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3강, 피해의식 - 2부

아이루다 2017. 2. 13. 11:07


[1부에서 계속]

 

잠시 말이 샜는데, 아무튼 각자의 생명을 두고 충돌이 벌어지면 당연히 각자의 정의는 자신의 생명이 기준이 됩니다. 그러면 '나의 정의' '너의 정의'  충돌하죠. '나의 삶' '너의 삶' 이 충돌하죠. 이것이 가장 제대로 드러나는 현장이 바로 전쟁터에요각 나라의 젊은이들은 각자의 정의를 가지고 싸워요. 하지만 그들 모두는 살고 싶어서 싸우는 것뿐이죠.

 

그러니 이런 싸움에서 패배를 하게 되면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죠. 자신은 분명히 옳은데 졌으니까 억울할 수 밖에요. 어느 나라가 지든 마찬가지에요. 그래요그러니 인간은 반드시 피해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어요.

 

피해의식의 가장 근본적인 발생 원인은 바로 불공정성이거든요. , 자신이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면 발생해요. 그리고 이 불공정성의 판단 근거에는 바로 각자의 정의가 있어요. 사회 통념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는 '정의' 말이에요.

 

그런데 이 정의의 근간이 바로 자신의 생명이라면 도대체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절대적 정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물론 신이 있긴 하죠. 하지만 신은 네가 살기 위해선 남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 없죠. 마치 왼손을 위해 오른손이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꼴이잖아요.

 

그것은 그저 인간 세상의 관점일 뿐이에요. 그러니 그런 일에 괜히 신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인간 세상은 단순해요. 남을 죽이는 행위는 살인이지만, 남이 나를 죽이려고 할 때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에요. 같은 살인이지만, 하나는 범죄이고 다른 하나는 무죄에요.

 

이제 생명이 모든 정당성의 근원이라는 말이 제대로 이해 가시죠?

 

이렇게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고 해도 생활 속에서도 이런 일은 정말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요. 자신의 삶을 모든 판단 기준점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에요.

 

지하철에서 빈자리 나서 앉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잽싸게 먼저 앉으면 기분이 나쁘죠.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신의 앞에 있던 사람이 비운 자리는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앉을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왜냐고요? 자신이 몸이 편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그 자리는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요? 아니라고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요?

 

그럼 자리를 뺏은 사람과 싸워보세요. 그 사람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까요? 아니죠. 그 사람은 자신만의 정당성이 있어요. 그러니 행동을 빨리 했어야죠.

 

어딘가 좌석을 예매할 때가 그렇죠. 빨리 행동해야 예약이 가능해요. 그래요. 이 세상은 이런 식으로 경쟁 속에서 돌아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경쟁 속에서 자신이 불합리한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면 피해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여기까지를 정리해보죠. 모든 피해의식은 최초의 피해로부터 생겨나며, 그 근거는 자신의 생명, 다른 말로 이득이나 행복을 근거로 해요.

 

지금까지 설명을 통해서 피해의식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해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젠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 지에 대해서 알아야겠죠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것이 바로 피해의식이에요. 그러니 최소화 시켜야죠.

 

많은 사람들이 피해의식을 가진 채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단순히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피해를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어려서부터 반복적으로 피해를 경험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피해에 대해서 매우 민감해질 수 밖에 없답니다.

 

왜냐고요? 두렵기 때문이죠. 피해는 손해를 의미하고 손해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에요.그러니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죠. 또 나왔네요. 두려움이란 단어요. 두려움은 언제나 나쁜 것들의 가장 근본 원인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인간은 살기 위해서 사는 존재거든요. 아무리 포장해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피해를 덜 당하고, 어떤 사람들은 피해를 더 당하죠. 왜 그런 차이가 날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죠.

 

어린 시절 친구와 같이 가고 있는데 지나가는 어른이 사탕을 줘요. 그런데 당신에게는 안 주고 친구한테만 줘요. 예쁘게 생겼다고 칭찬을 하면서 주죠. 그러면 당신은 왜 나한테는 사탕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상처가 생기죠. 그 순간에는 친구는 받았는데 나는 못 받았다는 것만 생각해요.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그 이유를 알게 되죠.

 

보통 이런 경우엔 외모죠. 그래요, 외모가 예쁘면 뭘 해도 쉽게 이득을 봐요. 반대로 외모가 안 예쁘면 손해는 보지 않더라도 이득을 보긴 힘들어요. 그래서 상처를 받고 결국 그 상처는 피해의식으로 변화돼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외모가 그리 좋지 않은 여자들은 대부분 피해의식이 가질 수 밖에 없죠.

