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중국 문명의 시작

아이루다 2017. 7. 18. 07:57

 

 

중국의 고대 문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꼭 언급되어야 할 지형이 하나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 인데이름이 바로 황하이다. 그래서 황하강이라고 불린다.

 

길이가 5,464km 에 이르고 (한강의 10배 수준), 유역 면적만 75만제곱킬로미터이며, 역사가 기록된 지난 4천년 동안 1,500 차례 범람을 했으며, 7차례의 재앙 수준의 대규모 범람을 했던 강이다. 이 강은 8차례나 커다란 물길 변동이 있었으며, 그때마다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그래서 중국은 매년 황하강으로 인해 많은 인명과 가축이 살상되고 있는 중이다.

 

원래 강의 범람이라고 하면 제일 유명한 강이 바로 이집트의 나일강이다. 그런데 이집트의 나일강은 축복의 범람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상류에서 쓸려 내려오는 영양분이 많은 흙들은 나일강 하류에서의 범람과 함께 퇴적되어서 농사를 짓는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사막이 대부분인 이집트에서 문명이 발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나일강의 범람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황하강의 범람은 이것과는 전혀 다르다. 황화강은 기본적으로 황토를 품고 있어서 누렇고 시작지점부터 흐리다. 이 강은 삼문협이란 지형을 통과하면서 급격히 넓어지는데, 그로 인해서 유속이 급속히 줄어든다.

 


강의 유속이 줄어든다는 의미는, 강을 따라 같이 흘러내리고 많은 부유물들이 더 이상 같이 흘러가지 못하고 서서히 가라앉는다는 의미이다.

 

결국 느려진 황하강은 품고 있던 흙의 60%이상을 내려 놓는데, 이로 인해서 강의 수면 높이가 점점 더 상승하는 이상한 결과가 생겨나고 만다.

 

이러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넘친다. 심한 경우 물길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물은 언제나 낮은 쪽을 향해 흐르기 때문에, 기존 물길이라도 너무 높아지게 되면 당연히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황하강이 그렇게 많은 범람과 물길 바꾸기를 한 원인이 된다. , 물에 섞인 대량의 토사가 그 모든 재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재앙과 같은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문명은 바로 이 황하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 고대 문명을 황하문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이야기 방향을 조금 바꿔서 중국 역사가 시작되는 신화시대를 살펴보자. 중국도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도 창조 신화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오래 전인지는 모른다. 수억 년 전이라고까지 한다. 이 우주에는 달걀 모양의 큰 별 하나가 떠 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별 안에는 '반고' 라는 이름을 가진 거인이 갇혀 있었는데, 매일 탈출을 하려고 안쪽에서 도끼로 두드렸다고 한다.

 

얼마나 오래 동안 두들긴 것일까? 중국 사학자들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산법에 의하면 BC 2,760,480년도에, 276만년도 쯤에 드디어 반고가 별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연도의 한 자릿수까지 정확하니, 도대체 무슨 계산법을 사용했는지 정말로 궁금하긴 하다)

 

이렇게 해서 밖으로 나온 반고는 인류의 선조가 된다. 아니 중국의 선조가 된다.

 

반고가 달걀 모양의 별을 깨고 나왔을 때, 별은 좌우 방향을 기준으로 해서 깨졌는데, 위쪽은 하늘이 되고, 아래쪽은 땅이 되었고, 중간에 반고가 매일 3m 씩 자라면서 그로 인해 하늘과 땅이 매일 3m씩 멀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18,000년이 지나고 하늘과 땅이 충분히 멀어지자, 반고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고, 그 후로 그의 시체에서 이 세상을 구성하는 것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의 오른쪽 눈은 태양이 되고 왼쪽 눈은 달이 되었으며, 그의 숨결은 바람이 되고 그의 목소리는 천둥이 되었으며, 그의 웃음은 맑은 날이 되었고 그의 우울함은 흐린 날이 된다. 또한 그의 피는 강과 바다가 되었으며 그의 털은 나무와 풀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와 팔 다리는 다섯 개로써 중국의 오악이 된다. 오악은 중국에 있는 다섯 개의 산을 말하는데, 태산, 숭산, 화산, 형산, 항산 순으로 각각 동, , , , 북을 의미한다. , 동악, 중악, 서악, 남악, 북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반고의 몸에서 구더기가 생겼는데, 그 구더기에 바람이 불자 인간이 된다. , 우리는 구더기가 바람을 맞은 자의 후손인 셈이다. (도대체 그 구더기는 어떤 곤충이 낳은 것일까?)

