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고씨의 인문학개론

13강, 피해의식 - 1부

아이루다 2017. 2. 13. 11:06

 

빙고에요.

 

이번 강의에서는 피해의식에 대해서 다룰 것이에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확대해석을 다룰 계획입니다.

 

만약 고양이 입장에서 인간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가지만을 꼽으라면, 수동적인 성향으로는 '피해의식' 이고요 능동적인 성향은 '확대해석' 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저는 이 두 가지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부정적 영향은 앞에서 다뤘던 많은 나쁜 감정들이나 상처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생각해요.

 

왜냐고요? 바로 이것들이 나쁜 감정들이나 상처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요. 슬프지만 이 두 가지는 사람들이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모든 나쁜 것들의 최종 결론이에요. 그러니 뭐가 좋을 것이 있겠어요. 아무리 따져봐도 장점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고가지고 있어봐야 사는 데 아무런 도움도 안돼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싶다면 그것을 완전히 없애진 못해도 최소화는 시켜보도록 노력해야 해요잘 따져보면이 두 가지만 없어도 사람들의 삶이 훨씬 나아질 것이에요. 그 삶이 비록 동화처럼 아주 행복하게 살지는 못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행복하게 살 수 있거든요.

 

반면에 피해의식이 강하고 확대해석을 많이 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성공해도 그래요. 행복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췄어도 피해의식을 느끼고 확대해석을 하는 성격이라면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돼요.

 

아마도 당신 역시도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당신을 괴롭히겠죠.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거나 확대해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잘 상상하지 못할 것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게 되는 많은 나쁜 것들이 사실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것들의 영향으로 인해 그렇다는 점도 잘 모를 것입니다당신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요.

 

당신은 그런 것들은 전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왜냐고요? 스스로는 정당하거든요.

 

진짜로 피해를 봤으니 피해를 본 것이고, 그렇게 충분히 예측할 만 하니 그렇게 해석한 것이에요. 그래서 그것들은 피해의식이 아니라 진짜 피해이고, 확대해석이 아니라 정확한 해석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에요이 두 가지를 완전히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고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에요. 이 두 가지는 나쁜 것들의 최종 결과물이니 그렇죠. 도대체 누가 열등감, 질투, 분노, 외로움, 상처 등과 같은 것들을 전혀 경험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이 믿고 싶어하는 정당성은 사실 그 어디에서도 증명 받을 수 없답니다.

 

그러니 당신이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을 경험하는 것도, 그것을 경험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것도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단지 자신이 그것을 얼만큼 인식할 수 있느냐 여부만 차이가 나요.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은 서로 그 원인은 다르지만 매우 유사한 두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하나는 바로 '자기 합리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 이 둘은 자신의 외부에서 일어난 어떤 일들을 해석할 때 자기가 유리하거나 편한 대로 해석하고자 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에요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런 판단을 객관적이라고 생각해요이것이 진짜 문제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든 나쁜 것들의 결론이면서 또한 모든 나쁜 것들의 시작점이 된다는 점이에요. , 나쁜 것들이 다시 나쁜 것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최종 완성 시켜주는 최종 역할을 해요.

 

질투하고, 열등감을 느끼고, 화를 내고, 상처를 받은 후 그것으로부터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으로 이어지죠그리고는 발생된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으로 인해서 다시금 추가적인 질투, 열등감, 분노, 상처가 생겨나요. 이 순환은 끝이 없이 이어지죠. 그래서 결국엔 한 사람의 성격 그 자체가 되고 말아요.

 

그러다 보니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하게 더 잘 살고, 불행하게 못 사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점점 더 불행하고 못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슬픈 일이죠.

 

어쩌면 이런 악순환만 아니어도 피해의식과 확대해석은 그렇게까지 나쁜 것은 아닐지도 몰라요.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죠.

 

피해의식이란 무엇일까요?

 

어려운 질문은 아니죠. 아마도 다들 쉽게 대답하실 수 있을 것이에요흔히 쓰는 단어이고.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기도 어렵지도 않아요. 단지 이미 말했듯이 그것을 경험했다고 해서 본인이 피해의식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표현해서 피해의식은 자신이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이때 사람들은 피해의 내용을 상당히 중요하게 따지지만, 사실 그것이 실제로 피해냐 아니냐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하는 것 그 자체가 훨씬 더 중요해요.

