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을 넘어, 나를 찾다

8. 개인과 사회 - 1부

아이루다 2017. 6. 3. 08:10

 

 

이번 글에서는 지난 시간에 다뤘던, 왜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지, 또한 왜 그리 용서하기가 힘든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그것에 대한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임이 가능할 수 있다면, 당신이 현재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해결 가능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그렇지만 미리 예상되 듯, 그것을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은 결코 쉽지가 않아요.

 

설령 이 글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는 있더라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그렇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죠. 하지만 이 과정은 당신의 회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해요. 그래야 변형된 삶이 조금이라도 복구될 수 있어요.

 

지난 글들에서 저는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남의 탓으로 하는 사람과 자신의 탓을 하는 사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설명을 했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분명히 이 두 가지 중에서 후자인자신의 탓을 하는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은 원래부터 이런 글 자체를 읽지 않거든요.

 

남의 탓을 잘하는 사람은 정작 본인이 그다지 힘들지 않아요. 이미 충분히 합리화를 했으니까 그래요. 그러니 당연히 이런 종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자책으로 인해 상처가 난 분들이에요. 그래서 힘드니까 그 이유를 알고 싶어하죠. 물론 완전히 호기심으로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을 이렇게 만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거기에서 탈출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번 글에서 그것을 해내기 위해서 당신을 최대한 설득해보려고 해요. 물론 저의 설명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웃기는 글이라고 여길지는 온전히 당신의 몫이에요. 그럼에도 저는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부탁 하나만 할게요. 가능하면 마음을 열고 이 글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이 내용은 아주 오래된 굵고 질긴 밧줄이기에, 그것을 잘라내는 것은 정말로 힘들 수 있거든요.

 

, 그럼 이제부터 그것을 시작해보도록 할게요.

 

사람이라면 거의 대부분 삶을 어떤 사회에 속해서 살아가게 돼요. 원래 사회는 많은 사람들로 구성된 일종의 공동체인데, 거기에 속해서 살면 참 여러 가지가 편하기 때문에 사회를 벗어나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쉽게 선택 가능한 것은 아니죠. 그래서 우리들 대부분은 그냥 사회 속에서 태어나 사회 속에서 죽어요.

 

사회가 가진 가장  장점은 바로 구성원들의 안전이에요. 현대 사회는 너무 안전해져서 잊어버렸을지 모르겠지만사람들은 사회에 속해 있을 때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많은 위험한 것들로부터 보호가 되거든요.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포식자들, 독사나 독을 가진 곤충들, 태풍이나 화재와 같은 재해들, 각종 범죄나 사고 그리고 질병 등으로부터도 어느 정도는 보호가 되죠.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한 장점이 하나 더 있어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필요한 것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만요아무튼 자기가 잘하는 것만 열심히 해서 돈만 벌 수 있다면, 그 돈으로 생활에 필요한 많은 것을 구매해서 삶을 편하게 살 수 있죠.

 

안전함과 편리함, 이 두 개는 우리가 사회 속에서 살면서 얻는 가장 큰 혜택이에요. 더해서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답니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그나마 사회 속에서 자란 후, 나이를 먹고 어떤 사연으로 사회를 떠나 사람과 단절된 곳에서 사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어려서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서 자란 아이들은 거의 죽거나 혹은 살아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아요.

 

세계적으로 몇 차례 발견된 적이 있는 그들은 말도 못하고, 네 발로 걷고, 생고기를 먹기도 해요. 그래서 사실상 동물이죠소설인 타잔이나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는 그저 인간이 믿고 싶어하는 환상일 뿐이에요.

 

이런 이유로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좀 더 제대로 표현하면, 인간은 사회에 종속적인 존재에요. ,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거의 살기가 힘들다는 뜻이죠하지만 종속적이라는 부정적 표현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 점이 문제라는 뜻은 아니에요. 이것은 그야말로 자발적 종속이죠. 당연히 거기에 떠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죠사회는 분명히 단점이 있어요. 그것은 대체 뭘까요?

 

사회의 가장  단점은 바로 사회와 개인간의 갈등이에요.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과 개인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경우,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각자의 개인들은 결국 큰 갈등이나 좌절을 경험할 수 밖에 없어요.

 


기본적으로 사회는 단체에요. 그리고 사회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단체의 행복을 목적으로 해죠. , 사회는 한 개인의 죽음보다는 단체의 소멸을 훨씬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한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당연한 일인데, 사회에 속한 인간들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지만, 사회 그 자체는 영구히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회는 인류라는 존재를 영속적으로 유지 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개인의 입장은 다르죠. 개인은 어차피 백 년 살면 죽어요. 그러니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난 후의 세상에 대해서는 사회가 가진 관심만큼 관심이 없어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관심이 많긴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누군가는 정치를 하고, 누군가는 평생 투표도 한번 안하고 살죠.

 

대신 개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신의 행복이에요. 그래서 자신이 사는 백 년 가까운 시간동안 최대한 행복하게 살길 바라죠. 물론 그런 노력이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좋죠. 하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을 경우도 많다는 점이에요.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다가 의도치 않게 그것이 사회적 입장과 반대가 될 수 있어요. 우리는 이런 행동을 흔히 범죄라고 하죠. 하지만 사실 냉정히 바라보면 범죄도 인간의 행복 추구 종류 중 하나에요. 도둑질을 해서 돈을 손에 넣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각종 비리나 뇌물도 그런 종류에요.

 

그런데 그런 충돌은 비단 범죄뿐만이 아니에요. 각자 개인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사회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일이에요. 하지만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거나, 해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살기도 하죠.