 

이렇듯 반고의 신화는 나름대로 정리가 되어 있지만, 이것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그리고 한 인간의 몸에서 세상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는 형태의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다수 나타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것이 중국 역사 기록 중 우연히 흘러 들어가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반고는 이 세상을 주재하는 신은 아니다. 중국에는 옥황대제라는 별도의 신이 존재하는데, 이 신은 중국에서 오랫동안 믿어지고 있는 도교 사상에서 유래한다.

 

이후 중국 역사는 총 10기로 나뉘는데, 1기는 276,000 년에 해당된다고 하니, 27십만년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역사를 대략 5백만년 정도로 잡고 있으니, 뭐 나름대로 타당성은 있다.

 

아무튼 이 10기 중 세 번째인 3기에 그 유명한 삼황이 출현하는데, 각각 천황, 지황, 인황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이 삼황의 존재로 인해 인간들은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다.

 

 

 

이후 오씨가 출현하는데, 여기에서 ''는 지금의 '누구씨' 할 때 씨가 아니고, 신을 의미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 다섯 신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 오씨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봤을 유명한 유소, 수인, 복희, 여와, 신농씨가 속해 있다.

 

유소씨는 사람들에게 나무 위에 집을 짓는 법을 알려줘서 야수와 홍수의 피해를 줄일 수 있게 해줬다는데, 아마도 황하강 범람과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수인씨는 불을 얻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그리스 신화에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역할을 한 듯 보인다. 물론 그로 인해서 매일 독수리가 심장을 파 먹는 벌은 받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복희씨는 음식을 익혀 먹는 화식을 알려줬는데, 사실 화식은 인류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생식보다도 화식이 훨씬 더 소화가 쉽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은 유기체이긴 하지만, 일종의 에너지 생산 장치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거기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화 그 자체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행위가 된다. , 에너지를 일정량 소비해야만 소화가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남는 에너지를 생각과 행동에 쓸 수 있다. 그래서 만약 소화에 에너지를 많이 쓰면 당연히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

 

그래서 화식을 하게 되면 소화에 에너지를 덜 쓰게 됨으로써 여분의 에너지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이용해서 좀 더 많은 생각과 더 많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쉽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기에 좀 덜 에너지를 쓰고도 더 많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선 순환이 되면, 결국 우리는 최소한의 에너지를 써서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된다.

 

이 원리는 지금 현대에서도 똑같이 동작하고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란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같은 에너지를 이용해서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는다.

 

아무튼 어떤 학자들은 인류의 발전에 화식이 정말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복희씨는 팔괘를 만들어서 사람의 길흉화복을 알 수 있는 점복술에 이용할 수 있게 했는데, 이것은 주역에 나오며 지금도 점을 치는데 사용되고 있다.

 

복희씨는 재주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악기도 만들었고, 결혼제도를 만들었으며, 그물도 만들고, 야생 동물을 키워서 먹거나 이용하는 축산업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아주 오래되고도 중요한 생산품인, 누에를 길러 비단을 만들어내는 법도 알려줬다고 한다.

 

다음으로 여와씨도 조금 다른 의미로 유명한데, 그녀는 뱀의 몸을 가졌으며, 당시 오씨에는 못 들어가지만 공공씨와 축융씨가 있었는데, 그 둘이 여와씨를 두고 사랑 싸움을 한 모양이다. 둘 모두 신이다 보니 싸움이 아주 격렬했는데, 그러다가 축융씨가 이기고 싸움에 진 공공씨가 미쳐 날뛰다가 하늘에 구멍이 나고 대지는 기울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여와씨는 오색돌을 잘 구워서 하늘 구멍을 막음으로써 인간 세상을 구원한다. 그리고 거북이를 죽여서 대지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홍수가 나자 갈대를 태워 그 재로 물을 끌어들임으로써 재앙을 막는데, 그때 생겨난 지형이 바로 중국의 유명한 화북평원이라고 한다. 이 땅은 중국 내에서도 평탄하고 비옥하기로 유명하다.

