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6강, 선과 악 그리고 도덕

아이루다 2017. 2. 22. 09:28

 

빙고에요.

 

오늘이 16번째 강의네요. 지난 강의에서 미리 설명했다시피, 오늘 강의부터 다루는 내용은 기존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것이에요.

 

우기기에 따라 철학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저 어떤 고양이의 개묘적인 사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비록 고양이이지만 저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답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선과 악 그리고 도덕에 관련된 내용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별로 재미는 없을 것이에요.

 

그냥 생각해보면 선과 악 그리고 도덕, 이런 개념들은 너무 뻔하거나 뜬구름 잡는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죠. 그래요. 이런 주제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좀처럼 다뤄지지도 않고 설령 대화의 주제로 삼는다고 해도 결코 다루기가 쉽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이 주제를 꺼냈어요. 왜냐고요?

 

이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긴 해야 하거든요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각자가 가진 선과 악의 경계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한 도덕적 입장이 개인의 삶과 서로 연관된 삶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매우 커요.

 

왜 그런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어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의 삶이라고 부르는 과정이 사실은 매일 크든 작든 어떤 결정을 해야 하는 행위의 연속으로 채워지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매일 매 순간 마다 선택 가능한 것들 중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고또한 그런 결정들의 결과가 나오면 그것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평가하고 있어요. 그게 바로 삶의 과정이죠.

 

그런데 그것을 과연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뭔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서 사람의 키를 재려면 치수의 단위가 필요하죠그래서 미국에서는 인치를, 한국에서는 센티미터를 쓰죠. 그래요. 무엇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위, 즉 기준이 필요해요.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서로 다르게 판단하고, 같은 결과라고 해도 전혀 서로 다르게 평가 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그 기준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 서로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그럴 때마다 사용하고 있는 그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래요.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선과 악 그리고 도덕이에요. 사람들은 설령 큰 돈을 벌었다고 해도, 크게 출세를 했다고 해도 그것이 악한 짓이며 비도덕적이라면 잘 인정을 안 해요.

 

남들만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 자신에게도 그래요.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악한 짓을 했거나 혹은 매우 비도덕적인 행동을 해서 성공을 했다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요.

 

그러면 왜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하나고요? 답은 쉬워요. 그들은 남들이 나쁜 짓이라고 부르는 그 행동을 나쁜 짓이라고 여기지 않아요. 그것은 당신만 나쁜 짓이라고 여길 뿐이에요. 남의 돈을 뺏는 것이 당신의 눈에는 나쁜 짓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이 눈에는 탁월한 능력으로 보여요. 똑똑하고 강하니까 뺏는 것이에요. 그들에겐 강한 것이 선이고 도덕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보기에 그들이 아주 나쁜 짓을 하고 있더라도 그들을 비난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충분히 스스로 납득할 수 있도록 자기 합리화를 해 놨거든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죠. 의도치 않은 실수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나쁜 짓을 했을 경우 자기 비하나 자기 환멸로 인해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요. 이것은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리고 그 외엔 거의 없어요.

 

선과 악의 구분 그리고 도덕적 판단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평가할 때, 자신의 생각이나 행동을 평가할 때 모두 필요해요. 그리고 이것은 이후 수 많은 문제점들을 야기시키게 됩니다.

 

그러니 이 고리타분해 보이는 선과 악 그리고 도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오늘 기회를 통해서 오랫동안 관성적으로 생각해 온 당신의 기준점을 한번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지루한 내용이지만, 좋게 생각하세요.

 

지금 시점에서 당신이 믿고 있는 선과 악 그리고 도덕에 대한 조금 다른 시선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서 당신이 스스로 믿고 있고,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나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지요.

 

어려운 설명 같지만, 사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단 두 가지만 제대로 생각해보면 됩니다.

 

첫 번째는 바로 모든 판단 근거는 절대적이 아니라 언제나 상대적이란 점이에요.

