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10. 나를 용서하기

아이루다 2017. 6. 5. 07:21

 

지난 글에서 저는 왜 당신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인 후, 결국 용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설명 드렸어요.

 

그 내용이 당신의 마음에 들었는지 아니면 좀 황당한 주장같이 들리셨는지 모르겠네요.

 

황당하다는 생각이나 반발감이 들었다고 해도 저는 이해해요.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인류 보편적 가치가, 사실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에게 주입된 일종의 세뇌이며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을 했으니까요.

 

이것에 대해서 처음 생각을 해 본 사람이라면 궤변이나 혹은 억지 주장이라고 여기실지도 몰라요. 그리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는 아니라고 생각하실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 생각도 맞아요. 단지 한 가지만 이해해주시길 바래요.

기본적으로 생각은 하나의 흐름 형태로 전개돼요. 그리고 그 생각을 정리한 글 역시도 그런 흐름을 가진 채, 평면적으로 쓰여지죠.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상은 전혀 달라요. 세상은 모든 것이 동시 다발적으로 이뤄지며, 그 실제 형체부터도 입체적이에요. 이 둘의 차이는 마치 삼차원의 세상을 모니터인 이차원으로 보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말이나 글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세상에 대해서 모든 면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답니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말이나 글은 항상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일부분만을 강조하게 되어 있어요.

 

아무튼 저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면을 다루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는 있어요. 그러니 그런 관점에서 이해해주셨으면 하네요.

 

, 그러면 좀 더 나가보도록 해요. 설령 제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이 억지스럽다고 해도 앞으로 더 나갈 필요는 있어요. 왜냐고요?

 

아직도 그것을 모르시겠어요? 그 이유는 당신은 그저 행복하고 싶거든요. 이 점을 잊지 마세요.

 

당신은 행복하고 싶기 때문에 제가 한 모든 말이 비논리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해도 더 나갈 수 밖에 없어요행복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논리적이거든요. 예전에도 말했지만, 행복은 논리나 이성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그래요. 단지 그것들을 이용하면 행복할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에요.

 

그러니 행복하고 싶으시다면 이성과 합리 그리고 논리는 잠시 치워두세요.

 

이미 많이 반복해서 설명을 했듯이, 자책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용서하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참 좋은 것이에요. 하지만 여기엔 조심해야 할 문제 하나가 숨겨져 있죠.

 

그것은 바로 과도한 자기 용서에요. , 자신을 너무 쉽게 용서하면 바로 그것이 바로 자기 합리화가 되고 말아요. 그래서 적당한 자책과 용서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해요.

 

그렇지만 말이 그렇지, 사실 그것들 적당히 하기란 무척 힘들어요. 마치 요리에서 어떤 양념을 넣을 때 적당히 넣어야 한다는 요리 고수의 말처럼 애매하죠.

 

그래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쯤까지 자책을 해야 하고언제쯤 용서를 해야 할지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죠. 그래도 대략이라도 그 시점을 알려고 노력은 해야 해요.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될 때 당신은 둘 사이의 균형 속에서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요.

 

지금부터 그것에 대해서 아주 일반화 된 방법을 설명 드릴게요사실 그렇다할 별 다른 근거가 없어요. 그냥 제가 했던 경험을 설명 드리는 것이에요.

 

일단 시작은 이렇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나 혹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자책감이나 죄책감이 들 경우, 한 동안은 그냥 그렇게 나둬야 해요.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에요.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은, 너무 빠르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싶다는 욕구에요. 이해해요. 물론 당연히 그러고 싶죠.

 

당장 마음이 불편하고답답하고, 불행하니까요누가 그것을 참겠어요?

 

하지만 그 시점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반응 자체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신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중력의 법칙처럼 당연한 것이에요. 그것이 그토록 당연한 것이니 절대로 그 자체를 확대해석만 하지 마세요.

 

'나는 왜 남들처럼 그런 일을 쉽게 넘기지 못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바로 버리세요. 분명히 확대해석이에요.

 

그리고 나서 다음 단계로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이 느끼는 그런 감정을 남에게 말하는 것을 가능하다면 자제하는 것이에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 마세요.

 

왜 그러냐고요?

 


혹시라도 당신이 느끼는 자책감이나 죄책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면,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자신을 위로해달라는 메시지를 상대에게 전달하게 된답니다당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어요.

 

그런 과정은 당신이 감당하거나 조절 가능한 일이 아니에요당신이 당신의 문제를 상대에게 이야기 하게 되면,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분명히 당신을 위로하려고 할 것이에요. 그 사람 역시도 조절 불가능해요.