 

신농씨는 복희씨 정도로 많은 일을 하는데, 풀과 과일을 일일이 맛보고 감별해서,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모두 구분했고, 질병 치료의 효능이 있는 약제도 알려줬다고 한다. 그래서 '본초' 라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는데, 이 책은 중국 의학서적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권위가 있는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성질이 순한 야수를 집에서 기를 수 있게 했으며, 그로 인해서 개, , , 돼지 등을 키울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언제 등장할까?) 그런데 이 동물들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 놀이인 '윷놀이' 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유일하게 걸()이 빠져 있다. 그럼에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민속일인 정월 대보름이 신농씨와 관련이 있고, 이날 척사대회를 하게 되는데 바로 윷놀이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너무 오래된 일이라서 너무도 많은 설이 있음에도 신농씨와 윷놀이는 관련이 있는 것은 같다. 그리고 또한 이 신농씨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우리나라의 신화에도 출현하기 때문에, 이것이 중국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중국에서 우리나라 신화를 가져간 것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지금은 각자 서로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혹은 중국과 우리나라가 예전에 하나의 개념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오씨의 시대가 지나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오제의 시대에 나오는 '치우' 는 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신농씨를 끝으로 중국 역사의 신화의 시대가 끝난다. 그리고 BC 27세기 정도, 즉 지금으로부터 4700년 전쯤에 오제의 시대가 열리면서 전설의 시대가 시작된다. 오제의 시대는  500년 정도의 시간인데, 아무래도 '' 라는 숫자 음율을 맞추려고 조금 억지로 정한 듯 한 느낌이 있다.

 

그 당시 아주 강한 세 개의 부락이 있었는데, 신농부락의 강유망, 구려부락의 치우, 유웅부락의 희헌원이 바로 그 부락의 족장이었다.

 

그리고 유웅 부락과 신농 부락이 싸움을 벌였는데, 판천들판에서 유웅이 크게 이김으로써 유웅은 탁록 들판으로 전진을 했고, 그러자 거기에서 구려부락의 치우와 맞닥뜨리게 된다.

 

둘의 전투는 치열했나 보다.

 

구려의 치우가 입으로 안개를 뿜어서 시야를 가리자, 유웅의 희헌원은 나침반이 달린 수레, 즉 지남거라고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서 대응한다. 그리고 다시 치우가 비와 바람의 신을 불러 광풍과 폭우를 내리게 하자, 가뭄의 신인 한발을 불러 막았다고 한다. 홍수를 가뭄으로 막은 것이다.

 

그래서 결국 유웅의 희헌원이 승리하고 치우는 패배하여 도망쳐 나중에 묘족의 조상이(동남아 지역에 퍼져 살고 있는 소수 민족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역사관은 중국 내에서 나온 것이기에 명확하지는 않다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치우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그가 바로 치우천황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그는 비와 바람을 부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치우천황은 그 출처가 명확하지도 않고, 사학에서도 유사사학으로 알려진 '환단고기' '규원사화' 등에서 언급되고 있기에, 그것의 신빙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물론, 이 역시도 명확한 것이 아니다. 너무도 오래된 과거에 대한 해석이기에, 무엇이 정답일 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작가 중 한 명이 이 치우천황을 주제로 '치우천황기' 라는 판타지 소설을 써 낸 적도 있다. 그가 바로 '퇴마록' 으로 유명한 이우혁 작가이다. 재미는 있는 소설이겠지만, 신뢰는 그다지 없는 말 그대로 판타지 소설이다.

 

아무튼 삼자 대결에서 최종 승리를 거둔 유웅 부락의 희헌원은 이후 천자, 즉 하늘님의 아들로 불린다. 그때가 바로 BC 2698년이다. 오씨는 신이었고, 오제는 신의 아들인 셈이다.

 

희헌원은 일종의 천재였는데, 백성들에게 집 짓는 기술을 알려주고, 옷감을 생산하는 법을 전파했으며, 접시와 독과 같은 생활용품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는 수레와 배를 발명했고, 활과 화살과 같은 병기도 만들었으며, 진법을 개발했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다섯 음계를 기본으로 한 음율 체계 자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또한 피리, 퉁소, 거문고와 같은 악기도 만들어 내었다고 한다.

