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11. 불완전한 나

아이루다 2017. 6. 6. 07:42

 

지금까지 상처를 입고, 자책을 하게 되지만, 결국 자신을 용서해야 하는 것이 당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 설명을 드렸어요.


저의 설명으로 인해 당신이 설득이 되었는지, 아니면 혼란스러운지, 혹은 전혀 어떤 변화도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길 기대해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당신이 왜 상처를 입게 될 수 밖에 없는지, 또한 당신은 왜 스스로를 용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드릴게요. 


상처와 용서는 마치 원인과 결과와 같지만,  사실상 같은 원인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 아니 모든 사람들이 원래 불완전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인간의 불완전성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에요. 그런데도 제가 이것에 대해 또 다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당신은 알지만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죠. 당신이 본능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거부해요. 가능하면 완전하고 싶어하죠. 그러니 상처를 받게 돼요. 그러니 용서를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는 바로 당신의 불완전성, 당신의 부족함, 아니 인간의 불완전성과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길이라고 생각되네요.


그럼 이야기 한 편으로 그것에 대해서 시작해보도록 하죠.

 

한 엄마가 있어요그녀에게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있어요. 그리고 다른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처럼, 이 엄마에게 있어서도 이 두 아이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보물같은 존재에요.

 

특히 엄마는 첫째를 예뻐해요첫째는 공부도 잘하고 부모의 말도 잘 듣는 아들은 엄마의 자랑이에요. 또한 딸아이는 오빠만큼이나 썩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밝고 예쁘게 자라고 있어서 사랑스러워요.

 

그런데 최근에 엄마에게는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첫째 아이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첫째 아이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더니 뭔가 좀 달라졌거든요.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지인들에게 그것에 대해서 상담을 하니 아이에게 사춘기가 와서 그렇다고들 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진 하지만, 가끔 아이가 보여주는 낯선 느낌은 그녀를 불안하게 해요예전과 다르게 아이와 자신과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그 느낌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어느 순간에 갑자기 느껴져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마치 아이가 자신과 분리된듯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 한 구석이 철렁해요.

 

그래도 그나마 이런 변화는 아이가 사춘기이니까 억지로라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어요. 그것은 바로 아이의 성적이에요초등학교 시절부터 작년인 중학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1등을 도맡아서 했던 아이의 성적은 2학년 동안 내내 계속 조금씩 떨어져서 이제는 반 5등 안에 드는 것이 고작이에요.

 

전교 성적을 따지던 아이가 이젠 자기 학급에서 상위권 안에서 경쟁 중이에요.

 

사실 엄마는 아이가 공부를 잘한 덕분에 2학년 학부모 대표도 맡고 있어요. 아이가 공부를 워낙 잘하기도 하고, 본인이 좀 적극적으로 학교 일을 챙기다가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와의 뭔가 벽이 생기고아이의 성적마저 떨어지니, 요즘 엄마가 느끼는 불안감은 본인이 참기 힘들 정도에요.

 

처음엔 엄마도 나름대로 노력을 했죠성적이 떨어진 아이를 야단도 치고, 끝없이 잔소리도 하고, 원래 다니고 있는 학원에서 좀 더 비싸지만 더 잘 가르친다고 알려진 유명한 학원으로 바꿔줬어요. 그로 인해 경제적으로 무리가 되긴 했지만그래도 자신으로써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고 성적은 올라갈 기미가 없어요. 오히려 여전히 떨어지고 있어요. 그로 인해서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불안해져요.

 

큰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요. 그리고 그런 자신의 애타는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이가 밉기도 해요. 그런데 이젠 뭐라고 조언이라고 할라치면 아이는 그냥 자기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아 버리고 말아요. 엄마의 속타는 마음을 하나도 몰라줘요. 그리고 그러다 보니 엄마의 관심은 점점 더 둘째 아이로 향해요.

 

이제 초등학생이지만, 내년에 중학교를 갈 아이이니 좀 더 확실히 공부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번에 학원 하나를 더 등록시켰어요. 둘째는 첫째와는 달리 착해서 말을 잘 들어요. 그로 인해 더 늦게 집에 와야 했지만, 별 다른 내색 없이 새로 등록한 영어 학원에 잘 다녀요.

