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책

내가 모르는 나

아이루다 2015. 12. 29. 06:23

 

내가 쓴 책을 대상으로 독후감을 쓰는 일은 좀 웃기긴 하지만, 정리를 한 번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처구니 없는 글을 시작해본다.

 

사실 이 책에 대해서 내 자신의 평가보다 제 삼자의 입장에 대해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기대와는 달리 주변에서 별다른 평가가 -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아무튼 - 거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 스스로 내가 쓴 책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생각이 든다. 과연 이 책은 어떤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갈까?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보편성 부족인 듯 싶다. 사실 이 문제점은 책을 출판하기 이전부터 내가 개인적으로 걱정하던 부분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주변 분들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사주긴 하는데, 딱히 그것을 제대로 읽는 분들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현상은 이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 분들에게서도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블로그에 적힌 글들은 매일 일정량의 노출이 되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천문지식이나 집 짓기에 관련된 글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든다. 왜 나는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이 있는 보편적인 것들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그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그런 것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보편적 관심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까?

 

좀 뻔뻔하게 말하면,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경험하든 무엇을 생각하든 그것을 통해 얻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해서 실제로 경험을 해도 마찬가지다. 예상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별로 기대가 되질 않는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조차도 그렇다. 결국 기대가 되질 않기에 관심이 줄어든다. 이것이 계속 반복된다.

 

그러자 내 관심은 점점 더 본질로 향한다. 왜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를 궁금하게 여긴다. 그것은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한다. 주제가 점점 철학적으로 변한다.

 

이 세상에는 오늘도 나처럼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분들은 많다. 하지만 그분들 대부분은 사실 행복에 대한 고민이다. , 지금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고 싶어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관심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행복해지면 고민은 끝난다.

 

이것이 다른 분들과 나의 차이점이다. 물론 나 역시도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하지만 나의 관심은 행복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나는 좀 더 깊고 먼 곳을 보고 있다.

 

아무튼 그런 면에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책들은 바로 행복에 대한 책들이다. 물론 내 책도 행복을 주제로 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 책 어디를 찾아봐도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지는 못하고 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결책이지, 왜 행복하고 싶어하느냐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조언이 아니다.

 

왜 사는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사는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말은 틀림이 없다. 왜 사는지 고민하는 것은 사실 아무런 의미 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행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적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그것에 대해서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럴듯한 조언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조언은 극히 일반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욕망을 줄이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책에 나오는 조언의 전부이다.

 

그리고 사실 이런 조언은 어느 책을 봐도 얻을 수 있으며, 딱히 책을 볼 필요도 없는 뻔한 조언이다.

 

나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행복함에 대한 권리가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물론 이 말이 잘 통하지 않음은 충분히 알고 있다. 나 자신부터 그러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그 주장을 뒤로 물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걸쳐 생각하고 고민해도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나는 남들과 달리 특별해야 할까? 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특별해야 할까? 왜 지구는 다른 행성과 달리 특별해야 할까? 왜 태양계는 다른 항성계와 달리 특별해야 할까?

 

왜 이 우주는 특별해야 할까?

 

사실 이 질문들에 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거의 없다. 그래도 답을 낸 분들이 있으니 열심히 공부는 하고 있다. 문제는 그 답들은 내가 낸 것이 아니기에, 남들에게 내가 낸 것처럼 말할 수는 없다. 나는 현재까지는 오직 지식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 전혀 경험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운 좋게 경험적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것에 대한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더해서 답을 낸 분들의 답을 보면, ''는 사라지고 '전체'만이 남아 있다. 이런 상황이니, 나의 특별함에 대한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받아들인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다.

 

단지 이것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연쇄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책에 쓴 글들이 바로 그것에 대한 내용들이다사실 책에 쓴 내용의 글들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진짜 글들은 아니었다.

 

정말로 그랬다면, 아마도 책을 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책에 쓴 글들은 그나마 그런 종류의 글들 중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갈만한 내용들만 선별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조차도 다른 분들이 보기엔 그다지 쉽지 않거나 혹은 관심 없는 주제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사람의 감정, 생각, 행동 뒤에 숨겨진, 눈에 보이지 않거나 혹은 본인 조차도 잘 느끼지 못하는 본질적 욕구에 대한 관찰을 적은 글이다. 그리고 그것은 보통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들에 대한 것들이다.

