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그리스의 철학

아이루다 2017. 7. 7. 08:37

 

 

그리스에서 기원한 문화 유산들은 참 많다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 문명에 대해서 흥미로워하고, 알려고 하고, 연구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엄청난 양의 신화적 이야기를 비롯해서 건축, 미술, , 연극 등등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도 매우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을 많이 남겨 놓았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그리스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그리스의 철학은 이후 서구 정신 문명의 근간이 되었으며, 그 서구 정신 문명은 19세기에 발생한 유럽 제국들의 팽창 시대를 거쳐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을 하겠다

 

, 현대의 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인종이나 어느 지역에 살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서구 철학의 사유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 '종교관', '상식', '양심', '도덕' 등등, 비록 그 실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일 일어나는 각자마다의 선택의 순간에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오직 그리스 철학만이 다는 아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헤브라이즘도 있고, 독자적으로 발전된 동양 철학도 있다.

 

그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뒤섞여서 현대인의 사고 흐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20세기 초를 살았던 화이트헤드 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철학자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각주에 불과하다' 라는 말까지 하면서 수천 년에 걸친 서양 철학사 자체를 그저 고대 그리스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두 사람, 즉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계승 발전시킨 결과물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에 동의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실제로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 서양의 정신 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 철학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문구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자크 루이 다비스 유화 작품>

 

소크라테스 이전에 그리스에는 '소피스트' 라고 불리는 지식층이 존재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의 무리였는데, 그들 사이에 딱히 사상이나 관점의 공통점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자신이 당시의 세상에 대한 궁극적 지혜를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 자신이 세상을 이해한 방식을 일종의 진리로 보았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잘난척 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람들이라고 표현해도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생각이나 주장을 모두 무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민주정을 최고의 정치 체제라고 판단했으며, 수 많은 토론 속에서 논제를 정하고 논쟁을 통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을 즐겨 했기에 다양한 의견들이 표출되고 서로 반목하고 정리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토론을 일종의 승부로 봤다는 점이었다. , 궤변을 늘어놓더라도 어떻게든 토론에서 이기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그들의 태도는 사회를 옳은 방향이 아닌,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고 만다.

 

사실 이런 문제는 현대 토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실과 논리를 통해서 토론을 해야 하는데, 상대를 비웃거나 확인도 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상대를 공격해서 당장 눈 앞에서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으면 마치 토론을 잘하는 사람처럼 판단되는 경우가 흔하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토론조차도 그렇다.

 

그래서 이것은 당연히 진실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소피스트들로 인해서 그리스 사회는 아주 큰 혼란을 겪게 된다.

 

목적이 이기기 위한 토론을 하니,  논리에 일관성이 있을 리가 없다. 어제는 이것이 옳고, 오늘은 저것이 옳고, 내일은 무엇이 옳을지 알 수가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이것을 무척 싫어한 사람이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을 자칭 '지혜로운 자', 즉 이미 지혜를 얻은 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지혜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가진 철학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완정된 자로 여겼다.

 

반면에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철학자, '지혜를 추구하는 자' 로 정의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소피스트, 즉 자칭 지식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사실은 쥐뿔도 아는 것이 없다는 공통점을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본인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자신은 적어도 자신이 무지한 것을 안다는 점에서 소피스트들에 비해서는 현명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그리고 이것으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무지에 대한 자각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리고 이런 소크라테스의 이런 자각은 정말로 많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바로 도대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건 사고는 결국 터지고 나서야 그 문제가 알려진다. , 그런 사건이나 사고가 터지는 이유는 바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원래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면, 무엇을 알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다.

 

결국 무지에 대한 각성을 한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라는 유명한 말은 남기게 된다.

 

사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으로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 라는 말은 정작 그가 한 말이 아니다. 이 문구는 아폴론 신전 입구에 써 있는 문구라고 하는데, 문장이 단순하고 명료해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고 있긴 하다.

 

소크라테스는 평생 직업이 없이 살았으며,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무지를 스스로 깨닫게끔 하는 일을 하고 살았는데, 당연히 그의 아내가 많은 화를 내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로 알려졌는데, 사실 그런 상황이라면 누가 악처가 되지 않을 수 있으랴. 거기에다가 소크라테스는 못생기고 대머리였다고 하는데, 돈도 못벌고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못생기고 대머리의 남자와 결혼한 여자가 더 대단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기본적으로 이 세상에는 불변하는 보편 타당한 진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의 그런 사상은 그의 제자인 플라톤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소크라테스와 대척점에 선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라는 말로 유명한데, 세상을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남과 여와 같이 이원적으로 나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어둠의 철학자라고 불렸고, 세상 모든 만물은 대립과 통일의 속성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철학적 사상은 놀랍게도 동양의 노장 사상과 아주 유사하게 연결이 된다.