 

하지만 불안 증세는 여전해요. 그래서 엄마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혹은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을 볼 때마다 아이의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해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하죠. 하지만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아이를 원래대로 돌려놓지는 못해요.

 

그로 인해서 엄마는 이제 스트레스를 받아요.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간 아이의 인생이 망쳐질 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이에요.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아이가 뭐라고 얘기라도 하면 고칠 텐데, 대화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에요.

 

남편은 나름 돈은 잘 벌지만, 육아에는 아주 잼병이라서 아무런 도움이 안돼요. 남편에게 그 심각성을 아무리 얘기해도 그냥 사춘기니까 그렇다고 하면서 웃고 말아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아이가 아빠랑은 가끔 대화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아빠에게 아이를 좀 달래보라고 하는데, 아빠는 별로 그러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애들 아빠도 점점 미워지려고 해요. 좋은 사람이긴 한데,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아요. 또한 아이의 성적과 관련된 것 중에서 요즘 점점 더 심각해지는 문제가 하나 있어요.

 

그것은 바로 학부모 모임이에요. 그녀는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학부모 모임에 나갈 때마다 기가 죽어요다른 학부모들이 자신을 뒷담화 하는 듯 하고, 자기가 그 모임의 대표로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다른 친한 엄마들에게 이야기하면, 곧 다시 성적이 오를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잠시 안심이 되긴 해요.

 

그래도 힘든건 힘들어요. 예전엔 친구들이나 동창 모임에 가서 공부 잘하는 아이 자랑을 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요즘은 아이 얘기를 꺼낼 생각도 못해요. 그래서 우울함을 느껴요. 그래서 각종 모임에 가도 즐겁지가 않아요. 오히려 이제는 다른 친구들이나 동창들이 하는 은근슬쩍 자식 자랑을 그저 들어줘야 해요.

 

결국 엄마는 점점 더 활력이 떨어지고 삶 그 자체가 우울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더욱 더 첫째 아이의 그런 태도가 아쉽고 불만이 생겨요. 더욱 더 큰 불안감은 지금이 바닥이 아닌 것 같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이젠 둘째에게 선행 학습으로 중학교 수학 학원을 보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이 아빠는 반대하지만.

 

여기까지 그냥 평범하거나 혹은 특별할 수도 있는 어떤 가정의 엄마의 이야기에 대해서 적어봤어요. 그래서 공감이 가는 분들도 있고, 왜 애를 저렇게 키우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 그런데 지금은 그런 것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아요.

 

제가 이 이야기 속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엄마의 심리에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 드러난 의식적 부분이 아니고 깊게 숨겨져 있는 무의식적 심리이죠.

 

도대체 그녀에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요?

 

엄마는 최근에 일어난 아들의 변화를 불안감을 느껴요. 그리고 그런 아들의 미래가 걱정되죠. 그래서 뭔가 다시 제대로 되돌리고 싶어요. 모든 제를 해결하고 예전의 공부 잘하고 말도 잘듣는 아들로 돌아오길 바래요.

 

엄마는 두 아이의 삶이야 말로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요.

 

여기에서 던져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 이에요.

 

이 엄마의 생각처럼 정말로 그런 것일까요?

 

사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고 흔한 심리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죠. 그래요. 엄마는 자신이 아이를 위해 산다고 느끼지만, 사실 아니에요. 엄마는 그저 자신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에요.

 


엄마는 아이가 이뤄낸 성과,  성적으로 인해서 자신의 삶에 큰 도움을 받아왔어요.,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자신이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다든지, 동창 모임에 가서 신나게 자식 자랑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주거든요. 그녀는 어디에 가서도 자식이 공부를 잘한다는 것 때문에 기가 살아 있어요.

 

동창회에 나오는 모든 친구들 중에서 자기처럼 공부 잘하는 아이를 가진 애들은 없어요. 그래서 아이가 상을 받은 이야기나 혹은 담임에게 칭찬 받은 이야기를 하면 다들 부러운 눈으로 쳐다 봐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엄마가 느끼는 불안함이란 감정은 이젠 더 이상 그런 모임의 대표나 친구들 모임에서 그런 자랑을 하면서 부러움을 받는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요. 아이의 성공은 엄마의 성공이었는데, 아이의 성공이 더 이상 성공이 아닌 것이 되자, 엄마도 똑같이 추락하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추락이 걱정되고 있는 것이죠.