 

 

이것은 제품을 사는 것과 비슷해요. 사람들은 제품의 가격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실 사람들이 제품을 살 때 중요한 것은 가격이 아닌 '만족도' 에요. 만족스럽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써요. 시장에서 야채를 살 때 천원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수백 만원 짜리 냉장고를 사니까요. 돈 그 자체는 그다지 아깝지 않죠. 만족만 할 수 있다면.

 

피해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은 피해의 내용에 매우 집착하지만, 사실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겨요. 일단 기분이 나쁘거든요. 일종의 불만족이죠. 불만족스러우니 그것을 따지기 위해서 피해 내용을 계속 언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남들이 그것을 인정해주거든요.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판단 자체가 달라서 그래요. 사람마다 피해의 범위를 서로 다르게 판단하거든요그 기준점이 다르니 당연해요. 그래서 공감 받기 위해서 피해의 내용에 집착하게 됩니다. 피해의 내용에 관해서는 대부분 비슷한 판단을 하니까요.

 

그럼 다음으로 사람들이 왜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죠.

 

사람들은 원래 어린 시절엔 어떤 종류의 피해의식도 없어요. 그건 아이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피해를 입었는지 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차별을 받는지, 자신에게 불합리한 일이 있는지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뺏겼는지 판단할 경험적 지식이 없어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사탕을 나눠주면서 단 한 명에게만 사탕을 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물어보겠죠. 그때 '너는 못생겨서 안 준거야' 라고 말을 하면, 아이는 분명히 상처를 받아요. 그런데 아이는 상처를 받는 것으로 끝나요.

 

그 순간 자신이 피해를 받았다고 판단하지 못해요. 그냥 정말로 자신이 못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울어요. 그 말이 불합리하거나, 상대에게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든가, 외모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할 능력이 안되죠.

 

대신 부모에게 말하면 부모는 불같이 화를 내죠. 명백하게 피해를 받았으니까요. 이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사탕 하나의 문제가 아니죠.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선생을 자르라고 하겠죠.

 

아이는 이런 식으로 세상을 경험해요부모의 화난 모습을 보면서 그런 일은 옳지 않은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죠아이가 좀 더 크면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좀 더 스스로의 판단 능력이 생깁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죠그리고 이런 식으로 경험하는 피해들은 점점 피해의식을 키웁니다. 점점 더 판단하니까요.

 

모든 사람은 이 아이와 같은 원리로 피해의식을 갖게 됩니다. 어쩔 수 없어요. 단지 엄청나게 많은 돈이나 강력한 권력를 가진 경우어느 정도 피해갈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 한계는 있죠. 큰 병이라도 걸리면 누군가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어요. 신이든 의사든 말이죠.

 

피해는 원래 손해를 본 것을 근간으로 생겨나야 정상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단지 손해를 본 것만으로 피해라고 여기지는 않아요. 이득을 보지 못한 것도 피해라고 생각하죠. 그것이 확실하게 정당한 이득이라면 말이죠. 이때 문제는 그 정당성이에요. 도대체 이득의 정당성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같이 급식 배식을 받을 때, 옆에 있는 친구에게 새우가 세 개를 받고, 자신은 두 개를 받으면 그것으로 인해 괜히 자신이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해의식이 생겨요.

 

피해의식의 진짜로 무서운 점은 사실은 아무런 정당성이 없어도 그것이 있다고 느낀다는 점이에요. , 합리적이거나 불공정한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상황에서도 그래요설령 다른 모든 아이들은 새우를 두 개씩 받았고 옆에 있는 친구만 운 좋게도 세 개를 받았다고 해도 피해의식이 생겨나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누군가 사람들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나눠주고 있는 모습을 봤어요. 그래서 받으려고 줄을 섰는데, 자신의 앞에서 돈이 다 떨어져서 행사가 종료되면 화가 나죠원래 자신은 만 원짜리를 받을 권리라고는 전혀 없었지만바로 앞의 사람까지 받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시간을 내어서 줄을 섰다는 행위를 근거로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져요. 그러니 화가 나죠. 피해를 입었으니까요.