 

질투, 소심함, 비겁함, 비교, 열등감 등등..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왜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끼고,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쓴 글들인 셈이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반드시 그 문제점을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TV가 잘 안 나올 때, 한대 퍽 쳐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잘나오곤 했다.

 

지금도 그런 일은 흔하다. 컴퓨터가 이상하면 전원을 껐다가 켜는 것만으로도 많이 해결된다.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 정확히 아는 것만이 해결책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전혀 별개의 해결책으로도 그것을 해결해낼 수 있다. 열등감을 해결하고 싶다면, 왜 열등감을 느끼는지를 분석할 것이 아니라, 그냥 좀 더 잘나지면 된다.

 

우리는 행복해질수록 점점 나쁜 감정에서 벗어난다. 사실 질투는 불행함으로부터 온다. 우리가 좀 더 행복하면 질투는 부러움으로 바뀐다. 돈이 없으면 남이 얻은 돈에 질투가 난다. 돈이 충분하면 남이 얻은 돈을 축하해줄 수 도 있다.

 

내 처지가 내 감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정신적인 면을 바꾸는 것보다 물질적인 면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훨씬 더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내 책은 그것에 관한 그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직 정신적인 방법으로만 제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좀 더 영구적인 해결책이며, 실현 가능하며, 돈이 별로 많이 들지 않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무척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실현 가능한 것과 난이도는 별도의 개념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해결책이긴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도 어렵고, 번다고 해서 반드시 원하던 것을 얻을 가능성도 높지 않다. 더해서 평생 동안 돈을 지키는데 인생을 써야 하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난이도 면에서는 돈을 버는 것이, 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보다 더 쉽다. 그래서 사람들이 변화를 원할 때는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나을 수 있다.

 

그리고 당장 지금은 이미 입은 상처를 가지고 버티기 힘드니, 조금의 위로를 통해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선호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늘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기에, 불행의 순간만 조금 현명하게 잘 넘기면, 언젠가는 다시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이것이 가능 흔한 해결책인 셈이다. 하지만 내 책은 전혀 그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약간의 반전은 있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나쁜 감정들을 느끼고 불행함을 느꼈을 때, 우리가 보통 하는 행동은, 그 나쁜 감정을 들게 한 상대에 대한 비난이나 분석에서 멈춘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우리는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무척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을 잘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분석은 우리들 자신에게도 온전히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남에게 하는 비난과 비판이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거의 무의식적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대단한 수준의 사고 전환이다. 하지만 이 미묘한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현실이다.

 

우리는 평생동안 남을 비난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우리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털끝만큼의 잘못도 모두 지적한다. 그것도 꽤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면서 이성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느낀 감정은, 자신이 온전히 느꼈다는 이유로 딱히 이성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즉, 자신이 경험한 것들은 설명될 필요가 없는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감정들을 좀 더 이성적으로 바라보자는 내용의 글을 담고 있다. 그나마 이 책이 가진 좋은 점이기도 하다.

 

이제 책이 나온 지 겨우 한 달 남짓하다. 그리고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것은 같다. 출판사 사장님께는 민망해서 자세한 것을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정확한 사정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그리 희망적인 상황은 아니란 생각은 드는데, 나는 언제쯤 이 책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해서도 궁금하긴 하다. 내려놓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관심이 생기고를 반복한다.

 

개인적으로 이 글이 그것을 위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사실 책을 낸 것이 좀 실수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든다. 물론 일반인으로써 책을 냈다는 만족감은 분명히 있다. 책을 내고 난 후, 주변 분들에게 들은 일종의 찬사도 기분을 좋게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나 자신의 잘남을 증명 받고 뭔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온전히 나의 착각임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에 얽매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내가 가진 한계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 답답하기도 하다. 언제쯤 되어야 이런 것으로부터 정말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직 살 날이 좀 더 남아 있는 듯 하니,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