 

, 냉정히 말하면 엄마에게 있어서 아이는 그저 자신을 돋보이게 해주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에요. 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로 그것을 스스로 믿어요.

 

이런 착각은 비단 이 엄마만 가진 문제가 아니에요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가장 치명적 문제 중 하나에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느낀 감정의 출처를 잘 몰라요. 자신이 왜 불안하며, 왜 변화가 일어난 아이에게 불만이 생기며, 남편이 미운지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해요.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못 판단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해결책을 생각하거나 혹은 행동을 할 때 엉뚱한 짓을 해요. , 아이를 붙잡고 좋은 직장을 잡고 예쁜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면 지금부터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설득해요. 혹시 학원이 문제인가 싶어서 더 비싸고 더 경쟁적인 학원으로 경제적 무리를 해서라도 보내요.

 

그러다 보니 돈 문제도 생기고 자신만큼 걱정하지 않는 남편이 미워지게 되죠

 

이런 식으로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오판은 정말로 각자 개인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삶 자체가 왜곡되기도 하고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낳기도 해요. 특히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해결 될 수 있는 문제가, 뭔가 잘못된 해결책을 적용해서 오히려 더 문제가 커지고 말아요.

 

감기에 걸렸는데 암에 걸렸다고 판단해서 전신 방사선 처리를 해 대다수의 면역 세포를 죽여 버리고 나면, 그 후로는 아무 것도 아닌 감기 바이러스에 인해서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해요. 오판과 그것에 따른 잘못된 적용이 낳게 되는 아주 치명적 결과이죠.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아이 엄마는 자신의 불안감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해야 해요. 사실 아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고 하는 그녀의 욕구 조차도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죠.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서 엄마의 마음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보죠.

 

엄마는 왜 학부모 모임에서 대표를 맡은 것이나 친구들 모임에 자식 자랑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느꼈을까요? 원래 하던 것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그런 것일까요?

 

일단 그래 보이긴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에요여기엔 그녀가 가진 본질적 문제가 숨겨져 있어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상처받은 내면의 자아' 의 문제에요.

 


단순히 표현해서, 그녀는 자신이 스스로 이뤄낸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스스로 이뤄낸 성공이 없는 사람은 대부분 상처를 받게 되어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해서 그래요. 그래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강하죠.

 

그래서 이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엄마는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 자신의 차이를 메우기 위해서 아이의 성공, 즉 성적을 이용하고 있어요.

 

자신의 내부가 비어 있는 만큼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아이를 통해 그것을 채워넣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이 세상에서 자식을 키우고 있는 모든 부모의 극성스러움은 모두 그들의 내부가 비어 있음을 의미하고 있을 뿐이에요. 스스로를 채운 부모들은 자식에게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이런 부모들의 모습은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어요. 무조건 자신이 부족할수록 아이에게 더 강요를 하게 되어 있죠.

 

원래 인간의 모든 행위가 그래요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생각하고 행동해요. , 부족함이야 말로 진정한 모든 '욕망'의 연료에요. 그래서 부족함에 장작에 붙여서 태워 욕망이라는 불꽃을 만들어 내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그 부족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부와는 거의 관련이 없어요.

 

한번 생각해 보죠. 숨 쉬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영화 보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당연히 숨 쉬는 것이에요. 5분만 숨을 멈추면 죽거든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숨 쉬는 것에 욕망을 갖지 않아요. 왜냐하면 부족하지 않아서 그래요. 그렇지만 물에 빠지면 1분도 채 안되어서 가장 욕망하는 대상이 되죠.

 

키가 작은 사람은 키가 평생 동안의 욕망이 되고, 뚱뚱한 사람은 날씬한 몸매가 평생의 욕망이 돼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에게 없는 것이 욕망이 될 수 밖에 없죠.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진정한 부족함이 무엇인지 바라봐야 해요. 그것을 제대로 바라볼 때, 이 엄마가 가진 진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요이미 말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그 부족함이 중요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엄마에게 있어서 부족함은 스스로 이뤄낸 것이 없다는 자기 불만족이에요.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향해 자기 증명을 한 것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그녀는 그것이 필요해요.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이며,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증명 받고 싶어해요.