 

그래요 피해의식은 이런 식으로 경험되게 되어 있어요. 손해를 봐도 피해를 입은 것이고 그냥 근거도 없는 이득을 보지 못해도 피해를 입은 것이에요. 그러니 도대체 어떻게 피해의식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더군다나 그것의 원인이 되는 이득과 손해는 완전히 서로 상대적이에요.

 

즉, 손해냐 이득이냐 여부보다 남들보다 얼마나 손해를 입었는지, 남들보다 얼마나 이득을 봤는지를 여부를 가지고 판단해요. .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비상식적이거나 비합리적이거나 불공정한 것이 아니란 판단이 들면 피해의식은 생기지 않죠.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런 근거가 있으면 그대로 넘어가긴 힘들어요. 그리고 이때는 그저 자신이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도 근거가 되요.

 

실제로 심각한 피해를 봤지만 남들도 다 봤으면 꽤나 저항 없이 받아들여요. 지진이 나서 자신의 집을 포함한 근처 집들이 모두 무너지면 그래요. 다들 무너졌으니까 받아들여요하지만 아주 작은 손해를 봤음에도 자신만 그 피해를 입으면 그것은 심각하게 따집니다. 잔돈을 100원만 제대로 받지 못해도 따지게 돼요.

 

즉, 피해의식은 피해 그 자체보다 그 피해를 둘러싼 자신이 납득하기 힘든 상황으로 인해 발생해요. 그러다 보니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인해서 정말로 피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것조차도 피해라고 느끼게 될 수 밖에 없죠. 그러니 자주 화가 나고, 자주 신경질이 나요.

 

이 사실들을 근거로 사람들이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근본 원인을 살펴보죠.

 

모든 피해의식은 자신의 정당성을 통해서 만들어져요. 불공정한 손해를 보거나 정당한 이득을 얻지 못할 때 생기죠. 그러데 도대체 그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생각보다 쉬운 질문이에요. 당신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요. 거꾸로 생각하면 정당성이 없으면 살수가 없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이 갖기 싫다고 해서 갖지 않을 수도 없어요.

 

왜냐고요?

 


사람들의 정당성은 자신의 생명 그 자체에서 나오거든요. 그러니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신만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죠. 이 말에 대해서 예전에 9강인 분노 편에서 설명했었죠? 설마 기억 안나요? 군인들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했는데, 실망이에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생명이 모든 정당성의 근간이기 때문에다른 사람들과 이득을 두고 충돌이 나면 거기에서는 무조건 자기 편을 들 수 밖에 없어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과 나 자신 둘 중 하나만 살아야 한다면 당연히 내가 살아야 하죠.

 

즉, 남의 이득을 위해서 나의 이득을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다는 뜻이에요.

 

아니라고요? 남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요? 맞아요. 있어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남의 이득이 결국 자신의 이득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그래요. 이득이란 말을 물질적인 개념으로만 한정 지으니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이에요.

 

모든 인간이 이득을 얻으려는 최종 목적은 바로 행복이랍니다.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에 대한 모든 이해가 꼬여요. 혹시 잘 이해가 안 가면 강의 초반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인간은 오직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득을 얻으려는 목적이 행복 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하죠. 이 말을 거꾸로 말하면, 결론적으로 행복만 할 수 있다면 결국 이득을 얻은 셈이란 말입니다

 

행복은 정신적인 개념이에요. 감정이란 뜻이죠. 그러니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정신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럽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죠누구를 위해서요? 남이 아닌 바로 나를 위해서 말이에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보는 이유죠. 또한 전혀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이유에요. 자신의 자식이 먹고 싶어하는 것을 행복한 마음으로 사주는 이유이고요연인이 비싼 선물을 하는 이유에요.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이유에요.

 

이 모든 것은 정신적 행복, 즉 기분이 좋기 위해서 물질적 이득, 즉 돈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영화를 보거나, 남을 돕거나, 자신의 생명을 내 놓는 것은 모두 같은 목적의 행위에요.

 

단지 인간 세상에서는 자신만을 위한 행위보다는 남을 위한 행위를 매우 권장해요. 그래야 사회 유지와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그래서 지속적으로 그런 교육을 받게 되면 영화를 보는 것과 남을 돕는 것을 서로 다른 것이라고 믿게 되요.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씁쓸해요. 남의 건강함을 돕기 위해서 고양이를 잡아다가 먹이거든요.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착해요.


[쉬는 시간,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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