 

누군가 당신에게 왼쪽을 보라고 하면 왼손 쪽을 바라 보겠죠?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왼쪽이란 개념은 당신을 기준으로 생겨나고 있어요. 그곳은 당신의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오른쪽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그쪽이 왼쪽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할까요? 아니죠. 왼쪽은 절대적으로 왼쪽일 뿐입니다.

 

흔히 선은 절대적 개념으로 많이 설명됩니다. 선한 행동, 선한 생각, 선한 의지 등등, 선이란 용어 자체가 원래 그래요. 그래서 악은 반대의 역할을 하죠. 나쁜 것,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정말로 그럴까요?

 

당신은 길을 가다가 도둑이 가게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는 광경을 봤어요. 그리고 당신은 도둑을 보고는 나쁜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당신은 도둑에 비해서 선한 사람이죠. 하지만 당신은 귀찮아서 가만히 있었어요대신 당신 옆에 있던 사람은 경찰에 신고를 했죠.

 

당신은 그 사람에 비해서 선한 존재인가요? 당신은 아마도 아니라고 할 것이에요그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뭔가 찜찜함이 있겠죠. 그런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도둑을 쫓아 가서 잡았어요이렇게 되면 신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인가요? 그보다 더 선한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죠.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실 선하지 못하다는 말은 악하다는 말과 같은 말이죠. 단지 그 정도까지는 꼭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선하지 않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그저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의 잣대를 가지고 선함의 여부를 판단하려 들죠. 하지만 통념이나 상식조차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왼쪽은 누군가의 오른쪽이 될 뿐이죠.

 

결국 어떤 것이 선하다는 말은 그보다 선하지 못한 것에 비해서 선한 것뿐이에요. 남을 위해 신장을 내 준 사람은 남을 위해 심장을 내 준 사람보다 선하지 못합니다. 심장을 내 준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준 것이니까요. 그러니 그 무엇도 절대적으로 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점은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 그리고 도덕적 삶에 대한 기준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로부터 교육받은 결과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많이 간과됩니다. 심지어 인간은 타고난 선한 존재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래요. 정말로 그럴까요?

 

아니죠. 인간은 타고난 선한 존재가 아니에요. 타고난 도덕적 존재가 아니에요. 물론 타고난 악한 존재도 비도덕적 존재도 아니에요. 인간은 그저 살기를 원하는 생명체일 뿐입니다. 살고자 하는 것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냥 사는 것일 뿐이죠.

 

그러니 처음부터 선과 악이란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어요.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선하고 무엇을 근거로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고양이가 귀엽다고 먹이를 주고 키우는 것은 선한 것일까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는 선한 것일까요? 반대로 사자가 영양을 잡아 먹는 것이 악한 것일까요몸에 몹시 해로운 담배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악한 것일까요?

 

인간은 그저 사회 속에 속해서 어려서부터 선과 악에 대해서 교육을 받았을 뿐이에요. 너무도 오랜 시간 동안 그것을 들어왔기 때문에 정말로 선과 악이 있을 것이라고 믿죠. 하지만 근거가 빈약해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악이라면 총 만드는 공장에 다니는 사람은 악당 중에 악당이죠.

 

원래 동물들에겐 선과 악 개념이 없어요. 그저 배고프면 먹죠. 동료의 것이라도 힘이 세면 뺏어 먹어요. 대신 배가 부르면 동료가 자신의 식량을 먹어도 그냥 둬요. 배가 부르니 딱히 그것을 말릴 필요가 없죠.

 

하지만 만약 인간의 사회가 이렇게 흘러간다면 그 사회는 망하겠죠. 그래요. 사람들은 교육을 받았기에 다르게 행동하게 됩니다. 남을 것을 뺏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남는다고 해서 남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죠. 나중에 또 배가 고파질 테니까 말이죠.

 

이것이 지켜지지 못하게 되면 사회는 대혼란에 빠져요. 도둑질과 폭력이 난무하고 극단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되죠. 그래서 인간의 집단 지성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게 됩니다.