 

외모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하나로 묶으면 바로 '매력' 이란 단어로 바뀌죠. 호감이라고도 할 수 있죠. , 호감을 쉽게 얻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꾸준한 이득을 봐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에요. 착하게 구는 이유도 그렇고요.

 

인간에게 있어서 호감이나 매력은 정말로 중요한 조건이에요. 고양이들조차도 예쁘게 생긴 매력적인 고양이가 훨씬 더 사랑 받죠어떤 고양이들은 사진에 찍혀서 인터넷에서도 아주 유명해지기도 해요.

 

그런데 매력이나 호감이 왜 중요할까요? 그것도 역시 이득과 관련이 되요.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니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에 관심을 가져요. 당연하죠. 행복할 가능성이 생겼는데 누가 그것을 외면하겠어요.

 

이 관심이 바로 매력을 느낀다든가 호감이라든가 하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이에요. , 뭔가 좋고 행복한 것을 얻을 것 같으니 그래요.

 

남자들이 예쁜 여자들이게 호감을 느끼고 잘 해주는 것은 그 여자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여자들도 그것을 알죠. 그래서 자신이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서 단 칼에 상대를 끊지 않아요. 적당히 유지하죠. 이것이 심화되면 어장 관리라고 불리죠.

 

, 그러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것을 줄 수 있나요? 당신은 얼만큼이나 매력적이며 얼마나 호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이미 어느 정도 알겠죠. 그래요. 그것이 당신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딱 그만큼의 이득만 얻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남들보다 더 얻지 못하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죠. 사탕을 못 얻어 먹으면 그러듯이요. 그렇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이런 상황에 변화가 올까요?

 

이것을 노력하면 정말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슬프지만 안되죠. 매력이나 호감 같은 것들은 거의 타고난 성향입니다. 외모, 성격, 능력유머 감각 등등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많은 부분이 그래요.

 

물론 후천적으로 어느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러려면 많은 노력을 해야 해요. 그나마 쉬운 것이 성형 수술이죠. 나머지 것들은 정말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해요. 하지만 슬프게도 노력하는 성향 자체도 타고 나는 것이니,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어요.

 

그래요. 만약 당신이 살아오면서 지속적인 피해를 당해왔다면, 앞으로도 계속 당하고 살아갈 것이에요. 이것 자체를 해결할 방법은 없어요. 다른 사람이 되는 수 밖에요. 근데 그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할 수 있다고 해도 별로 하고 싶지도 않잖아요? 당신은 그냥 당신이고 싶잖아요. 그냥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런 강의를 듣고 있지는 않겠죠. 당신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힌트가 하나 있었어요. 저는 앞 부분에서 피해의식에 대해서 정의를 할 때, '판단' 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그래요. 그것은 판단이죠. 피해를 입었어도 피해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끝이에요.

 

피해가 정말로 피해이든 아니든 그것을 피해가 아니라고 판단만 할 수 있다면 피해는 더 이상 피해가 아닌 것이 됩니다. 아주 단순하죠.

 

그렇다면 피해가 어떻게 피해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죠? 분명히 피해인데요.

 

, 그것에 대한 힌트도 이미 나왔어요. 당신의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피해의 근거, 정당성은 사실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말을 정말로 깊게 받아들여야 해요.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의 생명은 당신에게만 소중할 뿐입니다. 그것이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소중할 수는 없어요.

 

당신의 정당성은 바로 생명 그 자체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것은 당신에게만 옳을 뿐이에요.

 

당신이 아무리 자신이 살기 위해 적국의 군인을 죽이고 영웅이 되었어도 그 죽은 군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원망을 받지 않을 수는 없어요. 그래요. 이 세상에 절대적 정당성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어요. 있다면 오직 신의 정당성만이 가능한데, 그러려면 그 신은 현재 인간들이 믿고 있는 그런 신의 모습은 아니어야 해요.

 

개인들이 바라는 것을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는 그런 불공정한 모습의 신은 아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 강연의 마지막쯤에서 다시 설명드릴께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해요.

 

아무튼 당신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정당성을 철석같이 믿어요. 한 달간 일을 했는데 회사에서 월급이 안 나오면 그것은 결코 참을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이죠.

 

하지만 그 회사의 사장의 거래처에 부도가 나서 돈이 없어서 돈을 주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실래요? 그때는 이해하고 넘어가실래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장이 거짓말을 했다면 요?

