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철학

선한 목적을 위한 나쁜 행동

아이루다 2017. 5. 21. 08:16

 

미드 하우스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아프리카에 있는 어느 국가의 독재자가 국제 회의 차 미국을 방문했다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다. 그런데 이 독재자는 자국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특정 부족을 말살하고 있는 살인자이기도 했다.

 

하우스 팀은 이 독재자를 치료하게 되는데, 하우스 밑에서 일하는 의사 체이스는 어떤 계기로 이 독재자가 죽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독재자를 치료해서 보내면 그 사람은 또 다시 특정 부족 출신들을 죽일 것이란 의지도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체이스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피 검사 결과를 바꿔 치기 해서 그에게 잘못된 치료가 되도록 유도한다. 그로 인해서 결국 독재자는 죽는다.

 

이 뒤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튼 체이스는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로 인해서 한참을 방황한다. 그리고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같은 팀에 속한 의사였으며 또한 아내였던 카메런과 헤어지게 된다.

 

카메런은 자신의 남편인 체이스와 헤어질 때 이런 말을 한다. 너는 하우스 밑에서 너무 오래 일을 한 탓으로 결국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고 말이다. 그래서 너는 결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선한 목적을 위한 나쁜 행동에 관한 도덕적 딜레마는 흔한 편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어린 히틀러를 죽일 것인가 하는 질문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책으로 쓰여진 적도 있다. 도스토엡스키가 쓴 '죄와 벌' 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읽은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한 청년이 탐욕스러운 노파를 살해하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는 청년이 한 여자를 만나 결국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반성을 하는 것으로 끝난 듯 하다.

 


그래서 참 혼란스럽기도 하다. 선한 목적이(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의 생명 구원이나 탐욕스러운 노파를 응징하는 것) 있다면 나쁜 행동을(독재자를 죽이는 일이나 노파를 죽이는 일) 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누가 이 질문에 명쾌하고 정확하고 옳은 답을 낼 수 있을까? 사실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진짜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바로 '종교'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내용을 적용하게 되면,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또 다른 신의 피조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신의 의지를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어떤 경우라고 해도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는 것은 금지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가정은 또 다른 결론을 끌어 낼 수 있는 단초가 된다. , 만약 저런 판단에서 신의 존재를 제외하고 나면 어떤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있이 않을까?

 

맞다. 실제로 그럴 수 있다.

 

신의 존재를 제외시킨 상태라면인간은 왜 다른 인간을 단죄하면 안될까?

 

사실 지금도 인간은 큰 문제 없이도 인간을 단죄하고 있다. 단지 이때 단죄를 하는 주체는 한 명이 아니라 다수이다. , 인간들이 인간을 단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법 집행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심한 죄를 지은 사람을 가두거나 죽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을 결코 살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다시 이런 질문이 이어져서 나온다. 다수는 그럴 수 있는데 왜 개인은 다른 사람을 죽이면 안될까?

 

사실 그럴 이유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유는 명확히 존재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카메런이 체이스를 떠나면서 했던 말을 참고해야 한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도덕적인 문제이다. 카메런이 주장한 생명의 경외심을 부정하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개인적인 판단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매우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된다. 그러니 개인적인 단죄는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여기엔 좀 더 깊은 사연이 숨겨져 있다.

 

만약 각자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다른 사람을 단죄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것은 다른 말로 일종의 복수이다. 그리고 복수는 당연히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옳을 수는 없다.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이다. 법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죄를 판단한다. 그것이 얼마나 정확하고 제대로 된 것인지의 여부는 알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만 판단된 결과만은 아닌 것이기에 그나마 승복할 수 있다.

 

반면에 개인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그것을 판단하여 다른 사람을 처벌할 경우그로 인한 사회의 불안전성이 훨씬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모두가 다 서로 다른 판단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가 마음대로 판단해서 정의를 실현해버리고 말면, 매일 살인이 일어날 것은 뻔하다.

 

그러니 이 문제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가 개인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여 그 죄를 처벌하는 것이 금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비 도덕적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생명의 경외심을 잃어서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럴 경우 우리가 소속되어서 살아가는 이 사회가 극도의 불안함 속에 놓여서 결국 자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도덕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도덕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인간의 본질적 특징도 아니고,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도 아니다. 도덕은 우리가 속한 사회를 좀 더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각자가 품고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사실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황당하지만, 공식적으로 살인이 허용되는 기간이 있다. 바로 '전쟁' 이다. 전쟁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연관도 없고, 죄를 지은 사실도 없는 사람을 적군이라는 이유로 죽인다. 그리고 많이 죽이면 영웅이 된다.

