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그리스 문명 - 마지막 편

아이루다 2017. 7. 15. 07:44

 

 

알렉산더의 정복 전쟁은 그리스 문명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도 이 불꽃은 거대하게 타올랐기에 그 후로 한참을 꺼지지 않고 그리 문명의 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그래서 비록 그가 죽은 후 제국은 네 개로 분할되었지만, 분할된 각 나라에서는 각자 자리잡은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융합되면서 진정한 헬레니즘 문명이 번성하게 된다.

 

일단 알렉산더 사후에 제국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알아보자.

 


마케도니아 본국은 수 많은 암투가 진행된 후, 카산드로스가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바빌론은 알렉산더가 생전에 임명한 바빌론 총독 셀레우코스가 왕위에 올랐고, 이집트는 이집트 총독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 지역의 왕위에 오른다.

 

이 중에서 카산드로스 왕조가 가장 먼저 망하는데, 그 자리는 리시마코스가 꿰차게 된다. 그래서 리시마코스는 소아시아부터 그리스까지 넓은 영역을 다스리게 된다.

 

하지만 리시마코스도 페르시아 지역을 점령하고 있던 셀레우코스와 전투 중에 사망하고, 땅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게 된다. 커다란 땅을 차지하게 된 셀레우코스는 나라의 이름을 '시리아' 라고 정하고 이후 200년 정도 번창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나라 모두 지금의 이탈리아 지역에서 거대하게 성장하는 로마 제국에 의해서 멸망한다.

 

이집트를 지배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무너질 때, 그 유명한 클레오파트라가 있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인이었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핏줄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뿌리가 바로 그리스의 마케도니아라는 뜻이다. 그녀의 핏줄에 대한 설은 너무 많아서 딱히 정하기는 힘들다.

 

아무튼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로마 사를 다룰 때 제대로 다뤄보도록 하겠다.

 

각 분열된 왕국은 로마에 의해 망하기 전까지 그리스적이면서도 이집트나 혹은 페르시아와 같은 고유한 문명과 결합되어서 많은 분야의 업적을 이뤄내는데, 일단 우선 철학 쪽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그 중 제일 눈 여겨 봐야 할 학파는 바로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이 두 학파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그것을 비교를 해보자.

 

스토아 학파를 창시한 인물은 제논이고 에피쿠로스 학파를 창시한 인물은 에피쿠로스이다.

 

일단 이 두 학파의 공통점은 기존의 철학들이 공공성에 대해 주된 관심을 가진 것에 비해서, 이 두 학파는 개인의 행복과 선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 단순히 표현하면 서양 최초의 개인주의 철학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유물론을 근거로 했는데그러다 보니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공통점도 나타났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인해서 모든 인간은 다 평등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번엔 두 학파의 차이점을 보자.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가장 최고의 선으로 보았다. 행복한 것이 최고란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쾌락을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눔으로써 극단적 쾌락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들이 주장했던 바에 따르면, 쾌락은 적극적 쾌락과 소극적 쾌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적극적 쾌락에는 육체적 쾌락과 같은 욕망을 실현하는 것들이 포함되고, 소극적 쾌락은 절제를 통한 최소한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고통은 사라지고 쾌락만 충족된 상태가 될 수 있는데, 이 상태를 '아타락시아' 라고 칭했다.

 

그들은 불필요한 쾌락을 추구할 때 수반되는 고통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비싼 가방을 사기 위해서 일년간 열심히 돈을 모으는 것 같은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한 것이다.

 

, 행복은 가진 것을 욕망으로 나눈 것인데, 분자인 가진 것을 늘리는 행복보다는, 분모인 욕망을 줄이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것은 비움을 설명하는 불교의 교리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쾌락을 최고의 선으로 설명하여 많은 오해를 일으키기도 했다. , 극단적 쾌락주의자라는 오명을 덮어 쓰기도 했는데, 그것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착각이다.

 

스토아 학파는 이 세상은 모두 합리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근거에는 자연은 기본적으로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 인간에게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일은 자연의 선한 의지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행운이든 불운이든 모두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입장잉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행복' 이고, 나쁜 뜻으로 해석하면 '팔자소관이니, 타고난 대로 살자' 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들은 또한 실천적 입장에서 인간의 운명은 노력해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선한 의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그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하기 위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인간의 불행은 바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할 때 생겨난다고 설명했다. ,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할 때, 집착이 생겨나고, 이 집착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모든 집착을 버리고 나면, '아파테이아' , 마음의 평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이들은 일종의 절제에 의한 금욕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 역시도 불교의 교리와 일맥상통하는 모습을 보인다.

 

스토아 학파는 그리스 시대보다도 오히려 이후 로마 시대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데, 그로 인해서 유명한 사람이 몇 명 있다. 그래서 키케로, 세네카 등과 로마의 5현제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 중에서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명상록' 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한데, 로마라는 거대 제국의 황제이면서도 절제와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인물로 평가된다. 2천년 전에 쓰인 책이지만, 이 책은 지금도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참고로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충성을 다하던 늙은 황제가 바로 아우렐리우스 황제이다. 물론 영화 속 이야기는 엄청나게 왜곡되어 있다.