 

이런 식으로 사회적 입장과 개인의 입장이 서로 다르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사회는 아주 명확하게 반응해요. 할 수 있다면 개인의 행복을 막아버리고 말죠. 물론 사회는 기본적으로는 개인의 행복을 최대한 보장해주려고 하긴 해요. 하지만 언제라도 개인의 행복이 사회의 미래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바로 처단하죠. 사회가 범죄 행위자를 엄벌하는 이유에요

 

전쟁과 같이 사회의 미래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이 현상은 훨씬 더 심각해져요전쟁이 나면 개인의 취향, 성향, 성격, 입장, 철학, 사상, 신념, 가치 등은 모두 싸그리 무시가 돼요. 젊은이들은 젊고 건강하다는 이유로 인해서 전쟁터로 징집되죠. 그것을 결코 개인이 원하는 것은 아니죠.

 

평소에도 그래요. 개인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지만 - 사실 이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국가마다 달라요 -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자유롭지는 못하죠.

 

아무리 자유가 있다고 해도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 갈 수는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도 없죠. 이것들은 모두 개인적 행복에 해당되는 것인데,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이 되지만,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철저하게 제어되고 있어요.

 

한 여름에 너무 더워서 옷을 다 벗고 길거리를 달려보고 싶다고 해도 그러면 금세 잡혀가고 말죠.

 

사회는 일종의 집단 지능이에요. 그러다 보니 매우 이성적으로 합리적이며 논리적이죠. 사회 속에서 정의된 많은 것들이 바로 그렇게 운영이 돼요.

 

하지만 개인은 달라요.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느냐에 상관없이 사실 개인은 기본적으로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무 논리적이에요. 왜냐고요당연해요. 인간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행복은 결코 이성, 합리, 논리에서 발생하지 않아요. 그것은 오직 감정이며, 감정은 원래 논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질투가 나는 것이 비 논리적이라고 해서 질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죠. 화가 나는 것이 비 이성적이라고 해도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죠. 누구가를 싫어하는 감정이 비 합리적이라고 해서 좋아지는 것은 아니죠.

 

예를 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놀이가 하나 있어요. 22명의 선수가 90분 동안 둥근 공 하나를 가지고 상대 편의 골대에 골을 넣으려고 최선을 다해요. 선수들은 그 경기를 위해서 수년을, 아니 수십 년을 공을 차면서 연습을 해왔어요. 그리고 그들이 겨루는 경기를 수억 명이 시청을 해요.

 

그리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아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요반대로 지면 화가 나서 밤새도록 술을 마셔요잘 생각해보세요. 여기에 어떤 이성과 합리성과 논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축구와 같은 운동경기를 하는 것을 바보같은 짓이라고 평가하기도 해요.

 

사실 이런 것들은 그냥 감정적인 것이에요그래도 그 순간 경기에 이긴 사람들은 정말로 행복하죠. 원래 행복 자체가 감정이기 때문에 그래요사람은 결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 행복할 수 없답니다.

 

사회의 두 번째 단점은 바로 개인간에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는 점이에요. , 사회는 서로 다른 목적 혹은 행복 방향을 가진 수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에요. 그러다 보니 끝없이 충돌이 나요. 부부가 싸우고, 친구가 싸우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싸우고, 계층별로 싸우고, 남자와 여자가 싸우고, 지역이 싸워요.

 

갈등은 개인과 개인간에서 무리와 무리로 확장되기도 해요. 그리고 이것은 많은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킨답니다. 그래서 사회는 끝없이 시끄럽게 되죠. 결국 사회는 그 갈등들을 조정하고자 법률을 정하고, 법을 집행하고, 끝없이 판결을 하지만, 원론적인 것들이 해결될 수는 없죠. 그래서 사회는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해요.

 

사회는 이 두 가지 단점을 극복하고 전체의 공존 번영을 원해요. 그것을 위해서 끝없이 합리적인 노력을 하죠. 그런데 이런 사회가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단순해요. 바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발전하면 돼요.

 

가능하다면 많은 뉴턴이나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가 나오면 되고, 칸트나 니체와 같은 철학자가 나오면 되고, 모차르트나 셰익스피어와 같은 음악가나 문학가가 나오면 돼요위대한 정치 지도자종교 지도자, 사상가, 경제학자, 발명가 등이 나오면 나올수록 인류 전체가 한 걸음씩 발전을 해요.

 

그래요. 사회는 스스로 발전할 수는 없어요. 거기엔 반드시 개인의 발전이 필요하죠. 그렇다면 사회는 어떤 방법을 통해 개인을 발전시키려고 할까요?

 

그 답은 쉬워요. 그것은 마치 아이를 공부하게 만드는 것과 같아요. 개인을 칭찬을 해주거나 합당한 보상을 약속해요.

 

그것이 바로 그것을 위한 뛰어난 업적을 달성한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이에요. 사회에 공헌한 업적이 크면 클수록 그 사람은 많은 갈채를 받고 큰 돈을 벌 수 있어요.

 


사회는 이런 식으로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것을 해낸 사람에게 많은 갈채와 보상을 주죠.

 

이런 환경에서 개인의 선택은 참 단순해져요. 그래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노력하죠. 그리고 그것은 보통 노력이 아니에요엄청난 고통을 참으면서 노력해야 해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나면 피 튀기게 경쟁해요. 그리고 결국 한 명이 먼저 해내죠. 그리고 그걸 해낸 사람은 부와 명예를 모두 얻게 되죠.

 

예전에 남극점에 도달하려고 서로 경쟁한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의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경쟁의 일화죠. 아문센은 이기고 고국으로 금의환향했지만, 패배한 스콧은 결국 돌아오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사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단점, 즉 개인과 사회의 방향성이 어긋나는 것을 해소하고, 개개인간의 갈등을 최소화 하며, 최종적으로 사회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아주 탁월한 선택을 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단한 선택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힘들어요. 마치 우리가 매일 쓰는 문자처럼 말이죠.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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