 

이것은 당연한 감응이에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해왔던 본능과도 같은 공감능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앞에 있는 상대가 힘들어하면 자신도 모르게 위로를 하려고 해요. 설령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래요.

 

그래서 당장 위로를 받으면 기분이 나아지긴 하겠죠. 하지만 그럴 경우 당신은 충분한 반성없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생겨요. 이것은 자기 합리화, 아니 사실상 더 좋지 않는 타인에 의한 강제적 자기 합리화가 생겨버리고 만 것이죠.

 

이것이 반복되면 당신은 그것에 중독돼요.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뭔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달콤한 위로를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약속을 잡아요그리고 위로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점점 확실해지기 때문에, 자신의 문제를 설명할 때도 점점 더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요.

 

이것이 반복되면당신은 타인에 의한 자기 합리화의 고수가 되죠. 그래서 사람들만 만나면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바빠요.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점을 드러내려고 하죠. 하지만 이것은 가짜 고민이에요.

 

원래 사람은 진짜로 그것이 고민스럽다면,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숨길 수 밖에 없어요. 당신이 허리가 삐끗했다면 어디를 가나 쉽게 얘기하고 다니겠지만, 당신이 암에 걸렸다면 그것을 아무에게나 이야기 하시겠어요?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젠 필요해서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받기 위해서 문제를 만들기도 해요. 별 것도 아닌 일에 대해서 문제라고 부풀려요. 하지만 이런 태도는 결국 진짜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생각할 시간을 뺏어버리고 말아요.

 

이런 현상은 이후 본격적인 문제를 만들어 내게 돼요. 그것이 바로 당신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 '문제를 해결한 당신' 과 실제로는 전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당신'  사이의 괴리감이에요. 

 

, 의식 속의 당신, 즉 당신이 믿는 당신은 안정적이고 별 다른 문제가 없는 존재에요. 하지만 당신의 무의식은 달라요. 의식은 위로를 받았지만, 무의식은 전혀 위로를 받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무의식은 당신을 여전히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고, 미래가 불안한 존재라고 여겨요.

 

이것은 당신에게 원인 모를 불안감을 만들어 내게 돼요. 그래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면 딱히 불안한 것도 없는데도 불안함이 느껴져요. 별 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덜컹해요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걱정거리가 없는데도 걱정스러워요. 지금 누가 봐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를 빠뜨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요.

 

평소에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건강하다가도 어딘가 가끔 몸이 아프거나 이상한 느낌이 들면 그것이 장기화 되거나 혹은 몸에 큰 문제가 생겼을까봐 불안함을 느껴요. 왜냐하면 자신이 건강을 위해 전혀 운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거든요.

 

반대로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은 동일한 증상이 나타나도 훨씬 덜 불안해 해요. 당연해요. 이미 충분히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으니 건강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증상은 일시적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운동 선수들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감을 위해서에요.

 

이것이 바로 어떤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고 있느냐와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의 차이이죠.

 

타인의 위로를 통한 자기 합리화는 오직 의식만 설득할 수 있어요. 그 어떤 위로도 무의식을 설득할 수는 없거든요. 무의식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에요.

 

어두운 밤, 멀리서 하얀 물체가 보였을 때, 생각은 그것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더라도 마음 속 한 구석이 섬뜩한 것은 말릴 수가 없어요. 그것은 무의식의 영역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당신이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그저 위로를 통해 처리한 많은 문제들은 무의식에 남아서 결국 당신의 불안함, 우울함이 시작되게 돼요.

 

이것은 돈 걱정도 없고, 자식들도 잘 크고, 남편도 든든하고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주부가 느끼는 원인 모를 불안감이에요.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딱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죠. 자신의 행복이 모두 다른 사람의 존재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늘 느껴지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문득 느껴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다가 느끼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다가 느끼고, TV를 보다가도 느끼고, 영화를 보다가도 느껴요.

 

그런 느낌이 올 때마다 당신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말하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요. 사실 영화나 소설이 주는 감동이 그것이에요. 당신이 위로를 받고 빠르게 넘겨버렸던, 사실은 전혀 다뤄지지 않는 무의식적 감정들을 건드려 주거든요.

 

그러면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으로 인해 깊은 공감을 느끼게 돼요. 평소엔 길거리에 있는 노숙자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도움도 주지 않지만, 그들을 다룬 영화 속에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면 눈물을 흘려요하지만 문제는 영화가 끝나면 또 다시 무관심해지죠.