 

사실 논리라는 것 자체가 그렇다. 논리는 기본적으로 참과 거짓으로 구성된다. 요즘으로 말하면 디지털인 것이다. 전원이 들어오고 들어오고 있지 않고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세상이 과연 정말로 그렇게 딱 두 가지로 나뉠까? 선과 악, 밝음과 어둠, 남과 여로 나뉠까?

 

아니다. 선은 더 선한 것에서 보면 악이 된다. 악은 더 악한 것에서 보면 선이 된다. 어둠이 밝음으로 바뀔 때는 여명이 있고, 밝음이 어둠으로 바뀔 때는 어스름이 있다. 남자이지만 여자인 사람이 있고, 여자이지만 남자인 사람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모든 인간은 원래 여자로 태어났다가 결국 반이 남자로 변한다고 한다.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연속체이다심지어 켜짐과 꺼짐만 있어 보이는 형광등 조차도 켜지는 순간도 아주 잠깐이지만 연속적으로 밝아진다. 너무 짧아서 마치 순간적으로 바뀐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만 존재한다. 이 사상은 불교의 연기론과도 연결이 된다. 그리고 현대 문명이 발달해갈수록, 특히 과학적 발전이 이루질수록 점점 더 소크라테스의 보편 타당한 절대적 진리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상대적 사고 방식이 더 맞아 보인다.

 

그렇지만 둘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바로 뛰어난 제자의 유무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라는 아주 뛰어난 제자를 통해 살아나 지금까지 그 철학이 계승되었고, 그런 제자도 없었고 주장하는 바도 명료하지 못한 헤라클레이토스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기억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어둠의 철학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튼 소크라테스의 뒤를 이은 플라톤에 대해서 알아보자.

 

<'아테네 학당' 의 일부분(1509), 라파엘로. 중앙 왼편이 플라톤, 오른편이 아리스토텔레스>


사실 플라톤은 한 일이 너무 많아서 이 사람에 대해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솔직히 고백하면, 잘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그가 소크라테스로부터 배운 것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만을 중점적으로 보겠다.

 

소크라테스는 불변의 보편 타당한 진리가 있음을 주장했고, 그것을 '아레테', '' 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플라톤은 그것을 이데아 론으로 발전시켰다.

 

플라톤은 이 세상을 두가지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는데, 우리가 실제로 보는 현 세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세계인 이데아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현실 세계는 변화하며 상대적이고, 반대로 이데아의 세계는 불면하고 절대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둘 중에서는 이데아만이 진정한 실재라고 생각했다. , 현실 세계는 일종의 허상이라고 믿은 것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이원론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이원론이라는 말은 두 개의 원리라는 말로, 이 세상을 크게 두 가지 원리로 동작된다고 보는 사상을 의미한다. 이와 반대로 일원론이나 다원론이 있을 수 있는데, 이들 역시도 하나의 원리도 동작되느냐, 다중의 원리로 동작되느냐의 차이일 뿐, 딱히 단어상의 차이는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유명한 이원론은 바로 데카르트의 이원론이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를 정신과 육체로 나눴는데, 그것이 당시 대세였던 종교, 즉 기독교에게 말하는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 이후로 현재까지도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 아주 자연스럽게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으로 나눠서 생각하고 있는 사고 방식 자체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플라톤에서 시작해서 데카르트가 발전시킨 이원론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이 철학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나 우리들을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무튼 플라톤은 이데아 론에 근거하여 자신만의 국가론을 주장했는데, 이것이 좀 문제가 있다.