 

매우 오래된 것을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 십계명, 팔조법 등에 도둑질을 처벌하는 내용의 글들이 써 있는 것을 보면 소위 말해서 악한 행위가 얼마나 사회 구조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여부를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선과 악 그리고 도덕에 대해서 어떤 절대적 관점을 유지하려고 해요. 상대적이며 타고난 것도 아닌 교육 받은 것에 불과한 것임에도 말이에요.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단순해요. 그것이 편하거든요. 기준점이 흔들리면 살기가 아주 불편해요. 매일 키를 재는 단위가 바뀌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기준이나 단위가 자주 바뀌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도 없어요.

 

뭔가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매번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면, 그것을 할 때마다 새롭게 고민을 해야 해요. 하지만 기준점이 정해지고 확고해지면 판단이 아주 빨라요.

 

누군가 내 밥을 훔치려 들면 몽둥이로 때려야 해요. 이때 그 도둑이 왜 도둑질을 하려고 하는지, 그 도둑이 하는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서 고민할 여유가 없어요. 빠른 행동만이 도둑맞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빠져서 고민하다가는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동 반응적으로 판단을 해요. 아주 빠르고 더군다나 일관성도 있죠. 이 일관성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상대할 때 무척 편한 기능을 해요. 서로간의 선을 정해주거든요.

 

하지만 문제가 있죠그런 식으로 살다가 보니 자신이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의 기준점, 즉 선과 악 그리고 도덕적 기준점을 평생 동안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문제가 없다면 사실 이것을 문제 삼을 필요도 없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겨요. 그것은 마치 운명처럼 정해져 있는 결과입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믿는 선과 악 그리고 도덕적 판단으로 인해서 수 많은 갈등이 일어나게 되거든요. 각자가 자신만이 가진 기준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해요. 키를 재는데 한 사람은 인치로, 한 사람은 피트로, 한 사람은 센티미터로, 한 사람은 척으로 재요. 그래서 나온 수치가 다 다른데 각자 자신이 잰 숫자가 옳다고 주장하고 상대가 틀렸다고 설득하려고 해요. 그게 가능하겠어요? 서로 옳은데?

 

그러니 결국 싸워요각자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정당성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에요.

 


이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표준, 정상, 상식 이런 말들이 가진 폭력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해요. 자신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 대고는 자기 마음대로 마구 재어 버리고는 그것은 잘못된 것이니 고쳐야 한다고 훈수를 둬요.


그래서 당신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당신은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당신을 힘들게 합니다. 당신의 소중한 삶을 갉어 먹어요. 그런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가지 추가적으로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에 대한 부분이에요. 이것은 위의 설명과 이어지는 내용이긴 한데약간 다른 시점이에요.

 

당신은 살아가면서 공기의 소중함을 얼마나 느껴봤나요? 물에 빠져서 숨이 막혀 보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목 졸림을 당하지 않는 한, 그것을 생각 할 기회는 거의 없겠죠.

 

그러데 사람의 생존 조건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보통은 물, 식량, 잠 등을 꼽죠. 하지만 그것들은 최소 하루 이상은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공기는 5분을 못 넘기죠. 공기가 없으면 단 5분만에 당신은 죽어요.

 

이렇게나 중요한 공기인데 당신은 공기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아요. 왜죠? 당연하죠. 충분하니까요. 사실 넘치죠. 돈을 주고 살 필요도 없고 그냥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면서 물 속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무한대로 공급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니 정말로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죠.

 

사람들은 아닌 척 하지만, 사람들이 어떤 것에 신경 쓰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중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부족하면 문제가  수 있는 것만 신경 써요. 그러니 이미 충분히 가진 것들은 설령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더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언제나 부족한 것들만 집중적으로 신경 쓰고 있죠.

 

같은 원리로, 인간 사회가 각 구성원에게 무엇인가를 교육시키고 있다면, 그것이 중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부족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 인간 사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원래 타고난 인간의 본성에서 부족한 것들입니다.

