 미래에 대한 공포심이다. 두려움은 당면한 현실이며, 지루함은 미래의 가능성이다.

 

현재의 공포심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잠시간의 편안함이 이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지루해지면서 뭔가를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해야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지루함은 지금 당장 느끼는 두려움에 비해서는 훨씬 비실체적이다. , 어디까지나 그럴 것 같다는 가정일 뿐, 당장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 아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에 비해서 그 강도가 무척 약하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두려움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라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본인의 지루함을 잘 바라보면 그것이 일종의 두려움임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다. 모든 종류의 지루함에는 반드시 어떤 종류의 걱정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연인과 관계에서 지루함을 느꼈다면, 그 사람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 걱정스럽고, 어떻게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질 수 있을 지가 걱정스럽고, 미래에는 결혼까지 해서 살 생각하면 어떤 면에서는 끔찍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일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자신이 더 이상 승진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걱정이 있고, 이렇게 계속 회사를 다니다가는 언젠가 잘리 것이라는 걱정이 존재한다. 뭔가 매일 나아져야 하는데, 매일 단순한 일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게 되면 당연히 걱정이 되고,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 반복하는 일에 쉽게 지겨움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반복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그것으로부터 충분한 돈을 벌어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좀 서로 다른 이야기다. 인간은 무엇인가가 변할 때, 자신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만을 키우며 살았던 전업 주부가 어느 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낄 때, 그 안에는 자신의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 아이들은 점점 자라서 자신의 품을 벗어나는데,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서 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삶이 지루해진다. 그리고 점점 의욕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루함을 그냥 방치한다. 지루함은 몸에 불이 붙은 두려움처럼 당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이니 지루해도 그냥 만나고, 회사가 지루해도 월급이 나오니 그냥 다니고, 아이만 키우면서 사는 자신의 삶이 지루해도 당장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 하면서 살아간다.

 

원래 사람이 오랜 시간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되면 정신이 파괴된다. 우리는 이것을 '정신 분열증' 이라고 부른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엔 아주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지루함도 두려움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장시간 지루함 속에서 살아가게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지루함은 두려움처럼 직접적인 공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두려움이기에, 결국엔 동일한 정신적인 파괴 현상이 일어난다이것을 우리는 '우울증' 이라고 부른다.

 

지루함의 이런 특징 때문에 두려움보다 더 큰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이 밀려오면 즉시 반응이 일어난다. 몸에 불이 붙으면 아무 물에나 뛰어 들어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것을 한다. 그래서 정신 분열증에 걸리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하지만 지루함은 다르다. 이것은 즉각적은 응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지루함이 느껴져도 그냥 내일로 미뤄도 된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미루다 보면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도가 약할 뿐, 우울증세를 보인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오늘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병에 걸릴까 봐 오늘 술을 끊을 필요가 없다. 살이 찔까 봐 지금 당장 먹을 것을 반드시 자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래의 경쟁력을 위해서 오늘 반드시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미룸은 결국 지루함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것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의욕이 감퇴되고, 결국엔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2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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