  

<글래디에이터 한 장면. 출처 http://unforgettable.tistory.com>


헬레니즘 시대에는 철학보다도 오히려 과학, 의학, 수학 등의 학문에서 더욱 비약적인 진보를 이룬다.

 

사모스 섬 태생이면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연구를 했던 아리스타르코스는 지동설을 주장하고, 그에 대한 나름대로의 근거를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주의 중심이고 싶었던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이론보다는 천동설을 더욱 더 믿고 싶어했다. 그래서 천동설을 주장한 프롤레마이오스의 이론이 이후 오랜 시간 유럽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시대에 겨우 지동설이 다시 주장된다.

 

아타톨리아 지방에서 태어난 히파르코스는 천문, 지리, 수학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 천재였는데, 그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에 대해서 정통했고, 그로 인해서 태양이 지나가는 자리, 즉 황도와 달이 지나가는 자리, 즉 백도를 정확히 그려내었다.

 

그는 또한 달의 직경을 계산하고, 달과 지구 사이의 거리를 측정해내기도 했다. 그것도 꽤나 정확하게 말이다.

 

이런 업적 이외에도 그는 별의 밝기 등급을 정하는 것을 처음으로 시도했고, 그의 그런 방법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용되고 있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친구였으며, 알렉산드라아 도서관의 관장까지 역임한 에라스토테네스는 겨우 500Km 정도의 오차 범위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 내었다고 한다. 또한 밀물과 썰물이 달의 영향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도 밝혀 내었다. 그리고 지구의 자전 축이 공전궤도에 비해 기울어진 정도 값, 즉 우리가 지금은 23.5도로 알려진 지축 기울기 값을 알아 내기도 했다.

 

유클리드는 기하학이란 학문을 정리했고,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수학의 대명사로 자리 잡기도 했다. '유레카' 라는 말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는 부력과 비중 개념, 지렛대와 도르래의 원리를 밝혀 내었다. 그는 또한 볼록렌즈를 발명하기도 했다.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부력의 개념을 이해하고는 '유레카' 를 외쳤다고 하는데, 이 말은 '깨달았다' 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이다.

 

종교적으로는 조로아스터교가 많이 퍼졌는데, 원래 이 종교는 페르시아의 국교였다가 페르시아가 멸망하면서 약화되었지만, 헬레니즘을 타고 여러 나라로 퍼져나간 모양이다.

 

이 종교는 불을 숭배했는데이런 특징으로 인해서 중국에서는 이 종교를 '배화교' 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명교라고 불리기도 했다명교는 훗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우는데 많은 도움을 줘서 나라 이름도 '' 이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또한 많은 무협 소설에서는 이 종교를 마교라고 부르며 악마를 숭상하는 사악한 집단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조로아스터교는 기본적으로 영지주의를 주장했는데 그것은 바로 물질 자체를 악마의 작품을 보는 관점이다. , 신의 피조물인 영혼이 악마의 창조물인 육체에 갇혀 있으니, 그것으로부터 탈출을 해야 한다는 것을 기본 개념으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이 주장은 기독교의 교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에서도 인간은 원래 죄를 지은 존재이며 그래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종교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로 꼽히는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 기독교, 인도의 브라만 교와 힌두교에 이르기까지 다른 많은 종교들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인도의 브라만교에서는 조로아스터교의 신과 악마가 서로 자리를 바꿔서 부르고 있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이었던 아후라 마즈다는 인도에서 아수라가 되어 악마가 되었고, 악마였던 디에바는 데바가 되어서 신으로 설정된 것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철학자 니체와도 흥미로운 인연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는 조로아스터에 관련된 것이다조로아스터를 독일식 발음으로 하면 짜라투스트라이며, 이 이름은 니체가 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세상을 초월한 존재로써 등장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왕좌의 게임'이라는 미드에서 나오는 여자 마법사가 불의 신을 섬기면서 조로아스터교를 흉내 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그리스의 분할된 왕국들은 알렉산더 대왕 사후로 200년 정도 지속되다가 대부분 BC 50년경에 로마에 의해 멸망한 후, 로마의 속주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고대 그리스 자체는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이룬 문명의 성과는 로마를 거쳐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스 문명은 로마를 만나 더욱 더 실용적인 형태로 발전되었으며, 로마는 이후 서구 문명의 발판이 되었다. ,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의 거의 모든 것은 바로 로마로부터 출발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로마 문명의 시작점이 바로 그리스 문명이다.

 

그리스인들 중에서 나라가 망한 후 로마에서 가정 교사로 일한 지식층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때 그들이 교육자로써 참여함으로써 로마인들에게 자신들이 이뤄낸 문명을 전수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까지 해서 고대 그리스 문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치겠다.

 

자세하게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만 이해를 해도 그리스 문명이 의미하는 것과 그들이 남긴 유산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있어서 문명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라고 혼자 믿는다. 인간은 문명의 발달을 통해 동굴에서 나와 움막을 짓고, 그 움막에서 나와 거대한 석조로 만든 신전을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역사는 문명의 흐름이다. 그리고 그 문명 안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아주 깊게, 누군가는 보이지도 않게 새겼을 것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중국의 문명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다. 서양에 그리스가 있었다면, 동양엔 중국이 있었다. 이제 그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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