 

당신이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자신이 외면했고, 자신이 잊었던 어떤 것들을 영화가 보여주기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죠. 이런 현상은 그저 당신 내면 깊은 곳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만 증명해 줄 뿐이에요.

 

당신은 자기 합리화를 통해 이미 다 처리했다고 생각한 수 많은 종류의 자책감과 죄책감들이 당신 마음 속에 응어리 진 채 남아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죠.

 

그래도 한바탕 울고 나면 후련하긴 해요. 그것을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그런데 그것이 후련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해결된 것은 아니에요. 그저 잠시 감정적으로 풀린 것뿐이에요.

 

이렇게 이 응어리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당신은 계속 지속적으로 그 존재를 느끼게 될 것이에요. 그래서 혹시 당신의 삶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을 품게 할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에요. 그러면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할까요?

 

그때 바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봐요. 자신의 삶에 문제가 없는지 알고 싶으니까 남의 삶을 보면서 비교를 하려고 해요이런 전개는 아주 당연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행동은 의도와 달리 당신을 더욱 더 불안하게 만들고 말아요.

 

왜냐하면 당신이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듯이, 남들도 역시 당신과 똑같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 자신의 내면도 제대로 볼 수 없었으니, 다른 사람의 내면은 더더욱 볼 수 없죠. 그러니 쳐다봐야 도움이 될 것은 별로 없어요. 오히려 해가 되고 말아요.

 

반드시 오해가 생겨나거든요.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들의 의식이에요. 말과 글로 표현되는 내용은 오직 의식만 다룰 수 있어요. 무의식의 내면은 이성과 논리로 다뤄질 수 없답니다.

  

그나마 당신이 아주 뛰어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사람들 속에 숨겨진 무의식이 보일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이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 글을 읽고 있을 리가 없죠. 이미 다 알고 있을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당신 눈에 다른 사람들의 의식은 어떻게 보일까요? 아주 멀쩡하죠. 외부로 표현되는 의식은 당연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거든요. 그러니 불안함도 안 보이고, 두려움도 없어 보여요. 그리고 행복해 보여요. 그러니 그것을 바라 본 당신만 더 불안해져요. 당신만 문제가 있는 것 같거든요. 당신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거든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행위는 결국 당신의 삶을 더욱 더 흔들리게 만들어요. 그리고 당신은 당신도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되죠. 그러면 불안함도 없어지고, 행복할 것 같아요.

 

뭔가 확신 있게 사는 사람삶의 목적이 분명해 보이는 사람자신이 바라보는 방향성이 명확하게 있어 보이는 사람 등등, 당신이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에게는 좀처럼 불안함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요. 매일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만 보이죠. 당신의 눈에 비친 그들은 완벽해요.

 

그래서 당신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끌리게 되요그들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이 느껴질 때마다 더 그래요.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요마치 자신이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추가적으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책감과 죄책감이 생겨나요.

 

결국 당신은 결단을 해요. 하지만 사실은 전혀 잘못된 결단이죠.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불안한 내면의 원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바라본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가능하면 흉내내려고 해요. 그런데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다른 불안한 사람들도 그래요. 그러니 서로가 서로를 흉내 내요문제는 서로 왜 하는지 모르고 흉내를 내고 있다는 점이죠

 

돈을 모으거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하거나, 취미를 하거나, 여행을 떠나거나,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요. 누군가 좋다는 제품을 사고, 좋은 집을 가지려고 하고, 멋진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어하고, 캠핑을 떠나고, 문화 생활을 즐겨요.

 

많은 흉내를 내고 나면 이제는 자신이 그런 것들로부터 어느 정도 멀어졌다고 생각해요. 흉내를 더 많이 내면 낼 수록 더욱 더 자신은 내면의 불안함과 혼란스러움으로부터 멀어졌다고 느껴요.

 

그런데 정말로 그랬을까요?

 

원래는 처음엔 그럴 목적이 아니었어요. 그저 당신의 삶이 제대로인지 판단하려고 남을 바라봤어요.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바로 깊은 내면엔 자책감과 죄책감에 따른 불안함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남을 보다가 보니 아주 엉뚱한 결과가 생겨나 버렸어요. 바로 서로의 삶을 복사하는 것이죠.