 

그는 이상적인 국가의 모델로 사람들을 직업에 따라 삼 단계로 분류하여 설명했다. 그래서 농민, 장인, 상인으로 구성된 가장 낮은 계층에 배치하고 그들에게는 절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중간 계층에는 군인들을 배치하고 그들에게는 용기를 요구했으며제일 위에는 철인,  철학자들을 배치한 후 지혜와 정의를 요구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나라가 구성되어야 가장 이상적인 국가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민주정으로 돌아가고 있는 아테네가 아닌, 귀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스파르타가 더 나은 국가 모델이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속내에는 야만스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군중심리에 의해,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재판하여 사형시킨 민주정의 시민에 대한 분노가 숨겨져 있음을 그는 스스로 자각을 했을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은 그만큼이나 힘들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뒤를 이은 사람이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이다. 이 분 또한 스승 못지않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플라톤은 기본적으로 소크라테스의 기본 사상을 계승해서 발전시켰다. 하지만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다. 그는 플라톤을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오히려 스승의 사상을 반박하는 새로운 이론을 세웠다.

 

플라톤은 인간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았다. , 그의 철학의 모든 중심은 인간에게 있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이와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을 세상 그 자체로 보았다. 그리고 인간은 그런 자연 속에서 존재하게 된 특별한 존재로 생각했다.

 

이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것은 마치 지동설과 천동설과 같은 차이이다지동설이나 천동설이나 결국 해는 뜨고 지는 현상이라는 공통점을 설명하지만, 그 안에서 작용하고 있는 진짜 원리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도느냐, 우주는 가만히 있는데 지구가 혼자 도느냐는 정말로 다른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면 다른 존재들은 그저 나를 위한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들 중 일부라면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알아야 한다. 플라톤은 인간을 주인공으로 보았기에 인간만 알면 끝이었다. 자연이나 우주는 그저 인간을 위한 부속품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에 자연에 대해서 알려고 했다.

 

그런 차이점으로 인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철학뿐만이 아니라 자연과학, 즉 생물학, 물리학, 천문학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그렇게 많은 학문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업적을 남긴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가 자신을 가르친 스승의 이론을 거부하는데 따른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플라톤은 소중한 벗이다, 하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금수저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그의 한계점을 만들어 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적 이론에서도 많은 지식을 남기는데, 사실 그것을 하나 하나 세세하게 알 필요까지는 없다. 그것들은 그저 그 사람이 생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하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귀족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이 타고난 배경으로 인해서 평생 동안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인생 자체가 축복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운 좋은 그저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았다. 특히 그가 일반 사람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불행히도 그는 철학자였다.

 

모든 종류의 사고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그것이 책을 읽는 간접 경험이든, 본인지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든 해야 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로서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경험이 부족했다. 특히 불행에 관련된 것들이 부족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어쩔 수 없이 사고적, 사상적 한계점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반쪽만 이뤄지고 말았다.

 

뭐, 이것은 비판할 내용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무지에 대한 자각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무지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원래 경험하지 못하면 알기 힘든 법이다. 그러니 그의 무지함도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느냐 인데, 참으로 의미 있는 내용이 하나 나온다. 그것이 바로 '중용'이다.

 

원래 중용은 중국의 철학자였던 공자님도 말씀하신 것인데, 두 사람이 주장하는 중용의 개념은 그리 다르지 않다. 극과 극은 통하는 것이고, 지나침은 모자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용과 비겁함은 모두 문제가 있다. 넘침과 모자람도 마찬가지다. 오만함이나 비굴함도 문제가 있다과도한 사치와 과도한 절약, 모두 문제가 있다. 그래서 모두 중간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이런 그의 사상은 세상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 역시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보편 타당한 진리에 대한 입장은 동일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헤브라이즘의 영향에 따른 유일신의 등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 기독교 문명에 있어서 찰떡 궁합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보편 타당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유일한 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 달랐고, 따라서 그 해석 결과도 달랐다. 그래서 이후 서양 철학사는 이 두 사람이 세운 각자의 사상 체계를 계승하고, 서로 반목하면서 현대에 까지 이르르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야 니체나 하이데거 등의 실존주의를 거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출현함으로써 비로소 그 둘로부터 벗어난 흐름이 나타나게 된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네 명 말고도 많은 그리스 시대의 철학자가 있었다. 꽤나 유명한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철학 전문 글이 아니니, 이 정도면 그리스 철학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 문명은 시와 문학 그리고 연극 분야에서도 아주 큰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쪽 관련해서 딱히 지식도 없고 솔직히 말해서 흥미도 별로 없어서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다. 만약 흥미가 있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도서관에 가서 따로 책을 찾아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 그러면 이제 그리스의 후반부로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스는 멸망하기 직전 거대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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