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삼천포로 빠진 영화, 레버넌트

아이루다 2016. 1. 25. 09:22

 

"삼천포에 빠지다"

 

이 말의 의미는 꽤나 잘 알려져 있지만, 유래에 대해서 찾아보니, 나름대로 의견이 분분하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는 보통 삼천포로 빠지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천포에 빠지다 는 말은, 원래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도착한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더해서 그곳이 막혀서 무조건 다시 되돌아 와야 할 상황이라면, 그때의 당황스러움과 짜증은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우리 인간은 목적 중심이며, 목적에 가장 효율적으로 다다르는 것을 매우 중요한 가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이 특징은 여자보다는 남자들에게 더욱 더 강하게 나타난다.

 

아무튼 우리가 목적을 향하고, 그곳에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이다. 원래 목적을 정한 것, 그 자체가 그곳을 향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그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 , 노력 등등 자신이 투자해야 할 것을 최소화 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뤄내길 바란다.

 

물론 마음이 편한 것을 더욱 더 우선시 한 사람들은 돈보다는 안락함을 선택할 것이고, 돈이 가장 중요한 사람은 가장 돈이 안 드는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이것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를 것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삼천포에 빠지는 것은 재앙이 된다.

 

삼천포에 빠지는 일은, 목표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시간, , 노력 낭비가 일어난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난다. 우리는 아침에 출근길에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서 목적지에서 멀어진 경험을 한다. 제자리도 아니고 오히려 멀어진 경험이다. 이 얼마나 짜증나는 상황이란 말인가. 더해서 그런 일을 당하고 나면 지각을 한다그리고 지각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불이익 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엉뚱한 곳에 꽂혀서, 원래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는, 그 엉뚱한 일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결국 해야 할 일을 제 시간 내로 해내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데, 어떤 제품을 살지를 알아보다가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한다. 정작 필요한 것은 사야 할 그 제품인데, 가장 만족스러운 제품을 사기 위해서 고민하다 보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과 회의를 할 때도 이런 일을 자주 반복된다. 회사의 매출이 부진해서 그것으로 인해 긴급 회의가 생겨났는데,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왜 매출이 부진한지를 따지다가, 결국 타 부서 직원의 복장 문제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끝을 낸다. 그래서 고성이 오가고,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이 난다.

 

사실 외부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 그 회사가 왜 매출이 부진할 수 밖에 없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회사의 회의가 이미 목적을 상실하고는 삼천포로 빠지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최근에 본 영화 한 편이 있다. 영화 제목은 '레버넌트' 였고, 부제로 죽음에서 돌아온 자 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나는 보통 영화를 볼 때, 가능하면 그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길 바란다. 어떤 편견도 없이 그 작품을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 영화 역시도 그냥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오기에 보러 갔다.

 

개인적으로 그 배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들은 보통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서 기대는 하고 보는 편이다. 나는 그것이 황당하든 아니면 놀랍든지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그가 출연하는 영화들은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찾아보니 일단 실화를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설명을 들으니, 이 영화가 조금은 더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사실 이 영화를 왜 찍었는지 조차 조금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졸작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 영화는 극도의 사실주의 기법으로 찍힌 영화이며, 그로 인해서 보는 내내 영상 속의 출연자들의 감정과 생각이 전달되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만큼이나 사실적으로 찍은 영화도 드문 편이다.

 

내 기억 속에서는 예전에 봤던 '아포칼립소' 가 아마도 이 영화와 느낌이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나의 첫 느낌은, 왜 이 영화를 찍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물론 주인공 및 출연자들은 영화 속에서 무척 고생을 한다. 특히 주인공의 고생은 말할 나위도 없다.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그가 느낄 두려움은 개인적으로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영화의 세계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고생하면 다가 아니다. 예전에 케빈 코스트너가 엄청난 투자를 해서 만든 '워터 월드' 라는 영화가 그랬다. 고생한 것 같고, 돈도 많이 들어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거기에 끝이었다.

 

레버넌트도 비슷한 느낌이다. 결국 이 영화는 나에게 있어서는 사실 고액의 출연료를 받은 배우가, 매우 뛰어난 연기로 엄청 개 고생을 하면서 찍은, 어떤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 물 같았다.