 

, 나름대로 효과는 있어요. 남들이 여행을 가면 당신도 가고, 남들이 맛난 것을 먹으면 당신도 먹고, 남들이 무엇인가를 사면 당신도 사고, 남들이 읽는 책을 당신도 읽어요. 어느 정도 행복하기도 해요. 그리고 행복하면 내면의 숨겨진 불안함은 잠시 머리 속에서 잊혀지죠. 그래서 자신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느낌을 남들에게 나눠요.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설명해요. 그러면 이제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따라 하기 시작해요. 당신은 그들보다 좀 더 확신 있고 제대로 살고 있는 듯 보이거든요. 그러면 당신은 자신감이 생겨요. 이제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번 솔직히 생각해 보죠. 정말로 이렇게 하면 해결이 된 것일까요? 단지 기분이 좋아서 내면의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해결된 것일까요?

 

여행을 가고, 맛난 것을 먹고, 뭔가를 사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가끔 눈물을 흘리고 살면 당신의 내면에 있는 그 모든 불안함의 요소들, 즉 자책감이나 죄책감 같은 것들이 완전히 사라졌을까요?

 

결코 아니죠. 그런 것들은 그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점점 확신이 있는 사람이 되어가요. 왜냐하면 확신 있어 보이는 행동을 계속 따라 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당신의 외면은 무척 단단해지죠.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그래져요. 어른이 될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이 그렇게나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 이유에요. 그리고 그 확신에는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들, 즉 자책감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들에 대한 경계심과 부정이 담겨 있어요.

 

,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대상이 있으면 그것 자체를 멀리하고 부정해요.

 

예전엔 지나가다가 거지를 보고 도와주지 못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그냥 계속 지나치다가 보면, 나중엔 왜 거지가 늘 저기에 있는지가 짜증이 나요.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니까 그것을 보고 싶지 않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거지는 모두 게으르고 나쁜 존재이니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돼요.

 

당신은 처음엔 거지를 보면 마음 한 구석에서 연민이 느껴졌어요왜냐고요? 사회가 당신을 그렇게 가르치거든요. 초등학교 때 배워요. 사회는 부지런함의 가치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배려와 동정 그리고 관용의 가치를 가르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당신은 이 중에서 거지가 가지고 있지 못한 부지런함의 가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버려요. 그리고 나서 그것만을 기준으로 거지를 바라봐요. 그러니 거지가 한없이 한심하죠.

 

하지만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남기고, 불리한 것만 버릴 수 없어요. 다 같이 버리거나 다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해요. 우리는 그렇게 교육을 받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선별적으로 버렸다고 생각했다면 착각이죠. 당신이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은 채당신의 내면에 그대로 살아 있어요. 그래서 당신은 거지를 볼 때마다 그것이 되살아나서 불편해져요. 그러니 화가 나요. 그래서 결국 거지를 부정해 버리고 말아요.


그렇게 당신은 변형되어 버리고 말죠.

 


젊은 시절 돈보다는 다른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당신은 어느덧 돈이 최고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크게 공감하는 돈의 신봉자가 되어 있죠. 젊은 시절 꿈과 열정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당신이 안정과 편안함이 최고라고 믿게 되죠. 그리고 당신의 젊은 시절처럼 말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철이 덜 들었다고 하거나, 세상을 덜 살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게 돼요.

 

이것이 바로 당신이 변형된 결과에요. 아무리 스스로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를 대더라도, 당신은 그저 변형된 것뿐이에요.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당신은 좀 더 나은 사람이었어요. 당신은 좀 더 따뜻하고, 관대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변형되고 말았죠.

 

세계 역사상 가장 악랄한 악당으로 꼽히는 히틀러조차도 젊은 시절엔 미술을 공부하던 순수한 학생이었어요. 그는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에 두 번이나 연속으로 낙방하자 좌절하고는 그렇게 변형되어 버렸어요. 심지어 자신을 낙방시킨 심사위원 중에서 유대인이 여러 명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것에 대한 미움으로 인해 나중에 유대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말죠.

 

당신은 히틀러처럼 심하게 변형된 것은 아니죠. 하지만 당신도 어떤 식으로든 변형되었다는 것은 확실해요.

 

만약 당신이 당신 마음 속에 담겨 있는 타인에 대한 관용의 마음을 좀 더 제대로 바라봤다면, 그래서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자책감과 죄책감에 대해서 좀 더 꿰뚫어 봤다면, 현재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었을 것이에요.

 

당신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좀 더 친절하고, 관대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반대 방향으로 변형되어서 나갔어요. 덕분에 당신은 확신이 생겼고, 단단해졌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면은 전혀 바뀐 것도 없고, 오히려 더 상처를 받고 있어요.

 

대신 당신은 그 내면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것을 재빠르게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죠. 그래서 그런 생각이 잠깐 들어도 금세 잊어버리고 말아요. 그리고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당신이 가진 생각을 말해줘요.