 

전쟁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죽인다. 여기에서 '내가 산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도덕적 문제로 바라보거나 생명의 경외심에 대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전쟁만큼 커다란 문제를 가진 것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반전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 점을 지적하는 경우도 많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비인류적인 짓이라고 한다. 이들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런 비난의 근거가 되는 '도덕' 이란 것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살펴봐야 한다. , 이미 설명했듯이 도덕은 결코 절대적 기준점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을 단죄하면 안 되는 이유는, 도덕적으로 그러면 안되어서가 아니라, 사회가 혼란스럽고 인류의 미래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살인이 허용되는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겨야 사회 혼란이 줄어들고 미래가 밝아진다. 이 점을 정말로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질문에 관한 정말로 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정당성에 의해서 다른 사람을 단죄한 경우, 자신에게 이미 주입되어 있는 도덕적 판단 기준으로 인해서 그런 일을 저지른 후 크게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 체이스는 자신이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 독재자를 죽였지만, 카메런의 비난처럼 의사가 사람의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잃은 문제를 넘어서기가 힘들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때 또 다른 동료 의사인 포어맨은 그런 그에게 아무런 댓가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냐고 반문한다.

 

결국 체이스는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하기도 하지만, 신부은 오직 신의 대리인으로써만 판단해준다. 그래서 자수를 하라고 한다. 체이스는 그러면 자기 인생이 끝나는데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따진다. 하지만 신부는 같은 말만 반복한다. 용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체이스가 경찰에 가서 자수를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신부의 말처럼 어떤 용서가 이뤄지는 것일까?

 

이것을 잘 따져보자. 경찰에 가서 죄를 받고 감옥에 가는 것이 정말로 신이 용서하는 과정일까? 아니다. 사실 그것은 그저 인간들끼리 해주는 용서이다. 살인은 했지만 감옥에서 고생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 그것이 용서가 되는 것일까? 혹은 그런 행동을 통해 참회를 하게 되면 용서가 될 수 있다고 하면, 그냥 감옥에 안가고 참회를 하면 안될까?

 

여기에 신의 역할은 도대체 무엇일까?

 

만약 체이스가 감옥에 간다면 거기에서 얻는 것은 자신의 죗값을 치렀다는 만족감일 것이다. 힘들게 시간을 보냈으니 된 것이다, 죄를 지었지만 힘든 감방까지 다녀왔으니 자신은 양심적으로 살고 있다는 체이스의 자기 위로만 존재할 뿐이다.

 

이 과정을 깊이 살펴보면 선한 목적을 위한 나쁜 행동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답이 나온다.

 

그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냥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하고 났을 때 본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도덕적 기준점, 즉 다른 말로 인간의 본질적 판단 기준점인 '양심의 가책' 을 받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선한 목적임에도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스스로 견디지 못할 것이라면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만약 선한 목적으로 인해 나쁜 행동을 해도 될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이미 고민 중이고 양심의 한계점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그런 것을 아무런 고민 없이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바로 그것이다. 선한 목적으로, 거짓말이라는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하고 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그 정도의 나쁜 행동은 누구나 쉽게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의 양심이 가책받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견딜 수 있느냐이다. 체이스처럼 그렇게 고민을 할 것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그러니 본인이 충분히 견딜 수 있고, 금세 잊을 수 있을 경우에만 해야 한다.

 

선한 목적을 위한 나쁜 행동에 대한 문제는 그 누구도 아닌, 본인이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결코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도덕은 인류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양심의 가책은 오직 개인적이다.

 

그러니 카메런처럼 자신의 기준의 양심으로 가지고 생명의 경외심을 운운하면서 체이스 개인의 양심을 비난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결코 카메런의 양심이 아니라 체이스의 양심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체이스를 떠난 것 또한 그녀의 의지이니 그 또한 존중해야 한다.

 

단지 그녀는 비난없이 떠났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것이 양심에 찔리니 결국 체이스를 비난함으로써 자신이 체이스 때문에 결혼을 끝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합리화 시킨다.

 

결론은 이렇다. 감당할 수 없는 것만 하지 않으면 된다.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하지만 이때는 정작 다른 중요한 문제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양심의 문제를 훌쩍 뛰어 넘은 실질적 문제가 된다. 그것이 바로 법에 의한 처벌이다. 아무리 목적이 정당해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뺏게 되면 무조건 사법 처리를 받게 된다. 자기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렇다.

 

체이스 역시도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드러나서 자신에게 큰 불행이 닥칠까 봐 결국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주변에 있던 포어맨도 하우스도 그런 그를 돕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선한 목적을 위한 나쁜 행동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쁜 행동을 한 후에 당신이 받게 될 양심적 가책을 스스로 견딜 수 있는 정도까지만 해야 하며, 이후 경찰에 끌려가서 죗값을 치르지 않을 능력이 있을 때까지라고 답을 해줄 수 있다.

 

이 둘이 충족되지 못하면 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남에게 물어 볼 문제가 아니다. 오직 본인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 이것을 묻는다. 왜 물을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양심의 가책을 좀 줄여보고자 해서 그렇다. 남들이 괜찮다고 해주면 좀 나아지니까 그렇다. 그러니 자꾸 묻는다. 자꾸 묻는다는 것은 하고 싶어서 그렇다. 그런데 결국 양심에 찔리고, 그 후환이 두렵기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그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일은 자신이 감당할 일이 아닌 것이다.

 

양심은 생각보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줘도, 본인이 그것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도 많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서 나름대로 합리화를 했다고 해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의 소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다르게 인간은 그다지 도덕적이지도 않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거의 불가능하긴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양심의 존재를 제대로 성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심은 사실상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 허상이라는 진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카메런 같은 이유로 남편을 떠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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