 

그는 또한 정전제, 즉 땅을 우물 정()자 모양으로 아홉 조각으로 나눈 후, 중앙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모두 백성에게 임대하고, 중앙에 있는 땅 부분만 공동으로 경작하게 하여, 그 땅에서 나오는 농작물만 나라에서 세금으로 가져가는, 일종의 1/9만큼만 가져가는 세금 징수 방식을 적용했다.

 

그리고 그만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주변 인물들도 재주가 있었다.

 

그의 아내였던 '누조' 는 누에고치로부터 비단을 만들어 내는 법을 백성들에게 전파했으며, 대신이었던 '창힐' 은 문자를 발명했는데, 그 문자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한문의 원형이 된다. 또 다른 대신이었던 '예수' 는 산술, 즉 계산법을 발명했고, '용성' 은 역법, 즉 달력을 만들었다.

 

희헌원이 다스린 100년간은 도적도 없고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의 시대였다고 전해진다. 말 그대로 태평성대의 시대였던 것이다. 심지어 호랑이와 같은 포식자들도 스스로 살생을 금했다고 하는데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이 전설의 시대가 많이 와전되고 부풀려진 것임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

 

희헌원은 BC 2598년 하늘로 승천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그의 죽음을 뜻하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도 하늘로 승천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승천을 계기로 지상에서는 모든 신령스러운 요소가 사라졌다고 한다. , 비와 바람을 부른다든가, 여신 한발을 부른다든가 하는 등의 도술이 지상 세계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이 희헌원은 중국의 아주 오래된 종교인 도교에서 가장 으뜸가는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산신령이나 도사 이미지의 원형이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희헌원이 승천한 후, 희전욱이란 인물이 뒤를 이었는데, 그 역시 오제 중 한 명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길에서 만나면 여자가 뒤로 물러서서 남자가 먼저 지나가게 해야 한다는' 는 다소 남성 우월적인 규칙 하나만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은 희준은 평범했고, 또 그의 뒤를 이은 희지는 평범도 아닌, 포악했던 인물로 최초의 폭군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오제에 조차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희지의 뒤를 이은 황제가 이기방훈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인데,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요제, 즉 요임금이다.

 


중국이 흔히 좋았던 시대를 꼽을 때 요순 시대를 많이 이야기 하는데, 이때 나오는 요와 순이 두 임금들을 칭하는 말이다. , 요순시대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시대인 것이다.

 

요제는 태음력을 제정하고, 마음씨가 아주 좋았다고 한다.

 

중국에서 BC 2297년에 대홍수가 나서 대규모 물난리가 났는데, 그것을 위해 요제가 사곤이란 인물에게 물을 다스리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실패를 하자 그를 죽이고는 - 마음씨가 좋다는 이유가? - 그의 아들인 사문명에게 대신 맡긴다. 그러자 사문명은 용문을 뚫어 황하의 물을 통하게 함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한다.

 

당시 공사는 13년이 걸렸는데, 이 공사가 끝나고서야 황하강의 홍수가 멈췄다고 전해진다.

 

또 시간이 흘러 BC 2258년이 되자 요제가 사위인 요중화에게 왕위를 선양했고, 그가 순제가 된다.

 

순제는 효도와 우애의 상징으로써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전국의 행정체계를 구획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그는 BC 2208년에 황하의 홍수를 막아낸 사곤의 아들 사문명에게 왕위를 선양한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오제의 시대가 끝나고, 역사적으로는 신화의 시대를 거쳐 전설의 시대가 마감을 한다. 이렇게 중국의 고대사는 BC 2208년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문명을 기점으로 나눠진다.

 

이제는 반역사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 중국 역사에 대한 부분은 너무도 많은 버전이 존재해서, 이 글은 '백양' 이란 중국분이 쓴 역사서를 '김영수'라는 분이 옮기신, '맨얼굴의 중국사' 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고대사는 정확히 규정할 수가 없으며, 또한 지금도 역사 전쟁이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일개 개인으로써 선뜻 어느 쪽이 옳다고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저 쉽게 읽을만한 역사서로 이 책을 선택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삼황오제에 관련한 내용도 누가 거기에 들어가느냐에 대한 버전도 너무도 많습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정의한 삼황오제가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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