 

당신에게는 아무런 객관적 정당성은 없습니다. 그저 상황논리죠. 이것이 진실이에요.

 

이것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정확히 알고는 계세요. 그리고 평생을 거쳐 이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해요. 왜냐고요?

 

그것이 옳아서요? 아니요. 그것이 사실이니까요? 아니요. 그것이 이성적이니까요? 아니요. 그것이 합리적 판단이니까요? 아니요. 그런 것 절대로 아니에요. 저는 옮음, 진실, 이성, 합리 같은 것에 별로 관심 없어요.

 

당신이 그래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당신이 행복해져야 하니까 그래요. 행복하고 싶다면 그래야 합니다. 저는 당신이 불필요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서 당신 인생을 망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왜냐고요? 당신이 기분이 나쁘면 나한테도 어떤 식으로든 나쁜 영향이 오거든요. 단지 기분이 나쁘다고 길 고양이들에게 독약을 먹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저 역시 나를 위해서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피해는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노력해서 바로 잡을 수 있어요.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있죠또한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참으로 많은 종류의 일들이 있어요.

 

거기에서 당신은 수 많은 피해의식을 경험하겠죠. 그런데 당신이 그것으로 인해 다치지 않을 수 있도록 피해의식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인식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누군가 나를 속여서 돈을 더 받아가더라도 그것을 기분 나쁘지 않고 받아 낼 능력이 없다면 그냥 두세요. 그런 일로 인해서 내가 우습게 보여서 피해를 받았다는 확대해석은 하지 마세요. 운이 없었던 것뿐입니다.

 

당신을 우습게 볼 수도 있죠. 당신은 정말로 어수룩할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겠어요. 성격이 그런데. 덤벙거리고, 단순하고, 제대로 따질 줄 모르니 그런 것이죠.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한치의 틈도 없는 칼날 같은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할 수도 없고, 할 수 있어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는 않네요. 사실 행복은 여유로움이란 단어가 훨씬 더 어울리거든요.

 

사람들은 피해의식이 심한 사람들을 별로 안 좋아해요. 방어적이고 수동적이면서 신경질도 많이 부리거든요. 괜한 이유로 시비를 걸기도 하고요. 남이 잘 되는 꼴을 못봐요. 질투도 심하고 참견도 많아요. 왜냐고요? 불행하니까요. 그래서 결국 피해의식 자체가 피해를 만들어 내고 맙니다.


 


피해는 분명히 당신의 생존에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하지만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많이 나빠지면, 즉 피해의식에 빠져들면 당신은 그 스트레스로 인해서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놓입니다. 이 둘 중 도대체 누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까요?

 

작은 손해를 봤을 때 그것으로 인해 기분이 많이 상해서 따지고 싸워서 그것을 되돌려 받았다면 과연 결국 당신을 위한 일이었을까요? 정말로 그럴까요? 기분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고, 시간을 쓰고 해서 얻는 것이 겨우 얼마뿐인 돈인데요?

 

이것은 마치 어떤 제품이 세일을 한다고 해서 먼 곳에 가는 것과 같아요. 그곳까지 가는 차비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가서 몇 만원 이득을 본 것을 좋아하죠. 그래도 그곳에 가서 많은 제품을 사면 살수록 전체 소비한 돈에서 차비와 시간 낭비의 비중은 작아져요. 그럼 결국 이득을 본 것인가요?

 

차를 사고 난 후, 차를 산 이득을 보기 위해서 엄청나게 돌아다니면 이득을 본 것인가요? 그때 쓴 기름값은 어떻게 하고요?

 

당신이 피해를 입었거나 이득을 얻었다고 믿는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 수도 있어요. 사실 인간의 이득과 손해에 대한 계산법은 생각보다 매우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어요. 왜냐하면 사람은 감정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며칠 기분이 좋기 위해서 몇 달간 번 월급을 쓸 수 있는 것이 당신입니다. 언제요? 해외여행 갈 때요.

 

더군다나 당신이 그것을 판단하는 근거로 이용하고 있는 정당성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어요. 그러니 그런 일로 인해서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압력을 주지 마세요.

 

지금까지 삶에서 어쩔 수 없이 경험했던 많은 피해로 인해 그렇게 살았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피해의식이 가득 찬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지금부터는 조금씩 변해가죠.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그것은 해볼만한 시도에요. 당연하죠. 당신의 삶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까요. 아직도 당신은 변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아주 작은 사고의 전환만 하면 돼요그 작은 변화가 시간의 힘을 통해서 당신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꿔 놓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늘이 바로 그 출발점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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