 

실제 이야기, 연기, 고생, 화려한 영상현실감, 개연성, 놀라운 CG, 고증까지도 제대로 한 듯 보이는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느낌이 났다. 각종 전투 씬에서도 카메라에 튀는 핏방울과 주인공 입에서 나오는 하얗게 서린 김을 보았다. 하얀 눈 속에 번진 핏자국은 그 어떤 장면보다도 참혹함을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생각했다.

 

곰과 주인공이 싸우는 장면에서는, 요즘 CG 기술이 정말로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 말의 배를 가르고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말로만 듣던 저 상황이 진짜로 하려면 정말로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말은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진짜처럼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영화를 보는 도중에 자리가 불편했고,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극 사실주의 기법에 칭송을 할 것이고, 그 안에서 미친듯한 연기를 보여준 주인공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번에 디카프리오가 아카데미상을 의도적으로 노렸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나에게만큼은 이 영화가 삼천포로 빠진 것으로 보였다.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전달하고 하는 '내용'이 빠진 영화는, 사실 더 이상 영화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이 영화를 잡고 있는 희미한 메시지는 바로 가족 사랑, 복수 그리고 그것을 위한 정의실현 정도나 될 듯 하다.

 

, 처음부터 내용보다는 추위, 고생, 생존 등의 목적을 위해서 찍은 영화라고 하면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런 영화라면 차라리 비슷한 영화 '더 그레이' 가 훨씬 나아 보인다. 추락한 비행기에서부터 출발해서 살아 돌아오기 까지를 그린 영화인데, 이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소개한 적이 있긴 하다.

 

물론 영화의 최종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기 때문에, 이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쳐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며, 감독으로써는 더 이상 이룰 목적은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개인적으로 아쉬울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모든 종류의 창작물에는 원래 나름대로 주제 의식이 있어야 한다. 영화도 창작물의 일종으로 당연히 그래야 한다그런데 그 창작물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뻔하면, 문제가 있다.

 

이것이 무슨 문제인지 설명하기는 좀 복잡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그냥 사고를 고정시키는데 일조할 뿐이란 관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사실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그것이 너무 고착화 되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어봐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들여다 봐야 한다.

 

우리가 영화를 보고, 소설을 보고, 여행을 하는 목적이 모두 그것을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기에,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반대로 끝없이 타인의 시선을 통해 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가진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날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보는 영화나 책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수준이라면, 이것은 거꾸로 독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미 알고, 옳다고 생각하거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똑같이 반복 학습시켜주는 수준의 작품이라면, 결국 우리에게 해를 입힌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레버넌트가 이 정도의 비난을 받을 영화는 아니다. 부족함이 있었지만, 요즘 나오는 영화들 중에서는 꽤나 수작인 셈이다. 단지 개인적으로 기대를 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해서 하는 푸념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최근에 본 영화 '에베레스트'와 비슷한 느낌이 있다. 단지 에베레스트는 내용적으로, 왜 산을 오르는가에 대한 일말의 접근이 있었기에,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용을 통해 말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영화에 대한 설명들은 모두 장면의 묘사에 불과하다. 내용은 거의 없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삼천포에 빠진' 것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이다. 우리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은 늘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고의 출발점을 위한 작은 변곡점으로 삼으로 수 있다. 뭐, 좀 어거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삼천포에 빠지는 경험을 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우리가 늘 목적에 정확히 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가 가진 정보와 우리가 가진 집중력은 늘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큰 문제는 아니다. 사실 인류사에서 위대한 업적들은 삼천포로 빠졌다가 발견한 경우도 많았다. 우연이, 실수로 발견된 것들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목적 점에 도달할 필요는 없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후, 그곳이 인도라고 믿고 싶어했던 콜롬보스의 이야기가 그것의 산 증인이 된다.

 

아마도 영화 레버넌트 역시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너무 목적지점에 도달하기 위해서 안달복달 하지 말고, 잠시만 뒤로 물러서서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물론 너무 물러나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는 하지 말아야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왕 삼천포에 갔다면, 거기에서 여유롭게 삼천포를 구경하고 오는 것은 어떨까? 물론 실제 삼천포는 통합이 되어서 사라졌다고 하지만, 우리 삶에서 삼천포는 언제나 존재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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