 

그러면 그들은 당신의 확신 있는 생각에 영향을 받아서 결국 당신의 삶처럼 살게 되죠. 당신도 그랬던 것이에요. 누군가 당신처럼 살았던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죠.

 

하지만 당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도, 당신도, 당신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도 모두 같아요. 그 숨겨진 깊은 내면의 상처는 전혀 치료되지 못했죠. 당신은 여전히 자책하고 있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제대로 된 것일까요? 아니죠. 당신은 원래의 따뜻한 당신으로 돌아와야 해요.

 

그것을 위해서 당신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용서'가 필요해요. 남이 해준 위로를 통한 타의적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해줄 수 있는 용서가 필요해요.

 

그러니 어떤 문제나 실수로 인해서 자책감이나 죄책감이 들 때, 충분한 시간을 가지세요. 그것은 쉽게 처리되어서는 안돼요. 그것은 빨리 처리되어서는 안돼요.

 

이 시간은 참으로 중요하답니다. 당신이 진짜로 성장하는 시간이에요. 당신이 변형으로부터 다시 복구가 되는 시간이에요. 당신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에요.

 


원래 태양이 뜨는 낮도 중요하지만, 달이 뜨는 밤도 필요하답니다. 우리는 밤에 쉬어야 낮에 활기차게 돌아다닐 수 있어요.

 

충분히 생각을 하고 난 후그것을 위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계획해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시작하세요. 그리고 그때와 같이해서 비로소 천천히 자기 용서가 시작될 수 있어요. 당신이 제대로 변화될 수 있어요.

 

대신 꼭 주의할 점은 있어요. 그 문제가 당신을 집어 삼키지 않도록 아주 주의 깊게 바라보셔야 해요. 감당할 수 없는 자책감은 당신을 파괴시킬 수도 있거든요. 그때는 잠시 합리화를 하세요. 친구를 만나 도움을 받으세요. 너무 힘들면 전문적인 상담가라도 만나 보세요. 태양이 너무 뜨거울 때는 일단 그늘에서 쉬어야 해요. 목적지에 가는 것은 그 다음 목표죠.

 

그리고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후에 움직이세요. 당신의 자책감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을 때, 다시 시작하세요. 단지 결코 잊지 마세요. 그냥 넘기지 마세요.

 

만약 거지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면, 다음엔 거지에게 동전 몇 개라도 주세요. 그러면 훨씬 마음이 편해질 것이에요. 하지만 동전 몇 개를 주는 것이 아깝다고 느꼈다면, 주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의 범위를 넘는 일이에요. 그리고 더 이상 거지에 대해서 불필요한 감정을 느끼지 마세요. 불쌍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관대함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일 뿐이에요.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에요. 그저 당신이 그런 사람일 뿐이죠.

 

그런 당신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저 사회가 정의한 좋은 가치에 너무 많이 세뇌된 것뿐이에요. 당신이 예전에 그랬듯이 말이에요. 그러니 그런 그들을 관대하게 용서하세요. 그리고 당신도 용서하세요.

 

보통 사람인 당신은 비겁하고, 용기가 없고, 불안해 하고, 확신도 없고, 삶의 방향도 잘 모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잘 판단하지 못하는 존재에요. 이것은 당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이에요.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한계에요. 결코 당신만의 한계가 아니에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 나온 좋은 신발을 만들려고 했던 부자이야기가 있어요. 그날 저녁에 죽을 줄도 모르고 멋지고 고급스러운 신발을 만들려고 했던 어떤 부자 말이에요. 인간은 바로 일분 후의 것도 몰라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요. 그런 우리들이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생각인지 이해할 수 있나요?

 

인간은 원래 불안하고 부족한 존재에요.

 

그러니 그런 문제를 일으키거나 실수를 한 당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주세요. 그 누구보다도 당신이 당신을 용서해야 해요. 그래서 당신의 깊은 내면에 상처받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끝없이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당신 자신을 스스로 구원하세요.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주지 못해요.

 

오직 당신 자신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어요.

 

제가 말하고 있는 것은 딱 하나에요.

 

당신의 깊게 숨겨진 내면을 바라보고, 그 안에 아주 오랫동안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있는 진짜 당신을 찾아내고 용서하세요. 그리고 따뜻하게 받아들이세요.

 

그것이 바로 당신의 진짜 상처를 치유하는 첫 번째 걸음이 될 것이에요.

 

행운을 빌겠어요. 그리고 앞으로 그것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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