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4강, 확대해석 - 2부

아이루다 2017. 2. 17. 08:44


[1부에서 계속]

 

친구들이나 직장인 사이에서 우연히 자신에게 연락되지 않고 만들어진 친목 자리가 있을 경우,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면 좀 섭섭하죠. 그런데 일반 사람들이면 섭섭한 것으로 끝나요. 그래서 친한 사람에게 왜 나를 부르지 않았냐고 하면서 참가 못해서 아쉽다고 한 마디 하고 끝내요.

 

그러면 그 친한 사람은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대겠죠. 연락을 했는데 전화를 안 받더라 라든가,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깜빡 했다든가, 다른 사람이 연락을 한 줄 알았다든가 하는 그런 이유들이요.

 

그런데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은 이것을 핑계라고 여겨요. 그래서 자신을 왕따 시킨다고 생각하게 돼요. ,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판단하게 되니까 겁잡을 수 없게 화가 나요. 그래서 그 모임을 주도한 사람에게 아주 나쁜 감정을 품게 되죠. 그러다가 그 사람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되면 말이 곱게 안 나가요.

 

하지만 모임을 주도한 사람은 사실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냥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저녁에 술 한잔 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다들 찬성해서 그렇게 된 것이거든요. 만약 자신의 눈 앞에 있는 피해의식이 가득한 그 사람이 그 점심 자리에 있었다면 그 사람도 당연히 불렀을 것이에요.

 

하지만 그날 따라 그 사람이 점심 시간에 같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 사람이 먼저 다른 사람들과 약속이 있다고 빠졌거든요. 그래서 부르지 않은 것이죠. 물론 챙기지 않은 것은 잘못일 수 있죠. 하지만 그런 자리었어요. 누가 꼭 오고 안 오고를 따지지 않는 자리. 그래서 신경을 안 쓴 것이죠.

 

그런데 결론적으로 보면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왕따가 되고 말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사람들에게 불만을 늘어놓게 되면 다들 불편해 하거든요. 그러니 은밀히 따돌리게 되죠.

 

이것이 바로 처음의 작은 균열이 확대해석을 거듭하면서 점점 더 넓고 깊어지는 현상이에요. 그래서 결국에 나중엔 원래대로 복구가 불가능 할 정도로 심하게 벌어지고 말죠.

 


이런 일은 연인이나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일어나요. 처음엔 한쪽이 작은 실수를 해요. 그런데 그날 따라 기분이 안 좋았던 다른 한쪽이 그것 때문에 조금 짜증을 냈어요. 그러면 처음에 실수한 쪽은 황당해요. 별 것도 아닌데 화를 내니까요. 그러면 둘이 조금 언쟁을 해요.


그런데 서로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을 못해요. 각자 옳죠. 그러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예전에 쌓였던 작은 불만까지 다 끄집어 내요. 그러면서 각자 분노는 점점 더 증폭이 되고 정당성은 점점 더 강해져요. 무조건 내가 옳고 상대가 틀렸어요. 그러다가 평생 안 보는 사이가 되고 말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추측하고는 그것을 꽤나 확신을 가지고 믿어요. 그리고 여기엔 주변 사람들의 많은 조언들이 깊은 영향을 끼치죠.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어떤 사람과 문제를 안고 있게 되면 그 문제를 제 삼자에게 물어봐요. 객관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는 왜 상대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분석해주길 바래요. 사람들 대화 속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들이죠.

 

이때 듣는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준으로 해서 말해줘요. '그 사람이 너를 무시하는 것이네', ' 그 사람이 단순히 실수한 것이네' 라고 말이에요. 누구 말이 맞을까요? 사실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사람마다 의견이 모두 달라요. 듣다가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죠.

 

, 여기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잘 생각해봅시다.

 

첫째,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을 친구들 앞에서 그 문제를 털어놓을 때 전체 이야기를 정말로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요.

 

당연히 아니죠.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 하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어요. 앞의 경우라면, 자신이 점심 시간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의도적으로 빼먹겠죠. 혹은 무의식적으로도 사람은 그럴 수 있어요그래야 상대가 잘못한 것이 확실하니까요.

 

둘째, 당신은 이미 어떤 결론을 내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 당신은 이미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하고 있어요. 일명 '답정너' 라고 하죠. 그것은 보통 당신과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한 비난이죠. 그리고 듣는 사람들도 같이 비난해주길 바래요.

 

왜냐고요? 만약 그 문제가 당신의 잘못이면 그것은 당신의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뜻해요얼마나 무서운 일이에요. 그러니 반드시 상대의 문제여야 해요. 여기엔 견딜 수 없는 '두려움' 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옳길 바래요.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두려운 순간이 없을 정도에요.

 

셋째, 당신이 당신과 관련된 문제를 털어 놓을 때판단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당신도 모르는 정보가 있으며 더해서 아는 것들조차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해요. 더군다나 표현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될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아요. 대부분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되죠.