 

, 사회가 사람들에게 선과 정의 그리고 용기 등의 가치들을 강조한다는 의미는, 바로 원래 사람들에게 그것들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 부족함이 당연한 것들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강조를 해서 부족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그래요. 사람들의 본성이 게으르기에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고, 비겁하기에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악하기에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원래 이기적이고 사익을 추구하기에 반대로 남을 돕고 공익을 우선하는 삶이 옳다고 가르치죠.

 

사람이 원래 그렇다면 그것을 왜 가르치겠어요? 매 순간 숨을 쉬어야 한다고 누가 가르쳐주나요? 예전에 아이를 너무 잘 낳을 때는 아이를 낳지 말라고 가르쳤죠. 하지만 요즘은 반대로 아이를 낳지 않으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서 한 가지 결론이 나요. 그것이 무엇이든 인가 사회가 각 구성원에게 가르치고 있는 그 모든 것은 그저 상황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거나 혹은 부족한 것일 뿐, 결코 그것이 중요해서 그런 것은 아니란 결론이요.

 

그런데 정말로 그런 가르침에 어떤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요. 전혀 근거는 없어요. 단지 그것들은 사회의 안정성은 높이기 때문에 강조되며, 가르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최대한 부지런하고, 용감하고, 정의로울 때 사회의 존속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을 때 각자의 생존 가능성 또한 높아집니다. 그러면 결국 모두에게 좋은 것이죠.

 

선과 악 그리고 도덕 등은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옳고 그름은 인간의 이득이나 생존에 깊게 관여되어 있어요. 

 

, 인간에게 있어서 선과 악은 오직 인간의 입장에서 정해질 뿐입니다. 결코 객관적이 입장이 아니죠. 그래서 사람들은 평소에는 동물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개가 사람을 물면 바로 죽어 버리고 말죠. 그것이 인간 입장에서 선한 것이고 옳은 일이에요.

 

선과 악은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건 가치가 아니에요 그것은 생존 즉, 두려움을 근거로 하고 있어요.

 

, 선과 악 그리고 도덕은 결국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 전체의 답인 셈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떤 절대적 근거를 가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죠.

 

그렇다면 당신이 매일 경험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그 모든 것이 과연 어떤 정당성이 있을까요? 당연히 아무런 정당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겠지만요. 사실이 그래요.

 

그럼에도 당신은 매일 같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삶도 판단해요.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 옳은 길인지, 최선의 결과인지 알려고 노력하죠.

 

그러다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자신을 비하하고 한없는 비참함 속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명심하세요. 당신이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사실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는 점을요. 당신은 그저 살아야 하는 존재에요. 당신은 그러기 위해서 행복해져야 할 할 존재에요.

 

이것 이외에 그 어떤 답도 가짜가 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실수를 했든,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든, 어떤 슬픔을 간직하고 있든, 어떤 비참함을 느끼고 있든지 그것은 진짜 현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머리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환상입니다.

 

당신의 실체는 그것과 거의 관련이 없어요. 당신은 그저 행복하고자 하는 그래서 살고자 하는 존재일 뿐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에요.

 

이것은 당신이 선하게 혹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직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에요. 인간에게 행복 이외엔 그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는 것이 존재할 수 없어요. 선과 악 그런 것들도 결국 행복을 얻는 중간 과정에 불과합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선하게 사세요. 도덕적으로 사세요. 인간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좋은 선택입니다.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을 좋아하거든요. 자신의 이득을 뺏지 않는 사람을 선호해요. 자신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갖고 선의를 베풀어요. 그러니 선한 삶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판단하는데 쓰는 선과 악 그리고 도덕과 같은 기준들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요. 그러니 남들의 판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비난하지 말고, 자신에 관한 판단 역시도 너무 신뢰하지 마세요.

 

그 신뢰가 강해질수록 당신은 더 빠르고 확실하게 판단을 해내겠지만, 그럴수록 당신은 일관성 있는 뻔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고정되는 것이죠. 그리고 인간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더 고정되어 갑니다. 거꾸로 말하면, 당신이 고정되어 갈수록 점점 더 늙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고정된 순간이 바로 죽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죽음은 모든 고정된 것들의 종착점입니다.

 

고정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세요. 그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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