 

이 욕구는 비단 이 엄마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채울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아요. 그래서 이 엄마 역시도 채우지 못한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죠.

 

결국 엄마는 아이를 자신을 채우는 또 다른 자신으로 동일시하게 돼요. 아들의 성공이 엄마의 성공화 되는 것이죠, 아들은 엄마의 텅 빈 내면을 채우는 용도로 쓰여지는 것이죠. 그래서 잘못되면 아이는 결국 자기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꼭두각시가 돼버릴 수도 있어요. 모든 것을 엄마가 결정하니까요

 

그래도 이 경우처럼 아이가 반항이라도 하면 괜찮아요. 사실 더 문제는 어른이 될 때까지 그 상태로 커온 아이에요. 다른 사람의 욕망을 대신 실현하는 어른이 된 것이죠. 그것은 대리 인생이에요. 그래서 아이는 자기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살게 돼요.

 

여기까지만 봐도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해요.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에요엄마에게는 더 깊은 본질적 심리가 있어요.

 

그녀는 왜 그렇게 자기를 실현하고 싶어할까요원래 사람은 반드시 실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까요?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맞아요. 그리고 그런 심리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욕구 하나가 있답니다.

 


그것이 바로 생존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에요, 반대로 말하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요.

 

이것은 처음 들으면 참으로 이상한 말 같지만이것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본다면 결국 사실임을 알게 되실 것이에요.

 

당신이나 내가 그토록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길 원하는 것, 그리고 인정을 받았을 때 그런 큰 행복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생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에요. 사실 다른 많은 행복도 같은 원리에요. 그리고 다수가 함께 사는 삶의 형태를 살아야 하는 인간에겐 다른 사람의 인정이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든든한 생명의 밧줄이에요.

 

이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징이에요. 그것은 마치 전기를 꼽으면 돌아가는 전기 청소기와 같아요. 만약 전기를 꼽았는데도 청소기가 돌아가지 않으면그것은 고장 난 것이에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고장 난 청소기는 버리죠. 고장난 인간은 버림을 받지는 않지만, 사실상 인간으로써 가치를 잃어요. 그래서 인정의 받음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 사람은 세상을 살기가 힘들죠.

 

물론 그렇다고 해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는 생기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을 잃고 말아요. , 사람을 만날 필요를 못 느껴요. 그래서 무엇을 하든 흥미를 잃고 말죠. 이것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져요.

  

그러면 좀 더 이해를 하기 위해서 인정이 생존을 약속해주는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죠.

 

예전에 딥임팩트라는 영화가 있었어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인류 대부분이 죽는다는 이야기죠. 이때 세계는 공동 대책으로 인류 보존 계획을 세워요. 그래서 정말로 살려야 할 사람들만 소수 모아서 생존시키려고 하죠.

 

, 이때 누가 거기에 뽑힐까요? 무엇을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해서 선별을 할까요?

 

일단 미국의 대통령은 되겠죠. 하지만 인기가 많은 가수는 좀 힘들 수 있어요. 사실 그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정말로 현실적으로 판단하거든요. 머리가 좋은 과학자나 뛰어난 기술자들도 후보가 될 수 있어요. 의사들도 가능성이 있죠. 하지만 변호사가 필요할까요?

 

그래요 선별되는 이들의 공통 조건은 바로 인류 생존을 위해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그 인정도 어떤 분야에서 인정받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죠. 세계적인 뛰어난 마술사라고 해서 뽑힐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에요. 노벨 물리학상은 모르겠지만, 평화상을 받은 것도 그다지 고려되지는 않을 것이에요.

 

물론 이런 상황은 사실 좀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이라고 뭐가 그리 다를까요

 

회사를 예로 들어보죠. 만약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 누구를 먼저 자를까요? 당연히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겠죠. 혹은 회사 동료들과 관계가 좋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누구도 그 사람이 잘려 나갈 때 그것에 대해서 반발하지 않거든요. 이 둘 모두 업무능력에 대한 인정, 관계적 인정이 부족한 경우에요.

 

사실 회사 조직에서 정리해고는 남은 사람들의 불안함과도 크게 영향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이 나간 후 불안함을 크게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영향력이 큰 사람을 자르기가 쉽지 않아요. 반대로 일을 잘하더라도 영향력이 작은 사람은 대상이 될 수 있죠.