 

네째, 당신이 지금 상담을 하고 있는 그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머리 속에서 판단을 해요. 그러니 객관적인 판단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에요. 그저 다양한 주관적 판단이 나올 뿐이죠. 그러면 당신은 그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를까요? 답은 나왔죠. 당신이 듣고 싶은 답을 골라요.

 

만약 이때 당신이 듣고 싶은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당신은 또 다른 사람들을 모아놓고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자신이 한 잘못은 더욱 더 감추겠죠그것조차 안되면 이젠 익명의 공간에 글을 써요. 이때는 거의 소설 수준이 되죠.

 

그리고 사람들이 동의를 해주면 최종적으로 만족합니다. , 그러면 문제가 잘 해결이 된 것인가요? 아니죠.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죠.

 

근본적으로 확대해석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알 수 없어요. 그것을 서로 말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것을 알려고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죠. 그저 짐작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래야 좋은 일이 정말로 좋게 끝나죠.

 

누군가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줄 때, '내 생일에도 이런 선물을 바래' 라는 생각을 알게 되면 그것이 기분이 좋을 리가 있어요? 사람들이 생일 선물을 할 때 가격표를 떼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에요. 돈의 액수를 알면 뭔가 더 진실을 알게 되거든요.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선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에요. ,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이고 싶어하는 것이죠. 설령 비싼 선물을 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비싼 선물은 소중하다는 말의 간접적 표현이거든요. 하지만 한계는 있죠. 그래서 쓸데없는 비싼 선물을 받으면 오히려 기분이 상하기도 해요. 얼마나 나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럴까 싶은 것이죠.

 

사람들이 왜 관심을 원할까요? 답은 간단해요. 그래야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깊은 관심이란 말은 나중에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일종의 증표거든요.

 

그러니 생일 선물을 받을 때 그것을 자신에 대한 관심 여부로 판단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만약 각자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제대로 알게 되면 기분이 많이 상할 것이에요.

 

이런 경우엔 추측하는 것이 좋아요. 대신 이것은 좋은 일에만 써야 해요. 나쁜 일에도 같은 방식을 쓰면 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죠.

 

그렇다면 나쁜 일에서 어떻게 해야 확대해석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잘못하면 관계가 끊기고 심한 경우 살인까지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말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충분한 대화' 에요. , 서로 최대한 많은 생각을 주고 받아야 오해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확대해석이 일어나지 않아요. 대화가 부족하면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정보가 부족하면 결국 오해가 생깁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확대해석이 일어나죠.

 

이것은 부부 사이에 참 많이 일어나는 문제에요. 부모와 자식간에도 일어나는 문제죠. 그들에겐 무엇보다도 대화가 필요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일방적 지시도 대화라고 착각도 많이 해요. 상대의 생각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대화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면 어떠 일이 일어날까요?

 

자신은 상대를 결코 이해하지 못해요. 왜냐고요? 듣지는 않고 말만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몰이해는 당연히 상대에 대한 오판을 하게 되고, 그 오판의 결과로 인해서 결국 또 다른 일방적 지시가 반복되죠.

 

이것이 정말로 큰 문제를 일으켜요. 부부 사이엔 이혼을, 부모와 자식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어 버리고 말죠. 얼마나 무서운 일이에요.

 

친구 사이에도 마찬가지에요. 대화를 많이 해야 해요. 누구에 관한 대화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대화요. 자신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해요. 그래야 그들의 오해가 줄어듭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 사실 가능합니다 - 확대해석이 이뤄지는 순간에 그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해요.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람들이 확대해석을 할 때는 온전히 이성적이기 때문이에요.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고, 기존의 정보들을 다시 뒤집어 보면서 판단하거든요.

 

이성적이란 말은 무의식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러니 그 순간, ! 나는 확대해석을 하고 있구나 라고 알아차릴 수 있어요. 그리고 만약 그것이 성공하게 되면 많은 문제가 그 자리에서 끝이 나요.

 

불필요한 감정 증폭이 일어나지 않죠. 자기 비하나 자신을 책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뿐이었어요.


한가지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당신은 의사에요. 그냥 그렇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환자가 검진을 왔어요. 그래서 피 검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래서 피 검사를 하려고 주사기를 꼽아서 피를 뽑았어요. 뭐, 보통은 간호사가 하는데, 그냥 했다고 쳐요.


그런데 도중에 실수로 주사기 바늘을 당신의 손에 찔렀어요. 명백한 실수죠. 그런데 환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이에요. 큰 일 났다고. 자신은 에이즈 환자라고 말해요.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이죠.


에이즈는 그런 식으로 감염이 될 수 있거든요. 얼마나 놀라겠어요. 의사가 되기 위해서 힘들게 살아 온 삶, 주변의 기대, 미래의 삶이 모두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무섭고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나요. 다른 동료 의사들이 걱정하는 듯 말해주지만, 기분이 나아지지를 않아요.


