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여덟단어

아이루다 2017. 4. 17. 08:48

 



독서 모임에서 4 2주차 대상으로 정해진 책이었다. 저자는 박웅현이란 분으로, '책은 도끼다' 라는 책을 쓴 분이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서점에 갔을 때 가끔 봤다. 제목이 특이하다고 느꼈었다.

 

이 책은 나하고는 잘 안 맞는 책이다. 인문학 서적이긴 하나, 나하고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다루고 있긴 하나, 흔하디 흔한 그런 책과는 조금 다르긴 하나, 결국 그렇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총론은 공감하나 각론은 공감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조금 더 냉정하게 말한다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그것을 그럴 듯 하게 흉내 내서 쓴 글 같은 느낌이었다.

 

효자를 흉내 내던 불효자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형식은 좋았다. 카피라이터 업종에 종사하는 분이라서 그런지 삶을 여덟 단어의 주제로 뽑아내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자존', '본질', '고전', '', '현재', '권위', '소통', '인생'

 

하나하나가 주옥 같다. 내용도 괜찮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문제가 있다.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정작 본인 자신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 자신이 왜 이런 책을 쓰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책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물론 전혀 다른 목적일 수도 있다. 그저 돈을 벌려고, 명성을 얻으려고 쓴 책인지도 모른다. ,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도 없지만, 적어도 그 내용으로 보아 그런 사람은 아닌 듯 하다.

 

그래도 자신을 보지 못하기에 너무 허점이 많다.

 

'자존', 참 좋은 것이다. 행복의 근원적 열쇠 같은 단어이다. 문제는 그 자존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써놨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저자의 삶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런 능력, 그런 환경, 그런 성격에서만 가능한 것을 예로 들어 놨다. 이것이 타당한 것일까?

 

내 관점에서 자존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만들어진다.

 

하나는 잘나서 만들어진다. 이 책의 저자가 그런 유형이다. 잘나면 존재감이 강해지고 그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겸손해지기까지 한다. 하도 옆에서 잘났다 잘났다 하면 당연히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스스로에게 강한 고통을 주었을 때 만들어진다. 잘나지 못한 사람이 자존감을 가지려면 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더 강한 자존감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삶을 열심히 산 사람들이 가지는 자존감이다물론 문제는 많다. 자존심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고, 남의 것을 다 무시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세 번째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경우이다. 사실 이것은 자존감이 생긴다기 보다는 행복에서 자존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고 해야 옳다. , 자존감이 별로 없어도 행복한 삶에 거의 지장이 없다.

 

이 셋 모두 쉬워 보이는 것이 있을까? 타고나거나, 힘들게 노력하거나,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

 

삶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말은, 돈 걱정 없이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놔야 한다는 말과 같다. 맞는 말이지만, 같은 뜻의 반복이다.

 

이런 종류의 책을 쓰는 사람은 자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데는 타고난 능력이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농구 황제라고 알려진 마이클 조단이 자신의 성과가 온전히 노력뿐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타고난 것이 없으면 노력도 불가능하다. 키가 160cm 미터에 점프력이 30cm 인 사람이 노력해서 NBA에서 뛸 수 없다.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사실 자신이 타고난 것에 의해서 이뤄진 것임을 자각하지 못하면 이런 충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예로 수영장 이야기가 있다. 수영을 잘하려고 다닌 것이 아니라, 건강해지기 위해서 했다고, 그래서 오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살아 생전에 잘해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이럴 수 있을까? 수영마저도 못하는 것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인정받은 사람은 자신이 비전문가인 분야에서 못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요리를 못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듯이 말이다. 그런데 잘하는 것이 오직 요리인 사람에게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 사람은 물리학 이론을 잘 못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잘난 사람들이 아주 자주 하는 착각이다. 자신이 못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음은 이미 다른 곳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은 그것을 즐긴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그 누구도 '타인의 인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책의 저자는 사물을 볼 때 본질을 보려고 노력하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

 

'현재' 편에서 개의 즐거움을 예로 들었다. 어제도 공을 가지고 즐겁게 놀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수 있는 개의 모습을 보면서 현재를 즐기는 행복을 말했다.

 

그런데 개가 그럴 수 있는 것은 개가 멍청해서 그렇다. 멍청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동네 바보일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도 그렇다. 모르는 것이 많은 어린 시절이 즐겁다. 매주 반복되는 악당이 나오고 매주 주인공이 이기는 뻔한 만화 영화를 그렇게 재미있게 보는 이유이다.

 

아이들은 경험과 지식의 부재로 인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그것이 얼마나 뻔하고 의도적인 것인지를 말이다. 그래서 보지 못한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이처럼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때 아이가 의미하는 바는 우리들의 어린 시절이 아니다아이의 행복은 그저 무의식적 삶일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처럼 살려면 반드시 각성의 단계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다시 아이로 돌아가야 한다. 이 과정이 없다면 그저 어른 아이일 뿐이다. 그러니 개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은, 당신은 각성의 단계를 넘어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 된다. , 평생을 절에서 보낸 스님들이 얻을 수 있는 단계를 세상 속에서 평범하게 살면서 얻으라는 의미이다.


그 어려운 것을 그리 쉽게 적어 놓는다.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온전히 착각일까?

 

인생의 정답은 없다. 책 뒤에 쓰여 있는 말이다. 정답을 만들어 가라고 써 있다. 정말로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정답을 만들 때 좀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남의 정답을 훔쳐볼 필요는 없지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착각 속에서 답을 만들고,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고 사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내가 이 책에서 빠진 단어를 하나 넣고 싶다면 그것은 '성찰' 이다. 이것은 대충 '' 하고 비슷하지만, 그것이 대상이 아닌, 나를 봐야 한다는 의미로 넣고 싶다. 책 내용을 보면 '' 은 광고 문구를 잘 만드는 것에는 도움이 되는 듯 하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의 정답을 확인하는 것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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