 

그리고 이 영향력이 바로 인정으로부터 나온답니다. 인정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영향력은 커지게 되어 있어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에는 바로 단체로부터 버려짐이나 쫓겨남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이 되어 있어요.

 

아주 오래 전 소수의 무리로 살아가던 원시인들 사이에서 뒤쳐지거나 추방이 되면 그 사람이 과연 생존할 수 있었을까요? 절대 아니죠.

 

그래요. 모든 인간의 깊은 내면엔 무리로부터 쫓겨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많은 단체에 소속되어서 그 안에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가지고 싶어 해요. 그래야 쫓겨나지 않거든요.

 


사람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어하는 권력욕도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요. 명예욕도 그렇고요. 권력를 가진 사람은 쫓아내는 입장이라서 쫓겨나지 않아요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은 좀처럼 쫓겨나지 않죠.

 

엄마에게 있어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자신을 인정받게 해주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근거였어요. 그러니 그녀가 학부모 대표도 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보통 잘난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해요. 우리가 잘난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잘난 사람들과 잘 알고 지내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래요. 그래서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을 아는 다른 엄마들이 그녀에게 더욱 더 호감을 보이는 것이에요.

 

좋은 관계를 맺어 놓으면 학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고, 아직은 어리지만 나중에 크게 성공할 수도 있는 아이의 엄마니까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학부모 모임에서 엄마에 대한 인정은 줄어들고, 동창회에서도 그녀에게 먼저 다가왔던 사람들은 멈칫하죠. 그리고 만약 아이의 성적이 더 떨어지면 잘난 척 하더니 꼴 좋다면서 뒷담화를 당해요.

 

이것이 엄마 내부에서 자동으로 일어난 무의식적 판단이에요. 그래서 그녀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커다란 불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그녀가 속한 어떤 모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 영향력이 줄면서 결국 쫓겨날지도 몰라요.

 

만약 순수하게 자신의 능력으로 그 위치에 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그녀의 불안함은 자신을 더욱 더 채찍질해서 더 인정을 받아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에요. 그로 인해서 얼마나 더 힘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말이에요.

 

이렇게 인정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면 그나마 나은데이런 경우처럼 자신이 아닌 아이를 아바타로 내세우게 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어요. 어떤 이유로 인해서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 순간 모든 것이 막혀 버리고 말거든요.

 

결국 이 긴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게 나요. 아이의 엄마는 인정, 즉 자신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기 위해서 아이를 이용하고 있는 셈이죠.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렇긴 해요. 단지 그 소중함과 사랑이 오직 그녀를 위해서만 필요한, 아주 이기적인 것임을 제외한다면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은 두 가지 이유로 눈물을 흘려요. 하나는 떠난 사람이 가여워서 울고, 다른 하나는 남은 자신의 삶이 두려워서 울어요. 이때 가여워서 우는 울음은 죽은 이와의 공감이고, 두려워서 우는 울음은 그저 자신을 위한 울음이죠. 이 둘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자신이 상대를 위해서 울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거든요.

 

이 이야기는 인간이 가진 내면의 불완전함의 원인을 잘 설명해주고 있어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나 내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두려움이에요. 그리고 더해서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감정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알려주고 있죠.

 

그리고 이것 말고도 엄청나게 많아요. 사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99%이상이라고 봐야 옳죠.

 

그래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끝없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늘어 놓지만, 사실 진짜로 자신의 감정을 알고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뜻이에요. 대부분은 쉽게 파악이 되는 표면적 감정만 설명하고 말죠.

 

그래서 결국 오판을 하고 엉뚱한 해결책을 생각했다가 더 큰 문제를 만들고 말아요.

 

그리고 그 문제를 인생의 전체적인 과정 속에서 끝없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요결국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자책감이나 죄책감을 가지고 살게 되죠. 이것이 바로 많은 인생이 비극으로 가는 이유에요.

 

만약 첫째 아이가 계속 반항적으로 굴다가 정말로 삐뚤어져서 어긋나거나 심한 경우 자살을 했다고 가정해보죠. 이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의 문제를 자책하게 될까요?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를 원망하게 될까요?

 

아마도 평생 동안이겠죠.

 

이러지 말아야 하겠죠? 그래서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정말로 깊게 이해를 해야 해요.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살펴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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