그러면서 자신에게 에이즈라는 것을 미리 밝히지 않는 환자가 너무 미워요. 싫고 미친 놈 같아요. 어떻게 그런 중요한 정보를 미리 알리지 않은 것이죠?


이런 생각은 당연한 것이에요. 사람이라면 그렇죠. 그런 생각이 들고, 동료 의사들의 의견도 비슷해요. 이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이야기를 해요. 그 환자가 나쁜 놈이라고 말이에요.


그래서 점점 더 화가 나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이죠. 그리고 점점 더 두렵기도 하고요. 두려움이 몰려올수록 더욱 더 화가 나요.


그리고 기분이 나쁘니 곧 결혼할 여자 친구와 만났을 때도 매우 신경질적으로 굴었어요. 사실 여자친구에게는 그 사실을 이야기 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가는 여자친구가 다른 마음을 먹을지도 모르거든요. 그러다 보니 여자친구는 괜히 화가 났죠. 당신이 하루 종일 틱틱 댔으니 말이죠.


그래서 결국 둘은 싸웠어요. 당신은 당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친구의 마음을 풀어 줄 마음의 여유는 도대체 생겨나질 않아요. 그래서 그날은 그냥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흘러서 에이즈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다행이 음성이래요. 그제서야 마음이 풀리고 모든 것이 괜찮아져요.


이 예를 통해서 사람의 감정이 어떤 식으로 발생하며, 또한 어떻게 확대해석 되어 가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물론 이 과정이 이상하다는 것은 아니에요.


환자가 자신이 에이즈 환자인 것을 밝히지 않는 것은 환자의 잘못이죠. 하지만 실수는 당신도 했어요. 주사기 바늘로 자신을 찔렀으니까요. 사실 이것이 가장 결정적 실수죠. 그 실수만 없었으면 상대가 어떤 병에 걸렸든 간에 상관없으니까요.


의사는 늘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직업이기도 해요. 특히 전염병에는 가장 최전선에 노출되어 있죠. 당신도 의사이니 그것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두렵기에 분노가 치솟고, 그 분노는 바로 환자를 향해요. 그리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화가 나죠. 어쩌면 그 환자가 일부로 자신이 에이즈 환자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고도 생각할 수도 있어요. 뭐, 어떤 생각인들 안 나겠어요? 주변에서 자신을 도왔던 동료들에게까지 원망이 생겨날 수도 있어요.


이 과정이 바로 공포가 분노로, 분노가 확대해석을 통해서 증폭되는 현장입니다. 이 예는 꽤나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정도만 다를 뿐 이런 상황은 참으로 많이 경험하게 되요.


더해서 여자친구의 경우는 괜히 옆에 있다가 파편을 맞은 꼴은 돼요. 운이 없다면 둘이 크게 싸우고 결혼을 다시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은 그날 싸움으로 인해서 여자친구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결론을 낼지도 모르죠.

 

확대해석이 만들어 낸 결론이지만, 당신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죠.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친구는 데이트 도중 내내 짜증을 내는 당신을 감당하기가 무척 어려웠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당신은 스스로 정당한가요? 당신은 상황을 온전히 제대로 판단한 것인가요? 당신의 이 모든 일에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가장 치명적임을 인정하나요? 당신은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것에 대해서 스스로를 크게 책망하나요? 그래서 기분이 더 나빠졌나요?


그래요. 당신은 그랬을 것이에요. 환자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실수에 대한 자책감. 이 둘이 당신을 지옥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요. 가능하다면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것이에요.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지만, 너무 증폭시키지는 마세요. 그런 일들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랍니다. 만약 환자 역시도 자신이 에이즈인 것을 몰랐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그때도 환자를 원망하실 것이죠? 당연히 그렇겠죠. 당신은 원망의 대상이 필요하니까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멈추지 않으면 폭주를 하게 됩니다. 두려움으로 인해 그러는 것이에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두려운 것이에요.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화풀이 상대가 아니라요.


이것을 혼동하면 분노가 증폭되고 맙니다. 두려움의 원인은 변함이 없는데, 그로 인한 분노만 끝없이 증폭돼요. 그러다가 정말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요.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서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고, 여자친구와 너무 심하게 싸워서 결국 헤어질 수 있어요.


사람들은 모두 이와 비슷한 순간들을 경험합니다. 그것도 꽤나 자주 합니다. 단지 이렇게 극적인 것이 아닐 뿐이죠. 그러니 자신이 화가 날 때마다, 자신이 신경질이 날 때마다 자신이 현재 상황을 확대해석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를 늘 주의깊게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살아 가세요. 그것이 현재의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조금 덜 감정적으로 살 수 있으며, 조금 덜 기분 나쁠 것이며, 조금 더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이에요. 쓸데없이 자신을 미워할 필요도 없고, 불필요한 후회나 걱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삶은 좀 더 긍정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성찰이 시작될 수 있어요. 이것이 출발점입니다. 이제 앞으로 나가면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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